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모재永慕齋에서 (2010.7.4, 일)
海月 채현병
한거믄 한멧터에 할배님 드시오니
한마음 높은 뜻이 한즈믄 이어내려
한겨레 한가락으로 길이길이 빛나리
* 永慕齋 : - 두문동 72현인 蔡王澤을 모신 사당
- 全北 群山市 聖山面 大明里
* 蔡王澤 : - 杜門洞 72賢人
- 고려 高宗朝(1214~1259)에 金紫光綠大夫 三師太師 門下侍郞 平章事 上護軍
判吏部事 太子太師에 오르심.
- 시조 景平公 諱 松年의 6世孫.
- 고려 34대 恭讓王 때, 神虎衛 保勝護軍 上將軍(족보에는 領護軍)에 재임 중에 고려 사직이
무너지고 李成桂의 조선이 개국되었는데, 新王朝 에서 출사를 회유했으나 이를 거절하고,
고려조에 충성을 바치며 不事二君의 충절과 지조를 지키기 위하여 개성의 동남쪽에 있는
不朝峴에 조복을 벗어 던지고 헌옷과 헌갓으로 갈아입은 후, 경기도 개풍군 光德面 광덕산
서쪽 기슭에 위치한 杜門洞으로 들어가 새로 개국한 李朝에 끝까지 出仕하지 않고 항거한
두문동 72현의 한 분이심.
- 부친인 少監公 諱 陽生께서는 앞으로 닥쳐올 禍를 피하기 위하여 은밀히 뗏목배를 마련해
두문동에 들어간 아들 왕택(본명 玉澤 ; 후에 고려 왕실에 대한 충절으로 王澤으로 개명)과
손자 孝順과 조카 智生 등 식솔들과 함께 한적한 밤에 개성 예성강변에서 망국의 한을 품고
정처없이 서해로 浮海하여 수일을 남하하던 중, 어느 강가의 갈대숲에 뗏목이 걸려서 멈추
게 되었는데 그 곳이 금강하구에 있는 西浦(月浦 ; 지금의 군산)이라, 여기에서 상륙하여 20
리쯤 거슬러 올라가서 당시로는 인적이 드문 산중오지로써 산세가 수려한 大明山 골짜기의
臨陂 상북면 香林佛舍(현재 서당골)에 삶의 터전을 잡아 은둔하면서 後學을 양성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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