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월의 뜨락/문화재 탐방

고전소설 전우치전

채현병 2014. 2. 4. 12:01

 

고전소설 / 전우치전田雲致傳

 

2012/11/07 10:53 ; <꾸마이 책에 빠지다>에서 복사

현대어역(경판 37장본, 전운치전)

화설(話說). 고려(高麗) 말(末) 남서부(南西部) 땅에 일위(一位) 명사(名士)이름난 인사(사람)가 있으니, 성(性)은 전(田)이오 명(名)은 숙이오 별호(別號)는 운화선생이라. 대대(代代) 공후(公侯) 자손(子孫)으로 숙에게 이르러서는 청운(靑雲)푸른 뜻, 즉 높은 지위나 벼슬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에 뜻이 없어 몸을 산림(山林)에 숨기고 글을 숭상(崇尙)하며 혹(或) 벗을 모아 산천(山川)과 풍월(風月)을 문답(問答)하여 세월(歲月)을 허비(虛費)하니, 시인(市人)그 당시의 사람들이 이르기를 산중(山中) 처사(處士)라 하더라.

부인(夫人) 최씨(崔氏)는 잠영거족(簪纓巨族)잠영(簪纓)은 관원이 쓰던 비녀와 갓끈을, 거족(巨族)은 대대로 번창하고 문벌이 좋은 집안을 일컫는 말이다. 잠영거족은 대대로 높은 벼슬을 한 문벌 좋은 집안을 뜻한다.이요, 유한정정(幽閑靜貞)부녀(婦女)가 인품이 높아 매우 얌전하고 점잖음하여 색덕(色德)이 겸비(兼備)하니, 처사 상경상화(相敬相和)서로 공경하고 화목함하여 동주(同住)같이 기거함. 즉 결혼하여 같이 거처함 십여년(十餘年)에 슬하(膝下)가 적막(寂寞)함을 주야(晝夜) 탄식(歎息)하더니, 일일(一日)은 최씨가 일몽(一夢)을 얻으니, 천상(天上)으로부터 한 떼구름이 내려오며 구름 속에서 청의동자(靑衣童子)가 벽련화(碧蓮花)‘백련화’라고도 하지만, 원문에 ‘벽년화’라 되어 있어 ‘푸른 연꽃’이라는 뜻의 벽련화로 했다.를 쥐고 나와 부인께 재배(再拜) 왈(曰),

“소자(小子)는 영주산(瀛州山)중국 고대 전설상의 신선이 산다는 산 이름. 삼신산(三神山) 중 하나이자, 오도(吾島)의 하나. 중국의 진시황과 한무제가 불사(不死)약을 구하러 사신을 보냈다는 가상의 산.에서 채약(採藥)하던 선동(仙童)인데, 천상(天上)에 득죄(得罪)하여 인간(人間)으로 내치시매 갈 곳을 모르오니 부인은 어여삐 여기소서.”

하거늘, 부인이 대희(大喜)하여 다시 묻고자 하다가 문득 깨달아 심신(心身)이 황홀(恍惚)하여 처사를 청(請)하여 몽사(夢事)를 이르니, 처사가 청파(聽罷)듣기를 다 마침. 또는 그런 때에 왈(曰),

“우리 팔자(八字) 기박(奇薄)하여 무후(無後)뒤를 잇지 못함. 즉 자식이 없음할까 슬퍼했더니, 이제 부인 몽사(夢事)가 여차(如此)하니, 이는 반드시 하늘이 귀자(貴子)를 점지(點指)하심이라.”

하며 기꺼워하더니, 과연 그달부터 태기(胎氣)가 있어 십삭(十朔)이 차매, 일일(一日)은 채운(彩雲)이 집을 두르며 향취(香臭)가 진동(震動)하거늘, 처사가 정당(正堂)큰 집 안에 있는 여러 채의 집 가운데 가장 주된 집을 쇄소(刷掃)소쇄. 쓸고 닦아 깨끗이 함하고 때를 기다리더니, 부인이 혼미(昏迷) 중(中)에 눈을 들어 본즉 전일(前日) 꿈에 보던 동자(童子)가 나아들거늘, 부인이 반가운 중에 정신(精神)이 아득하더니, 이윽고 일척(一尺) 옥동(玉童)을 낳은지라. 처사가 대희(大喜)하여 일변(一邊) 부인을 구호(救護)하며 아이를 살펴본즉, 용모(容貌)가 화려(華麗)하고 기골(氣骨)이 장대(壯大)하니, 처사가 대희(大喜)하여 왈(曰),

“이 아이 꿈에 뵈던 동자(童子)니 이름을 운치(雲致)라 하고, 자는 몽중선(夢中仙)이라 하고, 별호(別號)를 구십자(口十子)구십(口十)은 전(田)자를 파자(跛者)한 것이다.라.”

하여 애중(愛重)함이 비할 데 없더라.

운치 점점 자라 칠 세(七歲)에 이르러는 처사가 글을 가르치매 총명(聰明) 영오(英悟)하여 문일지십(聞一知十)하나를 들려주면 열을 앎. 즉 머리가 뛰어남하니, 처사가 과애(過愛)지극히 사랑하고 아낌하여 십 세(十歲)에 이르렀더니, 슬프다! 흥진비래(興盡悲來)즐거움이 다하면 슬픔이 온다는 고금상사(古今常事)옛날부터 흔히 있는 일라. 처사가 홀연(忽然) 득병(得病)하여 백약(百藥)이 무효(無效)하매 부인을 청(請)하여 왈,

“내 헤아리건대 불구(不久)에 황천객(黃泉客)이 될지라. 아자(兒子)의 장성(長成)함을 보지 못함이 가장 유한(遺恨)이니, 부인은 모름지기 슬픔을 억제(抑制)하여 나의 부탁(付託)을 저버리지 말고 운치를 양육(養育)하여 영화(榮華)를 보고 조선 향화(祖先香火)조상들의 제사를 받듦를 받들어 백세(百歲) 무양(無恙)몸에 병이나 아무 탈이 없음.하라.”

하거늘, 부인이 이 말을 듣고 실성(失性) 체읍(涕泣)하여 말을 이루지 못하더니, 수일(數日) 후(後)에 처사가 기세(棄世)세상을 뜨다. 죽다한지라. 부인이 벽용(擗踊)상사(喪事)에 슬피 울며 가슴을 두드리고 몸부림을 침. 통곡(痛哭)하며 운치 또한 호천(呼天) 망극(罔極)어버이의 은혜가 하늘과 같이 다함이 없다의 뜻인데, 주로 제사의 축문에 쓰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어버이를 잃은 일을 가리키는 데 쓰인다.하여 자주 기절하매, 부인이 망극 중이나 아자를 염려(念慮)하여 지극(至極) 위로(慰勞)하며, 운치 비록 나이 어리나 집상(執喪)어버이 상사에 있어 예절에 따라 상제 노릇을 함함이 예(禮)에 어김이 없어 초종(初終)초상이 난 뒤로부터 부고(訃告)까지의 장례 절차을 극진(極盡)히 하여 선산(先山)에 안장(安葬)하고 모친(母親)을 모셔 삼상(三喪)삼년상. 초상(初喪), 소상(小喪), 대상(大喪)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지효(至孝)로 지내니, 향당(鄕黨)자기가 태어났거나 사는 시골 마을. 또는 그 마을 사람들.이 탄복(歎服)하더라.

 

각설(却說). 전처사(田處士)의 친붕(親朋)친한 벗 윤공(尹公)이란 사람은 문장(文章)이 광박(廣博)하고 명견만리(明見萬里)만리 앞을 내다본다는 뜻으로, 관찰력이나 판단력이 매우 정확하고 뛰어남을 이르는 말하는지라. 운치 서책(書冊)을 가지고 윤공께 수학(受學)하더니, 일일(一日)은 운치 일찍 일어나 서책을 가지고 서당으로 갈새, 한 뫼를 넘어가더니 죽림(竹林)이 무성(茂盛)한 곳에 한 계집이 소복(素服)을 단정(端正)히 하고 앉아 울거늘, 운치 시이불견(視而不見)보아도 보이지 않음. 보고도 못 본체 함 또는 마음이 딴 곳에 있어 보아도 눈에 들어오지 않음.하고 지나가서 윤공께 글을 배운 후에 집으로 돌아올 때 본즉 그 처자(處子)가 그저 울고 있거늘, 운치 괴이히 여겨 나아가 보니 연광(年光)나이이 삼오(三五) 이팔(二八)15-16세은 하고, 용모(容貌)는 옥(玉) 같아 아리따운 태도(態度)가 남자(男子)의 마음을 방탕(放蕩)마음이 들떠 갈피를 잡을 수 없음.케 하는지라. 운치 나아가 위로(慰勞)하며 문(問) 왈,

“낭자(娘子)는 어느 곳에 있으며 무슨 일로 아침부터 일중(日中)오정. 즉 점심때이 되도록 슬피 우느뇨?”

그 여자가 울음을 그치고 부끄러움을 머금고 답(答) 왈,

“나는 이 뫼 아래 있더니 서러운 일이 있어 우노라.”

하며 즐겨 이르지 아니하거늘, 운치 그 곁에 나아가 간절(懇切)히 물으니, 그 여자가 강잉(强仍)마지못하여, 억지로 대(對) 왈(曰),

“나는 맹어사(孟御使)의 딸이러니, 오 세(五歲)에 모친(母親)을 잃고 계모(繼母)가 들어온 후(後)로 나를 부친(父親)께 참소(讒訴)하여 죽이고자 하매, 주야(晝夜) 서러워하여 자결(自決)하고자 하나 차마 못 하고 이같이 우노라.”

하거늘, 운치 차언을 들으매 가장매우 긍측(矜惻)가련하고 불쌍히히 여겨 왈,

“사람의 사생(死生)이 유명(有命)하니 낭자는 부모유체(父母遺體)부모가 남겨준 몸를 생각하여 살기를 도모(圖謀)하라.”

하고 인하여 옥수(玉手)를 잡으나, 그 여자가 조금도 냉담(冷淡)함이 없으매 흔연(欣然)히 교합(交合)하여 양정(兩情)이 환흡(歡洽)하다가, 이윽고 서로 떠날새 재삼(再三) 견권(繾綣)생각하는 정이 두터워 서로 잊지 못하거나 떨어질 수 없음하며 돌아가니라.

이튿날 운치가 윤공께 나아갈새, 그곳에 이른즉 그 여자가 나와 불러 왈,

“내 벌써 이곳에 와 공자(公子)를 기다린 지 오래더니라.” 하거늘, 운치 반겨 손을 잡고 즐기다가 왈,

“아직 이곳에 있으라.”

하고 서당에 나아가니, 윤공 왈,

“네 오다가 여색(女色)을 범(犯)하였으니 글을 배워도 천지(天地) 조화(造化)를 통(通)치 못하리니, 네 이제 돌아가면 그 여자(女子)를 만날지라. 그 여자의 입에 구슬을 머금었을 것이니, 그 구슬을 앗아다가 나에게 보이라.”

하거늘, 운치 수명(受命)하고명을 받들고 그곳에 이르러 그 여자를 만나 옥수를 잡고 죽림간(竹林間)으로 들어가 정회(情懷)를 펼새, 운치 보니 과연 여자의 입에 구슬이 있거늘, 한번 구경함을 청(請)한즉 즐겨 보이지 아니하니, 운치 정색(正色) 왈,

“낭자도 규중(閨中) 처자요, 나도 미혼전(未婚前)미혼(未婚)+혼전(婚前), 중복표현. ‘결혼 전’임을 뜻한다.이매 피차(彼此) 부모께 고하고 원앙(鴛鴦)의 쌍(雙)을 지어 백년해로(百年偕老)하고자 하거늘, 낭자는 어찌 나의 뜻을 좇지 아니하느뇨?”

기녀(基女)가 말을 듣고 정(情)을 못 이겨 입을 서로 닿게하고 혀를 내어 구슬을 굴려 운치 입에 넣거늘, 운치 받아 입에 넣고 오래토록 주지 아니하니, 여자가 보채다가 못 하여 운치의 입을 벌리고 내려 하거늘, 운치 인하여 삼켰는지라. 여자가 찾아 없음을 보고 일언(一言)을 못하고 방성대곡(放聲大哭)하며 들로 내려가거늘, 운치 무료(無聊)부끄럽고 열없음.하여 돌아와 윤공께 자초지종(自初至終)을 다 고하니, 윤공 왈,

“네 이미 호정(狐精)여우의 넋을 먹었으니 천문(天文) 지리(地理)를 통하며 지살(地煞)풍수지리에서 터가 좋지 못한 데서 생기는 모질고 독한 귀신의 기운 일흔두 가지 변화(變化)를 부리고 또 금년(今年) 사월(四月)에 진사(進士)조선시대 과거의 예비시험인 소과의 복시에 합격한 사람에게 준 칭호를 할 것이니, 이후(以後) 사(事)를 조심하라.”

하더라.

 

차설(且說). 운치 나이 십오 세(十五歲)에 이르러는 문장은 이태백(李太白)중국 당나라 현종 때의 시인인 이백. 태백의 그의 자. 두보와 함께 중국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시선이라 일컬어졌다.을 압두(壓頭)하고 필법(筆法)은 왕희지(王羲之)중국 남북조시대 동진의 서예가, 문신. 동진 왕조 건설에 공적이 컸던 왕도의 조카로, 중국 고금의 첫째가는 서성(書聖)으로 존경받고 있다.를 대적(對敵)하며 호정을 먹은 후로는 구후‘그 후’로 볼 수 있음 삽십육(三十六) 변화가 능통(能通)한지라. 이때 국가에서 감시(監試)소과. 생원과 진사를 뽑던 과거를 보니, 운치 장중(場中)에 들어가 글을 지어 바친 후에 장원(壯元)에 오르매, 삼일유가(三日遊街)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사흘동안 부모친척과 선배를 찾아 보는 일를 받고 집에 돌아와 모친께 뵈온대, 최부인(崔夫人)이 일희일비(一喜一悲)하여 왈,

“너의 부친이 생시(生時)에 과거(科擧) 보기를 즐겨 아니하더니, 이제 네 영화(榮華)를 보니 어찌 기쁘지 아니하리오.”

하더라.

이렇게 광음(光陰)이 여류(如流)하여 명년(明年) 춘(春)이 되매, 운치 명산대천(名山大川)을 찾아다니더니, 세금사라는 절에 이르러 본즉 천여 간(千餘間) 전각이 거미줄에 감춰졌고 중생(衆生)이 하나도 없는지라. 마음에 괴이히 여겨 성림사에 내려오니 노승(老僧) 사오인(四五人)이 나와 맞거늘, 운치가 세금사 곡절(曲折)을 물으니, 노승 왈,

“세금사와 이 절 중이 천여 명(千餘名)이 되더니, 사오년 내로 두 절의 재변(災變)이 있어 중생 등이 능(能)히 부지(扶持) 못 하여, 혹은 이산(離散)산산히 흩어짐하며 혹은 간 데 없어 세금사는 다 비었고 이 절에 불과 노승 등 사오 명이라.”

하거늘, 운치 왈,

“이는 반드시 요얼(妖孼)요망한 귀신이 작난(作亂)함이로다.”

하고 집에 돌아와 모친께 세금사 연고(緣故)를 고한대, 부인 왈,

“차후(此後)는 조심하라.”

하거늘, 이후(以後)로는 운치 농업(農業)에 힘써 모친을 봉양(奉養)하더니, 일일은 세금사에 가 공부(工夫)하여 명년 과거 봄을 고한대, 부인 왈,

“전에 들은즉 그 절에 요얼이 많아 사람을 해(害)한다 하니, 어찌 그곳에 가려 하느뇨?”

운치 대 왈,

“사불범정(邪不犯正)바르지 못하고 요사스러운 것이 바른 것을 건드리지 못한다는 뜻으로, 곧 정의가 반드시 이김을 이르는 말바르지 못하고 요사한 것이 정당한 것을 건드릴 수 없음이오니 어찌 조그만하찮은 요물(妖物)이 침노(侵擄)하리오. 모친은 과념(過念) 마소서.”

하고 즉시 행장(行裝)을 수습(收拾)하여 세금사로 갈새, 한 곳에 이르러는 층암절벽(層巖絶壁) 상(上)에 일위(一位) 노인(老人)이 갈건야복(葛巾野服)갈건과 베옷이라는 뜻으로, 處士(처사)나 隱士(은사)의 소박하고 거친 의복을 이르는 말.으로 청려장(靑藜杖)명아줏대로 만든 지팡이을 짚고 한가(閑暇)로이 섰거늘, 운치 나아가 예(禮)한대, 노인 왈,

“그대는 어떤 사람이관대 수고로이 예하느뇨?”

운치 대 왈

“노인이 이에 계시니 소자(小子)가 어찌 무심히 지나오리이까.”

노인 왈,

“내 그대에게 줄 것이 있어 이곳에서 기다린 지 오래더니라.”

하고 소매에서 부용승(芙蓉繩)이란 노실. 삼, 종이 따위를 가늘게 비비거나 꼬아 만든 줄. 여기서는 포승줄와 부적(符籍)잡귀를 쫓고 재앙을 물리치기 위하여 붉은색으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 몸에 지니거나 짐에 붙이는 종이 한 장을 주며 왈,

“자연히 쓸 곳이 있으리라.”

