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도암 투병수기>
작은 시인이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채현병
2006년 1월 6일 이른 아침시간에 의사선생님께서 조용히 말씀하셨지만 그것은 청천벽력이었다. 우리 부부는 ‘앞으로 1년 정도 사실 수 있습니다. 이 기간은 짧다고 한다면 짧을 수 있으나 죽음을 맞이하는 시간으로는 짧지 않을 수도 있음을 다행으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란 말씀을 듣고 잠시 멍할 수밖에 없었지만, 선생님이 나가시고 난 뒤에 청천벽력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소리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은 몇 시간이 지나도 그칠 줄 몰랐다. 게다가 더욱 암담한 일은 그 당시 내 과거를 돌이켜 보면 정리할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내가 살아온 흔적들을 모두 모아 보아도 남겨둘만한 것이 하나도 없으니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런데 나는 내가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병명인 담도암에 걸렸단다. 그 부위도 두 담도가 Y형으로 만난 자리에 걸려 수술도 힘들단다. 그래서 죽는단다. 담도배액술로 담즙을 빼낸지가 10여일이 지났지만 황달수치가 22.9이고, GOT/GPT 수치도 176/60이란다.
많은 분들이 병문안을 오셨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체중도 오르락내리락 하지만 서서히 줄어들고 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 담도배액술을 추가로 시술하여 두 개의 호스로 담즙을 배출하니 황달수치가 22.9/19.5/17.9/15.8/12.5...로 하강하고 있었다. 어느새 입원한지가 한 달이 되어간다. 아직 누르끼리한 피부지만 어느새 황달수치도 8.4로 떨어졌다. 그래도 나는 죽는단다. 슬프다.
병상에 누워 있자니 번갯불 같은 생각이 퍼뜩 지나간다. 그래서 자신에게 자문해 본다. “네가 암에 걸려 죽는단다. 그런데 너는 암이 뭔지 아니?”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아니. 몰라!’ 뿐이었다. 나는 생각이 바뀌었다. ‘어차피 죽을 목숨인데 도대체 암이 뭔지, 그 중에서도 담도암이 뭔지는 확실히 알고 죽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병원내에 있는 도서관을 찾았다. 다행히 암에 관한 책들이 많이 있었다. 암에 관한 책들을 빌려다 읽었다. 암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무조건 읽었다. 암에 대해서 전혀 몰랐던 내가 책을 통하여 조금씩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다. 암에 대해서 조금은 알고 죽으니 참으로 다행한 일이라 생각하면서... 그런데 암에 관한 정보가 머리속에 쌓이다보니 참으로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내가 살 수 있는 길이 보인 것이다. 더듬고 다시 더듬어 생각해도 내가 사는 길이 분명 보이는 것이다. 내가 살 수 있는 확실한 의학정보는 두 가지였다. 그 중 하나의 방법은 암부위를 깨끗하게 도려내는 수술방법이고, 또 하나의 방법은 암세포를 제어할 수 있도록 내 몸의 상태를 최상으로 끌어올리는 방법이었다. 물론, 전자는 유능한 의료진의 힘을 빌려야 가능한 일이며, 후자는 아주 다양한 방법을 두루 사용하여 총체적 신체조건을 만들어야 가능하다. 나는 살아야 한다. 나는 살 수 있다.
나는 내 생각을 우리 가족에게 말했다. 형님에게도 말했다. 그리하여 의사선생님께 수술해 주실 것을 간청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간청에 간청을 거듭한 끝에 수술성공률 20%에 도전하기로 하였다. 얼핏 보면 무모한 듯 하지만, 내가 살 수 있는 길은 오직 이 뿐인걸 어찌할 것인가? 수술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했다. 그것은 내 자신이 만들어야 했다. “우선 체력을 키우자! 다행히 황달수치도 내려가고 있지 않느냐?“
책을 손에 든 날로부터 한 달후에 황달수치는 3.4로, 간수치는 60/7로 떨어졌다. 희망이 보인다. 또 한 달이 지난 후, 황달수치는 1,1이 되고 간수치는 38/20이 되었다. 드디어 기다리던 수술날짜가 잡혔다. 나는 살 수 있나보다.
2006년 4월 3일, 외과수술이 예술의 경지에 이르셨다는 의사선생님의 집도아래 9시간의 장도 끝에 대수술을 끝냈다. 그리고 성공률 20%의 행운의 문을 두드렸다. 드디어 수술후 8일째의 아침진료 시간에 활짝 웃으시는 의사선생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큰 은총을 받으셨습니다. 행운의 문이 열렸습니다. 축하합니다!!!”
우리는 또 다시 울어야 했다. 이번엔 웃음의 눈물이 우리 부부의 볼을 타고 내렸다. 나에게 사형선고를 내려 주셨던 그 선생님께서 반전의 미학을 펼치시어 새 생명의 기쁨을 누리게 해 주셨다. 나는 6년이 지난 지금도 정기검진을 위하여 6개월에 한 번씩 병원에 들린다.꼭 친정집에 들리는 기분이다. 병원이 그렇게 정다울 수 없다. 나의 생명의 은인을 만날 때마다 작은 응석도 부린다.
“이영주 선생님! 선생님 은덕으로 작은 시인이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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