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백수흑(知白守黑)
배일동
고수와 창자 사이엔 장단가락만 흐르는게 아니다. 둘사이에는 자질구레한 오만정이 가락과 함께 실려서 흘려야만 생기가 넘친다. 보는 사람의 눈에는 그저 소리꾼과 고수의 어울림이 조화롭게만 보이겠지만, 사실 그 속으로 들어가면 둘 사이에는 일호의 양보도 없는 치열한 서슬이 오고 간다. 그 서슬을 읽어내는 자가 진짜 귀명창인 것이다.
창자가 흑(黑)이 되면 고수는 백(白)이 되어 맞이하고, 또 고수가 흑수(黑數)를 던지면 창자는 백수(白數)로 응대 하고, 이렇게 흑백의 교접으로 소리판의 흥이 빚어 나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백수흑(知白守黑)의 논리다.
흰 종이의 여백을 계산하여 검은 먹을 운용 한다는 서예 이론이다. 글씨란 종이의 흰공간과 검은획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를 잘 나누어 계산을 해야 한다. 이 계산을 분포(分布)라 한다.
검은 먹의 양을 분(分)이라 하고 종이의 흰 여백을 포(布)라 하는데, 글을 쓸 때 분포의 균형과 대비에 따라 글씨의 형태...미가 생겨난다. 그래서 짐작농담(斟酌濃淡)이라 했다. 즉 짙거나 묽게 처리할 것을 미리 헤아려서 글을 써가는 거다.
소리와 북도 똑같은 이치다. 소리는 여백에다 흑수를 그리고가는 먹물과 같아 허공에다 무형의 음성을 던져(分) 성음의 수를 그려간다. 고수는 먹물을 받아들이는 흰 종이의 여백과 같아 소리꾼이 던져 놓은 성음의 문양에다 장단의 포치(布置)를 분명하게 하여 박과 박자의 대강을 잡는다.
그래서 흑백(黑白)이 상응(相應)하며 조화롭게 나가야 장단이 맞게되고 성음이 구별된다. 소리가 짙게 나오면 오히려 북가락은 비워두고 추임새로 응대할 수 있고, 소리게 묽게 나오면 북가락을 굵게 넣어 강약의 균형을 잡는게 궁합이 맞아 떨어지는 것이다. 고랑이 있으면 이랑이 있듯이, 그 고랑과 이랑의 곡선속에서 만물이 싱싱하게 자란다. 고수와 창자는 부부같이 서로 연분이 있어야하고 또 맞아야 한다. 서로간에 음양동정의 교차가 자연스럽고 저절로 어우러져버려야 판에 소리가 신명이 난다.
* 2015. 1. 2일자 페이스북에 게재한 배일동 선생의 글을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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