하고 문득 간 데 없거늘, 운치 공중을 향하여 사례(謝禮)하고 노와 부적을 가지고 세금사로 들어가 시동(侍童)에게 명하여 방장(方丈)화상(和尙). 국사 드의 고승이 거처하는 처소을 쇄소(刷掃)하고 성림사 중에게 석반(夕飯)저녁밥과 반찬을 시켜먹고 촉(燭)을 밝혀 글을 읽더니, 삼경(三更)밤 11시에서 새벽 1시 사이쯤 되어 문득 문(門)을 열고 한 여자가 들어와 엄연(儼然)히어떠한 사실이나 현상이 없을 만큼 뚜렷이 곁에 앉거늘, 운치 눈을 들어 본즉 그 여자 연광(年光)이 이칠(二七)은 되었는데, 화려(華麗)한 용모(容貌)는 모란(牡丹)이 아침이슬을 머금은 듯, 선연(嬋娟)한 태도(態度)는 수양(垂楊)이 춘풍(春風)을 못 이기는 듯하매, 가히 장부(丈夫)의 간장(肝腸)을 녹이는지라.

운치 신혼(神魂)이 황홀(恍惚)하여 왈,

“낭자는 어디 있관대 이 심야(深夜)에 무슨 연고로 왔느뇨?”

여자가 대 왈

“첩(妾)은 본디 사족(士族) 부녀(婦女)로 가군(家君)남편을 따라 장양 태수(太守)로 가다가, 도적(盜賊)을 만나 가속(家屬)을 다 죽이고 행장을 잃고 첩이 홀로 목숨을 도망(逃亡)하여, 낮이면 산중(山中)에 숨고 밤이면 행(行)하여 고향(故鄕)을 찾아가다가, 멀리서 창외(窓外) 촉영(燭影)을 바라보고 촌가(村家)인 줄로만 여겨 왔더니, 남자의 글 읽는 소리가 분명(分明)하나 일신(一身)이 곤뇌(困惱)하므로 불계(不計) 체면(體面)하고체면을 돌아보지 않고 들어왔사오니, 원컨대 상공(相公)은 잔명(殘命)남은 목숨을 구하시면 타일(他日)에 결초보은(結草報恩) 하리이다.”

운치 왈,

“사람의 화복(禍福)은 임의(任意)로 못하나니, 낭자가 적환(賊患)을 면(免)하여 이곳에 이름이 또한 다행(多幸)하거니와, 아지 못게라, 낭자의 귀택(貴宅)은 어디며 연광(年光)은 얼마나 하뇨?”

여자가 왈,

“첩의 집은 경성(京城) 남문(南門) 밖이오, 나이는 십칠(十七)이로소이다.”

운치 왈,

“나와 동갑(同甲)이오. 경성이 여기서 상거(相距)떨어져 있는 두 곳의 거리가 삼백여 리(里)니, 여자가 어찌 득달(得達)하리오? 생(生)이 실로 염려(念慮)하노라.”

여자가 탄식(歎息)하여 왈,

“상공은 첩의 정상(情狀)사정과 형편을 불쌍히 여겨 하룻밤 머물러 감을 허(許)하소서.”

운치 왈,

“생이 집이 빈한(貧寒)하므로 지금까지 취처(娶妻)하지 못하고 명춘(明春) 과거에 천행(天幸)으로 등과(登科)하거든 혼취(婚娶)할까 바라더니, 금야(今夜)에 낭자를 만남이 또한 연분(緣分)이라. 원컨대 이성지합(二姓之合)을 맺어 백년(百年) 동락(同樂)함이 어떠하뇨?”

여자가 청파(聽罷)에듣기를 마치고 아미(蛾眉)를 숙이고 일언부답(一言不答)하니, 부끄러워하는 태도(態度)가 촉하(燭下)에 더욱 절승(絶勝)자태가 빼어나게 좋음한지라.

운치 서안(書案)을 물리고 왈,

“생이 우연(偶然)히 한 말로 낭자가 이렇듯 노(怒)하니 도리어 무료(無聊)하거니와 낭자는 생각하여 전정(前情)을 그르치게 말라.”

여자가 침음양구(沈吟良久)속으로 깊이 생각한 지 오랜 뒤에 왈,

“첩의 일신이 곤박(困迫)하나 또한 사문일맥(士門一脈)이라. 차라리 죽을지언정 어찌 욕을 감심(甘心)괴로움을 기꺼이 받아들임하리오마는 상공 말씀을 듣자오니 감사무지(感謝無地)고마운 마음을 이루 다 표현할 길이 없음라. 후일(後日)에 원수(怨讐)를 갚아 주실진대 존명(尊命)을 어찌 봉승(奉承)치 아니하리오.”

운치 이 말을 들으매 마음이 방탕하여 인하여 친합(親合)남녀가 잠자리를 같이 함하고 문(問) 왈,

“금일(今日)이 좋은 날이니 마땅히 합환주(合歡酒)신랑 신부가 서로 잔을 바꾸어 마시는 술로 천지(天地)께 맹세하리라.”

하고 죽병(竹甁)의 술을 잔(盞)에 가득 부어 먼저 먹고 또 부어 권(勸)하니, 여자가 감(敢)히 거스르지 못하여 마시거늘, 운치가 또 한 잔을 부어 권하되 여자가 굳이 사양(辭讓)하는지라. 운치가 왈,

“술을 일이(一二) 배(杯) 먹거든 무엇이 관계(關係)하리오?”

하니 여자가 마지못하여 먹거늘, 운치가 다시 한 잔을 마시고 한 잔을 부어 또 권한대, 여자가 죽기로 사양하는지라. 운치가 정색 왈,

“여자가 군자(君子)를 좇음에 순종(順從)함이 옳거늘 어찌 이렇듯 무례(無禮)하뇨?”

여자가 생의 기색(氣色)을 보고 강잉(强仍)히 받아 마신 후에 정신(精神)이 혼도(昏倒)정신이 어지러워 쓰러짐하여 자리에 거꾸러져 코를 골거늘, 운치 그제야 여자의 옷을 벗기고 주필(朱筆)로 여우의 가슴에 진언(眞言)비밀스러운 어구을 쓰되 흔적(痕迹)이 없으매 분명코 여우인 줄 알고 부용승을 내어 수족(手足)을 동이고 송곳으로 정박이정바기. 정수리의 방언를 쑤시며 방추(棒鎚)방망이로 두드리니, 여자가 놀라 깨어 대호(大呼) 왈,

“상공아! 이 무슨 일이뇨?”

운치 대매(大罵)크게 나무람 왈,

“이 몹쓸 여우 년아, 네가 이 절에 작얼(作孼)훼방을 놓음. 죄를 지음하여 생령(生靈)생명을 살해(殺害)하매, 내 너를 죽여 인간(人間) 해를 덜려 하여 이에 기다린 지 오래더니라.”

하며 송곳으로 두루 쑤시니, 그 요괴(妖怪) 견디지 못하여 본상(本像)본색. 본래 모습을 드러내어 금터럭이 돋치고 꼬리 아홉 가진 여우가 되어 살기를 빌거늘, 운치 왈,

“나에게 호정(狐精) 하나를 주면 너를 살리리라.”

구미호(九尾狐)가 왈,

“호정은 뱃속에 있거니와 호정보다 더 나은 천서(天書) 세 권이 있으니 목숨을 살려주소서.” 한 대, 운치는 본디 서생(書生)이라 책 말을 듣고 반겨 왈,

“그 책이 어디 있느뇨?”

요괴 왈,

“내 굴에 있으니 나를 끌러주면(풀어주면) 가져오리이다.”

하거늘

운치 대노(大怒)하여 송곳으로 두루 쑤시니, 요괴 왈,

“발 맨 것을 끌러주면 상공과 함께 가서 책을 드리리이다.”

운치 그 말을 옳게 여겨 발을 끌러놓고 따라 여우 굴로 가니, 큰 산에 장대(長大)한 바위 있고 그 아래 굴이 있는지라. 그 안으로 오(五) 리(里)나 들어간즉 송죽(松竹)이 창창(蒼蒼)하고 시내가 잔잔(潺潺)한 곳에 무수(無數)한 집의 단청(丹靑)이 찬란(燦爛)한지라.

운치 여우를 앞세우고 들어가더니 채의(彩衣) 입은 시녀(侍女)가 나와 맞으며 왈,

“아기씨, 오늘 산행사냥하러 가시더니 사망 일어그물을 일으켜 오시매 맛좋게 먹으리라.”

하며 달려들거늘, 운치 대노(大怒)하여 잔 요괴를 낱낱이 쳐 죽이고 구미호를 송곳으로 쑤시니, 구미호가 견디지 못하여 시녀에게 왈,

“너는 빨리 가 성적함(成赤函)물품을 넣어두는 그릇 속에 있는 세 권 책을 가져오라.”

하거늘 요괴가 급히 가져왔는지라. 운치가 받아본즉 천서(天書)하늘의 책. 온갖 비법과 비밀이 담긴 책라. 글자를 알아볼 길 없으매, 구미호더러 글 뜻을 가르치라 하니, 구미호가 왈,

“손을 끌러놓으면 가르치리이다.”

하거늘, 운치 송곳으로 찌르며 방추를 드니 구미호가 허락(許諾)하매, 운치가 노를 끄르지 아니하고 왈,

“나 있는 절로 가자.”

하고 구미호를 데리고 세금사로 와서 술을 마신 후에 구미호를 앉히고 천서 상권(上卷)을 배워 일야(一夜) 간(間)에 다 통달(通達)하니, 짐짓 귀신(鬼神)도 측량(測量)치 못할 술법(術法)이라. 그제야 운치 여우를 맨 것을 풀고 등의 부적을 떼어 천서 상권에 붙이고 일러 왈,

“너를 죽여 후환(後患)을 없애고자 하였더니, 도리어 네 은혜(恩惠)를 입었기로 살려 보내나니, 차후(此後) 다시 작변(作變) 말라.”

한대, 구미호가 사례(謝禮)하고 가니라.

이윽고 문득 대풍(大風)이 일어나 문이 열리며 청운(靑雲) 속에서 워여웨다. 외치다의 뜻, ‘웨이어’가 ‘워여’가 되었다. 왈,

“구십자(口十子)야, 내 부용승은 찾아가고 부적은 두고 가노라.”

하거늘, 운치 급히 나가보니 청운이 하늘로 올라가는지라. 공중을 향하여 사례(謝禮)하고 방으로 들어왔더니, 홀연 한 선비가 나귀를 타고 들어와 계하(階下)에 내리니, 이는 윤공이라. 운치 황망(慌忙)히 맞아 말씀할새 윤공 왈,

“이 책은 선비에게 불가(不可)하거늘 네 어찌 보느뇨?”

운치 미처 답(答)하지 못하여 윤공이 간 데 없으니, 운치 대경(大驚)하여 살펴본즉 천서 한 권이 없으매, 가장 의심(疑心)할 즈음에 문득 들으니 계집의 곡성(哭聲)이 가까워오거늘, 운치 나가보니 자기 유모(乳母)가 산발(散髮)하고 울며 왈,

“모부인(母夫人)이 작일(昨日)에 평안(平安)하시다가 일야간에 상사(喪事)가 나 계시니 상공은 빨리 가사이다.”

하거늘, 운치 대경(大驚)하여 급히 서책(書冊)을 수습할 새, 경각(頃刻) 간(間)에 유모가 간 데 없고 또 천서 한 권이 없는지라. 운치 대노 왈,

“흉(凶)한 요물이 나를 업수이 여겨 이같이 속이니 내 이제 여우 굴혈(掘穴)에 가 책을 찾고 요괴를 소멸(掃滅)하리라.”

하고 방추와 송곳을 가지고 여우 굴로 가니, 산천(山川)이 심수(深邃)하고 길이 아득하여 길을 찾을 수 없어 도로 돌아와 생각하되,

‘이 요괴 변화(變化)가 불측(不測)하매 가히 이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리라.’

하고 서책을 수습하여 돌아오니, 대저 상권은 부적을 붙인 연고로 앗아가지 못함이러라.

 

운치 집에 돌아와 천서를 보아 못 할 술법(術法)이 없으매 과업(課業)과거(科擧)를 보는 일에 뜻이 없어 스스로 생각하되,

‘내 벼슬하여 모친(母親)을 봉양(奉養)하려 하면 자연(自然)히 더디리라.’

하고 이에 한 계교(計巧)를 생각하여 몸을 흔들어 변하여 선관(仙官)이 되어 오운(五雲)오색구름을 타고 반공(半空)에 올라 바로 궐내(闕內)로 들어가 대명전(大明殿)궁궐에 거중(居中)하매 서기(瑞氣)가 공중에 어리었으니 궁중(宮中)이 현황(眩慌)정신이 어지럽고 황홀함.하여 망지소조(罔知所措)너무 당황하거나 급하여 어찌할 줄을 모르고 갈팡질팡함.하고 조신(朝臣) 등이 상달(上達)하되,

“고금(古今)에 드문 괴변(怪變)이라.”

한 대, 상(上)이 대경(大驚)하사 제신(諸臣)을 모아 의논(議論)하시더니, 운치가 운무(雲霧) 중(中)에 서고 청의(靑衣) 동자(童子)가 워여 왈,

“고려국(高麗國) 왕(王)은 옥제(玉帝)옥황상제의 줄임말 전교(傳敎)를 들으라.”

하거늘, 왕이 명(命)하사 포진(鋪陳)바닥에 깔아놓는 반석, 요, 돗자리 등의 총칭과 향안(香案)향로를 올리는 상을 배설하고 나아가 보니 일위(一位) 선관(仙官)이 금관(金冠) 홍포(紅布)로 동자(童子)를 좌우(左右)에 세우고 오운(五雲) 중에 싸이어 단정(端正)히 섰거늘, 왕이 사배(四拜)를 마친 후에 복지(伏地)하신대, 운치 왈,

“천상(天上) 요지(瑤池)신선이 살고 있다는 연못 보각(寶閣)훌륭한 전각이 연구퇴락(年久頹落)세운지 오래되어 무너지고 헐어짐하기로 이제 중수(重修)다시금 수리하여코자 하여 인간(人間) 제국(諸國)여러 나라에 전지(傳旨)임금의 뜻을 전함하여 모든 물건(物件)을 다 진배(進排)나아가 바침하였으나 다만 황금(黃金) 들보 하나가 없는지라. 상제(上帝)께서 그대 나라에 황금이 유족(裕足)함을 아시고 이제 전지(傳旨)하사 칠월(七月) 칠일(七日) 오시(五時)에 상량(上樑)기둥에 보를 얹고 그 위에 처마 도리와 중도리를 걸고 마지막으로 마룻대를 옮김. 또는 그 일하리니, 그 날 미쳐 대령(待令)하되 장(長)길이이 십 척(尺) 오 촌(寸)이요, 광(廣)넓이이 삼 척(尺) 이 촌(寸), 만일 그날 미치지 못하면 큰 변(變)을 내리우시리라.”

하고 언파(言罷)말을 끝냄에 선악(仙樂) 소리 은은(隱隱)하며 오운이 남녘으로 향하여 가거늘, 왕이 남천(南天)을 향하여 사배하시고 전(殿)에 오르사 문무(文武)를 모아 의논하실새, 좌우(左右)가 주(奏)아뢰다. 임금에게 올리는 말 왈,

“팔도(八道)에 행관(行關)관아에 공문을 보내던 일하여 금(金)을 거두어 천명(天命)을 받듦이 옳을까 하나이다.”

상이 옳게 여기사 즉시 팔도에 발관(發關)상급 관아에서 하급 관아로 관문(關文)을 보내던 일하여 금을 모으고 공장(工匠)을 불러 장광(長廣) 척수(尺數)를 맞추어 날 미쳐 만들어 들이니, 상이 삼일(三日) 재계(齋戒)하시고 등대(等待)하시더니, 이날 진시(辰時)에 오운이 궐내에 자욱하고 향취(香臭)가 진동(振動)하며 선관이 엄연(儼然)히 운(雲) 중(中)에 싸여 오며 양편(兩便)에 청의 동자가 학(鶴)을 타고 내려와 요구쇠‘요구’는 갈고리의 방언. 요구쇠는 갈고리 모양의 쇠를 뜻한다.로 걸어 올려 채운(彩雲)에 싸여 남쪽 땅으로 무지개 뻗치고 오운이 각각 동서(東西)로 흩어지는지라. 상과 제신이 향안 앞에 나아가 사배하고 전상(殿上)에 오르사 진하(進賀)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벼슬아치들이 조정에 모여 임금에게 축하를 올리는 일를 받으시니라.

 

운치 임금을 속이고 황금(黃金) 들보를 얻었으나 동국(東國)에는 금(金)이 진(盡)하였으매, 금 들보를 매매(賣買)함이 가장 수상(殊常)한지라. 문득 한 계교(計巧)를 생각하여 들보 머리를 베어가지고 성중(城中)에 들어가 팔려 하니, 마침 포도(捕盜) 장졸(將卒)이 보고 의심(疑心)하여 문(問) 왈,

“이 금이 어디서 나며 값은 얼마나 하뇨?”

운치 왈,

“이 금은 출처(出處) 있거니와 값은 오백 금이로라.”

