貞洞第一敎會의 Pipe Organ을 찾아서
때 : 2011. 12. 20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 34번지에 있는 한국 최초의 감리교회.
1887년 10월 9일 미국의 감리교 선교사인 H. G. 아펜젤러가 지금의 위치에 설립했다. 그는 예배만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지금 자리에 있던 한옥집을 구입하여 개조하고 '베셀 예배당'이라고 불렀다. 교회 근처에는 이화학당과 배재학당이 있었고 교회는 이 학당들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기 때문에 개화운동의 중심 역할을 했다. 한편 갑신정변으로 미국에 망명했다가 귀국한 서재필은 배재학당에서 강의하면서 청년들의 사회참여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협성회(協成會)를 조직했다. 협성회의 주요인물들이 정동교회 청년회에 들어옴에 따라 당시 어느 단체보다 의식 있는 집단으로 반일 민족독립운동을 병행하면서 복음을 전파했다. 교인수가 급성장하게 되자 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예배당을 짓기로 하고 1895년 9월 9일 착공, 1897년 12월 26일 예배당 봉헌식을 가졌는데 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최초의 본격적인 서양식 교회로 평면구조는 성단(聖壇) 부분에 익부(翼部)가 달린 십자형이었다. 건물 양식은 고딕풍 양식으로 내부의 천장은 평천장이며, 기둥은 아무런 장식 없이 소박하고 간결하다. 1918년에는 한국 최초로 파이프오르간을 설치하기도 했다. 3·1운동 때는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당시 제6대 담임목사였던 이필주 목사와 박동완 장로가 참여했으며, 3·1운동 이후부터는 야간학교를 설치하는 등 선교사업에 중점을 두었다. 1922년에는 최초로 여름성경학교를 개설하기도 했고, 1930년에는 남북한 감리교회를 하나로 통합한 조선감리교회를 설립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8·15해방 후 한때 분열의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1949년 재건파와 부흥파의 합동총회를 개최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담당해 교단통합을 신속히 이루었다. 6·25전쟁 당시에는 예배당 일부와 파이프오르간이 파괴되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1976년 문화공보부는 19세기 건축물인 붉은 벽돌 예배당을 사적 제256호로 지정했다. 1979년 4월 15일 붉은 벽돌 예배당 옆에 새로 완공된 한국선교100주년기념예배당은 한국건축가협회로부터 최우수작품상을 받기도 했다. 1993년 현재 김봉록이 제19대 담임목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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