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한국 신화를 알아야 하는 이유
1. 왜 한국의 신화일까?
이 세상에는 그리스 로마신화를 비롯하여 무수히 많은 신화들이 전승되고 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여러 민족들은 그들 나름의 고유한 신화를 간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정신분석학의 대가 칼 융(K. G. Jung)은 이러한 신화 속에는 그 민족 고유의 집단무의식이 투영되어 있다고 보았다. 이와 같은 칼 융의 생각은 상당한 타당성을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신화 속에는 그것을 만들어내고 간직해온 민족들이 어떤 생각을 하였으며, 그들의 생활과 문화는 어떠한 것이었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는 요소들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의 신화도 예외일 수 없다. 우리 조상들은 일찍부터 만주와 한반도를 생활공간으로 하여 유구한 역사를 전개해 온 문화민족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전해져 오는 우리의 신화가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해 온 것은, 첫째 기록으로 전해지는 한국 신화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으며, 둘째 서구의 문물이 들어와 일반화 되면서 이들 신화에 친숙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기록으로 전해지는 것이 우리나라 신화의 전부가 아니란 사실에 유념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신화자료들은 기록으로 전해지기보다는 口傳을 통해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왔다. 그동안 우리나라에 구전되고 있던 신화자료들을 정리해 보면 상당히 많은 신화가 전승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우리들에게는 오늘날의 우리들을 있게 해 준 조상들의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여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다시 말해서, 한국 민족의 정체성이 어떤 것인지 확인하여 후세에 전승시켜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는 말이다. 여기에 한국 신화를 알아두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글로벌화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로서는 먼저 우리의 정체성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서 신화는 없어서는 절대 안 되는 귀중한 자산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신화 속에는 우리 조상들이 주변 사물에 대하여 가졌던 인식과 그들이 창조했던 문화의 한 단면이 그대로 녹아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화를 알면, 1) 우리 조상들이 창조했던 문화가 어떤 것이었으며, 2) 어떠한 생각으로 그러한 문화를 창조했었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게 되고, 3) 우리 민족이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4) 우리 조상들이 어떻게 살아 왔는가 하는 문제도 함께 헤아려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인간이란 ‘나’ 자신을 인식하고 난 다음에 다른 사람을 의식하는 존재이다. 다른 사람보다 ‘나’라는 자기 인식을 가지기 위해서는 우리가 한국 민족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야 한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일깨우는 데는 우리 민족이 어떤 문화를 가졌고, 그것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으며, 어떠한 역사를 지니고 살아 왔는가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바로 이때에 우리나라의 신화자료가 중요한 몫을 할 수 있으며, 이를 활용할 때에 비로소 우리 것의 소중함과 우리 문화의 우수함을 깨달아 우리 한국 민족은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2. 神話(myth)란 무엇인가?
2-1. 사전적 의미
가. 국어사전
원시적인 세계관∙인생관에 기초를 두어 神의 의지 활동을 중심으로 하여 자연계나 인간계의 모든 현상을 설명한 여러 가지 전설. 내용에 따라 자연 신화와 인문 신화로 나눔.
나. 다음백과
어떤 관행·신앙·제도·자연현상 등을 설명하기 위한 실제적 사건으로 구성되며, 종교의식 및 신앙과 관련되어 있다. 신화는 때로 이 땅의 문화적 영웅들이나 지상적 삶으로부터의 구원을 가능하게 해준 위대한 존재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악과 죽음이 어떻게 인간사에 들어오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근원적인 지식이 어떻게 '잊혀지고' 다시 '기억되는'지를 말해준다. 신화의 해석 작업은 일찍이 시작되어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신화를 풍자적 이야기로 받아들였고, 19세기, 20세기에 민속학적 발견이 더해져 신화학의 기본 윤곽이 갖추어졌다. 신화는 진리와 지식의 보고로 여겨지며 인간의 활동을 유효하게 만드는 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우주의 기원, 초자연의 존재의 계보, 민족의 시원 등과 관련된 신에 대한 서사적 이야기.
라. 神話學(국어사전)
신화에 관하여 발생의 심리, 발달 변화의 제원칙 따위를 연구하며, 개개 신화의 성립 과정 및 의미를 해명하고, 다시 그 내용 형식의 같고 다름에 따르는 분류를 시도하는 과학.
2-2. 語源으로 본 神話
고대 그리스의 ‘뮤토스(myuthos)'.
당시 그리스에는 ‘이야기’를 뜻하는 말로 ‘myuthos(지어낸 이야기)’와 ‘logos(진실한 이야기)’를 사용. 전통적인 생활양식을 고수하고 있는 전통사회에서는 ‘신성하기 때문에 규범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이야기들’이 존재하므로, 신화란 ‘신성한 이야기로 인식되고 있는 것들’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음.
인간이란 합리적인 사고만 하면서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다. 사람이 어쩔 수 없는 상황, 다시 말해 합리적인 사고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부딪히게 되면 분석이나 이해를 초월하는 존재, 곧 ‘神’을 믿지 않을 수 없게 되는데 바로 이런 존재에 얽힌 이야기가 神話이다.