포교(捕校)포도부장. 조선시대에 포도청에 속하여 범죄자를 잡아들이거나 다스리는 일을 맡아 보던 벼슬아치가 왈,

“그대 집을 이르면 내 명일(明日)에 돈을 가지고 가리라.”

하니 운치 왈,

“내 집은 송악산(松嶽山)경기도 개성시 북쪽 개풍군과 개성시 경계에 있는 산. 예로부터 소나무가 많아 송악산이라 불렀다 남서부요, 성명(姓名)은 전운치로라.”

한대, 포교가 상약(相約)한 후에 관가(官家)에 이 사연(事緣)을 고(告)한대, 태수(太守)가 왈,

“이 반드시 연고(緣故)가 있으니 이를 자세히 안 후에 이놈을 생금(生擒)사로잡다하리라.”

하고 우선 은자(銀子) 오백 냥을 주어 사오라 한 대, 포교가 즉시 남서부에 가 운치를 보고 은자를 주니 운치 금을 주고 은자를 받거늘, 포교가 받아가지고 돌아와 태수께 고한대, 태수가 보고 대경(大驚) 왈,

“이 금은 들보 머리 분명(分明)하니 위선(爲先) 잡아다가 진위(眞僞)를 알아 장계(狀啓)왕명을 받고 지방에 나가 있던 신하가 자기 관할의 중요한 일을 왕에게 보고하던 일하리라.”

하고, 장교(將校) 십여 명과 포교 등을 보내었더니, 장교 등이 남서부에 가서 운치를 잡아내려 할새, 운치 음식(飮食)을 내어 관대(寬待)대접하고 왈,

“너희 수고로이 왔으나 나는 가지 아니하리니, 너의 태수의 힘으로는 나를 잡지 못할 것이요, 왕명(王命)이 내리면 잡혀가리라.”

하고 조금도 요동(搖動)치 아니하거늘, 장교 등이 감히 하수(下手)손을 댐. 착수(着手)치 못하여 돌아가 태수께 이 사연을 고한대, 태수가 대경(大驚)하여 토병(討兵) 오백을 발(發)하여 운치의 집을 에워싸고 잡으라 하며 일변(一邊) 이 사연으로 장계하니, 상이 대노(大怒)하사 백관(百官)을 모아 의논(議論)하시고 금부(禁府)조선시대에 임금의 명령을 받들어 중죄인을 신문하는 일을 맡아 하던 관아인 의금부(義禁府)로 나래(拿來)죄인을 잡아옴하라 하시니라.

이 때 운치 은자를 얻어 음식을 준비(準備)하여 모친(母親)께 드리더니, 홀연(忽然) 경성(京城)에서 나명(拿命)체포령. 붙잡아오라는 명령이 내림을 듣고 정(正)히 계교를 생각할새, 차시(此時) 금부도사(禁府都事)조선시대에 의금부에 속하여 임금의 특명에 따라 중죄인을 신문하는 일을 맡아보던 종오품 벼슬와 포교 등이 토병을 거느려 운치의 동정(動靜)을 살펴 잡으려 하는지라. 운치 먹소용‘소용’은 길쭉하고 자그마한 병으로 ‘먹소용’은 먹물을 담는 병. 즉 먹병.을 내어놓고 모친에게 왈,

“바삐 이 병에 드소서.”

하니 부인(夫人)이 병에 들며 운치 또한 들거늘, 도사와 포교 등이 괴이히 여겨 달려들어 병부리를 단단히 막아 들고 주야(晝夜)로 달려올새, 병 속에서 소리쳐 왈,

“내 난(亂)을 피하여 병 속에 들었거늘 뉘라서 병부리를 막아 숨이 막혀 죽겠으니 막은 것을 빼라.”

하거늘, 도사가 청이불문(聽而不聞)듣고자 못들은 체 함하고 급히 달려 탑전(榻前)왕의 자리 앞에 이르러 운치를 잡던 수말(首末)을 아뢴대, 상(上) 왈,

“운치 비록 요술(妖術)이 있으나 어찌 병 속에 들리요?”

하시니, 운치 병 속에서 소리 질러 왈,

“갑갑하오니 병막이를 빼어주소서.”

하거늘, 상이 그제야 운치가 병에 든 줄 아시고 조신(朝臣)더러 처치(處置)함을 물으신대, 제신(諸臣)이 주(奏) 왈,

“이 놈의 요술이 불측(不測)하오니 소루히생각이나 행동 따위가 꼼꼼하지 않고 거칠게 하다가는 잃을까 하나이다.”

상이 전지(傳旨)하사 가마에 기름을 끓이고 소용병을 넣으니 병 속에서 외쳐 왈,

“신(臣)의 집이 빈한(貧寒)하와 주야(晝夜) 떨고 지내옵더니 금일(今日)은 더운 데 들어 녹이오니 국은(國恩)이 망극(罔極)하여이다.”

하거늘, 아침부터 늦도록 끓여 기름이 다 졸았는지라. 상(上)이 병을 깨치라 하시니, 그 병이 여러 조각이 나되 아무 것도 없고 병 조각마다 달음질뛰어 내달려옴하여 어전(御前)에 나아오며 왈,

“소신(小臣) 전운치 여기 있나이다”

하거늘, 상이 대노하사,

“그 조각을 바하부수어 가루를 만듦 기름에 끓이라.”

하시고 전운치 집을 파가저택(破家瀦宅)중죄인의 집을 헐어버리고 물을 대어 못을 만들던 형벌하라 하시며 운치를 잡기를 하실새, 대신이 주(奏) 왈,

“이 요적(妖賊)을 잡을 수 없사오니 후환(後患)을 덜고자 하실진대 사문(四門)에 방(榜)을 붙여 ‘운치 자현(自現)스스로 나타나 자수함하면 죄를 사(赦)하고 관작(官爵)을 주리라’ 하사, 만일 운치 자현하거든 중임(重任)을 맡겨 다시 그름이 있거든 죽임이 마땅할까 하나이다.”

상이 그 말을 옳게 여기사 즉시 사문에 방을 붙이되,

‘전운치가 비록 국가(國家)에 득죄(得罪)하였으나 제 재조(才操)’재주‘의 원말. 무엇을 잘할 수 있는 타고난 능력과 슬기를 아껴 특별(特別)히 죄를 사하고 벼슬을 주나니 바삐 자현(自現)하라.’

하니라.

 

차설(且說). 운치는 모친(母親)을 모시고 산중(山中)에 들어 은자(銀子)를 쓰며 구름을 타고 사방(四方)으로 임의(任意) 왕래(往來)하더니, 일일(一日)은 한 곳에 이른즉 백발노인이 슬피 울거늘, 운치 나아가 연고(緣故)를 물은대, 노인 왈,

“내 칠십(七十)에 한 자식(子息) 있더니 애매히‘애매하다’는 순우리말로 ‘억울하게 느껴지다’의 뜻으로 ‘애먼’의 어원이다. 한자말인 ‘애매(曖昧)하다’와는 다른 말이다. 살인죄수(殺人罪囚)가 되었기로 설워하노라.”

운치 그 애매함을 자세히 물은대, 노인 왈,

“우리 동리(洞里)에 왕가(王哥)란 사람이 있으되 그 계집의 인물(人物)이 고우매 내 자식이 사통(私通)하여 왕래하더니, 그 계집이 음란(淫亂)하여 또 조가(趙哥)와 통간(通姦)하다가 왕가에게 들키어 두 놈이 싸워 서로 구타(毆打)할새, 내 자식이 마침 갔다가 싸움을 말려 조가를 보내었더니, 왕가가 즉시 죽으매 그 사촌(四寸)이 관가(官家)에 고하여 살인을 이루니, 조가는 양문기의 문객(門客)세력 있는 집에 머물면서 밥을 얻어먹고 지내는 사람. 혹은 덕을 볼까 하고 수시로 그 집에 드나드는 사람이라 결련(結連)인연을 맺음. 서로 맺어져 한 통속임.이 있어 벗어나고, 내 자식이 살인함으로 문서(文書)를 만들어 죄수가 되었으매 이같이 설워하노라.”

운치 왈,

“진실(眞實)로 그러할진대 내 마땅히 무사(無事)하게 하리라.”

하고 노인을 이별(離別)한 후에 몸을 흔들어 일진청풍(一陣淸風)한바탕 부는 맑고 시원한 바람이 되어 양문기의 집에 가니, 차시(此時) 양문기가 외당(外堂)에서 거울을 대하여 얼굴을 보거늘, 운치가 또 변하여 왕가(王哥)가 되어 곁에 섰으니 양문기가 괴이히 여겨 거울을 거두고 돌아본즉 아무것도 없는지라. 생각하되

‘백주(白晝)에 요얼(妖孼)이 나를 희롱(戱弄)하니 괴이하도다.’

하고 다시 거울을 보니 아까 보이던 사람이 서서 고(告) 왈,

“나는 금번(今番) 조가(趙哥) 손에 죽은 왕생(王生)이라. 상서(尙書)고려시대에 둔 육부의 으뜸. 성종14년(995)에 어사를 고친 것으로 정삼품이며, 뒤에 판서, 전서로 고쳤다.가 그릇 알고 애매한 이가(李哥)를 가두고 조가를 놓으니, 이제 만일 조가 원수(怨讐)를 아니 갚아주면 내 그저 있지 아니하리라.”

하고 문득 간 데 없거늘, 양문기 대경(大驚)하여 급히 좌기(坐起)관아의 으뜸 벼슬에 있던 이가 출근하여 일을 시작함.를 차리고 조가를 잡아 엄문(嚴問)한즉, 조가가 애매함으로 발명(發明)할죄나 잘못이 없음을 말하여 밝히다 즈음에 왕가가 들어와 고성(高聲) 왈,

“이 불측(不測)생각이나 행동 따위가 괘씸하고 엉큼함한 조가 놈아! 무슨 일로 나의 아내를 겁탈(劫奪)하고 또 나를 죽이니 이는 나의 깊은 원수(怨讐)이어늘, 네 어찌 애매한 이가에게 죄를 돌아보내난다?”

하고 문득 간 데 없는지라. 조가가 경황(驚惶)하고 양문기 또한 놀라 조가를 엄형 추문(嚴刑推問)엄한 형벌로 신문함하니, 조가가 능히 견디지 못하여 개개(箇箇) 승복(承服)하거늘, 즉시 이가를 방송(放送)놓아 보냄하고 조가를 행형(行刑)형을 집행함하니라.

 

운치 이가를 구한 후에 구름을 타고 가다가 굽어보니 저자시장을 예스럽게 이르는 말 거리에서 양인(兩人)이 저두(臍肚)삶은 돼지머리를 붙들고 다투거늘, 운치 내려와 연고를 물은즉, 일인(一人)이 대(對)대답하여 왈,

“저두를 쓸 데 있어 먼저 값을 정하였더니, 저 사람이 관리(官吏) 자세(藉勢)하고어떤 권력이나 세력을 믿고 의지하고 앗아가려 하기로 다투노라.”

운치 관리를 속이려 하여 진언(眞言)을 염(念)하니 그 저두가 다 입을 벌리고 관리를 물려하거늘, 관리가 놀라 달아나더라.

 

운치 또 한 곳에 이르니 풍악(風樂)이 낭자(狼藉)하고 가성(歌聲)이 분운(紛紜)하거늘, 운치 좌(座)에 나아가 예(禮)하여 왈,

“나는 과객(過客)이러니 제형(諸兄)의 즐김을 구경하고자 하노라.”

제생(諸生)이 답례(答禮)하고 서로 통성명(通姓名)한 후에 운치 눈을 들어 살펴본즉, 창기(娼妓) 십여 인(人)이 각각 풍악을 가지고 가사(歌詞)를 희롱(戱弄)하는 곳에 그 중에서 소생(蘇生)과 설생(薛生)이라 하는 사람이 가장 교만(驕慢) 거오(倨傲)하거늘, 운치 냉소(冷笑)하고 제생으로 수작(酬酌)하더니 이윽고 주반(酒飯)술과 안주를 갖춘 상이 나오거늘, 운치 왈,

“생(生)이 형(兄)의 사랑을 입어 진찬(珍饌)을 맛보니 감사(感謝)하도다.”

설생 왈,

“우리 비록 빈한(貧寒)하나 명기(名妓)와 진찬(珍饌)이 많으니 형은 처음 본 듯하리라.”

운치 소(笑) 왈,

“그렇기는 하거니와 오히려 미비(未備)한 것이 많도다.”

설생이,

“이 무엇이 미비하뇨?”

운치 왈,

“우선 서늘한 수박도 없고, 새콤한 복숭아와 달콤한 포도도 없으니, 무엇이 갖추어졌으리오.”

제생이 대소(大笑) 왈,

“형은 무지각(無知覺)이로다. 차시(此時)는 계춘(季春)음력 3월. 늦봄이라. 이 실과(實果) 등이 어디 있으리오?”

운치 왈,

“일처(一妻)에 온갖 여름열매의 옛말이 열렸음을 보았노라.”

설생 왈,

“그러하면 형이 이제 사올쏘냐?”

운치 왈,

“만일 사오거든 큰 내기를 시행(施行)하라.”

하고 종자(從者)를 데리고 한 동산에 가본 즉 나무에 복숭아가 달렸거늘 종자로 하여금 나무에 올라 따서 지게하고, 그 아래 포도가 가자(架子)가지가 늘어지지 않도록 밑에서 받쳐 세운 시렁에 드리웠으매 또 따서 지게하고, 들로 내려간즉 수박이 넝쿨에 열렸거늘 이십 개를 따서 지게하고 돌아오니, 제인(諸人)이 대경(大驚)하여 먹으며 가장 신기(新奇)히 여기더라.

운치 대취(大醉)하매 소(蘇), 설(薛) 양생(兩生)을 속이고자 하여 양인(兩人)을 향하여 진언(眞言)을 염(念)하더니, 이윽고 양인 왈,

“몸이 심히 무겁고 마음이 심히 번란(煩亂)하니 괴이하도다.”

운치 왈,

“형 등이 방자(放恣)하거니와 창기는 불긴(不緊)필요하지 아니함한가 하노라.”

양인이 노(怒) 왈,

“우리가 환자(宦者)내시. 내시부에 속한 궁중의 남자 내관으로 임금의 시중을 들거나 숙직 따위의 일을 맡아보았다.가 아니거든 어찌 창녀(娼女)를 불긴타 하느뇨?”

운치 소(笑) 왈,

“양형은 노(怒)하지 말고 손을 바지 속에 넣어 만져보라.”

하니 설생이 이 말을 듣고 손으로 만져보다가 소생더러 왈,

“신낭(腎囊)고환. 남자의 생식기이 간 데 없고 판판하니 이 어찐 일이뇨?”

소생이

“보여주라.”

하거늘, 생이 내여 보이니 과연 아무것도 없으매 소생이 또한 제 하물(下物)을 만져본즉 역시 그러한지라. 양인이 대경 왈,

“아까 전형(田兄)이 우리를 조롱(嘲弄)하더니 과연 이런 변(變)이 있도다. 장차 어찌하리요?”

하며 또 창기들 중 한 년이 소문(小門)여자의 음부를 완곡하게 이르는 말이 간 데 없고 배 위에 구멍이 났으매 어찌할 줄 모르거늘, 그 중에 은생(殷生)이라 하는 자가 가장 총명(聰明) 유식(有識)한지라. 문득 깨달아 운치에게 빌어 왈,

“아등(我等)이 눈이 어두워 형에게 득죄(得罪)하였으니, 바라건대 형은 용서(容恕)하라.”

운치 왈,

“염려(念慮) 말면 자연(自然)히 도로 나으리라.”

제생과 그 년이 기꺼워하며 만져본즉 의구(依舊)하매 모두 치하(致賀) 왈,

“신선(神仙)이 강림(降臨)하심을 몰라 하마터면 병인(病人)이 될 뻔하였나이다.”

하더라.

 

운치 구름을 타고 동(東)쪽 땅으로 가다가 보니, 한 곳에서 수삼(數三) 인(人)이 의논(議論) 왈,

“장(張) 고직(庫直)고지기. 관아의 창고를 보살피고 지키던 사람은 착하고 효행(孝行)이 있는 사람이라. 만일 애매(曖昧)히 죽으면 아깝고 참혹(慘酷)하다.”

하며 차탄(嗟歎)하거늘, 운치 내려와 물은대, 기인(其人)이 대(對) 왈,

“호조(戶曹) 고직인 장계창이란 사람은 어질고 효행 있고 사람 구제(救濟)하기를 좋아하더니, 제가 문서 잘못한 탓으로 제가 쓰지 아니한 은자(銀子) 이천 냥을 무면(無麵)(곡식ㆍ돈 따위에) 부족이 생기는 일지매, 그 죄(罪)로 행형(行刑)한다 하기로 차탄(嗟歎)하노라.”

하니 운치 불쌍히 여겨 다시 구름을 타고 행형(行刑)하는 곳으로 가 기다리더니, 과연 한 소년이 술위수레의 옛말에 달려 오고 그 뒤에 젊은 계집이 울며 따르는지라. 운치 중인(衆人)더러 물은즉 과연 장계창이어늘, 동정(動靜)을 살피더니 옥졸(獄卒)이 죄인(罪人)을 내려놓고 때를 웨는지라‘웨다’는 ‘외치다’의 옛말. 외치는지라. 운치 바람이 되어 장계창의 부처(夫妻)를 거두어가지고 하늘로 올라가니 감형관(監刑官)이 대경(大驚)하여 이대로 상달(上達)한대 상(上)이 놀라시고 조정(朝廷)이 의혹(疑惑)하더라.

