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월의 뜨락/문화재 탐방

민화(民畵)

채현병 2013. 1. 10. 21:37

 

민화의 정의

우리민화는 생활 속의 주제와 우리신화 속의 주제를 표현 하였는데, 민화란

Folk 민간에서 시작된, 민중[서민]의, 민속의 의미로 folk culture 민속 문화,folk painting 민속화,folk ballads 민요(조)의, 민속 음악의, 세인(世人)folk museum 민속 박물관,folk beliefs 민속 신앙...등을 일컫는데, Folk painting 민화는 생활 속의 그림으로 민속그림이라는 의미로 서민계층에서 주로 그려졌던 민간 생활 속의 그림이란 뜻을 지닌다.

따라서 일반사람·보통사람. 여느 사회적 여러 집단과의 관계에서, 계급관계로는 지배계급이 아닌 피지배계급이고, 사회계층으로는 각기 사회의 물질적·정신적 생산에 종사하는 직접생산자이므로, 역사사회를 떠받치는 기저 층(基底層)이라 할 수 있는 민중, popular [mass] arts민중예술, popular painting 민중미술과는 개념적인 차이를 보인다.

민화의 3대 표현영역.

 

1.Part: 하늘그림

 ㄱ.인간을 돕는 무속신들의 이야기 Shaman's ritual paintings
 ㄴ.신령스런 동물과 상서로운 새 Noble Animals
 ㄷ.해롭고 삿된 것을 물리쳐주세요
 ㄹ.해와 달과 별 이야기

 

2. Part: 땅 그림
ㄱ.삼천리반도 금수강산 Our picturesque rivers and mountains
ㄴ.팔경풍류 만고강산 유람할 제 Pilgrimizing motherland
ㄷ.풍수지리 Feng-shui, determind the live and the dead
ㄹ.삼신산의 으뜸, 금강산Seeing Mt, Kumgang was life long desire even to the Chinese.


3.Part: 사람그림

ㄱ.강륜도설Heaven's will spread on the land of heaven's descendants
ㄴ.하늘의 기쁜 소식 Good news from Heaven
ㄷ.아들 손자 많이 낳으세요 Prolific ancestors
ㄹ.은일신선

 

민화 民畵
조선시대에 서민계층에서 주로 그려졌던 민간예술적인 그림.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규경(李圭景)이 쓴 백과사전인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속화(俗畵)로 나와 있으며, 최근에는 <겨레그림> 이라는 말로 불리기도 한다.

사대부나 도화서(圖畵署)의 정통 회화에 대하여 주로 생활공간의 장식 및 민속적인 관습에 따라 그려진 실용화(實用畵)를 가리키는데, 여염집의 병풍·족자로 제작되거나 벽에 붙여진다. 또 서당·사찰·무당(巫堂) 등에도 걸리며 혼례식 같은 민간의 의례 때도 쓰인다.

0민화는 선사시대의 바위그림[岩刻畵(암각화)]이나 청동기시대의 공예품에서부터 그 성격을 찾을 수 있어 뿌리가 깊으며, 삼국시대의 고분벽화나 벽돌, 고려·조선시대의 그림·공예품에 많이 나타난다.

민화는 어느 나라에도 있는 것이지만 특히 한국·중국·일본 등 동아시아에서 다양하게 발전해 왔으며, 중국의 연화(年畵)나 일본의 우키요에[浮世繪(부세회)]에 한국의 민화가 자주 비교되기도 한다.


그러나 중국의 연화는 주로 정초(正初)에 벽사진경을 주목적으로 하여 붙이는 그림이며, 일본의 우키요에는 그림의 소재가 대부분 유녀(遊女)라는 점에서 한국의 민화와는 구분된다.

한편 민화의 작가는 도화서의 화원(畵員)에서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데, 화원이 되지는 못했으나 그림에 소질이 있는 사람, 사람들의 요구에 따라 그림을 그렸던 천인 계층, 본격적인 그림공부를 받지 못한 무명 화가 등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서민의 생활양식이나 관습의 항상성(恒常性)에 바탕을 두고 민화를 발전시켜 왔기 때문에 창의성보다는 되풀이하여 그려짐으로써 형식화된 유형에 따라 계승되었다.

그러나 민화는 오랫동안 생활과 밀착되어 발전해 옴으로써 내용과 발상 자체에 한국의 정서가 짙게 배어 있으며 세련된 정통 회화에 대하여 익살스럽고 소박한 형태 및 파격적인 구성, 뛰어난 해학미, 아름다운 색채 등을 주요한 특징으로 가진다.

또 이러한 민중적인 요소로 하여 한국의 민화는 세계 어느 나라의 민화보다 그 경지나 양식의 전개가 우수하며, 특히 근래에 와서 세계적으로 여러 시각에서 재평가되고 있다.

*민화는 생활 주변 및 현실의 모든 물상들을 제한 없이 그 소재로 하고 있으며, 현실뿐만 아니라 상상의 내용, 전설과 설화 등 무한한 소재들이 그려져 왔다. 또 도교나 불교, 유교 등 종교적·학문적 민화와, 무속과 같은 민간신앙을 내용으로 하는 민화 등이 있다.


*⑴ 장생도(長生圖):민화의 대표적인 것으로 불로장생의 축수(祝壽)를 기원하는 뜻이 담겨 있다. 예부터 장수의 상징으로 알려진 십장생, 즉 해·구름·물·바위·소나무·대나무·영지·거북·사슴·학 등을 그린 십장생도와 송학도(松鶴圖)·군학도(群鶴圖)·군록도(群鹿圖) 등이 많다. 특히 십장생도는 회갑잔치 때 수연병(壽筵屛)으로 쓰이며 임금의 용상 뒤에 놓인 오봉산일월도(五峰山日月圖)도 민화의 한 종류로 볼 수 있다.

⑵ 십이지신상:방위(方位)와 관련된 12지신 및 5방을 관장하는 5신을 그린 것으로, 역병을 몰아내고 길한 것을 기원하는 뜻이 담겨 있다. 쥐·소·호랑이·토끼·용·뱀·말·양·원숭이·닭·개·돼지 등 12지신과 청룡· 백호·주작·현무·황제(黃帝)의 5신이 소재가 되는데 주작은 기린 또는 봉황으로, 현무는 거북으로 변형되었다.

⑶ 호랑이:동물을 그린 민화 가운데 가장 많은 것으로 산신과 함께 그려지기도 하며, 까치와 함께 그려진 까치호랑이[鵲虎圖(작호도)], 호피도(虎皮圖) 등이 많다. 벽사진경의 대표적 민화이다.

⑷ 신선도·산신도:도교사상에서 비롯되어 민간신앙으로 뿌리깊게 정착한 것으로 장수·부귀·
수복다남(壽福多男)을 기원하는 뜻이 깔려 있다. 동자·호랑이·봉황 등과 같이 그려진다.

⑸ 신위(神位):천제(天帝)·칠성(七星)·오방신장(五方神將) 등 무속과 관련된 여러 신과 태조·공민왕· 최영(崔瑩)·임경업(林慶業) 등 한국의 왕 및 장군들이 그려진 민화가 많다. 중국의 관우(關羽)도 많이 그려졌다.

*화승(畵僧)의 정통 그림을 제외한 암자·칠성각 등에 남아 있는 그림도 민화에 포함된다. 단순한 탱화 (幀畵)나 교리 내용 또는 고승의 초상을 강렬한 원색과 분방한 구도로 그린 것이 많다. 자아(自我)의 발견을 철학적으로 가르치는 심우도(尋牛圖)도 많다.


*성리학의 가르침과 관련하여 교훈적인 것 및 충효예의(忠孝禮義) 등을 내용으로 한다. 행실도(行實圖) 효자도(孝子圖) 등이 대표적이며, 관직에 오르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잉어그림[魚躍龍門(어약용문)]도 많이 그려졌다.

또 교화를 위한 문자도(文字圖)도 유교계통 민화의 하나이다.

0⑴ 산수화:동양화의 대표적인 소재로서 민화에서도 산수를 그린 것이 많이 있다. 일반 회화보다는 채색을 많이 하며 필법에 관한 한 대단히 자유롭다. 대개 8폭의 병풍 형태인데 금강산도(金剛山圖)·관동팔경도· 관서팔경도·고산구곡도(高山九曲圖) 등이 많으며 중국의 소상팔경(瀟湘八景)도 그려졌다.

