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무가
노중평
조선왕조 성종 때 만든 것으로 보이는 <시용향악보時用鄕樂譜>라는 책에 고려시대의 무가를 유추해 볼 수 있게 하는 시 몇 편이 실려 있다. 고려시대의 무가는 주로 황해도 일대에서 생겨나 전국적으로 퍼져나갔을 것으로 보이므로, 이 무가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 무가 중에서 나의 관심을 끄는 무가가 <삼성대왕풀>이이다.
이 무가는 <삼성대왕본풀이>로 볼 수 있는 무가의 머리부분에 해당하는 무가로 볼 수 있는데, 장문의 <삼성대왕풀이>가 있었다면, 구월산에서 매년 한인 한웅 단군왕검 삼성에게 제사 올렸던 <삼성제례三聖祭禮>와 무관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삼성당의 당주가 여무女巫였고, 이 여무를 통해서 마고가 후손에게 전수한 천부삼인天符三印이 명두明斗로 불리는 거울의 형상을 만들어 후대의 무당들에게 전수되었을 것이므로, 이 시대에 삼성당에서 삼성풀이를 할 때 구연했을 굿의 사설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왕조가 들어서고 태종 때, 삼성당에 모신 신상(아마 산신각에 산신으로 그려 모신 신상이었을 것이다)을 하륜이 건의하여 신주로 대체하였고, 삼성사를 평양에 짓고 옮겨가면서 당주 여무가 지방관헌으로 대체되었을 것이므로, 자연히 무가는 소멸되고, 그 머리 부분만이 <시용향악보>에 실리게 되었다고 본다.
내가 보기에 이 무가사설은 창부거리 앞쪽에 자리 잡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전제를 깔고 <삼성대왕풀이>로 들어가기로 한다.
삼성대왕三城大王풀이
삼성대왕三城大王 평조平調
장瘴 실가 삼성대왕三城大王
일 실가 삼성대왕三城大王
장瘴이라 난難이라 쇼셰란
장난瘴難을 져차쇼셔
디롱다리 삼성대왕三城大王
다롱다리 삼성대왕三城大王
녜라와 괴쇼셔
<時用鄕樂譜>에 실린 무가형의 속요이다.
삼성三城은 뒤에 대왕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 삼성三聖으로 보아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三城大王을 고치면 삼성대왕三聖大王이 된다. 조선왕조시대에 한인 한웅 단군왕검 세분을 삼성이라고 하였으므로 삼성대왕은 한인천제 한웅천왕 단군왕검 세 분이다. 그렇다면 왜 <삼성대왕 풀이>에서 삼성을 삼성三聖이라고 하지 않고 삼성三城이라고 했는가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는데, 조선왕조시대에 三聖이라는 말을 쓰기를 꺼려하여 三城으로 고쳤다고 볼 수 있다. 삼성三城이라는 지명은 강화도이 있다. 왜 이러한 지명이 생겼는지는 알 수 없다.
삼성대왕풀이의 내용으로 보아서, 액풀이에 소용되는 무가로 보인다. 장瘴(질병)과 난難(액운)을 가져가고 앗아가는 분으로 세 분의 삼성대왕이 등장한다. 이분들이 굿에서 맡게 되는 역할이 <호구거리>에서 아기씨와 별상이 맡은 역할과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본문은 <호구거리>와도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호구거리>에서 아기씨와 별상이 장난瘴難(액厄)을 담당하므로, 별상과 삼성은 신격神格이 같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창부거리>에서 부루단군이 액막이를 하는데, 부루단군도 삼성대왕과 신격이 같다고 볼 수 있다.
삼성은 삼성三星으로도 볼 수 있는데, 자미원紫微垣의 중심에 있는 북극오성北極五星 즉 천추天樞, 황후皇后, 서자庶子, 천제天帝, 태자太子 중에서 천추와 황후를 뺀 서자, 천제, 태자를 삼성으로 볼 수 있다. 서자는 서자 한웅천왕이고, 천제는 한인천제이고, 태자는 단군왕검이다. 조선왕조시대엔 이분들을 삼성三聖으로 모시고 제사지냈다. 이 제사를 삼성제례三聖祭禮라고 하였다.
삼성제례를 지냈던 곳이 황해도 문화현 구월산에 있는 삼성사三聖祠(삼성당三聖堂)이다. 삼성사가 생긴 유례를 보면, 진시황 8년에 단군조선이 진에게 멸망하여, 마지막 단군인 단군조선 제47세 고열가단군이 구월산에 은거하면서, 삼성당을 짓고 여무가 당주가 되어 삼성에게 제사지내 왔다. 제사는 중사中祀로 기우제祈雨祭로 지냈다.
삼성을 삼신과 비교하면 삼성은 남신이고 삼신은 여신이다. 한강 남쪽에 있는 관악산 옆에 삼신산(지금의 삼성산)이 있고, 한강 북쪽에 삼각산이 있어서 삼성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삼신산이라는 이름을 삼성산으로 바꾸었으므로 여신산을 남신산으로 바꾼 것이라, 이는 남쪽이 여자의 방위이고 북이 남자의 방위라는 방위개념에 위배하는 것이므로, 오행의 룰이 허물어졌다고 볼 수 있다.
실가 실가는 가져가실까 앗아가실까 하는 물음이다. 장액을 가져가고 빼앗아가라는 말이다. 이 부분은 <창부거리>, 즉 <창수사자 부루태자의 거리>에서 보여주는 액막이를 뛰어 넘는다. 후손이 시조에게 장난을 가져가고 빼앗아가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신근영은 <시용향악보> 소재 ‘삼성대왕’고찰 에서 실가는 끊으실까로, 실가는 빼앗으실까로 해석하였다.