운치 집에 돌아와 장계창의 부부(夫婦)를 내려놓고 약(藥)을 풀어 넣은즉 이윽고 깨어 아무런 줄 모르매 운치 전후(前後) 수말(首末)을 이르고 모친(母親)께 이 사연(事緣)을 고하니라.

 

운치 또 구름을 타고 가다가 한 사람이 통곡(痛哭)함을 보고 연고(緣故)를 물은대, 기인(其人)이 대(對) 왈,

“나는 한재경이러니 부상(父喪)부친상을 당하여 장사(葬事)할 수 없고 칠십(七十) 노모(老母)를 봉양(奉養)할 길 없어 설워하노라”

하니 운치 긍측(矜惻)히 여겨 소매에서 한 족자(簇子)를 내어주며 왈,

“이 족자를 집에 걸고 ‘고직아!’ 불러 대답(對答)하는 자(者)가 있거든 은자(銀子) 백 냥을 내라 하면 줄 것이니, 그 은자로 장사지내고, 또 매일(每日) 한 냥씩만 달라 하여 노친(老親)을 봉양하되, 만일 더 내라 하면 큰일이 날 것이니 부디 조심(操心)하라.”

한대, 기인이 반신반의(半信半疑)하며 운치의 거주(居住) 성명(姓名)을 묻고 집에 돌아와 족자를 펴본즉 아무것도 없고 큰 집 하나를 그리고 그 집 앞에 동자(童子)를 그려 열쇠를 채웠거늘, 기인이 시험(試驗)하여 ‘고직아!’ 부른즉 과연 그림 속에서 대답하고 나오는지라. 기인이 놀라며 ‘은자 백 냥을 들이라’ 하니 동자(童子)가 은자 백 냥을 내어 앞에 놓거늘, 재경이 그 은자로 장사를 지내고 매일 고직을 불러 은자 한 냥씩 들이라 하여 일용(日用)을 하더니, 일일(一日)은 쓸 데 있어 헤아리되,

‘은자 백 냥을 꾸어 쓰면 무슨 관계(關係) 있으리요?’

하고 고직을 불러 왈,

“쓸 데 있어 은자 백 냥을 먼저 꾸어 쓰고자 하노라.”

한대 고직이 허(許)치 아니하거늘, 재경이 재삼(再三) 달래며 이른즉, 고직이 부답(不答)하고 들어가 문(門)을 여는지라. 재경이 따라 들어가 은자 백 냥을 가지고 나오려 하니 고문(庫門)이 닫혔거늘, 일변(一邊) 놀라 고직을 부르되 대답이 없는지라. 재경이 대노(大怒)하여 발로 문을 박차더니, 차시(此時) 호판(戶判)이 좌기(坐起)할새 고직이 아뢰되,

“고(庫) 중에서 사람 소리 나오니 가장 괴이하더이다.”

하거늘, 호판이 듣고 외괴(崴魁)하여 하속(下屬)하인배. 하인의 무리을 모으고 문을 여니, 한 놈이 은자를 가지고 섰거늘, 하속 등이 대경(大驚)하여 문(問) 왈,

“네 어떤 도적(盜賊)이관대 이곳에 들어왔느뇨?”

재경이 노(怒) 왈,

“너희는 어떤 사람이관대 남의 고(庫) 중에 들어와 이렇듯 하느뇨?”

하거늘, 하속 등이 재경을 결박(結縛)하고 호판께 아뢴대, 호판이 재경을 계하(階下)에 꿇리고 꾸짖으니, 한가(韓哥)가 그제야 살펴본즉 제 집이 아니요 곧 관가(官家)라. 대경(大驚)하여 왈,

“내 어찌 이곳에 왔는고? 이 꿈인가 상시(常時)인가?”

하며 아무런 줄 모르거늘, 호판 왈,

“네 고(庫) 중에 들어와 은(銀)을 가져가려 하는 죄는 죽음직 하거니와 네 당류(黨類)를 다 아뢰라.”

하니, 한가가 전후곡절(前後曲折)을 다 고한대 호판이 그 족자 출처(出處)를 물으니 한가가 전운치의 사연을 아뢴대, 호판 왈,

“전운치를 어느 때에 보았는가?”

한가가 왈,

“본 지 사오 삭(朔)이요, 그 집은 남서부라 하더이다.”

하거늘, 호판이 이에 한가를 가두고 인하여그 후 은고(銀庫)를 반고(反庫)창고에 있는 물건을 뒤적거려 조사함한즉, 은자는 다 없고 청개구리 가득하고 또 다른 고를 본즉 돈은 없고 누른 뱀이 가득 서렸거늘, 호판이 괴이히 여겨 그 연유(緣由)를 상달(上達)한대, 상(上)이 대경(大驚)하사 제신(諸臣)을 모아 의논하실새, 각 창관(倉官)창고를 관리하는 벼슬아치이 주(奏)하되,

“창고(倉庫)의 쌀이 변하여 버러지 짐승이 되었나이다”

하며, 또 각 영문(營門)군문(軍門)이 주(奏)하되

“고(庫) 중(中) 군기(軍器)가 다 없고 나뭇가지만 쌓였나이다.”

하며, 차지내관(次知內官)궁방의 일을 맡아보던 내시이 주(奏)하되

“해물(海物)이 변하여 생선(生鮮)이 되었나이다.”

하며, 궁녀(宮女)가 주(奏)하되

“궁녀 등의 족두리 변하여 금가마귀 되어 날아가고, 내전(內殿)에 큰 범이 들어와 궁인(宮人)을 해(害)하나이다.”

하거늘, 상이 대경하사 궁노수(弓弩手)활과 쇠뇌를 쏘던 군사를 발(發)하여 내전에 들어가본즉 궁녀마다 큰 범을 탔으매 궁노를 발하지 못하고 이 사연을 상께 주(奏)한대, 상이 진노(震怒)하사 궁녀 아울러 쏘라 하시니, 궁노수가 들어가 일시에 쏘려 한즉 흑운(黑雲)이 일어나며 범 탄 궁녀가 다 구름에 싸여 하늘로 올라가는지라. 상 왈,

“이는 다 전운치의 요술(妖術)이니 이놈을 잡아야 국가(國家)가 태평(太平)하리라.”

하시더니, 호판이 주(奏)하되,

“가둔 도적이 또한 전운치 동류(同類)이니 급히 죽여지이다.”

하거늘, 상이 의윤(依允)신하가 아뢰는 청을 임금이 허락함하사 한재경을 행형하려 할새, 문득 광풍(狂風)이 대작(大作)하며 재경이 간 데 없으니, 이는 운치가 구(救)함이러라.

 

차설(且說). 운치 두루 다니다가 사문(四門)의 방(榜) 붙임을 보고 냉소(冷笑)하며 궐하(闕下)에 나아가 외쳐 왈,

“소신(小臣) 전운치 자현(自現)하나이다.”

하거늘, 정원(政院)임금의 자문기관인 승정원. 승정원은 왕명의 출납을 맡아보던 관아이다.이 주(奏)한대, 상이 헤아리시되

‘이놈 환술(幻術)에 비상(非常)하여 도처(到處) 작난(作亂)하니 차라리 벼슬을 주어 달래고 만일 다시 작변(作變)하거든 죽이리라.’

하시고, 입시(入侍)하라 하시니, 운치 들어와 복지(伏地)하거늘, 상 왈,

“네 죄상(罪狀)을 아는가?”

운치 부복(俯伏) 사죄(謝罪) 왈,

“신(臣)의 죄 만사무석(萬死無惜)이오니 무슨 말씀을 아뢰리이까?”

상 왈,

“네 재조(才操)를 아껴 죄를 사(赦)하고 벼슬을 주나니, 너는 모름지기 충성(忠誠)을 다하라.”

하시고 선전관(宣傳官)선전관청에 속한 무관 벼슬 또는 그 벼슬아치 사복(司僕)사복시. 군중의 가마나 말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아 내승(內乘)고려 때는 궁중의 가마를 맡은 관아로 사복시와 별도로 있었으나, 조선 때는 사복시에 속하여 말과 수레를 맡아보던 벼슬아치이다.을 제수하시니, 운치 사은(謝恩)하고 물러와 사처묵을 곳를 정(定)하고 궐내(闕內)에 입직(入直)할새 선전관들이 조사(朝仕)조정에서 벼슬아치가 아침마다 으뜸 벼슬아치를 만나보던 일 보채기어떠한 것을 요구하며 성가시게 조름를 심히 하여 퇴(槌)치기몽둥이로 내려지는 퇴질를 차례(次例)로 하거늘, 운치 가만히 망주석(望柱石)무덤 앞의 양쪽에 세우는 한 쌍의 돌기둥을 빼어다가 퇴를 맞히니, 선전관의 퇴 잡은 손바닥에 맞춰서 아파 능히 치지 못하매, 이후는 퇴치기를 그치니라.

이러구러 수월(數月)이 되니 선전관들이 하인(下人)에게 분부(分付)하여 허참(許參)허참례. 새로 나아가는 벼슬아치가 전부터 있는 벼슬아치에게 음식을 차려 대접하는 일. 관직에 참여하는 것을 허락해달라는 뜻이 있다.하기를 재촉하니, 운치 왈,

“명일(明日) 평명(平明)해 뜰 무렵에 백사장(白沙場)으로 제진(齊進)여럿이 한꺼번에 나아감하시게 하라.” 하니라. 익일(翌日)에 모든 선전관들이 준총(駿驄)걸음이 몹시 빠른 말을 타고 나아오며 살펴본즉, 푸른 차일(遮日)은 반공(半空)에 솟았고 채색(彩色) 포진(鋪陳)은 좌우(左右)에 벌렸는데 맑은 풍악(風樂)이며 풍비(豐備)한 음식(飮食)이 가장 번화(繁華)하더라.

제인(諸人)이 차례로 좌정(坐定)한 후에 상(床)을 들여 잔(盞)을 날려 반취(半醉)하매, 운치 왈,

“금일(今日) 청중(聽衆)이 모두 즐길새 무변(無邊)의 놀이가곁에 아무도 없는 놀이가. 옆자리가 빈, 여자가 없는 가장 무미(無味)하니, 원컨대 전일(前日) 친(親)하던 계집을 데려옴이 어떠하뇨?”

제인이 취중(醉中)에 가장 기꺼워 왈,

“전(田) 조사(曹司)하급 관료를 이르는 말의 이런 호기(豪氣) 있는 줄 알지 못하였나니, 그대는 재주대로 하라.”

운치 즉시 하인을 데리고 나는 듯이 남문(南門)으로 들어가거늘, 제인 왈,

“전 조사의 행사(行事)가 이렇듯 기특(奇特)하니, 족(足)히 큰 도적(盜賊)이라도 감당(勘當)하리라.”

하고 칭찬(稱讚)하더니, 오래지 아니하여 운치가 무수(無數)한 계집을 몰아와 장(帳) 밖에 두고 다시 큰 상(床)을 들여 즐길새, 운치 나아와 왈,

“청말(廳末)관청의 신참내기이 청중 분부를 들어 계집을 데려왔으니, 각각 하나씩 앞에 두어 흥(興)을 돋움이 어떠하뇨?”

제인이 다 좋다 하거늘, 운치 먼저 한 계집을 불러 행수(行首)한 무리의 우두머리 앞에 앉히며 왈,

“너는 떠나지 말고 착실(着實)히 수청(守廳)하라.”

하고 차례로 하나씩 앉히니, 이는 다 선전관의 아내라. 모든 선전관이 서로 알까 두려워하며 아무 말도 못하고 심중(心中)에 대노(大怒)하여 문득 상을 물리고 각각 말을 내어 타고 급급히 돌아가니, 하인 등은 이 뜻을 모르고 다 의괴(疑怪)하더라.

선전관들이 각 집으로 돌아오니, 혹 급보(急報)를 전(傳)하러 오는 이도 있으며, 혹 청심환(淸心丸)을 구하러 약계(藥契)약국로 가는 이도 있으며, 혹 의원(醫員)을 청하여 사관(四關)급하거나 중한 병일 때 침을 놓는 네 곳의 혈을 이르는 말을 주는 이도 있으며, 혹 발상(發喪) 통곡(慟哭)하는 이도 있어, 집집이 창황(惝怳)놀라거나 다급하여 어찌할 바를 모름 분주(奔走)하매, 선전이 연고(緣故)를 물은 즉, 다 부인(夫人) 상사(喪事)라.

김 선전은 집에 돌아온즉 시비(侍婢) 고(告) 왈,

“부인이 아까 의복(衣服)을 마르시다가 홀연(忽然) 별세(別世)하였나이다.”

하거늘, 김 선전이 대노(大怒) 왈,

“이것이 백사정 허참 놀음의 창기(娼妓) 되어, 전가(田哥) 놈을 부동(夫同)하여 와서 만좌(滿座) 중에 욕(辱)을 보이니, 어찌 사족(士族) 부녀(婦女)의 소행(所行)이 여차(如此)하리요? 나는 벼슬도 못하고 문호(門戶)를 망(亡)하니, 통한(痛恨)함을 어찌 측량(測量)하리요?”

하더니, 문득 시비 급보(急報) 왈,

“부인이 깨어난다.”

하거늘, 선전이 노(怒)를 그치고 급히 내당(內堂)으로 들어가니, 부인이 일어나 앉으며 왈,

“첩(妾)이 아까 잠깐 졸더니, 홍포(紅袍) 입은 자(者)가 불문시비(不問是非)하고 첩을 잡아내며, 황의(黃衣) 입은 하인이 달려들어 장옷을 씌우고 말을 태워 어느 곳으로 가본즉, 나 같은 부인이 무수하여 어찌할 줄 몰라 하더니, 전 선전이란 놈이 나를 꼭뒤 잡혀뒤통수의 한가운데를 잡혀서 들려 상공(相公) 앞에 앉히며, ‘착실히 수청하라’ 하고 차례로 하나씩 앉힌 후에 선전관들과 열좌(列坐)하여 상을 받았다가 별안간에 상공이 노색(怒色)을 띠고 일어서며 말에 올라 돌아가매 다른 사람들이 안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노기(怒氣) 발발(勃發)하여 다 흩어지니, 첩도 아까 계집들과 함께 몰리어 방황(彷徨)하다가 깨달으니, 남가일몽(南柯一夢)꿈과 같이 헛된 한때의 부귀영화를 이르는 말이라. 집안 사람들이 나를 죽은 줄로 알고 발상 통곡하니, 그런 변고(變怪) 어디 있으리요?”

하거늘, 김 선전이 이 말을 듣고 어이없어하며 모든 선전관이 불승(不勝) 통분(痛憤) 왈,

“대역부도(大逆不道) 전운치 놈이 입조(入朝)하여 우리 등을 욕을 보이니, 어느 때 이놈을 죽여 이 한(恨)을 설치(雪恥)하리요?”

하더라.

 

전운치가 모든 선전관을 속이고 돌아와서 헤아리되,

‘내 나라에 죽을 죄를 면(免)하고 도리어 벼슬을 받으니 천은(天恩)이 망극(罔極)한지라. 마땅히 회과(悔過) 천선(遷善)하여 충성을 극진(極盡)히 하리라’

하고. 수신병곡하며 직사(職司)를 다스리니 사복마(司僕馬)사복시에서 관리하던 말를 신칙(申飭)단단히 타일러서 경계함하여 말이 살찌고 병(病)이 없으니 조정(朝廷)이 기특히 여기더라.

 

각설(却說). 가달산에 염준이라 하는 자(者)가 있으되 용맹(勇猛)이 과인(過人)하고 무예(武藝) 출중(出衆)한지라. 강도(强盜) 수천(數千)을 모아 산채(山寨)를 이루고 촌가(村家)를 노략(擄掠)하며, 각 읍(邑)을 쳐 군기(軍器), 전량(錢糧)을 탈취(奪取)하며 사람을 살해(殺害)하니, 각 읍이 소요(騷擾)한지라. 감사(監司)가 이 연유(緣由)를 장계(狀啓)한대, 상(上)이 크게 근심하사 제신(諸臣)을 모아 의논(議論) 왈,

“도적(盜賊)이 이렇듯 강성(强盛)하니, 뉘 능히 도적을 소멸(消滅)하리요?”

하시되, 감히 대답(對答)할 자가 없더니, 문득 일인(一人)이 출반(出班)여러 신하 가운데 특별히 혼자 나아가 임금에게 아룀 주(奏) 왈,

“신(臣)이 천은(天恩)을 입사옴이 망극(罔極)하온지라. 비록 무재(無才)하오나 염준의 머리를 베어 전하(殿下)의 근심을 덜까 하나이다.”

하거늘, 상이 보시니 이는 전운치라. 대희(大喜)하사 제신(諸臣)더러 문(問) 왈,

“경(卿) 등(等) 소견(所見)에는 어떠하뇨?”

제신이 다 마땅함을 주한대, 상이 왈,

“군마(軍馬)를 얼마나 조발(調發)할꼬?”