⑵ 동·식물:벽이나 벽장, 다락문 등에 붙여지는 것으로 민화 가운데 그 수가 가장 많다. 주로 가문의 융성과 부부의 행복을 바라는 뜻이 담겨 있으며 화조도(花鳥圖)가 대표적이다. 꽃과 새 이외에 물고기나 각종 야생동물들도 한쌍 또는 무리를 지어 그려졌으며 파초·모란·포도·사군자도 많이 그려졌다.

⑶ 풍속화:민화가 가진 성격과 특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소재로서 수렵도(狩獵圖)·해전도(海戰圖)· 사화(史畵)·선유도(船遊圖) 등이 많다. 어린이들이 노는 백자도(百子圖), 농사와 길쌈을 그린 경직도 (耕織圖), 민간의 행사 풍경을 그린 것 등이 있으며, 문학을 소재로 한 춘향전도(春香傳圖)·구운몽도 (九雲夢圖)·삼국지도(三國志圖) 등도 많이 그려졌다.



⑷ 정물화:일상의 용품, 그 가운데서도 서책을 소재로 한 책탁문방도(冊卓文房圖)·책거리[冊架圖(책가도)]· 문방사우도(文房四友圖) 등이 대표적이다.

한 화폭에 여러 가지의 물상들을 회화적인 구도·색깔·균형·비례·대비 등의 기법으로 처리한 것인데, 정통 화풍의 세화(細畵)로부터 소박하고 익살스런 것에 이르기까지 많은 그림들이 남아 있다. 색조의 조화가 뛰어나고, 정갈한 가운데 창조적인 요소가 엿보여 현대적인 관점에서도 우수한 작품이 많다.


우리 그림 民畵 속에 담긴 이야기
□ 호랑이 그림
호랑이는 단군 신화에도 등장할 만큼 우리 민족과는 깊은 관계가 있다. 그래서 호랑이는 한국의 상징이라 할만큼 옛 생활미술에 많이 등장하며 심지어 호랑이 신체의 일부인 가죽, 발톱, 이빨, 뼈등을 장신구나 장식물로 쓴 예가 적지 않은데 이것은 호랑이가 영험스런 짐승으로서 호축삼재(虎逐三災)라하여 세가지 재앙 곧 수재(水災), 풍재(風災), 화재(火災)나 지병, 기근, 병란으로부터 보호해 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매년 정초가 되면 궁궐과 여염집의 대문이나 집안곳곳에 호랑이 그림을 붙였던 것이다. 호랑이와 관련된 그림으로는 까치 호랑이 그림, 군호도(群虎圖), 호렵도(虎獵圖), 그리고 백호도(白虎圖)와 만호도(萬虎圖)등을 들수 있다.


● 까치호랑이 그림 (鵲虎圖)
까치 호랑이 그림은 대개가 소나무 아래 큼직한 호랑이가 도사리고 있고 까치가 소나무에 앉아서 지저귀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는 까치가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한다는 서낭신의 사자로서 호랑이에게 신지를 전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한다.

이 그림은 궁궐에서 사대부, 여염집까지 새해 정초에 대문이나 문등 집 안 곳곳에 붙였던 문배그림으로서 「일년 내내 잡귀와 액운을 막아주고 좋은 소식을 불러들인다」는 바램을 담은 그림이다.

까치 호랑이 그림은 원래 중국 청나라에서 까치와 표범을 함께 그리던 것이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변형된 것으로 보이는데 청나라에서는 「새 해 좋은 소식을 알린다」는「신년보희(新年報喜)」의 의미로서 기쁨의 새인 까치(喜鵲)에 소식「보(報)」와 독음이 같은 표범「표(豹)」, 그리 고 정월을 뜻하는 소나무를 함께 그렸다고 한다.

혹자는 까치 호랑이 그림을 호랑이는 부패하고 무능한 관리로, 까치는 선량한 서민으로 보아 「타락하고 무능한 위정자를 선량한 평민이 꾸짖 고 조롱하고 있는 그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 군호도(群虎圖)
군호도는 아름답게 구부러진 소나무 숲 사이로 어미호랑이와 새끼호랑이들이 함께 무리지어 있는 광경을 그린
그림으로서 호렵도와 더불어 무관들이 자기의 위용을 나타내기 위하여 주로 거처를 장식했던 그림이다.

● 호렵도(胡獵圖)
호렵도는 호복(胡服)차림의 사냥꾼들이 말을 타고 광활한 산야를 달리며 호랑이나 다른 여러짐승들을 사냥하는 장면을 대개 8폭으로 연달아 해학적으로 그린 그림이다.

호렵도는 고려 31대 공민왕이 그렸다는 음산대렵도(陰山大獵圖)가 시초라고 한다.

원래 왕이 인솔하는 사냥은 정치적 시위를 뜻하는 정치행동의 일종이었으나 호렵도는 군호도와 더불어서 호탕한 무관들의 거처나 군사시설등에 비치되었던 그림으로서 무관들의 위용을 나타내기 위한 그림이었다.


□ 사슴 그림
사슴그림은 사슴이 한 마리나 두 마리 혹은 여러마리가 떼지어 노는 장면을 그리는데 사슴이 두 마리인 경우에는 쌍록도(雙鹿圖) 여러마리인 경우를 백록도(百鹿圖)라 부르는데 특히 한 마리만 그릴때도 보통 흰사슴 (白鹿)을 그려 놓고 읽을 때 독음대로 백록도(百鹿圖)라고 읽어 백마리의 사슴을 그린 그림과 같이 사슴이 지닌 복록의 주술적 의미를 백배 더 하는 뜻을 지닌다.

사슴그림은 불행과 질병을 막아주는 주력이 있고 또 사슴 록(鹿)과 복 록(祿)의 독음이 같아서 복록(福祿)을 의미한다.

그리고 사슴은 그 뿔이 봄에 돋아나 자라서 굳었다가 떨어지고 이듬해 봄에 다시 돋아나길 거듭하기 때문에 장수, 재생, 영생을 상징하는 십장생의 하나이기도 하다.

□ 개 그림(神狗圖)
용맹스럽고 다소 과장된 모습을 하고 있는 개를 그린 신구도(神狗圖)는 도둑을 지키는 축도(逐盜)의 부적같은 일종의 벽사그림으로 광이나 곳간에 붙였던 그림이다. 개 그림중에는 눈이나 귀를 네 개씩 그린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많은 눈과 귀를 갖이고 어두운밤 비바람이 몰아쳐도 도둑이나 귀신의 소리까지도 잘 보고 들으라고 그리 했을 것이다.

상상의 동물 그림 (靈獸畵)
중국고대 전설에 나오는 수호신(守護神)적인 상상의 동물을 영수(?獸)라하여 이들을 그린 그림이 영수화이다. 민화에 나타나는 영수들은 길상적인 서수(瑞獸)들로 수호와 축사(逐邪)의 뜻을 가진 것이다.


영수를 소재로한 사신도(四神圖)는 동양 전통 철학인 음향오행설에서 비롯되었으며 동서남북 네 방향을 수호하는 청용, 백호, 주작, 현무를 그린 그림이다. 또한 민화에 등장하는 영수들로는 용, 봉황, 신구, 기린등 사영수(四?獸)와 해태등 여러 가지가 있다.


● 용 (龍)
용은 우리 겨례와 가장 친근한 상상의 동물로서 그 생김새는 몸통이 뱀과 같고 네 개의 발이 있어 매의 발톱을
가졌으며 머리에는 사슴같은 뿔과 등에는 81개의 비늘이 있고 토끼같은 눈, 소의 귀, 뱀의 목, 범의 발바닥,
큰 조개같은 모습의 배를 가졌다고 한다.

백룡과 황룡은 임금, 황제를 상징하고 청룡은 사악한 귀신을 내쫓는 벽사를 뜻하며 흑룡, 여룡은 가뭄이들 때
기우제를 올려 비를 구하는 대상이었다.