2-3. 神話에 대한 神話學者들의 견해
가. 마쓰무라 가즈오(松村一男)의 견해 / 일본 학자. 와코대학교 교수
(현재 활동 중)
‘神話란 세계와 인간, 문화의 기원을 말함으로써 현재와 같은 세계가 존재하게 된 근거를 제시하고, 사람들에게 살아가는 모델을 제공하는 신성한 이야기’이다.
신화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것의 기원을 서술하는 이야기를 가리킨다. 이와 같이 태초에 있어 사물과 제도의 기원을 직접적으로 이야기 하는 것이 신화이기 때문에, 사물과 질서의 기초를 만들어 ‘확고하게 하는 힘’과 ‘성스러운 성격’이 뚜렷하게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신화학자들은 그 내용에 있어 세계나 인류, 문화의 기원을 서술하는 이들 이야기를 ‘창세신화’라 부른다. 그렇다고 기원을 서술하는 이야기가 모두 신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이야기에 신성성이 결여되어 있을 때에는 신화라고 할 수 없다.
신화는 현재와 같은 세계가 존재하게 된 근거를 제시하여,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할 수 밖에 없게 된 이유를 설명해 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현대인에게 살아가는 모델을 제공하는 이야기여야 한다.
* 예화 1) 소쩍새의 기원 / 충남 부여 일대에 전해지는 이야기
* 신화가 아닌 예
아주 먼먼 옛날, 어떤 마을에 딸을 10명이나 둔 집이 있었다. 이 집은 어머니가 병으로 쓸어져 돌아가신 뒤로 더욱 어려워져서 하루도 끼니를 재대로 이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그동안 쓰던 물건을 팔아 겨우 끼니를 이어 갔다. 그러다가 이제는 솥 하나만 남게 되었다. 그 솥은 너무 작아 열한명이나 되는 식구의 밥을 지으려면 세 번이나 밥을 지어야 했다. 그래서 밥을 짓는 맏딸은 늘 밥 짓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밥 지을 때마다 ‘큰 솥 하나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던 맏딸이 시집을 가게 되었다. 맏딸은 이제 작은 솥을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아 기뻤다. 그러나 시집을 가 보니 시집의 솥은 더 작아서, 밥을 몇 번이나 더 짓고, 그 위에 국까지 끓여야 했다. 게다가 시어머니는 성격까지 괴팍하여 밥이 조금이라도 늦으면 구박을 했고, 밥이 제재로 되지 않을 때는 구박이 더욱 심했다.
이렇게 시어머니의 구박을 받으며 살아가던 맏딸은 마침내 병이 들어 죽게 되었다. 남편은 호강 한 번 못하고 죽은 아내가 불쌍하여 날마다 아내 무덤가에 가서 울었다.
하루는 아내 무덤에 가서 엎드려 막 우는데, 무덤 속에서 새 한 마리가 나오더니 “솥적! 솥적!”하고 우는 것이었다. 남편이 가만히 귀 기울여 들어보니 “솥이 적다”고 우는 소리였다. 이것은 아내의 영혼이 새가 되어, 평소에 솥이 적었던 것을 원망하는 소리였다. 이 후, 사람들은 그 새를 ‘소쩍새’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예화 2) 자청비 이야기 / 제주도 신화에 들어 있는 이야기 중 일부
* 신화인 예
하늘나라에 올라간 자청비에게 문도령의 부모는 “내 며느리 될 사람은 쉰 자 길이의 구덩이를 파놓고, 숯 쉰 섬을 묻어 불을 피워놓고, 불 위에 작도를 걸어 칼날 위를 타 나가고 타 들어와야 며느리 감이 된다”라는 과제를 주었다.
그리고는 머슴들을 불러 쉰 자 구덩이를 파게하고, 숯 쉰 섬에 불을 피워 작도를 걸었다. 그런 다음 “며느리 감은 얼른 나와 작도를 타라”고 호령했다.
자청비는 눈물을 머금고 백릉버선을 벗고 박씨 같은 발로 작도 위에 올라타고 앞으로 한 발짝 두 발짝 아슬아슬 걸어 나갔다.
몇 발짝 못가서 숯불에 타 죽으리라 생각했는데 자청비는 끝까지 무난하게 타 나갔다. 그리하여 쉰 자나 되는 긴 작도 칼날 끝에 가서 내려서려는 순간, 발을 잘못 디뎌 발뒤꿈치를 살짝 베이고 말았다. 그리고 발뒤꿈치에서 피가 났다. 자청비는 얼른 속치마로 흐르는 피를 닦았다.
땅에 내려서자마자 문도령의 부모가 달려들어 얼싸안으며, “아이고, 이런 아가씨가 어디 있으랴. 내 며느리 감이 분명하다. 그런데 어쩐 일로 속치마가 더러워졌느냐?”라고 말하였다. 이에 자청비는 “아버님아, 어머님아, 고맙습니다. 저도 이 세상에 보람을 하나 남기겠습니다.”라고 하면서, 여자나이 열다섯 살이 넘어가면 다달이 몸에 월경이 있도록 하였다.