운치 대(對) 왈,

“적세(賊勢) 크다 하오니 신이 홀로 나아가 적세를 탐지(探知)하온 후에 동병(動兵)함이 좋을까 하나이다.”

상이 윤허(允許)하시고 인검(印劍)임금이 병마를 통솔하는 장수에게 주던 검. 명령을 어기는 자는 보고하지 않고 죽일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을 주사 임의(任意) 호령(號令)하라 하시니, 운치 사은(謝恩) 퇴조(退朝)하여 익일(翌日)에 행할새 차야(此夜)이날 밤에 구름을 타고 남서부에 가서 모친(母親)을 뵈옵고 왕명(王命)을 받자와 적세를 탐지하러 가는 연유(緣由)를 고(告)하니, 부인(夫人) 왈,

“적세(賊勢) 허실(虛實)을 모르고 소루히생각이나 행동 따위가 꼼꼼하지 않고 가볍게 들어감이 만분(萬分) 위태(危殆)하니, 극진(極盡)히 조심(操心)하여 군친(君親)의 바람을 저버리지 말라.”

하거늘, 운치 수명(受命)하고 경사(京師)수도. 서울로 돌아와 날이 새매 포교(捕校) 등 십여 인을 데리고 발행(發行)하여 감영(監營)에 이르러 포교 등을 머물러두고 홀로 인검을 가지고 몸을 흔들어 변하여 수리 되어 가달산으로 들어가보니, 염준이 엄연(儼然)히 일산(日傘)을 받고 백총마(百摠馬)백마(白馬)를 탔으며 채의(彩衣) 홍상(紅裳)한 미녀(美女)를 좌우(左右)에 세우고 종자(從者) 백여 명을 거느려 산행(山行)사냥하더니, 문득 염준이 분부(分付)하되,

“오늘은 각 도(道)에 갔던 장사(壯士) 등이 돌아올 것이니 명일(明日)에 큰 소를 십 필(匹)만 잡고 잔치할 기구(器具)를 차리라.”

하는지라. 운치 염준을 살펴본즉, 기골(氣骨)이 장대(壯大)하고 낯빛이 붉고 눈이 방울 같고 수염이 바늘을 묶어세운 듯하니, 짐짓 일세(一世)의 호걸(豪傑)이거늘, 운치 문득 한 계교(計巧)를 생각하고 나뭇잎을 흝어 신병(神兵)을 만들어 창검(槍劍)을 들리고 기치(旗幟)를 벌려 진(陣)을 굳게 치고 운치 머리에 쌍봉(雙鳳) 투구를 쓰고 몸에 홍금(紅錦) 전포(戰袍)를 입었으며 인검을 들고 오추마(烏騅馬)검은 털에 흰 털이 섞인 말. 옛날 중국의 항우가 탓다는 준마.를 타고 동구(洞口)를 깨쳐 들어가보니 성문(城門)을 굳게 닫았거늘, 운치 진언(眞言)을 염(念)한즉 성문이 절로 열리는지라. 말을 몰아 들어가며 좌우를 살펴보니, 빛난 집이 두루 벌리어 있고 물색(物色)이 십분(十分) 번화(繁華)하더라. 운치 사면(四面)을 둘러본 후에 변신(變身)하여 수리 되어 후원(後園)에 들어가 본즉, 염준이 황금(黃金) 교의(交椅)의자에 앉고 제장(諸將)을 좌우에 앉히고 그 뒤에 전각(殿閣)에서 미녀 수백 인이 열좌(列坐)하여 잔(盞)을 받거늘, 운치 그 동정(動靜)을 보고자하여 진언을 염하니, 무수한 수리가 하늘로 덮여 내려와 제인의 앞에 놓인 상(床)을 다 거두어가지고 중천(中天)에 떠 올라가며 광풍(狂風)이 대작(大作)하여 모래 날리며 돌이 달음질하니, 좌중(座中)이 대경(大驚)하여 눈을 뜨지 못하고 바람에 불리여 쓰러지며 차일(遮日)과 포진(鋪陳)바닥에 깔아놓은 요, 방석, 돗자리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등물(等物)같은 종류의 물건이 다 날아 공중(空中)에 오르니, 염준은 넋이 없어 언덕의 나무등걸을 붙들고 정신(精神)을 차리지 못하며 모든 군사(軍士)는 떡과 고기를 들고 표풍(漂風)바람결에 떠 흘러감하여 뒹굴뒹굴 구르며 혹 똥물도 토하는지라. 사시(巳時)부터 오시(午時)까지 분분(紛紛)하다가 염준과 제(諸) 장졸(將卒)이 겨우 정신을 차려보니 문득 백설(白雪)이 담아 붓는 듯이 내려 순식간(瞬息間)에 십여(十餘) 장(丈)이 쌓이매 눈을 뜨지 못하여 어찌할 줄 몰라 황황(遑遑)하더니 문득 바람이 그치며 눈[雪] 물이 한 점도 없는지라.

염준이 대청(大廳)에 나와 솔발놋쇠로 만든 종 모양의 큰 방울. 위에 짧은 쇠자루가 있고 안에 작은 쇠뭉치가 달린 것으로, 군령이나 경고 신호에 쓴다. 요령(鐃鈴).을 흔들어 장졸을 모아 괴이한 재변(災變)에 서로 논난(論難)하더니, 문득 문졸(門卒)문을 지키는 병사이 보(報)알림하되,

“일원(一員) 대장(大將)이 군사를 몰아 동문(東門)을 깨치고 들어온다.”

하거늘, 염준이 대경하여 군사를 재촉하여 기세(氣勢)를 정제(整齊)하고 진전(陣前)에 정창(挺槍)창을 겨누어 듦 출마(出馬)하니, 운치 대호(大呼) 왈,

“너는 어떤 놈이관대 강악(强惡)을 믿고 산중(山中)에 둔취(屯聚)하여 군현(郡縣)을 침노(侵擄)하며 백성(百姓)을 살해하는가? 너 같은 쥐무리를 다 잡아 국법(國法)을 정(正)히 하리니, 네 성명(性命)목숨이나 생명을 달리 이르는 말을 아끼거든 일찍 항복(降伏)하여 천명(天命)을 순수(順受)하여라.”

염준이 대노(大怒) 질(叱) 왈,

“내 응천순인(應天順人)하늘의 뜻에 순응하고 백성의 뜻을 따름하여 장차 무도(無道)한 임금을 없이하고 도탄(塗炭)에 든 백성을 건지고자 하거늘, 네 어찌 감히 나를 항거(抗拒)하는가?”

말을 마치며 내달아 양마(兩馬)가 교봉(交鋒)두 장수가 교전함하여 수십여 합(合)칼이나 창으로 싸울 때, 칼이나 창이 서로 마주치는 횟수를 세는 단위에 이르러 염준의 창날은 일광(日光)을 가리고 운치의 검광(劍光)은 반공(半空)에 무지개 되었으니, 짐짓 양호(兩虎)가 공산(空山)에서 밥을 다투며 쌍룡(雙龍)이 벽해(碧海)에서 여의주(如意珠)를 다투는 형상(形狀)이라. 양장(兩將)의 정신이 점점 씩씩하여 승부(勝負)를 미결(未決)하여 날이 이미 저물매 양진(兩陣)이 쟁(錚)꽹과리을 쳐 군(軍)을 거두니라. 염준이 진(陣)에 돌아오매 제장(諸將)이 치하(致賀) 왈,

“작일(昨日) 괴변(怪變)을 만나 마음이 놀랐으되 금일(今日)에 범 같은 장수(將帥)를 능히 대적(對敵)하니 하늘이 도우심이어니와 적장(敵將)의 용맹이 또한 절륜(絶倫)하니 장군(將軍)은 경적(輕敵)적을 가벼이 여김치 마소서.”

하거늘, 염준이 소(笑) 왈,

“적장이 비록 용맹하나 내 어찌 저를 두려워하리요? 명일은 결단코 운치를 잡고 바로 도성(都城)으로 향(向)하리라.”

하고 익일에 진문(陣門)을 열고 염준이 출반(出班) 대호 왈,

“전운치는 빨리 나와 나의 칼을 받으라. 금일은 맹세코 승부를 결(決)하리라.”

하며 좌우(左右) 충돌(衝突)하거늘, 운치 대노(大怒)하여 말을 내몰아 칼을 춤추어 바로 염준을 취(取)할새, 삼십여 합(合)에 이르되 염준의 창법(槍法)이 일호(一毫) 차착(差錯)어그러져서 순서가 틀리고 앞뒤가 서로 맞지 않음이 없는지라. 운치 헤아리되

‘무예로는 염준을 당치 못하리라.’

하고, 몸을 흔들어 정몸진짜 자기의 몸은 공중에 오르고 거짓몸은 염준을 대적(對敵)하게 하고 크게 외쳐 왈,

“내 평생(平生)에 살심(殺心)을 아니하더니, 네 이제 천명을 거역(拒逆)하매 내 마지못하여 너를 죽이나니 나를 원(怨)치 말라.”

하고, 칼을 들어 염준을 치려 하다가, 다시 생각하되,

‘내 살생하기를 어찌 졸연(猝然)히 하리요? 마땅히 이놈을 생금(生擒)하리라.’

하고, 공중에 올라 칼을 번득여 급히 외쳐 왈,

“내 재조(才操)를 보라.”

하니 염준이 대경하여 하늘을 우러러본즉 한 떼의 구름 속에 번개 일어나니, 이는 번개가 아니요 운치의 검광이라. 대경실색(大驚失色)하여 적진(敵陣)으로 돌아가려 하더니, 앞에 운치 칼을 들어 길을 막으며 뒤에 또 운치 따르며 좌우에 또한 운치 에워 들어오며 머리 위에 운치가 구름을 타고 칼춤 추어 염준의 머리를 범(犯)하는지라. 염준의 정신이 어질하여 마하(馬下)말 아래에 떨어지거늘, 운치 구름에서 내려와 거짓 운치로 군사를 호령하여 염준을 결박(結縛)하여 본진(本陣)으로 보내고, 운치는 말을 달려 적진을 충살(衝殺)들이쳐 찔러 죽임하니, 적진 장졸이 염준이 사로잡힘을 보고 손을 묶어 항복하거늘, 운치 적진 장졸을 계하(階下)에 꿇리고 효유(曉諭)깨달아 알아듣도록 타이름하여 왈,

“여등(汝等)이 반적(叛賊)을 도와 천명에 항거하니, 그 죄 만사무석(萬死無惜)이로되 내 특별히 사(赦)하나니, 여등은 고향(故鄕)에 돌아가 농업(農業)에 힘써 양민(良民)이 되게 하라.”

적장 등이 고두재배(叩頭再拜)하고 각각 헤어지매, 옛날 장자방(張子房)중국 한나라의 건국 공신인 ‘장양’의 성과 호를 함께 이르는 말. 장양은 한나라 고조 유방을 도와 천하를 통일하여, 소하, 한신과 함께 한나라 창업의 삼걸로 일컬어진다.이 계명산(鷄鳴山) 추야월(秋夜月)에 이향가(離鄕歌) 한 곡조(曲調)를 슬피 불러 강동(江東) 자제(子弟) 고향을 생각하여 흩어짐과 같더라.사면초가의 고사임

운치 염준의 내실(內室)에 들어가 미녀 수백을 다 놓아 각각 제 집으로 돌려보내고, 각 진(陣)으로 돌아와 장대(壯臺)에 앉고 좌우를 명(命)하여 염준을 대하(臺下)에 꿇리고, 여성(麗聲)성이 나서 큰소리를 지름 대매(大罵) 왈,

“네 재주와 용맹이 있을진대 마땅히 갈충사군(竭忠事君)충성을 다해 임금을 섬김하여 영총(榮寵)임금의 특별한 사랑이 대대로 미침이 옳거늘, 감히 역심(逆心)을 품어 국가(國家)를 소요케 하니, 그 죄를 어찌 요대(饒貸)너그러이 용서함하리요?”

하고 무사(武士)를 명하여 원문(轅門)군영이나 영문을 이르던 말 밖에 참(斬)하라 하니, 염준이 슬피 빌어 왈,

“소장(小將)의 죄상(罪狀)은 이삼족(荑三族)삼족을 베다이 마땅하오나 장군은 호생지덕(好生之德)사형에 처할 죄인을 특사하여 살려 주는 제왕의 덕을 드리우시면 마땅히 허물을 고쳐 장군을 좇을까 하나이다.”

운치 왈,

“네 진실(眞實)로 개과천선(改過遷善)할진대 어찌 아름답지 아니하리오?”

하고, 무사를 명(命)하여 맨 것을 끄르고 좋은 말로, 위로(慰勞)하여 제 고향으로 돌려보내고 신병하온대, 상이 인견(引見)하사 파적(破敵)한 수말(首末)을 물으시니, 운치 자초지종(自初至終)을 자세히 아뢴대, 상이 무수히 칭찬(稱讚)하시고 상사(賞賜)상을 줌를 많이 하시니라.

 

차설(且說). 운치가 경성(京城)에 돌아온 후에 조정(朝廷)이 다 와서 운치를 보고 성공(成功)함을 치하(致賀)하되, 홀로 선전관(宣傳官)이 일인(一人)도 와보는 이 없으니, 이는 백사정 허참(許參) 시(時)의 욕보이던 혐의(嫌疑)러라. 운치가 다시 속이고자 하더니, 일일(一日)은 사경(四更) 때에 월색(月色)이 조요(照耀)하여 벽공(碧空)에 일점(一點) 운(雲)구름이 없는지라. 운치 오운(五雲)을 타고 황건역사(黃巾力士)귀신 가운데 무력을 맡은 장수신인 신장(神將)의 하나. 힘이 세다고 함.와 이매망량(魑魅魍魎)온갖 도깨비. 산천, 목석의 정령에서 생겨난다고 한다. 등을 다 모으고 신장(神將)을 불러 분부하되,

“빨리 가 모든 선전관을 잡아오라.”

하니 신장이 청령(聽令)명령을 듣고하고 가더니 이윽고 다 잡아왔거늘, 운치 구름 교의(交椅)에 앉고 좌우(左右)에 신장 등을 벌려 세우고 등촉(燈燭)이 휘황(輝煌)한데, 운치가 여성(麗聲) 왈,

“황건역사는 어디 있나뇨? 모든 죄인을 잡아들이라.”

하니 역사 등이 일시(一時)에 청령(聽令)하고 각각 하나씩 나입(拿入)죄인을 법정으로 잡아들임하는지라.

선전관들이 황겁(惶怯)하여 땅에 엎드려 치밀어본즉, 귀왕(鬼王)과 신장이 좌우에 나열(羅列)하여 위의(威儀)가 심히 엄숙(嚴肅)한 곳에 운치 고성(鼓聲) 대매(大罵) 왈,

“내 전일(前日)에 희롱(戱弄)하고자 하여 그대의 부인(夫人)을 잠깐 욕되게 하였으나 어찌 그렇듯 함혐(含嫌)혐의를 품음하여 나를 소대(疏待)푸대접함이 심하뇨? 내 일찍이 여등(汝等)을 잡아다가 지옥(地獄)으로 보내고자 하되, 내 밤이면 천상(天上) 벼슬에 다사(多事)하고 낮이면 국가(國家) 소임(所任)에 골몰(汨沒)하기로 지금 천연(遷延)일이나 날짜 따위를 미루고 지체함하였거니와, 이제는 마지못하여 너희 등을 풍도옥(酆都獄)지옥. 도가적인 표혐이다에 보내어 고행(苦行)을 겪어 사람을 만모(謾侮)거만한 태도로 남을 업신여김 하던 죄를 속(贖)하게 하노라.”

하고 말을 마치며 역사를 불러 왈,

“너의 이 죄인을 압령(押領)하여 풍도록에 가서 염왕(閻王)염라대왕. 저승에서 지옥에 떨어지는 사람이 지은 생전의 선악을 심판하는 왕에게 부치되, 이 죄인을 지옥(地獄)에 가두어 팔만 겁(八萬劫)을 지나거든 업축(業畜)전생에 지은 죄로 인하여 이승에 태어난 짐승이를 만들어 보내라.”

하거늘, 모든 선전관이 이 말을 들으매 정신(精神)이 더욱 떨리고 혼백(魂魄)이 몸에 붙지 아니하는지라. 슬피 빌어 왈,

“우리 등이 암매(暗昧)하여 죄를 범하였으니, 바라건대 동료지의(同僚之義)를 생각하여 죄를 용서(容恕)하소서.”

하거늘, 운치 침음양구(沈吟良久)속으로 깊이 생각한 지 오랜 뒤에 왈,

“내 여등(汝等)을 풍도(酆都)에 보내어 고행(苦行)을 겪게 할 것이로되, 전일 안면(顔面)을 고념(顧念)남의 사정이나 일을 헤아려줌하여 아직 십분(十分) 안서(安徐)잠시 보류함하거니와, 일후(日後)를 보아 처치(處置)하리라.”

하며

“몰아 내치라.”