용은 전통적으로 고귀하고 신비로운 존재로 비유되어 왕의 얼굴을 용안(龍顔), 왕이 앉는 걸상을 용상(龍床),
왕의 의복을 용포(龍袍)라고 했는데 왕을 용으로 비유하게 된 사연은 용에게는 인간과 국가를 보호하고 물을
다스리는 능력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용을 그리는 방법에도 격식이 있어서 왕실에서 사용하는 용 그림은 발톱이 다 섯개인 오조룡(五爪龍)을 그리고 민가에서는 사조룡(四爪龍)이나 삼조룡(三爪龍)을 그렸다

또 왕과 왕비의 예장에는 오조룡을 수놓은 둥근 보(補)를 착용했고, 왕세자와 세자빈을 사조룡, 세자손을 발톱이 세 개인 삼조룡을 수 놓은 보를 착용해서 발톱의 수로 위계를 달리 표현하기도 했다.

● 봉황 (鳳凰)
봉황은 고대 중국의 전설로부터 유래된 서조(瑞鳥)로 어질고 현명한 성인과 함께 세상에 나타나는 새라고 전한다.

수컷을 봉(鳳)이라고 하고 암컷을 황(凰)이라고 하는데 암수를 같이 불러 봉황이라 한다.
봉황의 생김새는 앞 모습이 기러기(군신의 의), 뒷모습을 기린(어진성군), 부리는 닭(밝음을 가져옴), 턱은 제비(천심전달), 등은 거북(재앙을 막고 앞날 예견)을 닮았다고 한다.


용과 봉황은 군왕이 갖출 모든 조건을 갖추었다 하여 군왕을 상징해왔는데 두 상징에 서열을 매길 때는 용을 상위에 두어 천자 곧 황제의 상징으로 삼았고 봉황을 황후의 상징이나 천자에게 사대하는 제후나 왕의 상징으로 쓰였다. 그래서 천자를 섬기던 조선시대 왕궁의 정전 천장에 용을 그리지 못하고 봉황을 그렸었는데 조선시대 말기에 고종께서 청나라 사대에서 벗어나 대한제국을 선포한 후 왕에서 황제로 승격되면서 경복궁 근정전의 천장과 임금이 앉는 용상의 뒤에 봉황 그림이 황제의 상징인 용 그림으로 바뀌었다. 이는 창덕궁 인정전에 남아있는 봉황 그림과는 대조적인 좋은 예가 된다.

봉황그림은 오동나무와 대나무등과 함께 그려 지는데 그것은 봉황은 오동나무 아래에만 깃들고 삼천년만에 한번 열린다는 대나무 열매인 죽실(竹實)을 먹고 산다 전하기 때문이다.

● 신구도 (神龜圖)
신구라 불리는 거북은 용, 봉황, 기린과 함께 사령수(四?獸)의 하나로 3천년을 산다고 전하여 장수의 상징으로 여겼다.

등껍질은 하늘의 지붕을 나타내고 그 표면에는 별자리가 나타나 있으며 배의 껍질을 땅을 나타낸다고 한다. 곧 상하의 껍질은 천지 음양의 힘을 나타내 수명과 우주를 상징하는 것이다.

민화에 보이는 거북은 예언과 수리의 기본이 되는 <하도낙서(河圖洛書)>를 등에 지고 나오기도 하고 복점을 치는 내용의 그림으로 그려지기도 하는데, 이는 중국 하나라 우임금이 낙수에서 홍수를 다스릴 때 등에 아홉 개의 점이 찍혀 있는 거북이 나타났고 이 점은 나중에 주역의 중심 사상인 팔괘가 만들어 졌기 때문이다.

민화에서 거북은 우리가 볼 수 있는 일반 거북과는 달리 매우 기괴하게 상상적으로 그려지며 대개가 두 마리를 함께 그리고 있는데 우리 선조들은 거북을 장수의 상징으로서 귀엽고 친근한 동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 기린 (麒麟)
민화에서 기린은 우리가 동물원에서 볼 수 있는 기린이 아니고 털을 가진 땅짐승의 왕으로서 수컷을「기(麒)」 암컷을「린(麟)」이라고 하는 상상의 동물이다. 기린은 몸이 사슴같이 크고 네다리는 소발굽이고 목의 털인 갈기는 말과같고 등 털의 빛깔은 오색이고 배의 털은 황색이라고 한다. 그리고 기린은 머리에 살로된 뿔이 하나 돋아 있지만 사람을 받아도 다치지 않고 살아있는 풀이나 벌레를 밟지 않으며 왕이 될 사람이 출현할 때 사람들이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기린이 나타나면 세상에 어진 성왕(聖王)이 나와 태평성대를 펼 길조라 생각했다.

● 해태 (??) 그림
해태는 소의 머리와 말의 얼굴에 외뿔이 하나 있는 상상의 동물로서 옳고 그름을 판단할줄 알며 불을 막아 준다고 한다

우리나라 국회의사당에 세워진 해태상은 국사를 논할 때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정의롭게 일하라는 의미라 하겠다. 또한 조선시대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 불이 자주 일어나자 당대 유명한 석공 이세욱을 시켜 돌로 해태상을 만들어 세우고 불을 막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해태그림은 불을 막기 위하여 정초에 세화로 그려 부엌문에 붙였던 그림이다.

● 불가사리 그림
불가사리는 쇠, 구리, 대나무 뿌리를 먹고 살며 악귀를 쫓는다는 전설속의 동물로 생심새는 곰의 몸에 코끼리의 코, 코뿔소의 눈, 호랑이의 발 쇠톱같은 이빨, 황소의 꼬리를 가졌으며 온몸에는 바늘같은 털이나 있고 암컷에만 줄무늬가 나 있어 이것으로 암수가 구별 된다고 한다.


□ 종교 관련그림(道釋畵)
● 산신도(山神圖)
산신도가 우리나라의 사찰이나 사당등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5세기경 도교가 우리나라에 전파되면서 부터로 알려져 있는데 호랑이와 산신을 숭배하던 우리 선조들의 산악숭배 신앙이 반영된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산신도는 대개 노인 모습의 산신과 호랑이를 함께 그리고 있는데 행복과 재물을 가져다 주며 무병장수하게 하는 영험한 신이라 해서 무당개인의 사당이나 마을의 산신당 또는 사찰의 산신각에 독성도나 칠성도와 함께 모셔졌었다.

독성도 (獨聖圖)
독성(獨聖)은 불교적으로는 부처님의 도움없이 부처님 생전에 홀로 깨친 성자라는 뜻으로 독성도는 부처님의 18 나한중의 한 분이었던 빈두로 존자나 천태산에서 독수 선정하여 진리를 깨우치고 미륵불이 출현하는 융화세계를 기다리고 있다는 전설적인 존재인 나반존자를 그린 중국 그림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독성도에서 독성은 항상 머리가 벗어진 노인이나 정수리가 튀어나온 노인으로 그려지는데 흰 눈썹에 승복을 입고 있는 차림새로 염주나 나무 지팡이를 들고 있는 맨발의 모습이다.

독성도는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일을 독성이 알고 있어서 우리 중생들을 늘 이롭게 이끌고 복을 내려 준다하여 사찰이나 마을의 산신당등에 걸렸던 그림이다.


● 칠성신도(七星神圖)
칠성신도에서 칠성신은 북두칠성을 신격화 한 것으로서 대개가 일곱명의 노인을 그리는데 칠성은 자식을 잉태하게 하며 인간의 수명을 길게 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거처를 지켜 준다하여 사찰이나 사당등에 모셔졌던 그림이다.

● 신선도(神仙圖)
신선도는 중국의 전국시대 말기에 생긴 불로장생(不老長生)사상과 도교에서 비롯된 신선사상을 그림화 한 것으로서, 그 관념의 기초가 인간에 있기 때문에 그림에 표현된 신선들은 우리 인간의 모습이며 신선과 더불어 불로장생의 상징물인 불로초, 천도복숭아, 불수과 등과 사슴이나 학, 거북등이 함께 그려진다.


신선도는 불로장생과 부귀에 대한 속인들의 한 없는 염원과 부러움을 신선이라는 신앙적 존재를 통해 나타낸 부귀와 장수를 기원하는 그림으로서 주로 노인들의 방을 장식했던 그림이다.


● 신선동자도 (神仙童子圖)
다른 신선도처럼 불로장생과 부귀에 대한 속인들의 한없는 염원과 부러움을 신선이라는 신적인 존재를 통해서 나타낸 그림이다.


