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구 시조시인 / 2011. 8. 27 (토)
하늘에 오르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발인 : 2011. 8. 29 (월), 대전 충남대병원
모정 / 임경구
지는 해 부스러기 조금씩 얻어다가
달 밝은 밤을 빌어 자식 놈 성공 비네
두 무릎 빠알간 아침 떠오르는 눈동자
먹구름 타래 풀어 옛 일을 들춰내며
찬바람 서슬퍼런 역사의 뒤안길로
하고픈 말도 못한 채 하늘 가신 영령들
비단폭 좁다 않고 넓으신 붓을 거둬
후세에 좁은 안목 넓히라 하셨는데
아직도 조그만 소견 제 탓할 줄 몰라라
소방관 수첩에는 유서도 필수과목
설에도 불은 나고 꽉 막힌 소방도로
개처럼 부지런하나 이웃들은 야단 뿐
강가에서 / 임경구
새해가 밝아오니 신춘이 멀지않다
참꽃이 머지 않아 강산을 홀리겠지
햇살은 은비늘마냥 아침 강물 빛낸다
바다와 강이 만난 옥계의 다리 밑에
꿈꾸는 연어처럼 망상의 시인들은
동해로 회귀한 신춘 새해보다 반길까
낙향한 필부들은 어디로 숨었을까
파도의 춤과 노래 올해라 다를쏘냐
그물 속 연어들처럼 회귀할 꿈 꿈꾸나
겉치레 / 임경구
맨발의 석기 시대 신발 속 숨겨두고
현대인 된 척하는 거짓말 삼세판에
겉치장 치즈 냄새란 꼬깃꼬깃 꼬락내
을숙도의 봄 / 임경구
붓 걷고 떠나가는 을숙도 여백에는
바람이 약손 들고 갈대배 쓰다듬고
동안거 개구리들의 웃음소리 들끓어
기축년 그림 / 임경구
막막히 밤 새우니 절벽 끝 아침 맞아
물안개 허공 속에 무지개 다리 편다
화판 끝 색동 물감이 붓 끝에서 애탄다
동방의 아침 답게 조용히 해가 뜬다
색동옷 명절 같은 조신한 붓을 든다
새해의 각종 삶의 색 눈을 뜨니 예쁘다
흰 소의 등을 타고 중섭이 떠나간다
새까만 모니터를 환하게 밝혀주고
천천히 기축년답게 시나브로 앞서서
뼈대만 움찔하던 저 시댈 생각하며
잡다한 거칠 것들 훌훌훌 버려 놓고
끝낸 듯 사라질 듯한 화판 붓길 훔친다
육갑을 손 꼽으며 인생을 논하시던
옛어른 어떤 모습 꿈같고 전설 같아
현실을 도외시하며 그림과 나 바꾼다
인삼도 꽃이 필까 본 적이 없지마는
심 봤다 외침 아래 환하게 웃었을까
득도한 반가사유상 선한 웃음 봤을까
작아도 무한 세월 고행의 외로운 길
묵언의 계율 지켜 어디에 숨었다가
누구의 눈에 밟힘은 하늘의 뜻 폄일까
모양도 그럴싸해 저절로 합장하네
제 몸을 보시하는 염화의 미소 보네
그 누가 하늘의 뜻을 마음 놓고 받을까
정형시조를 노래 함 = 명인 임경구 =
- 1 - 우리 가락
곁에서 슬쩍 듣고 저절로 따라하며
어깨를 흔들면서 눈 앞에 보여주는
그것이 우리의 가락 전통이라 부른다
- 2 - 시심
시심은 강물 같아 변장의 마술사지
시인의 그릇 따라 흥겹게 닮아가고
독자의 그릇 크기에 신명나게 채우지
- 3 - 정형시 만들기
시조를 시조답게 우리는 한결같게
정형을 완벽하게 구설수 뿌리 뽑게
기준은 한 목소리로 몰래 봐도 똑같게
오늘은 온고지신 무엇을 배울건가
변화를 모색할 때 지혜를 모을 때다
늦잠에 따로 국밥은 싸구려로 떨이다
- 4 - 시인의 마음가짐
시조가 어렵다고 말 많은 사람들아
조상도 어려우면 여태껏 했겠느냐
재주가 허락하는 곳 거기까지 하렴아
남보다 잘 써야만 시의 맛 난다더냐
잘 쓰고 못씀이야 조그만 재주거늘
쓰는 이 읽는 이 모두 벗이 되는 노래다
- 5 - 퇴고
시 한 수 읊는다고 시인은 아니지만
기분은 신선노름 구름 위 올랐어라