하니 모든 선전관이 문득 깨달으매 남가일몽(南柯一夢)이라. 일신(一身)에 땀이 흘러 금침(衾枕)이 젖었고 정신이 아득한지라. 그 후에 모든 선전관이 청(廳) 중(中)에 모여 그 날 몽사(夢事)를 이른즉 모두 여출일구(如出一口)한 입에서 나오는 것처럼 여러 사람의 말이 같음.이어늘, 차후(此後)로 운치를 대접(待接)함이 각별(各別) 극진(極盡)하더라.

 

차설(且說). 일일(一日)은 상(上)이 호판(戶判)더러 문(問) 왈,

“전일(前日) 호조(戶曹)의 은(銀)과 돈이 다 변하였다 하더니 이제는 어떠하더뇨?”

호판이 대(對) 왈,

“전일과 그대로 그저 있나이다.”

한대, 상이 가장 근심하시거늘, 운치 출반(出班) 주(奏) 왈,

“원컨대 신이 각처(各處) 창고의 재변(災變)을 자세(仔細)히 탐지(探知)하와 탑전(榻前)에 아뢰고자 하나이다.”

상이 의윤(依允)신하의 청을 허락함하신대, 운치 즉시 호판과 한가지로함께 호조에 나아가 고문(庫門)을 열고 본즉 은이 예대로 있거늘, 호판이 대경(大驚) 왈,

“내 어제 반고(反庫)할 때 청개구리만 있더니 밤사이로 도로 은이 되었으니 가장 괴이하도다.”

하고 외고(外庫)를 열어보니 또한 다 의구(依舊)옛날 그대로 변함이 없다하였고 각 영문(營門)의 군기(軍器) 다 여전(如前)하니 모두 놀라고 신기(神奇)히 여기며, 운치 살펴본 후 탑전에 그대로 상달(上達)하온대, 상이 기꺼워하시며 운치의 요술(妖術)로 작변(作變)함을 짐작(斟酌)하시더라.

이 때 간의대부(諫議大夫)가 여쭈오되,

“호서(湖西) 땅에 사오 인이 둔취(屯聚)여러 사람이 한 곳에 모임하여 역모(逆謀)를 의논(議論)한다 하와 고자(告者)변고자가 문서(文書)를 가지고 신(臣)에게로 왔삽기에 고자를 가두고 아뢰나이다.”

하거늘 상이 왈,

“과인(寡人)이 박덕(薄德)하여 도적(盜賊)이 봉기(蜂起)하니 어찌 한심(寒心)치 아니하리오.”

하시고, 금부(禁府)와 포청(捕廳)으로 잡으라 하사 즉시 잡아왔거늘, 상이 친문(親問)하실새, 그 중 한 놈이 아뢰되,

“전운치를 임금으로 삼아 백성(百姓)을 진정(鎭靜)코저 하옵더니 이제 일이 발각(發覺)하오매 만사무석(萬死無惜)이로소이다.”

할새, 차시(此時) 운치 문사낭청(問事郎廳)조선 시대에, 죄인을 신문할 때 기록과 낭독을 맡아보던 임시 벼슬으로 시위(侍衛)임금을 모시어 호위함에 섰다가 불의(不意)에 역적(逆賊) 초사(招辭)조선 시대에, 죄인이 범죄 사실을 진술하던 일에 오른지라. 상이 대노(大怒)하사 왈,

“전운치 필경(畢竟) 모역(謀逆)할 줄 알았더니 이제 초사에 났도다.”

하시고, 빨리 운치를 잡아내려 형구(形具)를 베풀고 하교(下敎) 왈,

“내 전일에 네 죄를 사(赦)하고 벼슬을 주었더니 국가(國家)의 은혜(恩惠)를 감복(感服)치 아니하고 이제 역률(逆律)을 범하였으니 발명(發明) 말고 죽으라.”

하시며, 나졸(羅卒)을 엄교(嚴敎)하사,

“한 매에 죽이라.”

하시니, 나졸이 힘을 다하여 치려하되 팔이 아파 매를 들지 못하더라. 운치 아뢰되,

“신의 전후(前後) 죄상(罪狀)은 만 번 죽어 마땅하오나, 금일(今日) 역률(逆律)역적을 다스리는 법은 천만(千萬) 애매(曖昧)하여이다.”

하며 심중(心中)에 헤아리되,

‘이 필연(必然) 나를 모해(謀害)하는 이 있어 이리 함이니, 어찌 애닯지 아니하리요?’

하고, 다시 주(奏)하되,

“신이 이제 죽을진대 평생(平生)의 배운 재조(才操)를 세상에 전(傳)하지 못 하올지라. 복원(伏願), 성상(聖上)은 신의 원(冤)을 풀게 하소서.”

하거늘, 상이 헤아리시되,

‘이놈의 재조(才操)가 가장 기이(奇異)하니 시험(試驗)하리라’

하시고, 하교 왈,

“네 무슨 재조(才操)가 있느뇨?”

운치 왈,

“신이 그림을 잘 하오매 나무를 그리면 점점 자라고, 짐승을 그리면 걸어가옵고, 산을 그리면 산에서 초목(草木)이 생(生)하옵기로 세상에서 명화(名畵)라 하옵나니, 이 그림을 세상에 전(傳)치 못하고 죽사오면 원혼(冤魂)일 되리로소이다.”

상이 생각하시되,

‘이놈이 죽어 원혼이 되면 괴로운 일 있으리라’

하시고, 즉시(卽時) 맨 것을 끌러놓고 필묵지(筆墨紙)를 주신대, 운치 붓을 들어 산수(山水)를 그릴새, 만학천봉(萬壑千峰)첩첩이 겹쳐진 깊고 큰 골짜기와 수많은 산봉우리에 만장폭포(萬丈瀑布)매우 높은 데서 떨어지는 폭포가 산상(山上)으로부터 내리게 하고 시냇가에 버들가지 늘어지게 하고 그 아래 안장(鞍裝) 지은 나귀를 그린 후에 붓을 던지고 사배(四拜)하온대, 상 왈,

“너는 죽을 죄인(罪人)이거늘 사배함은 무슨 뜻인고?”

운치 주(奏) 왈,

“신이 이제 천안(天眼)임금의 얼굴을 하직(下直)하고 산중(山中)으로 들어가나이다.”

하고 나귀 등에 올라 산중으로 들어가더니 문득 간 데 없는지라. 상이 대노(大怒) 왈,

“내 이놈에게 또 속았으니 이를 장차(將次) 어찌하리요?”

하시고, 좌우(左右)로 하여금 그림을 소화(燒火)하라 하시며, 그 죄인 등을 다시 엄문(嚴問)하사 지만(遲晩)예전에 죄인이 자백하여 복종할 때 너무 오래 속여서 미안하다는 뜻으로 이르던 말을 받은 후에 내어 처참(處斬)하라 하시고, 운치에게 속음을 못내 통한(痛恨)하사 각 도(道)에 행관(行關)하시되, 운치를 잡아들이는 자(者)가 있으면 천금(千金) 상(賞)의 벼슬을 주리라 하시다.

 

차설(且說). 운치 요술(妖術)을 행(行)하여 임금을 속이고 죽을 액(厄)을 벗어나 집에 돌아와 모친(母親)께 전후(前後) 사연(事緣)을 고(告)한대, 부인이 대경(大驚) 왈,

“차후(此後)는 몸을 감추어 다시 조정(朝廷)에 나아가지 말라. 네가 임금을 속이니 그 죄(罪) 천지간(天地間)에 용납지 못할지라. 네 사후(死後)에 하면목(何面目)으로 조상(祖上)을 뵈려 하느뇨?”

하며 일장대책(一場大責)크게 꾸짖음하거늘, 운치 모친 경계(警戒)를 들은 후는 산중(山中)에 있어 고요히 글을 힘쓰며 혹 나귀를 타고 물색(物色)을 구경하더니, 한 곳에 이르러 본즉 젊은 중이 고운 계집을 데리고 산중으로 들어가더니, 이윽고 그 여자가 나무에 올라 자항스스로 목을 메어 자살함하려 하는지라. 운치 마침 촌가(村家)에서 술 사먹고 산상(山上)으로 올라오다가 지경(地境)경우나 형편. 정도의 뜻을 나타내는 말. 여기서는 형편을 보고 놀라 급히 나아가 맨 것을 끄르며 수족(手足)을 주물러 회생하매 연고를 물은대, 기녀(基女)가 왈,

“아까 지나던 화상(和尙)중을 높여 이르는 말은 가군(家君) 생시(生時) 친하던 중놈이라. 첩(妾)이 일찍 과거(寡居)과부로 지냄하여 수절(守節)하더니, 금일(今日)은 가군의 돌아간 날이라. 그 중놈이 와서 달래어 이르되, ‘제 절에 가서 재(齎)죽은 이를 천도하는 법회를 올리자 하고, 한가지로 감을 간청(懇請)하기로 첩이 신지무의(信之無疑)믿고 아무 의심 없이 따름하고 따라왔더니, 그놈이 불측지심(不測之心)괘씸하고 엉큼한 생각을 내어 이곳에 와서 나를 겁측(劫-)폭행이나 협박을 하여 강제로 부녀자와 성관계를 갖는 일.하여 훼절(毁節)절개를 훼손시킴하매 살아 쓸 데 없기로 자결(自決)코저 하노라.”

운치 그 여자를 위로(慰勞)하여 제 집으로 보내고 다시 산에 올라가니, 큰 암자(庵子)가 있고 어제 보던 중놈이 그 곳에 있는지라. 운치가 가만히 진언(眞言)을 염(念)하여 기운을 내어 부니 그 중이 변하여 전운치 되거늘, 그 절에 머물러 두고 동정(動靜)을 살피더니, 마침 포도기찰(捕盜畿察)예전에 포도청에서 범인을 체포하려고 수소문하고 염탐하며 행인을 검문하던 일. 또는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왔다가 그 중놈을 보고 전운치라 여겨 태수(太守)께 급히 고(告)한대, 태수가 대희(大喜)하여 토병(討兵)을 발(發)하여 그 중놈을 잡아 결박(結縛)하여 경사(京師)로 올린대, 상이 즉시 친국(親鞫)을 배설(排設)하시더니, 정원(政院)이 주(奏)하되,

“각 도(道) 각 읍(邑)에서 전운치를 잡아들인 것이 삼백육십일 명이오니, 이는 반드시 전운치의 요술인가 하나이다.”

상(上)이 진노(震怒)하사 처치(處置)하심을 생각지 못 하실새, 도승지(都承旨)승정원의 으뜸 벼슬. 왕명을 전달하거나 신하들이 왕에게 올리는 글을 상달하는 일을 맡았다. 왕연희가 주(奏) 왈,

“전운치 환술(幻術)이 불측(不測)하오니 금번(今番)도 잃을 염려(念慮) 있사오매 진가(眞假)를 물론(勿論)하고 모두 베어버립시다.”

하거늘, 상이 옳게 여기사 십자각(十字閣)에 전좌(殿座)하시고 모든 전운치를 잡아들여 차례로 베일새, 그 중 하나가 나아와 아뢰되,

“신은 전운치 아니요, 도승지 왕연희로소이다.”

하거늘, 상이 보신즉 분명 왕연희라. 좌우(左右)더러 물으신대 좌위 대(對) 왈,

“이는 전운치로소이다.”

상이 탄(歎) 왈,

“국운(國運)이 불행(不幸)하여 요얼(妖孼)이 이같이 작난(作亂)하니 종사(宗社)종묘와 사직. 나라를 이르는 말를 어찌 보전(保全)하리요? 적신(賊臣) 하나를 죽이려 하매 무죄(無罪)한 조신(朝臣)과 애매(曖昧)한 백성(百姓)을 많이 죽이리로다.”

하시고, 친국을 파(罷)하시니라. 운치 구름 속에서 요술을 행하고 몸을 변하여 왕연희 되어 궐문(闕門)을 나오니, 하인(下人) 등이 인마(人馬)를 대령(待令)하였다가 모시어 왕부(王府)로 돌아가 바로 내당(內堂)으로 들어가 부인과 수작(酬酌)하되 부인과 가내인(家內人)은 전혀 모르더니, 이때에 왕공(王公)이 궐내(闕內)에서 나와 하인을 찾은즉 하나도 없는지라. 괴히 여겨 동관(同官)동료 관리. 같이 일하는 관리의 인마를 빌려 타고 집에 돌아오니, 하인들이 문전(門前)에 있으매 왕공이 일변(一邊) 대노(大怒)하며 곡절(曲折)을 물은즉 하인 등 왈,

“소인(小人) 등이 아까 상공(相公)을 모셔 왔삽거늘, 또 어찌 상공이 계시리요?”

하며 면면상고(面面相顧)아무 말도 없이 서로 얼굴만 물끄러미 바라봄하거늘, 왕공이 의괴(疑怪)하여 내당으로 들어가니 시비(侍婢) 등이 손뼉 치며 왈,

“이 어찐 일이뇨? 아까 우리 상공이 나와 계시거늘, 이 어찐 일이뇨?”

하며 지껄이는지라. 왕공이 아무 것도 모르고 침실(寢室)로 들어가니 과연 한 왕공이 부인과 말씀을 낭자(狼藉)히 하거늘, 왕공이 대노(大怒) 대매(大罵) 왈,

“너는 어떤 놈이관대 감히 사부가(士夫家)사대부의 집. 士와 大夫를 아울러 이르는 말로 문무양반 즉 벼슬이나 문벌이 높은 집안의 사람을 뜻한다.에 들어와 나의 부인과 말을 수작하는가?”

하고, 노복(奴僕)을 호령(號令)하여

“빨리 결박하라.”

하니 운치 왈,

“너는 어떤 놈이관대 내 얼굴이 되어 내당에 들어와 나의 부인을 겁탈(劫奪)하려 하니, 이런 변고(變故)가 어디 있으리요?”

하며, 하인을 호령하여

“빨리 몰아 내치라.”

한대, 하인 등이 거동(擧動)을 보매 가위 수지오지자웅(可謂 誰知烏之雌雄)‘누가 까마귀의 암수를 구분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라는 뜻으로, 까마귀의 암수를 구별하기 어려운 것처럼 시비나 선악 등을 분명하게 가리기 어려움을 비유하는 말이다. 『시경(詩經)』「소아(小雅)」에 실린 「정월(正月)」이라는 시에서 유래되었다.이라. 어찌할 줄 모르거늘, 운치 도리어 호령(號令) 왈,

“내 전일(前日)에 들은즉 요물(妖物)이 인형(人形)사람 허물을 오래 쓰지 못한다”

하고 왕공을 향하여 물을 뿜고 주사(朱沙)수은으로 이루어진 황화 광물로 붉은색 안료나 약재로 쓴다. 단사, 단주사, 진사라고도 한다.를 내어 바르니 왕공이 변하여 구미호(九尾狐)가 되니, 노복 등이 그제야 칼과 몽치를 들고 달려들어 즛쳐 죽이려 하거늘, 운치가 말려 왈,

“이 일이 큰 변고이니 나라에 고하여 처치할 것이매 아직 단단히 동여 방중(房中)에 가두고 잘 지키라.”

하니 노복 등이 청령(聽令)하고 왕공을 동여 가두니라.

왕공이 불의지변(不意之變)을 만나매 말을 하고자 한즉 여우의 소리로 나고 정신(精神)이 아득하여 다만 눈물만 흘리고 누웠으니 가위(可謂) 짐승의 모양이요, 사람의 속이라. 운치 생각하되,

‘수삼일(數三日) 속이면 살지 못하리라.’

하고 차야(此夜) 사경(四更)에 왕공에게 가보고 이르되,

“네 나와 더불어 원수(怨讐)가 없거늘, 부디 나를 죽여 나라에 요공(要功)자기의 공을 스스로 드러내어 남이 칭찬해주기를 바람하고자 하매, 내가 먼저 너를 죽여 한(恨)을 씻고자 하되, 내 평생(平生)에 살생(殺生)을 아니하기로 너를 사(赦)하나니, 너는 모름지기 다시 이런 행실(行實)을 말라.”

하고 진언(眞言)을 염(念)하니 도로 왕연희가 된지라. 왕공이 그제야 운치의 요술로 그리한 줄 알고 황겁(惶怯)하여 왈,

“전공(田公)의 높은 재조(才操)를 모르고 그릇 죄를 범하였노라.”

하고 무수(無數) 사례(謝禮)하거늘, 운치 다시 당부(當付) 왈,

“그대를 구(救)하고 가나니 내가 돌아간 후에 집안이 소동(騷動)하리니 여차여차(如此如此)하라.”

하고 남서부로 가니라. 왕공이 즉시 노복을 불러 왈,

“그 요괴(妖怪)를 자세히 보라.”

하니 노복 등이 방에 가본즉 요괴가 간 데 없는지라. 모두 놀라 그대로 고한대, 왕공이 양노(佯怒) 왈,

“여등(汝等)이 지키기를 잘못하여 잃었도다.”

하고 무수히 꾸짖어 물리치니라.