수성노인과 함께 그려진 천도복숭아는 선도(仙桃)라고도 하는데 이는 3천년만에 꽃이 피고 3천년이 지나야 열매를 맺으며 3천년이 가야 익는다는 상상의 과일로서 장수를 상징한다. 그래서 신선동자도는 부귀와 장수를 기원하는 그림이다.

● 바리공주(애기씨) 그림
바리공주 그림은 감로수와 피, 살, 목숨을 살리는 꽃을 얻어서 부모의 생명을 구하는 바리데기 설화의 주인공인 바리공주를 신격화해서 그린그림으로 일명 「애기씨」라고도 한다. 이 그림은 사람이 죽은지 49일안에 영혼천도를 위해 후손들이 베푸는 씻김굿(지노귀 새남)을 할때 무녀의 사당에 모셔졌던 그림이다.


바리공주 설화 내용을 참고로 소개 하면 「바리공주는 불라국 오구대 왕의 일곱번째 딸이었다. 아들을 늘 바라던 오구대왕은 딸을 낳자 버 린다는 뜻의 「바리」라는 이름을 붙여 갓난 딸을 물에 띄워 보냈는 데, 착한 늙은 부부가 거두워 키웠다. 이후 대왕이 병이들어 점을 치니, 바리공주가 저승에서 구해오는 불사약을 먹어야 나을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를 안 바리공주는 수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역경을 헤치고 저승으로 들어가 꽃을 구해 돌아와 죽은 아비를 살려 냈다」 한다. 이후에 바리공주는 스스로 무당이 되었다 해서 무당들의 수호신으로 추앙받고 있다.

□ 인물화 (人物畵)
민화에서 인물화는 인간을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화폭에 옮겨 놓고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그림으로 주로 방안 장식용으로 사용되었다.
인물화에는 어린이를 소재로한 백동자도(百童子圖)를 비롯하여 소설이나 고사, 설화의 주인공을 상상해서 그린 작품과 매우 섬세하게 그린 초상화나 자화상등이 있다.

특히 조선시대 초상화는 얼굴의 주름이나 수염 한올한올 뿐만 아니라 검버섯까지도 매우 사실적으로 그린 격조 높은 우수 작품들이 많이 있는데 대상이 살아 있을 때 그리는 사진(寫眞)혹은 진영(眞影)과 사후에 그리는 전신도(傳神圖)가 있다.

그리고 초상화에 비해 매우 적은 작품이 전해지고 있는 자화상 가운데 걸작중의 걸작으로 고산 윤선도의 증손자였던 공재 윤도서의 자화상을 꼽을 수 있는데 이 작품은 수염 한올한올 까지도 정밀하게 묘사하고 있어「인간의 실존 밑바닥까지 다가가는 듯한 실존성을 느끼게 하는 작품」으로 평가 되고 있다.

□ 사당도 (祠堂圖)
조선시대 사람들은 유교의 영향으로 부모님 살아 생전에 효도하고 돌아가신 후에는 양지 바른 명당에 모셔 놓고 모역안에 사당을 지어 제사를 지내는 일이 자식된 도리로써 후손이 마땅이 해야 할 일이라고 여겼다.


사당도는 「마치 옆에 모신 듯이 돌아기신 선조를 사모하는 그림」이라는 뜻의 감모여재도(感慕如在圖)라고도 하는데, 이 사당그림은 조상의 묘소가 멀리 떨어져 있거나 사당이 없는 집안의 가난한 후손들이 제사때 사용하던 그림으로 이동식 사당인 셈이었다. 곧 제사를 지낼 때 지방을 만들어 사당 그림 중앙의 위폐를 그린 곳에 직접 붙이고 썼던 그림이다.

사당 그림은 많은 서민들이 현실적으로 사당을 가질수 없자 지혜를 발휘해서 조상에 대한 효를 표현한 서민들의 애환이 가장 많이 깃든 그림이라고 말할수 있다.

□ 산수화 (山水畵)
산수화는 민화의 주된 소재로서 인간의 자연에 대한 친화력과 자연과 함께하는 삶의 본질을 발견하게 하며 자연이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겸허하게 친구로 살아갈 것을 권유하고 있는 그림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동의 금강산, 서의 묘향산, 남의 지리산, 북의 백두산과 한양이 위치한 중앙의 삼각산등을 오대명산으로 신성시하여 설화나 그림으로 많이 묘사하였다.

조선후기에 민화에서 산수화가 발전된 것은 겸재 정선(1676 ~ 1759) 의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민화 산수화는 풍경의 사실성 보다는 풍경이 지니고 있는 상징성이 훨씬 과장되게 표현되어 있다. 이는 곧 이상화된 세계를 구사하고 있는 정통 산수화와는 달리 현실적인 삶의 모습을 토대로 하여 그들이 품고 있는 정신적인 염원을 자유 분방하게 담고 있다 하겠다.

민화산수화에는 금강산, 관동팔경등 우리 산천을 소재로 한것과 무이구곡, 소상팔경과 같이 중국 산수를 배경으로 한 것이 있는데, 보통 8폭이나 10폭 병풍으로 꾸며서 객실이나 사랑방을 장식했다.


● 금강산도 (金剛山圖)
민화 산수화의 대표적인 소재인 금강산은 여름에는 봉래산, 가을에는 풍악산, 겨울에는 개골산이라는 별명이 있는데 금강산도는 실경을 그리되 추상적으로 변형시켜 파격적인 구도를 취하며 봉우리와 기암 괴석을 추상성이 가미된 반복적 선묘로 의인화 시키고 네모 꼴이나 직선등 기하학적인 조형을 증첩 하기도 하며 불꽃 모양으로 표현하는등 다채로운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봉우리나 사찰, 암자등의 그림 위에 그 이름을 하나하나 기록하기도 한다.

● 관동팔경도 (關東八景圖)
관동팔경도는 강원도 동해안을 따라 펼쳐진 통천 총석정, 고성 삼일포, 간성 청간정, 양양 낙산사, 강릉 경포대, 삼척 죽서루, 울진 망양정, 평해 월송정등 경치가 뛰어난 여덟군데의 명승지를 그린 그림으로서 화면 곳곳에 각 명승지의 이름을 써 넣은 것이 특징이다.
아름다운 경치속에서 유유자적하는 여유로운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독특한 그림이다.

● 소상팔경도 (瀟湘八景圖)
소상팔경도란 중국호남성 동정호의 남쪽 영릉(零陵)부근, 즉 소수(瀟水)와 상수(湘水)가 합쳐지는곳의 여덟가지 경치를 주제로 삼아 그린 그림이다. 그 여덟 경치 주제를 살펴보면 소상야우(瀟湘夜雨 - 소상강에 내리는 밤비), 원포귀범(遠浦歸帆 - 먼포구로 돌아오는 배), 동정추월(洞庭秋月 - 동정호에 비치는 가을 달), 평사낙안(平沙落雁 - 모래밭에 내려앉은 기러기), 어촌낙조(漁村落照 - 저녁노을 물든 어촌), 강천모설 (江天暮雪 - 저녁때 산야에 내린 눈), 산시청람(山市晴嵐 - 푸르스름하고 흐릿한 기운이 감도는 산간마을), 연사만종(煙寺晩鐘 - 연무에 싸인 산사의 종소리가 들리는 늦저녁 풍경)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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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팔경도는 원풍(元豊) 1년 (1078년) 송(宋)나라 송적(宋迪)이 처음 팔경도를 그렸고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명종(1170 ~1197)의 어명으로 이광필이 소상팔경도를 그렸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보인다. 소상 팔경도는 주로 사랑방이나 기방(기생방)을 장식했던 그림인데 소상팔경도가 기방에 많이 놓이게 된 이유는 「요임금의 딸이자 순임금의 두 왕비였던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이 순임금이 창오의 들에서 죽어 구의산에 묻혔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하며 상수에 몸을 던졌고, 이때 이비(二妃)의 피눈물이 군산 대나무에 튀어 소상반죽(瀟湘斑竹)이 되었다」는 슬픈 사연을 안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 무이구곡도 (武夷九谷圖)
무이구곡도는 중국 복건성 무이산 계곡의 아홉절경을 그린 그림이다.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희(주자)가 1183년 54세때 무이산에 무이정사를 짓고 이듬해 아홉편의 칠언절구를 지었는데, 그것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 무이구곡도이다. 무이구곡도는 일반 민화와는 달리 극채색을 쓰지 않고 대개 선묘로 그림을 그리는 특징이 있다.

