해월의 시조/시조

님의 생가

채현병 2016. 4. 18. 18:55

                             님의 생가生家

                                                                                                             海月 채현병




                       하나를 이르셔도 옛자취 그대로요
                       모두를 그리셔도 생가生家의 멀미일레
                       한 채씩 지어 두고서 둘러둘러 보시리






                          * 이현주 시인님의 수필 <내가 태어난 生家가 그립다>를 읽고(4. 18)


  약 7년전 까지만 해도 필자가 태어난 생가가 있었다.

  도시계획에 의해서 안채 일부가 잘려 나가니 가옥으로 제구실을 할수가 없어  

다 허물고 남아 있는터에 헌 재목만 쌓아 놓은채 공터로 보존해 왔었다.


  문중에서는 조상 뿌리가 있는 터이니 복원 하리라 기대하고 있었으나 장조카가

집안 어른들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팔아먹었고 현재는 연립주택이 들어서 있으며

생가 흔적이 살아진 상태라 그 앞을 지날때마다 가슴이 아려 온다.​


​  동네 사람들은 우리집을 가르켜 부자집이라고 불렀고 인근에서는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라고 칭했다. 5계단 층계위에 지어진 집에는 대문이 있고 중문이 있었으며

사랑채와 안채가 완전히 구별이 되어 있었다.

  대문밖 마당 한편에는 농기구 농산물 저장 창고와 농사준비와 가을 타작을 할수있는

넓은 공간이 있었고 중문안에는 안마당이 어림잡아 오십여평 되는곳에 왼쪽은 부엌과

광이 달려 있었고 폼푸 우물이 있어 안살림을 할수 있게 해놓았다.

  오른쪽에는 큰 광이 있어 쌀 보리 콩등 각종 농산물을 저장할수 있게 되어 있었다. ​

한옥건물  뒤란에는 집행나무로 둘러져 있어 안쪽 울타리 역활을 할수있게 만들어

놓았으며 그 뒤에는 뒷 텃밭이 있었고 그 뒤 언저리에 개나리나무를 심어 이중으로

울타리 역활을 하게 했다.


  봄이되면 노란꽃이 만발하여 뒷산에서 내려다 보면 마치 우리집이 개나리꽃 속에 

파묻혀 있는듯 보였다.대청마루에서 천정을 보면 큰 대들보가 보였는데 얼마나 큰지

어른팔로 한아름이 훨씬 넘을 거라고, 우리집에 오는 손님들의 표현 이었다.

  이런 생가에서 태어난 나는 어릴때 부터 이런 집에 사는 것이 친구들 한테 언제나

자랑스러웠고 부자집이라고 불러주는 그말이 참 듣기 좋았다. 그래서 방학때가 되면

서울에 사는 친구들이 우리집에 오고 싶어 했고 많이 와서 며칠씩 놀다가곤 했다.

  생가에 대해서 지금까지도 정확한 평수는 모르는데 남들이 55칸 집이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바깥 사랑채 툇마루에 누워 하늘을 보면 흘러가는 뭉게 구름이 보였고

새벽에 앞산 해터거리에 스며드는 물안개를 바라보면 내 몸이 실려가는듯 착각을 느끼

게 했다. 비오는 날 들려오는 낙수물 소리에 잠설치고 물소리와 같이 놀았던 농기구

창고의 초가 지붕 박덩굴이 눈앞에 아른댄다.


  겨울이면 광에 걸려 있던 쇠목 고기와 등심 있었는데 어른 생신날  잘라다가 불고기를

만들면 온집안에 고기 냄새가 진동하는 진풍경이 일어 났는데 그때가 그립다.그날은

머슴(일꾼)들도 괜이 신나 들랑거리며 어깨춤을 추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가을에 타작을

하면 며칠씩 했는데 무상치에 들기름 넣고 밥 비벼 먹던 생각은 지금도 잊을수가 없다.


  눈만 감으면 떠오르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생가가 그립다.

이렇게 봄이되어 개나리꽃이 허드러지게 피는 계절이 오면 그 시절이 더욱 그립고 생가

멀미에 중심 잡기가 어렵다.

  생가터가 아니더라도 좋으니 내 자식들이 고향땅에 생가와 같은 주택을 지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생가 모양이 내 머리속에 그대로 들어 있으니 설계도면은 필요 없을 것이다.

                              2016. 4. 15. 생가를 그리워 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