 

운치가 다시 암자(庵子)에 가본즉 그 화상(和尙)이 그저 운치의 모양(模樣)이 되었거늘, 운치 그 화상을 향하여 물을 뿜고 진언(眞言)을 염(念)하니, 도로 본상(本像)이 된지라. 운치가 대책(大責)크게 꾸짖어 왈,

“네가 중생(衆生)이 되어 불도(佛道)를 숭상(崇尙)할 것이어늘, 수절(守節)하는 계집을 유인(誘引)하여 겁측 훼절(毁節)하여 자처지경(自處之境)스스로 목숨을 끊을 형편. ‘자처’는 자결을 미치게 하니, 그 죄가 만사유경(萬死猶輕)만 번 죽어도 오히려 가볍다이라. 너를 전운치의 얼굴이 되어 죽게 하였더니, 차마 살생(殺生)을 못하여 너를 살려 돌아와 다시 네 본상을 내어주나니, 차후(此後)는 그런 행실(行實)을 행(行)치 말라.”

하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한 곳에 다달아 본즉, 여러 소년이 족자(簇子)를 가지고 다투어 보며 칭찬(稱讚) 왈,

“이 족자 그림이 천하(天下) 명화(名畵)라.”

하거늘, 운치 나아가 보니 곧 미인도(美人圖)라. 그 미인이 아이를 안아 희롱(戱弄)하는 형상(形狀)이로되 입으로 말하는 듯 눈으로 보는 듯하여 생기(生氣) 유동(流動)하거늘 운치가 한 계교(計巧)를 생각하고 웃으며 왈,

“이 그림이 무엇이 명화관대 그대 등이 어찌 과히 기리느뇨?”

그 중 오생(吳生)이라는 자가 답(答)하되,

“그대 눈이 높아 그러하거니와 물정(物情)을 모르는 말을 말라. 이 그림이 말하는 듯 보는 듯하니 어찌 명화가 아니라 하리요?”

운치 웃고 값을 물은즉 오생이 대답(對答)하되,

“은자(銀子) 오십 냥이니 그림보다는 오히려 값이 적다.”

하거늘, 운치 왈,

“내게 한 족자가 있으니 그대 등은 보라.”

하고 소매 안에서 미인도를 내어놓으니, 그 미인이 가장 아름다운데 몸에 녹의홍상(綠衣紅裳)을 입고 머리에 화관(花冠)을 썼으매, 짐짓 천향국색(天香國色)이요 절대가인(絶代佳人)이라. 제인(諸人)이 보고 칭찬 왈,

“이 그림도 생기(生氣) 온전(穩全)하여 우리 족자와 방불(彷佛)하도다.”

하거늘, 운치 냉소(冷笑) 왈,

“그대 족자도 좋다 하려니와 생기는 이 족자만 못하니 이 화격(畵格)을 보라.”

하고 족자를 걸며 가만히 부르되,

“주선랑(酒仙娘)은 어디 있느뇨?”

하니 문득 이 미인이 대답하며 동자(童子)를 데리고 나오거늘, 운치 왈,

“모든 공자(公子)께 술을 부어드리라.”

선랑이 대답하고 잔(盞)에 술을 부어드리니, 운치 먼저 마시고 차례로 제인(諸人)이 받아 마시매 주미(酒味)술맛 가장 감열(甘烈)감격하여 기뻐함한지라. 제인이 배주(配酒)술을 돌려가며 나누어 마시다를 파(罷)한 후에 선랑이 주안(酒案)을 거두어 그림이 되어 들어서니, 제생(諸生)이 대경(大驚)하여 서로 이르되,

“이 그림은 천상(天上) 조화(造化)도 아니요, 몽중(夢中) 희롱(戱弄)도 아니니 만고(萬古)에 희한(稀罕)한 보배라.”

하더니, 오생이 왈,

“내 시험(試驗)하리라.”

하고 운치에게 청(請)하되,

“우리들이 술이 나쁘니먹은 것이 양에 차지 아니하니 원컨대 내가 주선랑을 불러 술을 더 청하여 보랴?”

운치 허락(許諾)하거늘, 오생이 가만히 주선랑을 불러 왈,

“술이 나쁘니먹은 것이 양에 차지 아니하니 더 먹기를 청하노라.”

하니 주선랑이 대답하고 술병을 들며 동자는 상(床)을 가지고 의연(依然)히 나와 병(甁)을 기울여 술을 부어 드리는지라. 오생이 먼저 먹고 제생이 차례(次例)로 일배(一杯)씩 마신 후에 일어나 사례(謝禮) 왈,

“오늘 존공(尊公)지위가 높은 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을 만나 좋은 술을 먹고 신기(神奇)한 일을 보매 가장 다행(多幸)하도다.”

운치 왈,

“이 족자 그림이 비록 생기 있으나 쓸 데 없고 또 그림의 술을 먹고 무슨 사례 있으리오?”

오생 왈,

“족자를 쓸 데 없거든 내게 팔고 감이 어떠하뇨?”

운치 왈,

“부디 가질 사람이 있거든 팔고자 하노라.”

오생이 값을 물은대, 운치 왈,

“술병 가진 이는 천상 주선랑이요, 술이 일생(一生) 마르지 아니하니 극진(極盡)한 보배라. 그런 고로 은자(銀子) 천 냥을 받고자 하노라.”

오생 왈,

“값의 다소(多少)는 불계(不計)하고계산하지 않고 형은 내 집으로 감이 어떠하 뇨?”

운치가 허락하고 한가지로함께 오생의 집에 가서 족자를 주며 왈,

“내 명일(明日)에 올 것이니 값을 차려두라.”

하고 가더니, 오생이 대취(大醉)하매 족자를 외당(外堂) 벽상(壁上)에 걸고 보니 주선랑이 병을 들고 섰거늘, 오생이 그 고운 태도(態度)를 흠모(欽慕)하여 옥수(玉手)를 잡아 무릎 위에 앉히고 사랑함을 이기지 못하여 침석(寢席)에 나아가고자 할 즈음에, 문득 문 열리는 곳에 급히 달려들어오니, 이는 오생의 처(妻) 민씨(閔氏)라. 원래 민씨는 투기(妬忌)의 선봉(先鋒)이요 샘남의 처지나 물건을 탐내거나, 자기보다 나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나 적수를 미워함. 또는 그런 마음의 대장(大將)이매 남의 일을 보아도 칼을 들고 내닫는 성벽(性癖)이러니, 차야(此夜)에 오생의 희롱함을 보고 대노(大怒)하여 선랑을 치려 할새, 선랑이 벌써 그림 화상(畵像)이 되었는지라. 민씨 더욱 분노(憤怒)하여 족자를 뮈여‘뮈다’는 ‘움직이다’의 옛말. 여기서는 족자를 ‘떼어’의 뜻 찢어버리니, 오생이 대경(大驚) 왈,

“남의 족자를 사려 하고 은자 천 냥을 상약(相約)하였거늘 임자가 오면 어찌 하리요?”

민씨 왈,

“임자 오거든 내 마땅히 질욕(叱辱)꾸짖으며 욕함하리라.”

하며 서로 다툼을 마지 아니할새, 마침 운치 오거늘 오생이 맞아 그 사연(事緣)을 이른대, 운치가 듣고 민씨를 속이고져 하여 민씨를 금사망(金絲網)에 씌우니, 민씨 속은 사람이나 몸은 대망(大蟒)이무기(여러 해 묵은 큰 구렁이)이라. 말을 하려 하나 말이 나지 아니하고 일어나고자 하되 운신(運身)할 길이 없는지라. 운치가 오생더러 왈,

“그대를 위하여 족자를 두고 갔더니 이제 보배를 없이하였으매 그대를 만남이 불행(不幸)하거니와, 그대 집에 큰 변(變)이 날 것이니 조심(操心)하라.”

오생이 왈,

“무슨 변괴(變怪)뇨?”

운치 왈,

“그대 집에 천년(千年) 묵은 짐승이 매양(每樣) 그대 부인(夫人)이 되어 작변(作變)하리라.”

오생 왈,

“무슨 일로 요얼(妖孼)이 작변하리요?”

운치 왈,

“그대 부인이 내 족자를 찢었으매 요얼이 되어 작난(作亂)하리니, 그대는 방문을 열고 보라.”

오생이 믿지 아니하여 방문을 열고 본즉, 과연(果然) 민씨는 간 데 없고 길이 세 발은 되는 대망이 엎드렸거늘, 오생이 대경실색(大驚失色)하여 나와 운치에게 왈,

“과연 대망이 있으니 죽이고자 하노라.”

운치가 말려 왈,

“그 요괴(妖怪)는 천년 묵은 정령(精靈)이니 만일 죽이면 대화(大禍)가 일어날 것이니, 내 부적(符籍) 한 장을 대망의 허리에 매어두면 금야(今夜)에 자연히 스러지리라.”

하고 부적을 내어 대망의 허리에 매고 당부(當付)하여,

“문을 열어보지 말라.”

하고 돌아가 날 새기를 기다려 오생의 집에 가서 민씨를 보고 꾸짖어 왈,

“네가 가군(家君)을 업수이 여겨 포악(暴惡)을 일삼으며 투기를 숭상(崇尙)하여 심지어 남의 족자를 찢고 나를 욕하매, 그 죄로 금사망을 씌워 돌구멍에 넣어 고초(苦楚)를 겪게 하려 하나니, 이제 허물을 고칠진대 금사망을 벗기리라.”

하니 민씨 고개를 쫓거늘, 운치가 진언을 염하니 금사망이 절로 벗겨지매 민씨 황연(遑然)히허둥거리며 일어나 백배사례(百拜謝禮)하더라.

 

운치 집으로 돌아오다가 전일(前日) 동학(同學)동문수학(同門修學). 같이 학문을 배움하던 양봉안이란 사람을 찾아가본즉 병(病)들어 누웠거늘, 운치 놀라 병 증세(症勢)를 자세(仔細)히 묻거늘, 양생(梁生) 왈,

“심복(心腹)이 아프고 식음(食飮)을 전폐(全廢)한 지 오래매 다시 회생(回生)치 못할까 하노라.”

운치 진맥(診脈)하고 왈,

“이 병이 사람을 생각하여 난 병이니 누구를 말미암아 이 병이 났느뇨?”

양생 왈,

“과연(果然) 그러하도다. 다름이 아니라 남문(南門) 안 해현동에서 사는 정씨(鄭氏)란 여자는 경국지색(傾國之色)이요, 일찍 과거(寡居)한지라. 우리 삼촌 집과 격린(隔隣)서로 벽을 사이에 두고 가까이 이웃함. 또는 그런 이웃하였으매 담 사이로 우연(偶然)히 본 후로 사모(思慕)하는 마음이 일일 간절(懇切)하여 병세(病勢) 여차(如此)하니, 필경(畢竟) 세상(世上)을 불구(不久)할까세상이 오래지 않을까, 곧 세상을 버린다는 뜻 하노라.”

운치 왈,

“말 잘하는 매파(媒婆)를 보내어 통혼(通婚)하여보라.”

양생 왈,

“그 여자의 절행(節行)이 특이(特異)하매 성사(成事)치 못하고 도로 욕(辱)을 취(取)할까 하노라.”

운치 왈,

“그러하면 내가 형(兄)을 위하여 그 여자를 데려오면 어떠하뇨?”

양생 왈,

“형이 아무리 재조(才操)가 능하나 그 여자를 데려오지 못하리니 부질없이 생의(生意)치 말라.”

운치 왈,

“형은 염려(念慮) 말라.”

하며 구름을 타고 가니라.

 

차설(且說). 정씨는 일찍 과거(寡居)하여 주야(晝夜) 슬퍼하며 죽고자 하되, 위로 노모(老母)가 계시고 다른 동기(同氣) 없는 고로 모녀(母女)가 의지(依支)하여 세월(歲月)을 보내는지라. 일일(一日)은 정씨가 심회(心懷)를 정(定)치 못하여 방중(房中)에서 배회(徘徊)하더니, 문득 구름 속에 일위(一位) 선관(仙官)이 홍포옥대(紅袍玉帶)에 머리에 금관(金冠)을 쓰고 손에 옥홀(玉笏)옥으로 만든 홀. 홀은 벼슬아치가 임금을 만날 때 손에 쥐던 물건을 쥐고 청음(淸音) 낭성(朗聲)으로 불러 왈,

“주인 정씨는 나와 옥제(玉帝)의 교명(敎命)임금이 내리는 문서. 여기서는 옥황상제의 명령을 들으라.”

하거늘, 정씨가 차언(此言)을 듣고 모친(母親)께 고한대, 그 모씨(母氏)가 놀라며 괴이히 여겨 급히 청상(廳上)에 향안(香案)을 배설(排設)하고 정씨는 뜰에 내려 엎드린대, 운치가 이르되,

“문선랑(文仙娘)아, 인간 재미 어떠하뇨? 이제 천상요지반도연(天上瑤池蟠桃宴)신선이 살고 있다는 천상(天上) 연못 요지(瑤池)에서 삼천 년마다 한 번씩 열매가 열리는 복숭아인 반도(蟠桃)를 차려놓고 벌인 잔치에 참예참여. 어떤 일에 끼어들어 관계함하라.”

하거늘, 정씨가 옥책(玉嘖)옥황상제의 소리을 듣고 대경(大驚) 왈,

“첩(妾)은 인간 더러운 몸이요, 또한 죄인이라. 어찌 천상에 올라가리요?”

운치 왈,

“문선랑은 인간 더러운 물을 먹어 천상 일을 잊었도다.”

하고 호로파(葫蘆玻)‘호로’는 선약(仙藥)을 넣고 다니는 호리병박. ‘호로파’는 호리병박의 모양의 유리병인 듯하다.에 향온(香醞)선약(仙藥)의 한 가지을 가득 부어 동자(童子)로 하여금 권하거늘, 정씨가 받아 마신즉 정신(精神)이 아득하여 인사(人事)를 모르는지라. 운치가 인하여그 후 정씨를 구름에 싸 공중(空中)에 오르니, 그 모씨(母氏) 공중을 향하여 무수(無數) 하례(賀禮)하더라.

이때에 강림도령(降臨道令)무속에서 수명이 다한 사람을 잡아 저승으로 데리고 가는 일을 하는 염라대왕의 사자. 여기서는 선계(仙界)에서 내려온 총각 정도의 의미이 모든 거지를 모아 저자 거리로 다니며 양식(糧食)을 빌더니, 홀연(忽然) 향취(香臭)가 옹비(擁鼻)코를 휩쌈하며 채운(彩雲)이 동남(東南)으로 가거늘, 강림도령이 치밀어보고쳐다보고 손을 들어 한번 구름을 가리키니, 운문(雲門)이 절로 열리며 선관과 고운 계집이 땅에 떨어지니, 이는 전운치라. 운치 정씨를 데려 구름을 타고 공중으로 가더니, 문득 검은 기운이 공중에 오르며 법술(法術)이 절로 풀려 땅에 떨어지매, 운치가 대경하여 좌우를 살펴본즉 아무것도 없거늘, 괴이히 여겨 다시 술법(術法)을 행하려 할새, 문득 한 거지 아이가 나와 대매(大罵) 왈,

“필부(匹夫) 전운치는 들으라. 네 요술(妖術)을 배워 하늘을 속이고 열부(烈婦)열녀를 훼절(毁節)하고자 하니 어찌 명천(明天)이 무심하시리오? 이러므로 나로 하여금 너 같은 놈을 죽이라 하심이니 나를 원(怨)치 말라.”

하거늘, 운치 대노(大怒)하여 찼던 칼을 빼어 저히고자기본형은 ‘저희다’로 ‘위협하다’는 뜻임 한즉, 그 칼이 화(化)하여 백호(白虎)가 되어 도로 운치를 해(害)하려 하니, 운치 의심(疑心)하여 피(避)하고자 하다가 문득 발이 땅에 붙고 움직이지 못하매 급히 변신(變身)코저 하나 법술이 행치 못하는지라. 운치 대경하여 살펴본즉, 그 아이 의상(衣裳)이 남루(襤褸)하나 도술(道術)이 높은 줄 알고 몸을 굽혀 빌어 왈,

“소생(小生)이 눈이 있으나 망울이 없어 선생을 몰라보오니 그 죄 만사무석(萬死無惜)이오나 고당(高堂)부모님이 계신 방에 노모(老母)가 계시고 집이 빈한(貧寒)하여 능히 봉양(奉養)할 수 없어 부득이 임금을 속임이요, 두 번째는 목숨을 도모(圖謀)함이요, 이제 정씨 절행을 해하려 함은 병든 벗을 살리고자 하옴이니, 원컨대 선생은 죄를 사(赦)하시고 선도(仙道)를 가르치소서.”

강림도령 왈,

“그대가 이르지 아니하여도 나는 벌써 알았거니와, 국운(國運)이 불행(不幸)하여 그대 같은 요술이 무단(無斷)히 작변(作變)하매 그대를 죽일 것이로되 그대 노모 정상(情狀)을 생각하여 아직 살리나니, 이제 빨리 정씨를 데려다가 제 집에 두고, 양가는 좋은 계교(計巧)로 살려내되, 정씨를 대신할 사람이 있으니, 일찍 부모를 여의고 혈혈(孑孑) 무의(無依)하여 극히 빈한하나 그 마음이 어질고 성이 정씨요 나이 또한 삼팔(三八)이니, 그대 만일 내 말을 어기면 몸에 대화(大禍)가 미치리라.”

운치 사례(謝禮) 왈,

“선생의 고성대명(高姓大名)을 알고자 하나이다.”

기인(其人) 왈,

“나는 강림도령이니 세상을 희롱(戱弄)하고자하여 두루 다니노라.”