□ 화훼도 (花卉圖)
우리 민족은 꽃을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번영, 행복과 부귀, 축복등의 의미와 관련하여 사랑의 표현, 숭배, 존경, 축하, 위문등을 표현하는 마 음의 징표로 사용해왔다.
꽃 그림은 자연속에 피고 지는 아름다운 꽃을 그려 항상 곁에 두고 가 까이서 보고 느끼며 꽃이 갖는 상징성에 삶의 소박한 꿈을 담아 그린 그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민화에 등장하는 꽃은 모란, 연꽃등 줄잡아 40여종이 되는데, 꽃이 중 심이되어 거의 꽃만을 주소재로하여 그린 그림을 화훼도(花卉圖)라 하 고, 꽃과 새를 함께 그리면 화조도 곤충등과 함께 그리면 초충도라 구분한다.

● 모란도 (牡丹圖)
모란은 꽃중의 왕으로 불릴만큼 화려한 꽃이지만 벌과 나비를 함께 그 리지 않는다. 이는 선덕여왕의 영민함을 보여준 세가지 일화인 지기삼사(知機三事)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이는데, 그 일화를 소개하면 신라 선덕여왕이 공주(덕만공주)시절 중국의 당 태종 이세민이 빨강(紅), 자 주(紫), 흰색(白)의 목단 그림과 꽃씨앗 각 한되를 보내왔는데 공주가 이 그림을 보고「나비가 없으니 이 꽃에는 분명 향기가 없을 것이다」고 하여「꽃씨를 심어 꽃이 피고 보니 과연 그러했다」는 설화가 일연이 쓴 삼국유사에 전한다.

● 연화도 (蓮花圖)
진흙속에 뿌리를 내리고 살면서도 잎새와 꽃잎은 깨끗함과 고결한 모 습을 지키는 연꽃을 불교에서는 청정, 초탈의 상징물로 여겼다. 하지 만 민화에서는 종교와 무관하게 연꽃의 또 다른 속성인 생명력과 번식력을 인간의 삶과 결합시켜 자손번창의 상징물로 그렸다.

연화도는 연꽃만 그릴 때도 있지만, 새와 물고기들을 함께 그려 평화스런 연당 풍경을 연출했다. 연화도에서 연밥이 촘촘히 박힌 연실(蓮實)은 다남(多男)을 상징하고, 꽃과 열매가 동시에 생장하는 특성 때문에 득남의 염원을 화병에 꽂힌 연꽃 그림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특히 한 마리의 백로와 연꽃을 함께(一鷺蓮果)그려 한 번 걸음에 과거에 급제 (一路連科)하길 기원하기도 했다.


연화도는 원래 화조도의 일부분이 었으나 무더운 여름날 집안을 시원하게 장식해주는 여름 그림으로 독립되어 나온 것으로 추측된다.

● 국화도 (菊花圖)
꽃 그림 중에는 사군자중의 하나인 국화가 소재로 자주 등장하다. 국화는 세상 사람들이 정절선생(靖節先生) 이라고 불렀던 동진(東晋)의 전원시인 도연명(陶淵明)이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읖은 후 동쪽 울타리 밑의 국화를 따며 한가로이 남산을 바라 보았다 하여 유유자적 은 둔해서 살아가는 은일자를 상징한다.

시의 내용을 그림으로 그리는 것은 동양화의 시화일체사상(詩畵一體思想)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데, 북송(北宋)의 화가 곽희(郭熙)는「그 림은 소리 없는 시이고, 시는 형태 없는 그림이다」고 했고, 시인 소식(蘇軾)은「그림 가운데 시가 있고, 시 가운데 그림이 있다」고 했다.

□ 화조도 (花鳥圖)

민화중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는 화조도는 우리 민족이 꽃과 새 그 림을 사랑했음을 반영한 것이다. 주로 안여자들의 안방이나 부부방의 생 활 분위기를 감싸기 위한 치장용 병풍 그림으로 많이 사용 되었다.


화조도가 갔는 상징성으로는 한 쌍의 원앙은 부부의 금슬을, 갈대와 함 께 그린 기러기는 노후의 안락을, 부모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팔가조 는 효도를, 매는 삼재(화재,수재,풍재)를 막아주는 벽사의 의미를, 밤눈이 밝은 부엉이와 올빼미는 재산을 지키고 도둑을 막아 주는 의미를 담고있다

● 노안도 (蘆雁圖)
갈대와 기러기를 함께 그린 그림을 「노안도」라 하는데 이는 ‘갈대노(蘆)’자와 기러기 ‘안(雁)’자에서 온 이름이다.
노안도는 독음이 같은 노안(老安)의 뜻으로「노후의 안락」을 기원하는 그림으로서 새해 정초나 노인들의 생신때 선물로 주웠던 그림으로서 주로 노인들의 방에 놓였던 그림이다.

요새도 새해가 되면 노안도가 연하장으로 많이 제작되어 주고 받는데이는 일년의 평강을 바라는 그림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 십장생도 (十長生圖)
십장생도는 불로장생의 상징인 물상 즉 해, 달, 구름, 물 (日月雲水)과 산, 바위, 소나무, 대나무 (山石松竹) 그리고 학, 사슴, 거북, 불로초(영 지) (鶴鹿龜芝)와 천도(天桃)중 열가지를 그린 그림으로서 이 땅에서 불 로장생하면서 이상적인 세계에서 행복하게 자손만대까지 살기를 바라는 욕망이 신선사상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십장생도는 새해 정초에 세화로 그려 선물로 주고 받거나 회갑연용 병 풍으로 사용된 장수를 기원하는 그림이다.

● 송학도 (松鶴圖)
소나무는 「송수천년(松壽千年)」, 학은 「학수천세(鶴壽千歲)」라는 말처럼 소나무와 학은 십장생물로서 장수를 의미한다. 학이 소나무와 함께 그려지면 장수를 기원하는 장생도로서 특히「학수 송령도(鶴壽松齡圖)」 라고 한다.

□ 초충도 (草蟲圖)
초충도는 주로 도라지, 맨드라미, 원추리, 오이, 포도, 호박등 일년초들과 잠자리, 벌, 나비, 여치, 매미, 개미, 개구리등 풀벌래들을 자연스럽고 꾸 밈없이 그려 놓고 가까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배우도록 한 그림이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 초충도의 대표적인 화가로는 초충도의 연원을 이룬 이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1504~1551)과 조선후기 현재 심사정을 들 수 있으며 나비를 가장 잘 그렸던 순조때의 화가 남계우는「남나비」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초충도는 정묘한 세필로 그려진 풀과 꽃 그리고 작은 벌래가 한데 어우 러져 조용하고 그윽한 정감을 전해주는데 이런 멋 때문에 주로 부인방을 장식 했다.

□ 소과도 (蔬果圖)
불로장생, 자손번창, 부귀영화를 원하는 소망의 상징물로 채소나 풍성한 과일을 들 수 있는데, 이들을 그린 그림을 소과도(蔬果圖)라 한다.


민화에서 많이 다루어 지는 소과도의 소재로는 포도, 수박, 석류, 천도복 숭아와 배추, 무, 참외등을 들 수 있는데, 포도처럼 열매가 덩굴에 주렁 주렁 매달려 있는 것은 자손이 덩굴처럼 이어져서 영원히 손이 끊어지지 않는 다는 뜻을 담고 있다.


□ 어해도 (魚蟹圖)
어해도는 고기「어(魚)」자에 게「해(蟹)」자에서 온 이름으로 물고기, 게, 새우, 조개등 어류의 그림을 말한다
. 그림이 갖는 의미는, 물고기는 알을 많이 낳는다하여 다산, 곧 자손의 번창을, 게는 옆 걸음 친다하여 양보를 의미한다. 그리고 등이 굽은 새우는 바다의 노인 곧 해로(海老)와 독음이 같은 해로(偕老)의 의미로서 부부가 평생 함께하며 같이 늙어 간다는 뜻이며 새우 ‘하(鰕)’와 조개 ‘합(蛤)’은 독음이 비슷한 화합(和合)의 의미이다. 그러므로 어해도가 갖는 전체적인 의미는,「부부가 만나 양보하고 화합해서 많은 자손을 낳고 백년해로 하라」는 바램을 담은 병풍용 그림이라 하겠다.