쇼셰란는 ‘있을 진데’로 해석하였다. ‘장기와 재난이 있을 진데’라는 뜻이다. (주, <시용향악보> 소재 ‘삼성대왕’고찰 신근영에서 192쪽의 해석을 그대로 차용)
져차쇼셔는 ‘없애주소서’라고 하는 말이다. (주, <시용향악보> 소재 ‘삼성대왕’고찰 신근영에서 192쪽의 해석을 그대로 차용)
다롱다리에서 다리는 명다리, 하늘다리, 무지개다리 등으로 불리는 굿할 때 쓰는 무명천이다. 다롱은 다리가 시작되는 한 쪽과 다리가 끝나는 반대편 쪽을 모두 의미하는 말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다리는 장난을 다 이기고 건너오는 도액度厄의 다리이다. 이 도액의 다리에 명다리가 걸려 있다.
삼성을 서낭신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고려 무가 성황반城隍飯에서는 성황을 우리의 고유한 신명인 장군신으로 보지 않고 불가의 사천왕으로 본다. 사천왕은 조상거리에서 구연되는 시왕 중에서 동서남북의 신인 사신에 해당한다. 이렇게 보면 사신이 곧 서낭신임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전통적인 사신은 우주의 사신이다. 동방창룡칠수東方蒼龍七宿 서방백호칠수西方白虎七宿 남방주작칠수南方朱雀七宿 북방현무칠수北方玄武七宿가 사신四神이 되는 것이다. 이들 신은 곧 28수이다. 그러므로 사신에 대한 개념은 불교가 들어오기 이전에는 28수로 하였고, 불교가 들어온 이후에 동방지국천왕東方持國天王, 남무서방증장천왕南無西方增長天王, 남방광목천자천왕南方廣目天子天王, 북방산비사문천왕北方山毗沙門天王으로 바뀐 것이다.
따라서 서낭신의 원조는 사신이 되고, 이 사신은 동쪽에 창룡, 서쪽에 백호, 남쪽에 주작, 북쪽에 현무가 된다. 조선왕조시대에 군대의 군기軍旗에 이들 사신을 그려서 사위군四衛軍을 표현하였는데, 사위군에 해당하는 군대가 서낭군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서낭군의 지휘자가 땅에서는 서낭장군이요 하늘에서는 서낭신장으로 불렸다고 본다.
군대나 무교에서 이렇게 사위군을 서낭신으로 배치하는 이유는 중위中衛에 북극오성北極五星으로 그려지는 삼성과 마고삼신이 있기 때문이다. 사위군을 배치하여 북극오성을 호위하는 것이다.
서낭신을 모실 때 밥을 해서 바치고 모셔 들이므로 이를 성황반(서낭반)이라고 하였다. 지금도 굿을 할 때는 성황반을 올려 모신다. 고려시대에는 어떠한 분을 서낭반을 올려 모셨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성황반(城隍飯)
東方애 持國天王님하
南方애 廣目天子天王님하
南無西方애 增長天王님하
北方山의 毗沙門天王님하
다리러 다로리 로마하
디렁디리 대리러 로마하
도람 다리러 다로링 디러리
다리링 디러리
內外예 황사목천왕님하
<해석>
동쪽에 나라를 지키시는 천왕님이시여
남쪽에 나라를 지키며 사방을 두루 감찰하시는 천왕님이시여
나무가 없는 서쪽에 나라를 넓히고 오래 지키게 하시는 천왕님이시여
북방산에서 칠성의 자손 풍이족을 지켜 주시는 천왕님이시여
저승과 이승을 잇는 다리에 명다리 걸러 가자
명다리 걸어 데리러 가자
다리에 다리러 다리에 다리러
다리에 다리러
안팎을 지키는 황사목 천왕님이시여
필자가 불교신을 나름대로 우리 의미에 맞게 풀어 쓰려고 한 이유는 이들 말이 원래 우리말이었으나 불가 쪽으로 건너가서 불교화 하였고, 불교화 한 말이 다시 한자로 써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 종교의 역사가 1만년이 넘고, 불교의 역사가 2500년에 불과함으로 이러한 일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우리는 12000년 동안에 삼신교三神敎, 태백진교太白眞敎, 덕교德敎를 거쳐 왔고, 마지막에 굿이 생겨나 굿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오고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서 <삼성대왕풀이>라는 무가사설은 없어졌으나, <시용향악보時用鄕樂譜>가 남아있어 고려시대 굿의 사설을 일부나마 볼 있다는 점이다. 이 사설을 보면, 고려시대의 무가사설이 조선왕조시대의 무가사설과 별반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시용향악보>에는 <나례가儺禮歌>도 실려 있는데, <나례가>는 우리 굿에서 부정거리와 같은 성격을 가진 무가이다. 푸닥거리무가로 볼 수 있다.
나례가儺禮歌
나영공택羅令公宅 나례일儺禮日이
광대廣大도 금선金線이샤이다
궁에 山ㅅ굿 겻더신
귀의鬼衣도 금선金線이리라
리라리러 나리라 리라리
<해석>
나라那羅 재상님 댁 푸닥거리 하는 날이면
광대도 禁줄 두릅니다.
대궐에서나 산굿에서나 나례패의 치성을 견뎌내기만 하면
귀신이 입는 옷에도 금줄을 두르게 되리라
일어나라 일어나라 일어나야 하리라 일어나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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