하고 요술 행하는 법을 도로 풀어 놓아주니, 운치가 즉시 정씨를 데리고 정씨 집에 가서 공중에서 그 모친을 불러 외쳐 왈,

“아까 옥경(玉京)옥황상제가 산다고 하는 하늘 위의 가상공간에 올라간즉 상제(上帝) 이르시되, ‘문선랑이 아직 죄가 진(盡)하지 못하였으매 도로 인간에 보내어 고행(苦行)을 더 지낸 후 데려오라.’ 하시기로 도로 데려왔으니 부디 선심(善心)을 닦게 하라.”

하며 향약(香藥)을 내어 정씨 입에 드리우니, 이윽고 정씨 깨어 정신을 차리더라.

 

재설(再說). 운치가 다시 강림도령께 가서 그 여자의 거처(居處)를 물은대, 강림도령이 환형단(換形丹)모습을 바꾸게 하는 약을 주며 그 집을 가르치거늘, 운치 하직(下直)하고 그 집을 찾아가니, 일간모옥(一間茅屋)한 칸의 띠집(초가집)이 퇴락(頹落)한 곳에 한 여자가 시름을 띠어 홀로 앉았거늘, 운치가 나아가 달래며 왈,

“낭자의 고단(孤單)함은 내 이미 알았거니와 낭자의 춘광(春光)이 삼칠(三七)이 지나도록 출가(出嫁)치 못하여 외로운 경상(景狀)이 가긍(可矜)한지라. 내 낭자를 위하여 중매(仲媒) 되고자 하노라.”

낭자가 부끄러워 머리를 숙이거늘, 운치가 인하여그 후 환형단을 먹이고 물을 뿜으며 진언(眞言)을 염(念)하니 의심 없는 정가녀의 얼굴이 된지라. 운치가 정씨더러 양생의 병든 곡절(曲折)과 정녀를 데려오던 사연(事緣)을 이르며 여차여차하라 하고 보자(褓子)보자기를 씌워 구름을 타고 양생의 집에 가 그 여자를 외당(外堂)에 두고 내실(內室)에 들어가 양생을 보고 왈,

“과연 정녀의 절행이 높으매 감히 말을 발뵈지발뵈다. 무슨 일을 극히 적은 부분만 잠깐 드러내 보이다 못하고 그저 왔노라.”

양생이 추연(惆然)처량하고 슬프다 탄(歎)탄식하여 왈,

“형의 재조(才操)로도 성사(成事)치 못하니 어찌 다시 생의(生意)나 하리요?”

하거늘, 운치가 만단개유(萬端改諭)여러 가지로 타이르다하며 무수히 조롱(嘲弄)하다가 왈,

“내 이번에 정녀는 못 데려왔거니와 정녀보다 십 배나 더 고운 미인을 얻어왔노라.”

양생 왈,

“내 미인을 많이 보았으나 정녀 같은 인물은 없으니 형은 모름지기 농담(弄談)을 말지어다.”

운치 왈,

“내 어찌 병인(病人)과 희롱하리요? 이제 외당에 두고 왔으니 이는 경성지색(傾城之色)경국지색. 나라를 위태롭게 할 정도로의 미인이라. 나가보면 알리라.”

하니 양생이 반신반의(半信半疑)하여 강잉(强仍)히 일어나 외당에 나가본즉 과연 일위(一位) 미인이 소복(素服)을 하였는데 뚜렷한 얼굴은 추천(秋天) 명월(明月)이요, 분명한 눈찌눈길는 샛별 같아서 천태만염(千態萬艶)여러 가지 모양으로 곱고 아름다운 모습이 비할 데 없는지라. 양생이 한 번 보매 이는 오매사복(寤寐思服)늘 잠 못 이루고 생각하여 잊지 아니함. 『시경』에 나오는 구절에서 온 표현 하던 정씨거늘, 양생이 정신이 황홀(恍惚)하여 여취여광(如醉如狂)취한 듯 미친 듯하여 반갑고 즐거움을 차마 못 이기어 이후(以後)로 병세가 점점 나아가더라.

 

각설(却說). 운치가 호주지명인 듯를 보고자 하여 예단(禮緞)을 갖추어 가지고 호주로 가니라. 이때에 서화담화담은 조선 중종 때의 학자인 서경덕의 호이다.이 시동(侍童)에게 분부(分付)하여 왈,

“금일 오시(午時)에 전생(田生)이란 사람이 올 것이니 초당(草堂)을 쇄소(刷掃)하라.”

하더니, 차시(此時) 운치가 산문(山門)에 다달아 완보(緩步)하여 두루 구경한즉 송죽(松竹)은 창창(蒼蒼), 간수(澗水)골짜기에서 흐르는 물는 잔잔(潺潺)한데 미록(麋鹿)고라니와 사슴은 벗을 찾아다니며 백학(白鶴)은 춤을 희롱(戱弄)하니, 이 짐짓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이백의 시 「산중문답」에 나오는 구절. 별천지로 인간세상이 아닌 듯하다이라. 죽림(竹林) 사이 시비(柴扉)사립문에 나아가 두드리니, 동자(童子)가 나와 문(問) 왈,

“선생(先生)이 그 아니 전공(田公)이신가?”

운치 왈,

“동자가 어찌 나를 아는가?”

동자가 왈,

“아침에 선생이 이르신고로 아나이다.”

운치가 대희(大喜)하여 동자로 하여금 폐백(幣帛)을 받들어 드리고 뵈옴을 청(請)한대, 화담이 즉시(卽時) 초당으로 청하여 빈주지례(賓主之禮)를 마치고 말씀할새, 운치 왈,

“소생(小生)이 선생의 높은 이름을 우레같이 듣잡고 불원천리(不遠千里)하여 왔사오니 선생의 가르치심을 바라나이다.”

화담이 손사(遜謝)겸손하게 사양함 왈,

“천공이 나를 맥받으러이어받다, 본받다의 뜻인 듯. 왔도다. 내 무슨 도학(道學)이 있관대 이같이 과찬(過讚)하느뇨? 내 들으니 그대 법술(法術)이 높아 모를 일이 없다 하매 한번 보기를 원하더니 이제 만나매 평생(平生) 만행(萬幸)만 번 다행이로다.”

운치 일어나 칭사(稱謝)하고 종일(終日) 한담(閑談)하더니, 화담이 시비(侍婢)를 명하여 주찬(酒饌)을 재촉하고 또 칼을 빼어 벽상(壁上)에 꽂으니 신선(神仙)의 영출주신선이 마시는 술의 일종가 주준(酒樽)술항아리에 흘러 잠깐 사이에 한 항이 차거늘, 즉시 칼을 빼고, 북벽에 걸린 족자(簇子) 그림에 빛난 채각(彩閣)이 뚜렷한데, 사창(紗窓)을 열고 본즉 채의(彩衣) 입은 선녀(仙女)가 주반(酒盤)을 갖추어 들고 나와 운치 앞에 놓고 잔(盞)을 받들어 술을 권하거늘, 운치 받아먹은즉 극히 향기(香氣)로운지라. 화담께 칭사(稱謝) 왈,

“소생이 선경(仙境)에 이르러 경장옥액(瓊漿玉液)신선이 마신다는 음료수. 빛깔과 맛이 좋은 술. 옥액경장(玉液瓊漿)이 바른 말임과 진수미찬(珍羞美饌)을 맛보오니 지극(至極) 감사(感謝)하여이다.”

화담이 소(笑) 왈,

“그대 어찌 박주(薄酒)좋지 못한 술. 손님에게 대접하는 술을 겸손하게 이르는 말 산채(山菜)산나물. 변변치 않은 안주를 뜻함.를 일컫느뇨?”

하며 서로 수작(酬酌)할새, 문득 일위(一位) 선생이 갈건야복(葛巾野服)으로 들어와 가로되,

“좌객(坐客)은 뉘시뇨?”

화담 왈,

“남서부에 있는 전공이니라.”

하고 운치를 향하여 왈,

“이는 나의 아우 용담이어니와 그대와 일면지분(一面之分)한 번 만나본 정도의 친분이 없기로 대객지도(對客之道)손님을 대하는 도리를 잃었으니, 그대는 용서(容恕)하라.”

운치가 눈을 들어 용담을 보니 미목(眉目)이 청수(淸秀)하고 골격(骨格)이 헌앙(軒昻)하여 위풍(威風)이 사람을 놀라게 하는지라. 이윽고 용담이 운치에게 예(禮)하여 왈,

“선생의 높은 술법(術法)을 들은 지 오래되 금일에야 서로 만남이 천만 번 늦도다. 그러하나 원컨대 선생의 도술(道術)을 한번 구경하고자 하노라.”

운치 왈,

“용렬(庸劣)한 사람이 어찌 도술이 있으리요?”

용담이 재삼(再三) 간청(懇請)한대, 운치 한번 시험(試驗)하고자 하여 즉시 진언(眞言)을 염(念)하니, 용담이 쓴 관(冠)이 변하여 뿔이 세 발이나 되는 쇠머리 되어 석상(席上)에 떨어져 눈을 실룩이고 입을 벌리니, 용담이 자기 쓴 관을 쇠머리 만듦을 보고 노(怒)하여 즉시 진언을 염한즉, 운치가 썼던 갓이 변하여 돼지의 머리 되어 암상(巖上)에 내려져 어금니를 드러내고 귀를 떨며 기는지라. 운치가 생각하되,

‘차인(此人)의 재조(才操)가 비상(非常)하니 가히 겨루어보리라.’

하고 저두(猪頭)를 향하여 진언을 염하니 돼지의 머리 변하여 세 가래 장창(長槍)이 되었거늘, 용담이 또한 우두(牛頭)를 향하여 진언을 염하니 쇠머리 변하여 큰 칼이 되어 장창과 공중(空中)에 올라 어우러져 싸우니, 창검(槍劍)이 일광(日光)에 바애더라빛나더라. ‘바다’는 빛나다, 부시다는 뜻의 고어임. 용담이 또 부채를 던지며 진언을 염하니 칼과 부채가 화하여 적룡(赤龍)과 청룡(靑龍)이 되고, 운치가 쥐었던 선추(扇錘)부채고리에 매다는 장식품를 던진즉 창과 선추가 화하여 백룡(白龍) 흑룡(黑龍)이 되어 네 용이 어우러져 싸우매 운무(雲霧)가 자욱하고 벽력(霹靂)이 진동하여 불분승부(不分勝負)러니 청룡 적룡이 점점 시진(澌盡)기운이 빠져 없어짐하거늘, 화담이 헤아리되,

‘두 사람이 재조(才操)를 겨루다가는 필경(畢竟) 좋지 아니하리라.’

하고 연적(硯滴)을 치뜨리니아래에서 위를 향해 던져올리니, 문득 그것이 모두 땅에 떨어져 화하여 도로 본상(本像)이 되는지라. 운치가 먼저 갓을 집어쓰고 선추를 거둔 후에 말씀을 화(和)히온화하게 하되 용담은 즐겨 선자(扇子)와 관을 거두지 아니하거늘, 운치 하직(下直) 왈,

“오늘 외람(猥濫)되이 재조(才操)를 겨뤄 선생의 높은 도술을 욕되게 하오니 그 죄 가장 크오매 후일(後日)에 사죄(謝罪)하리이다.”

하고 돌아가거늘, 화담이 운치를 보내고 용담을 꾸짖어 왈,

“너는 청룡 적룡을 내고 운치는 백룡 흑룡을 내니, 청(靑)은 목(木)이며 적(赤)은 화(火)요 백(白)은 금(金)이며 흑(黑)은 수(水)니, 오행(五行)의 금극목(金克木) 수극화(水克火)라. 네 어찌 운치를 이기며 하물며 내 집에 온 손[客]을 부질없이 겨루어 해(害)하고자 하느뇨?”

용담이 사죄하나 마음에 가장 운치를 노(怒)하여 해(害)할 뜻이 있더라.

그 후 삼일(三日) 만에 운치 화담을 찾아뵈온대, 화담 왈,

“내 그대에게 청할 일이 있으니 즐겨 좇을 쏘냐?”

운치 왈,

“무슨 일이니이꼬?”

화담 왈,

“남해(南海) 중에 큰 산(山)이 있으니 명(名) 왈 화산(華山)이요, 그 산중(山中)에 도인(道人)이 있으되 도호(道號)는 운수선생이라. 내 자소(自少)어렸을 때로 수학(受學)하더니 그 선생이 여러 번 글월을 부쳤으되 지금(껏) 회사(回謝)사례하는 뜻을 표함치 못하였나니, 이제 그대를 만났으매 그대 가히 다녀올쏘냐?”

운치 흔연(欣然)히 허락(許諾)하거늘, 화담 왈,

“내 생각건대 화산은 해중(海中)이니 쉬이 다녀오지 못할까 하노라.”

운치 왈,

“소생이 비록 무재(無才)하오나 순식간(瞬息間)에 다녀오리이다.”

화담이 종시(終是) 믿지 아니하거늘, 운치 내염(內念)에 화담이 업수이 여기는가 하여 왈,

“생이 만일(萬一) 순식간에 다녀오지 못하거든 이에서 죽어도 다시 산문(山門)을 나지 아니하리이다.”

화담 왈,

“진실(眞實)로 그러할진대 가려니와, 행여 실수(失手) 있을까 하노라.”

하고, 즉시 글월을 닦아주니‘닦다’는 글을 지어 다듬는다는 뜻, 운치 받아가지고 변신(變身)하여 해동청(海東靑) 보라매사냥에 쓰는 매의 일종 되어 공중에 올라 해중을 향하여 가며 바라보니, 난데없는 그물이 앞을 가리웠거늘, 운치가 넘어가려 한즉 그물이 오르는 대로 높아져 앞을 가리우며, 운치가 솟아올라 아무리 그물을 넘으려 하되 그물이 점점 따라 높아져 하늘에 닿았고 아래 벼리그물의 위쪽 코를 꿰어놓은 줄는 물속에 잠겼는지라. 또 좌우편(左右便)으로 높이 떠 가려 하나 그물이 천변(天邊)에 닿았으매 화산을 갈 수 없어 십여 일을 죽기로 그음하여미상 애를 쓰다가 할 일 없어 돌아와 화담을 보고 해중(海中)에서 신고(辛苦)고생하던 사연(事緣)을 고한대, 화담 왈,

“그대 큰 말 하고큰소리치고 가더니 다녀오지 못하였으매 이제 불출산문(不出山門) 함이 어떠하뇨?”

운치 무안(無顔)하여 달아나고자 하더니 화담이 알고 변신(變身)하여 삵이 되어 달려드니, 운치 일이 급하매 변신하여 보라매 되어 날려 한즉, 화담이 또한 청사자(靑獅子)가 되어 운치를 물어 박지르고힘껏 차서 쓰러뜨리고 대매(大罵) 왈,

“너 같은 요술(妖術)이 기군망상(欺君罔上)임금을 속임하고 작난(作亂)이 무상(無狀)하니아무렇게나 함부로 행동하여 버릇이 없으니 어찌 죽이지 아니하리요?”

운치 애걸(哀乞) 왈,

“선생의 도고(道高)하심‘도고하다’는 도덕적 수양이 높다는 뜻. 여기서는 도술의 경지가 높다는 의미임.을 모르고 존위(尊威)를 범(犯)하였으니 죄당만사(罪當萬死)이오나, 소생에게 노모(老母)가 있사오니 원(願)원하다 선생은 잔명(殘命)남은 목숨을 빌리소서.”

화담 왈,

“내 이번은 살리거니와 다시 그런 무상한 일 행(行)치 말고 그대 모친을 봉양(奉養)하다가 그대 모친이 기세(棄世) 후에 나와 영주산(瀛州山)에 들어가 선도(仙道)를 닦음이 어떠하뇨?”

운치 왈,

“선생의 교훈(敎訓)대로 봉행(奉行)하리이다.”

하고 인하여그 후 하직한 후에 집에 돌아와 요술을 행치 아니하고 모친을 봉양하더니, 세월(歲月)이 여류(如流)하여 운치 모부인(母夫人)이 졸(卒)하니 운치 예(禮)를 갖추어 선산(先山)에 안장(安葬)하고 삼년을 받들더니, 일일(一日)은 화담이 왔거늘, 운치가 황망(慌忙)히 나와 맞아 예필(禮畢) 좌정(坐定) 후에 화담 왈,

“그대와 상약(相約)한 일이 있으매 그대 재상(在喪)부모 상(喪) 중에 있음함을 알고 왔거늘, 이제 그 산에 있는 구미호를 잡아 석갑(石匣)에 가두고 그 굴혈(掘穴)을 불 지름이 어떠하뇨?”

운치 왈,

“이제 선생이 그 여우를 없이하시면 진실로 일국(一國)의 만행(萬幸)일까 하나이다.”

화담 왈,

“내 이제 그대를 데려가려 하나니, 행장(行裝)을 수습(收拾)하라.”

하거늘, 운치 대희(大喜)하여 가산(家産)을 흩어 노복(奴僕)을 주며 왈,

“나는 이제 영결(永訣)하나니, 여등(汝等)은 무양(無恙)히 있어 나의 조선(祖先) 향화(香火)를 받들라.”

하고 선영(先塋)에 하직한 후에 화담을 모셔 구름을 타고 영주산으로 향하니, 그 후사(後事)는 알지 못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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