또한 물고기가 가지고 있는 여러 상징성 가운데 벽사(?邪)의 의미가 있는데 이것은 고기가 낮이건 밤이건 눈을 뜨고 있기 때문에 항상 삿된 것 을 경계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고기 낱장 그림을 귀중한 것들이 많이 간직되어 있는 다락의 문에 붙여 놓기도 하고 또 물고 기형의 자물쇠를 쌀 뒤주에 달거나 서랍의 손잡이를 물고기형으로 만들어 쓰기도 했다.

□ 어변성룡도 (魚變成龍圖)
어변성룡도는 그림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드시 물고기가 변하여 용이 된다는 뜻을 담은 그림이다. 후한서에 기록된 바에 의하면「중국 황하 상류의 협곡에 있는 용문지방에 용문 폭포라는 큰 폭포가 있는데, 이른 봄이 되어 도화랑이 일때면 늙은 잉어들이 용문에 모여들어 센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서 폭포를 뛰어 오르는데 폭포를 오른 잉어만이 우뢰와 번개에 잉어의 꼬리가 불태워지 며 여의주를 갖는 용이 된다」고 하니 등용문(登龍門)의 어원을 알 수 있게 한다.
곧 어변성룡도는 약리도(躍鯉圖)라고도 하는데 선비가 과거에 급제하기 위하여 모든 어려움을 참고 학업에 정진하는 모습을 은유적으로 담고 있 는 그림이라 할 수 있다.
이 그림은 과거를 앞둔 벗에게 합격과 출세를 기원하며 격려의 선물로 선사하기도하고 또 선비가 과거에 급제하기를 스스로 다짐하면서 책상머 리에 붙여 놓고 결의를 다졌던 그림이었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꿈이 담겨 있는 어변성룡도를 오늘날 시험 을 앞둔 수험생에게 선물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하겠다.

□ 책거리도 (冊架圖)
책거리 그림은 책가도(冊架圖) 또는 문방도(文房圖)라고도 하는데 책과 서가, 서재 주변에 있는 문방사우 (文房四友)인 종이, 붓, 벼루, 먹은 물론 이고 선비들이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던 안경, 안경집, 화병, 도자기, 부 채, 꽃등과 상징성을 갖는 수박(장수, 복), 석류(다남, 다손), 천도복숭아 (장수)등을 그린 그림이다.

이는 많은 책을 곁에 두고 읽고 싶어하던 선 비들의 염원과 학문을 숭상하고 예술을 즐기던
고아한 취향을 담은 그림 으로서 병풍으로 만들어져 사랑방이나 글을 읽는 학동들의 방을 장식 하였다.

책거리 그림의 특징은 가까운 것은 작게, 먼 것을 더 크게 그리는 원근 법의 반대 개념인 역원근법을 이용한 신묘한 화법을 사용하였으며 화면 이 엄격 단정한 뛰어난 묘사력을 보이고 있다.

□ 산수책가도 (山水冊架圖)
창밖의 산수와 방안의 책거리를 한 화면에 함께 그린 혼성도로서 이 그림은 삼척지방에 살았던 석강(石岡) 황성 규(黃聖奎)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석강 황성규는 민화와 글에 능했다고 전해지는데 익살스런 서체인 민서체(民書體)의 창안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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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자도 (文字圖)
문자도는 조선시대의 유교사회에서 인간의 도덕강령으로 규범이 되었던 효(孝 : 효도), 제(悌 : 우애), 충(忠 : 충성), 신(信 : 믿음), 예(禮 : 예 절), 의(義 : 의리), 염(廉 : 청렴), 치(恥 : 부끄러움)등 여덟 글자를 각 글자와 관련된 고사에 등장하는 사물과 함께 회화적 요소를 가미하여 그 린 교화용 그림으로 병풍으로 만들어져 선비의 방이나 어린이 방을 장식 했었다. 문자도중「효(孝)」자에 그려진 사물을 보면 잉어나 죽순등이 등장하는데 이것은「효」와 관련된 고사에 등장하는 사물들로 그 내용을 소개하면 왕상빙리 (王祥氷鯉) : 왕상은 효성이 지극한 중국 진나라 사람이었는데 그의 계모가 엄동설한에 일부러 살아 있는 잉어를 구해 오라고 하자, 이를 마다하지 않고 강에 나가 얼음을 두드려 깼더니 잉어가 튀어 올라와서 계모를
정성것 효도 했다.


맹종읍죽(孟宗泣竹) : 중국 오(吳)나라 때의 선비 맹종이 연로하신 모친을 모시고 가난하게 살았는데 어머니가 병이 들자 백방으로 약을 구하여 봉양하였지만 노모의 병은 차도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꿈에백발의 한 노인이 나타나 모친의 병은 죽순을 먹어야 나을 수 있다고 일러 주었다, 그러나 겨울이라서 도저히 죽순을 구할 길이 없자 맹종 은 모친을 생각하며 눈덮인 대나무 밭에서 왼 종일 울고 있었는데, 눈물이 떨어진 곳에서 눈이 녹더니 죽순이 돋아나 그 죽순으로 노모의 병을 고쳤다.


□ 설화도 (說話圖)
설화도는 전승되어 오는 신화, 전설, 민담등과 고사, 소설등의 줄거리를 함축시켜 그린 그림으로 설화도의 내용은 주로 종교적인 성격을 띤 것, 교훈적이거나 교육적인 내용 그리고 충효나 애정을 다룬 것 등이다.


● 금궤도 (金?圖)
금궤도는「신라의 석탈해가 나라를 다스릴 때 어느날 시림이라는 숲에 서 흰닭이 울어 가 보았더니 바로 나무에 걸린 금궤 밑에서 닭이 울고 있었다. 금궤 속에서는 아기가 나타났고 훗 날 그 아기는 신라왕들의 시조가 된 감알지였다」는 설화를 바탕으로 한 풍경 그림이다.
금궤도는 원래 조선 인조가 창강(滄江) 조속(趙涑)에게 명하여 그린 그 림으로 알려져 있다. 인조가 어느날 <삼국사>를 읽다가 감알지의 후손 이며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 고려에 맞서 싸우냐 항복 하느냐를 놓고 고민하는 글을 보았는데, 인조는 그 처지가 당시 중국 청나라와 전 쟁을 해야 할지 피해야 할지 고민하는 자신의 경우와 참 비슷하다고 생 각했고 그러다 보니 김알지의 탄생 설화가 마음에 들어 그 내용을 그리도록 했다 한다.


● 삼국지도 (三國誌圖)
삼국지 소설의 줄거리를 그림으로 그린 설화도이다.


● 구운몽도 (九雲夢圖)
조선 숙종 15년(1689)에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 1637~1692)이 귀양살이 하며 팔순의 노모를 위로하기 위하여 하룻밤만에 완성하였다는 국문소설「구운몽」의 줄거리(성진이 팔선녀와 함께 인간으로 환생하여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깨어보니 헛 된 꿈이었다)의 내용을 팔폭의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이 작품은 도화서에서 그린 석채와 금분을 이용한 왕의 하사품으로 추정되며 국내 제일의 걸 작품으로 평가 되고 있다.

이 작품에 그려진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육관대사의 제자 성진이 스승의 명으로 용왕궁에 심부름 갔다 돌아오는 길에 석교 위에서 남악 천산 위부인의 시녀 팔선녀와 더불어 수작하고 꽃가지를 꺽어 던져 희롱하고 있다.

*양소유가 손으로 수양버들을 휘어잡고 “수양버들이 푸르려 찌는 듯하니 늘어진 가지가~”하고 소리 높여 양류사를 지어 읊으메, 진어사의 딸 채봉이 낮잠에 취해 있다가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나 수 놓은 창문을 열며 소리나는 곳을 찾고 있다.

* 양소유가 천진교 주루에서 시객들과 견주어 이긴 후에 이름난 기생계섬월로부터 자기집을 안내 받고 있다.