우리시 우리 가락의 옛날 얘기 좋아라
너의 시 읊어보니 별 것은 아니지만
가락이 딱딱 맞아 흥이야 절로 난다
자수를 맞추고 나서 자꾸 퇴고 해 보자
- 6 - 시조 짓기
시조는 삼 장 육 구 음보는 열두 개다
노을이 너울너울 시인은 여유만만
우리는 어깨를 덩실 닮아 보려 애쓰자
글자 수 맞는다고 시조라 불리더냐
사자탈 덮어쓰면 사자라 부르더냐
닮았다 좋아라 말고 일심동체 이루자
장마다 다른 맛이 손 맛이 다르구나
묵은 장 깊은 맛에 새롭게 입맛나니
벗들과 정을 나누려 두고두고 맛본다
이 빠진 호랑이로 대접을 받을손가
호랑이 없는 골에 토끼로 대장할까
헐리웃 액션 성공은 아무래도 꼴불견
겨레의 혼이 어린 똑같은 청자빛은
어디에 내놓아도 누구나 알아주듯
선조의 선창을 따라 의젓하게 후렴을
- 7 - 자수 맞추기
글자수 맞추라니 어렵다 뒷짐지네
말 많고 행함없이 방정만 떠는구나
어쨌든 자수 맞으면 깔끔하다 칭찬해
(기쁜날)
잘 차린 새 색시가 너무도 아름다워
들러린 대충대충 한 번 더 띄워주니
사랑도 잘 포장해야 더욱 기쁜 잔칫상
- 8 - 시조에 빠지기
짧다고 힐난하며 안된다 흉을 보나
더 짧은 자유시도 명시로 전해오니
삼세판 삼천리 강산 한 번 빠져 보리라
- 9 - 현대시조의 품위
리듬을 먹고 사는 시조로 입맞추기
자수를 맞춰보면 저절로 리드미컬
넉넉한 황소 음보로 헐렁하면 편할까
싱글로 맞춰 입는 정장의 심플함과
투피스 캐주얼의 경쟁은 당연한 것
최고의 제품이라면 제 값 받고 팔리지
오늘이 어제되고 어제는 그제되는
현대란 시대 맞아 발빠른 세월이다
어제의 현대시조가 오늘 아침 고시조
시조를 시조처럼 당연히 쓰면 안돼
옛사상 배제하고 자유시 졍쟁하려
자유시 닮은 시조를 잘 썼다고 평하네
- 10 - 시조의 울림
억지로 맞추느라 이마에 땀이 나면
소리는 달아나고 호흡만 가빠진다
넉넉한 온고지신은 전승으로 배운다
우리말 리듬으로 눈빛만 마주쳐도
호흡이 척척 맞는 깐깐한 일심동체
커다란 우리 겨레가 밀고 가는 큰 울림
<님의 노래, 마음 안에 둡니다>
韓國文壇(박인과) 2011. 8. 27. 19:41
생과사 어찌보면 시간의 앞면뒤쪽
통틀어 한가지인데 떠난네가 허무해
홀연히 떠날거면 웃지나 말고가지
수많은 네속삭임 귓가로 쏠리는데
어이해 너의시계는 이리빨리 멈추나
투병중 안타깝게 흘려낸 너의그말
가슴에 송진처럼 짓붙은 너의그말
‘세상이 너무하네요’ 허공에서 맴도네
어차피 가야할길 자네가 일찍가네
남은자 여행끝날 옷벗고 떠날그날
좋은그 하늘나라서 우리다시 만나세
망우수(김성호) 2011. 8. 27. 20:50
인생은 유한하니 저승길 걷는 거지
세상의 종말이 오면 인생역시 끝이지
인생은 직선이나 세상은 동그라네
세상과 입 포개고 산다고 오래 사나
한 발짝 먼저 갔다고 애통하지 말게나
살아서 누린 영화 죽으면 가져가나
숨겨 논 돈다발이 저승길 불 밝히나
꽃처럼 사시었거든 어여쁘게 가소서
* 생전에 시조 밖에 모르는 명인님 가시는 길
못 쓰는 시조지만 그분이 좋아 하던 시조로
가는 길에 뿌리오니 부디 거절일랑 마소서
海月 채현병 2011. 8. 27. 22:57
시조의 律呂속에 이 세상 觀照터니
새벽길 큰별이 되어 秋安居에 드시네
* 삼가 임경구 시인님의 영전에, "끝말이어 시조짓기" 몇 수를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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