나. 프레이저(J. Frazer)의 3분법적 견해 / 영국의 인류학자. 저서-황금가지
(1854~1941)
신화와 전설, 민담의 구별은 명확하게 이해되거나 일률적으로 진술될 수 없기 때문에 용어의 의미를 미리 정의하는 것이 좋다.
신화는 세계와 인류의 기원, 천체의 명백한 움직임, 사계절의 규칙적인 순환, 생물의 생성과 소멸, 자연현상(천둥, 번개, 강우, 일식, 월식, 지진 등)의 원인, 불의 발견, 예술의 발명, 사회의 기원, 죽음의 신비 등 神들과 관련된 이야기가 무수히 많다. 그러나 그것이 진실로 밝혀진다면 신화로 나아갈 수 없다는 아이러니에 봉착하게 된다. 만약 그것이 진실만으로 되어 있다면 그것은 신화가 아니라 역사가 되는 것이다.
전설은 기록된 것이든 구전된 것이든 실제적 사실에 대하여 불가사의한 요소나 기적적인 요소가 들어 있다. 이 속에는 진실과 허구가 함께 뒤섞여 있는데, 아마도 허구의 구성비율이 더 높을 것이다.
민담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는 가공적인 이야기이다. 비록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던 것에 대한 이야기라 하더라도 민담은 완전히 상상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민담은 듣는 사람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이야기로 신뢰성이 주장되지 않는 아주 허구적이고 단순한 이야기이다. 따라서 민담은 단순한 로망스의 영역에 속한다.
만약에 위와 같은 정의가 용인된다고 한다면, 신화는 원인에, 전설은 기억에, 민담은 상상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 말리노프스키(B. Malinowski)의 유형별 견해 / 폴란드 학자.
(1884~1942)
설화를 세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1) 민담(Kukwanebu)
계절에 따라 오락을 위해서 구연되는 사회성의 한 표현이다.
2) 전설(Libwagwo)
이상한 현실과의 접촉에 의해 이야기 된 것으로, 사회적 공명심을 충족하기 위해 과거의 역사적 경험을 나타낸다
3) 신화(Liliu)
신성한 것으로 간주되는 祭儀와 式典, 사회적∙도덕적 규칙이 그 정당한 권능과 신성성을 요구할 때에 비로소 작동된다.
라. 베이스컴(W. Bascom)의 3분법적 견해 / 미국 학자 (1906~1995)
1) 신화란 태고시대에 비인간들에 의해 1회적으로 행해진 이야기로 신성성을
가지고 있다.
2) 전설은 역사시대에 인간들에 의해 행해진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3) 민담은 인간이나 비인간이 주인공이 될 수 있는 허구적∙세속적 이야기다.
이 형태를 표로 만들면 아래와 같다.
형태 | 신뢰성 | 시간적 배경 | 공간적 배경 | 태도 | 등장인물 |
신화 | 사실 | 太古 | 다른 세계 | 신성 | 비인간 |
전설 | 사실 | 近古 | 현세 | 신성∙세속 | 인간 |
민담 | 허구 | 언제라도 가능 | 어디라도 가능 | 세속 | 인간 혹은 비인간 |
3. 한국에는 어떤 神話가 있을까?
3-1. 起源神話
“세계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인류는 어떻게 하여 생겨났는가? 인간의 관습들은 어떻게 해서 시작되었는가?” 하는 始原에 관한 신화가 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오거나, ‘巫歌’를 통하여 전승되었다. 예를 들면 창세가, 천지왕 본풀이, 산천과 땅이 생긴 이야기, 선문대 할망 이야기, 백두산이 만들어진 이야기, 북두칠성이 만들어진 이야기, 일식과 월식 이야기, 사람을 만든 이야기, 홍수 이야기, 바리공주 이야기, 농사와 가축을 돌보는 신 이야기, 이승차사 이야기, 등등 아주 많다.
앞으로 우리 [한국고대신화 찾아가기]에서 함께 찾아내어, 우리가 사는 현대로 귀환시켜야 할 신화들이다.
3-2. 建國神話
나라를 세운 집단의 사람들이 왕권의 정당성과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 전해져 오는 이야기이다. 이 신화들은 구전되기도 했지만 문자로 기록되어 전승되기도 했다. 예를 들면 단군이야기, 고주몽 이야기, 유리왕 이야기, 박혁거세 이야기, 탈해왕 이야기, 수로왕 이야기, 을지문덕 이야기, 견훤 이야기, 왕건 이야기 등등이다.
건국신화에 대해서는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우리 [한국고대신화 찾아가기]에서는 교재로 삼지 않을 예정이다.
'해월의 강좌 (2) > 한국고대신화 찾아가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3장 한반도는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0) | 2018.05.18 |
---|---|
지구상의 男과 女, 그리고 사랑 (0) | 2018.05.18 |
제2장 지구사 (0) | 2018.05.18 |
한국고대신화 / 여는 이야기 (0) | 2018.05.18 |
해월 채현병의 한국고대신화 찾아가기 / 제2기 회원모집 (0) | 2018.04.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