*양소유가 기생 계섬월로부터 천거 받은 절색 미인 정사도의 딸 소저를 만나기 위하여 여장으로 변복하고 정사도의 집에 들어가 거문고를 타며 수작을 부리고 있다.

*양소유가 원수가 되어서 토번을 칠 때 장막 가운데 앉아 촛불을 밝 히고 병서를 보고 있는데, 바람을 타고 온 심요연이 양원수를 만나러 내려오고 있다.

*양원수가 토번을 칠 때 태산밑에 이르러 장차 도적을 물리칠 계교을 생각하며 장막안에서 졸며, 꿈 속에서 신마를 타고 백록담에 이르러 동정왕의 작은 딸 백릉파를 만나고 있다.

*양승상과 월왕이 사냥을 나가 낙유원에서 잔치를 열어 주흥을 즐길 때, 적경홍이 말을 타며 활 시위를 당겨 날고 있는 꿩을 잡고, 심요연은 검무를 추며 흥을 돋우고 있다.

*양태사가 팔선녀와 이별하기전 높은 누대 위에 올라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서로 위로 할 때 홀연 노승이 지팡이를 끌며 돌계단을 오르고 있다.


□ 풍속화 (風俗畵)
민화에 보이는 풍속화는 주로 기억속에 자리잡은 서민생활을 소재로 하여 풍습, 세태, 연중행사등 여러가지 생활상과 자연의 정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림으로 평화롭고 친근감 있는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다. 풍속화는 조선후기에 가장 유행했는데 당시 손꼽히는 풍속화가로는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긍재 김득신, 공재 윤두서 등이 있다.

□ 지도화 (地圖畵)
조선시대때 지도 그림은 단순한 수치적 지도라기 보다는 지도와 그림이 어우러진 특이한 성격을 띠고 있으며 선조들의 자연과 풍수에 대한 사상 이 깃들어 있는 개념적인 그림이다. 전해오는 지도 그림으로는 평양성 도, 한성도, 전주도, 진주성도등이 있다.

□ 인두화 (烙畵)
닥나무로 만든 장지에 화조(花鳥)를 인두로 지져서 그린 희귀한 작품인데 이런 그림을 인두로 지져 그렸다해서 낙화(烙畵)라고도 한다. 그림의 내용으로 보아 초산(蕉山) 박병수(朴秉洙)가 1858년도에 그린 그림이다.

□ 매 그림
매는 날카로운 생김새와 먹이를 낚아채는 습성으로 인해 매 그림이 사악한 잡귀를 내쫓는 벽사의 의미가 있고 삼재(수재, 화재, 풍재)를 막아주는 부적으로 쓰이기도 했다. 매 그림이 부적으로 쓰이게 된 우화를 소개하면, 옛날 중국 무창 장씨집 며느리가 휘종황제 친필의 매 그림을 보고 마당에 나동그라지면서 여우의 본색으로 돌아갔다’ 는 이야기가 청나라 실학자 왕사정의 지북우담(池北偶談)에 실려 있는데 이 우화로 인해 매 그림이 방패막이로 쓰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한국신화 韓國神話
한반도에 전승(傳承)하는 한민족의 건국이나 출생 등에 관한 신화·전설의 총칭. 신화는 신격(神格)을 중심으로 하여 엮어져 전해오는 이야기로 명확하게 정의하기는 어려우나, 엄밀한 의미에서 종교적 교리 및 의례(儀禮)의 언어적 진술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모든 신화의 발생 및 전승은 처음에는 구전(口傳)에 의존하였으나 오늘날까지 전하는 신화는 문헌에 의한 것이 주류를 이룬다. 문헌을 통한 가장 오래된 자료로는 4세기초 기록인 광개토대왕비(廣開土大王碑) 비문이 있으며, 그 뒤 12∼13세기에 편찬된 김부식의 《삼국사기(三國史記)》, 일연(一然)의 《삼국유사(三國遺事)》, 이규보(李奎報)의 《동명왕편(東明王篇)》, 이승휴(李承休)의 《제왕운기(帝王韻紀)》 및 조선시대에 편찬된 《고려사(高麗史)》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등이 있다. 이들 문헌에서 전하는 한국의 신화는 ① 고조선·신라·고구려·백제·가락국(駕洛國) 등의 건국신화 및 시조신화 ② 각 성씨(姓氏)의 시조신화인 씨족신화 ③ 여러 마을의 수호신에 관한 마을신화 ④ 무당사회에 전승된 무속(巫俗)신화 등 4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 유형들은 다음과 같은 공통성을 가지고 있다. ① 대개 창건자 또는 창시자에 관한 이야기, 즉 조상숭배의 신화라는 특성 ② 이들 신화가 실제에 있어 전설적 속성을 강하게 지니고 있는 신화·전설의 복합체이며 그 신화성이 역사성과 공존하는 신화라는 특성 ③ 우주창성론(宇宙創成論)이나 우주구조론 또는 종교 제의적 기능보다는 사회적 기능을 더 많이 지니고 있는 신화라는 특성 등이다.

0《삼국유사》에 의하면 한민족의 기원을 전하는 개국신화로 단군신화(檀君神話)가 있다. 옛날 환인천제(桓因天帝)가 삼위·태백(太伯)을 내려다보고 널리 인간 세상에 이익을 끼칠 만한 곳이라 하여 아들 웅(雄)을 보내 천부인(天符印) 3개를 가지고 가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은 무리 3000을 거느리고 태백산 신단수(神壇俊) 아래에 내려와서 신시(神市)라 일컬으니, 이가 환웅천왕(桓雄天王)이다. 웅은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지휘하여 곡식[穀(곡)]·명(命)·병(病)·형벌(刑罰)·선(善)·악(惡) 등 세상의 360여 가지 일을 다스렸다. 이때 곰 1마리와 범 1마리가 같은 굴속에 살면서 환웅에게 사람이 되기를 간청하였다. 환웅이 쑥 1줌과 마늘 20쪽을 주면서, <이것을 먹고 100일 동안 햇볕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될 것>이라고 하였는데, 범은 그대로 하지 못하고 곰은 금기(禁忌)를 지켜 삼칠일(三七日) 만에 여자가 되었다. 그러나 웅녀(熊女)는 결혼할 남자가 없으므로 매일 신단을 향해 아이 가지기를 원하였다. 이에 환웅이 잠시 남자의 몸으로 변하여 그녀와 결혼하고 잉태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 분이 단군왕검(檀君王儉)이다. 단군은 요(堯;唐高) 즉위 후 50년 평양성(平壤城)에 도읍하고 나라를 조선(朝鮮)이라 일컬었으며 15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다가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겼고, 그 뒤 산신(山神)이 되었다고 한다. 단군신화의 의의는 ① 신석기시대의 부족사회 형성 및 그 생활상을 보여준다. 즉 수렵·어로생활에서 농경·정착생활로 옮겨갔으며, 족외혼을 통하여 형성된 부족사회는 제정일치(祭政一致)의 사회임을 뜻한다. ② 북방민족의 토템과 부족간의 통합·발전 과정을 보여준다. 즉 북방민족의 토템동물은 곰·늑대·독수리·까마귀 등으로, 신화에 곰과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것은 바로 곰토템 부족과 호랑이토템 부족이 차츰 주변 부족을 통합, 강성해졌다는 것을 뜻한다. ③ 국가의 형성 과정을 보여준다. 즉 계급의 분화에 따라 새로운 사회질서가 성립되는 과정을 보여주며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弘益人間)>는 신화의 건국이념은 지배계층에 의한 새로운 질서의 성립을 뜻한다.

0고구려의 기원을 전하는 개국신화로 주몽신화(朱蒙神話)가 있다. 주몽신화의 특징은 ① 왕자의 정치적 권위의 원천을 하늘에 귀속시키면서 농업생산을 좌우하는 <물의 신령>의 권위를 주장하였다는 것 ② 등극(登極)을 위한 전제로서 시련이 선행되었다는 것, 즉 주몽의 사마(飼馬)와 부여(扶餘)에서의 탈출, 어별성교(魚鼈成橋)에 의한 도하(渡河)와 그로 인한 성공적인 극난(克難) 등 ③ 주인공의 행위에 나타나는 초시간성·초공간성, 즉 주몽의 행위가 지상세계에서의 현재에만 제한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천상왕래(天上往來)의 신성모형(神聖模型)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0가야(伽倻)의 기원을 전하는 개국신화로 《삼국유사》에 수로왕신화(首露王神話)가 있다. 수로왕신화의 특징은 ① 여러 씨족이 연합되어 이룩된 통합적인 왕국 창건에 관한 신화라는 것 ② 신화 내용이 직접 신에게서 주어졌다는 점, 즉 하늘의 신이 시키는 대로 실행하여 김수로왕을 신으로 맞이하였다는 점 ③ 신내림을 받드는 <신맞이 신화>라는 점, 즉 신이 하늘에서 소리내면서부터 지상에 나타나기까지의 과정으로, 춤과 노래로 받든 신내림 부분은 이 신화가 굿과 연관됨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0시조신화(始祖神話)로 박(朴)·석(昔)·김(金)의 3성씨(姓氏)가 기원하는혁거세(赫居世)·탈해(脫解)·알지(閼智) 등의 신화가 있다. 이들은 고구려의 <주몽신화>와 마찬가지로 난생설화적(卵生設話的)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나 <주몽신화>가 인위인생란(人爲人生卵)인 반면 신라의 시조신화는 자연천생란(自然天生卵)이란 점에 차이가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각 시조의 신화는 다음과 같다.
⑴ 혁거세신화:옛날 진한(辰韓)의 6촌(六村) 촌장들이 알천(閼川) 옆 언덕에 모여 백성을 다스리는 문제에 관하여 의논하고 있었다. 이 때 남쪽의 양산(楊山) 기슭에 흰말 1마리가 꿇어앉아 절하고 있어 그곳을 찾아가 보니 알이 하나 있었고, 말은 사람을 보더니 길게 울고는 하늘로 올라갔고, 곧 알에서 사내아이가 나왔다. 그래서 그를 혁거세라 이름짓고, 박과 같은 알에서 출생하였으므로 성을 박(朴)이라 하여 박씨의 시조로 삼았다. 또한 사량리(沙梁里) 알영정(閼英井)가에 용이 나타나 여아를 낳았다. 아이가 태어난 우물 이름을 따서 이름을 <알영(閼英)>이라 하였으며 혁거세의 비가 되었는데, 이 두 사람을 이성(二聖)이라고 하였다.
⑵ 탈해신화:신라 남해차차웅(南海次次雄) 때 가락국 앞바다 가운데에 어떤 배가 와서 닿았다. 수로왕이 머물게 하려 하였으나 배는 달아나고, 때마침 혁거세거서간의 고기잡이 할미가 그 배를 살펴보니 배 안에 궤 하나가 있었다. 궤속에서 나온 사내아이는, 자신의 아버지 함달파왕(含達婆王)이 적녀국(積女國)의 공주를 왕비로 맞았으나 아들이 없어 7일간 기도드린 뒤 알을 낳았는데, 불길하게 여겨 궤에 자신을 넣고 바다에 띄워 거기에 닿게 된 것이라고 하였다. 궤를 열고 알을 벗기고 나왔다 하여 이름을 탈해라 하였고, 까치[鵲(작)]로 해서 궤를 열게 되었으므로 <작(鵲)>자에서 새조(鳥)를 떼어 성을 석(昔)이라 하여 석씨의 시조로 삼았다.
⑶ 알지신화:호공이 밤에 월성(月城) 서리(西里)를 지나다가 큰 빛을 보았다. 구름 한가운데에 있는 황금궤가 나뭇가지 끝에 걸려 있었으며 빛이 그 궤에서 흘러나오는데, 흰 닭이 그 나무 밑에서 울고 있었다. 왕이 곧 가서 궤를 열어보니 사내아이가 있었다. 이 일이 박혁거세의 옛일과 같으므로 알지라 이름을 지었으며, 금궤에서 나왔다 하여 성을 김(金)이라 하고 김씨의 시조로 삼았다. 이 3가지 신화는 한 왕조의 시조신화라는 점에서 씨족의 시조신화와 통하며 하늘에서 내린 시조라는 관념을 찾아낼 수 있다. 이 관념은 천상에서 세계의 중심에 내리는 최초의 신이나 왕에 관한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관념과 연관시켜 볼 수 있다. 따라서 하늘에서 내린 최초의 왕이 이른바 <거룩한 왕>이나 <신성한 왕>이었다면 씨족의 시조 또한 거룩한 존재로서 씨족의 신화와 왕조의 시조신화는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이다. 혁거세신화에서 볼 수 있듯이 이미 씨족장으로서 세력을 확보하고 있는 씨족시조 위에 군림하는 통합적인 세력을 지닌 한 씨족의 시조가 나머지 씨족의 시조들을 신종(臣從)시키는 과정을 반영하고 있다. 즉 이웃한 씨족들 가운데서 가장 강력한 통합적 힘을 지닌 씨족의 시조신화가 왕조의 시조신화이자 건국신화인 것이다.

0다른 신화들이 대개 왕조의 시조나 건국신화인 데 비하여 제주도 3성신화는 시조신화로 되었다는 점에 특색이 있다. 《동국여지승람》 <제주목조(濟州牧條)>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진산(鎭山;漢拏山) 북쪽 기슭에 있는 모흥혈(毛興穴;三姓穴)에서 3신인(神人)이 나왔는데 맏이가 양을나(良乙那), 둘째가 고을나(高乙那), 셋째가 부을나(夫乙那)이다. 셋은 사냥을 하며 살아왔다. 하루는 붉은 진흙으로 봉한 나무상자가 동쪽 바닷가에 닿아, 그것을 열어보니 석함(石函)이 들어 있었고, 붉은 띠에 자줏빛 옷을 입은 사자(使者)가 수행하고 있었다. 석함을 여니 세 처녀와 망아지·송아지 및 오곡(五穀)의 씨앗이 들어 있었다. 세 사람은 각기 나이에 따라 이 처녀들과 혼인한 뒤 곧 오곡을 가꾸고 소·말을 기르니 날로 살림이 풍성해졌으며, 뒤에 양(良)을 고쳐서 양(梁)이라 하였고 이들이 제주도 원주민 고·양·부씨의 시조가 되었다.

0단군신화에서 환웅이 천계(天界)로 부터 인간계로 강림할 때 가져온 천부인 3개, 무리 3000, 풍·백·우의 3사(師)와 곰이 금기를 지켜 삼칠일 뒤에 웅녀로 변신하였다는 설화에서 <3>이란 숫자는 3신(三神;天神·地神·國神)을 수호신으로 하는 호국(護國)의 신비사상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주몽설화나 신라 시조신화 등에서 볼 수 있는 난생설화의 요소는 모두 고대 원시신앙의 핵심을 이루는 토테미즘사상을 연상할 수 있다. 또한 단군신화나 주몽신화에서 환인 → 환웅 → 단군이나, 천제(天帝) → 해모수(解慕漱) → 주몽으로 이어지는 3대기(三代記), 즉 환인·천제는 하늘에 있고 그 아들인 환웅·해모수가 하늘에서 땅으로 강림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그들이 인간계인 땅에서 웅녀·유화(柳花)와 결혼하여 단군·주몽이 탄생된다. 따라서 신화의 주인공은 하늘에 있는 환인·천제도 아니고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해모수도 아니며 천제손(天帝孫)이란 이름만 지녔을 뿐 하늘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단군·주몽이 주인공인 것이다. 이처럼 한국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은 왕족의 시조이고, 그들이 한 행위는 하늘에서 내려와 지상에다 하늘의 뜻을 펼 왕국을 건설한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이는 시베리아 샤머니즘에서 최초의 샤먼은 하늘에서 최고신의 뜻을 받들어 지상에 내려와 하늘의 뜻을 지상에 편 존재로서, 이들 샤먼은 하늘과 지상의 매체나 영매(靈媒)가 된다고 하는 것처럼 한국 상고대 신화는 상고대왕조의 왕권이 무속원리에 의하여 신성화되는 무조신화(巫祖神話)를 반영하고 있다.

참조:민화감상과 설명.

http://www.folkart.co.kr/main/index.htm

조선민화박물관:민화감상과 해석.

http://www.minhw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