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묵화_묵란(墨蘭)의 잎 표현 방법
김성우의 그림여행 http://blog.naver.com/sagerain/100122434586
난초는 '그린다'는 말보다 '친다'는 말이 더 어울립니다.
"~을 치다"는 말은 예상외로 많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공을 치다. (부딪게 하다)
피아노를 치다. (부딪쳐 소리나게 하다)
볼링을 치다. (손에 든 물건으로 물체를 부딪게 하는 놀이를 하다)
못을 치다. (망치 따위로 못을 박다)
타자를 치다. (손으로 눌러 글자를 찍거나 신호를 보내다)
카드를 치다. (카드를 즐기다)
떡메로 치다. (반죽을 두들기다)
종을 치다. (소리를 내어 알리다)
개가 꼬리를 치다. (세차게 흔들다)
헤엄을 치다. (팔다리를 힘있게 저어 움직이다)
몸부림을 치다. (몸을 심하게 움직이다)
머리카락을 짧게 치다. (날이 있는 물체로 자르다)
적의 후방을 치다. (상대편을 공격하다)
눈웃음 치다. (웃음을 얼굴에 나타내다)
호통을 치다. (큰 소리를 내다)
도망을 치다. (달아나거나 빨리 움직이다)
사고를 치다. (속이는 짓을 하다)
시험을 치다. (시험을 보다)
점을 치다. (점괘로 길흉을 알아보다)
이렇듯 뜻을 살펴보니 '치다'라는 말이 어떤 의미가 있는 지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몇몇 다른 표현들이 있지만 대개 손과 관련이 있는 경우가 많고, 부딪는 등 격렬한 동작을 표현하는 말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난을 친다"는 것은 그 방식에 있어서는 붓으로 그리는 행위를 의미하지만 내면의 솟구치는 응어리를 드러내는 행위이기도 하기에 친다는 말이 어울릴 듯 합니다. 그것은 군자로 일컬어지는 매, 난, 국, 죽 중에서도 울분을 드러내기에 효과적인 화목이 난초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묵란으로 이름을 떨친 이들의 면면을 보면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유배생활과 은거생활을 했던 조희룡(1797~1859)과 김정희(1786~1856), 중국 보정부에 유폐되었던 흥선대원군(이하응,1820~1898), 중국 망명생활을 했던 민영익(1860~1914) 등이 그들입니다. 한이 서린 그림... "묵란도".
나라를 잃었기에 난을 그리되 뿌리가 묻혀 있어야 할 땅은 그리지 않았다는 중국 남송말(南宋末) 유민화가(遺民畵家) 소남(所南) 정사초(鄭思肖,1241∼1318). 그리고 조선 말기 주권을 잃었다 하여 죽음으로 항거한 민영환을 비롯하여 사람들. 죽음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나라 잃은 심경을 담고 있는 민영익의 "노근묵란도". 이 모든 것이 묵란을 표현할 때 가장 대표되는 이미지들입니다.
묵란을 배울 때 그저 모양새만 모방하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생각해봐야할 것입니다. 왜 묵란을 그리고자 하는지를 살피지 않고 그저 수묵화를 그리는 과정으로만 이해한다면 그 숨겨진 뿌리를 살피지 못하고 그저 화려하게 드러나는 꽃만 바라보는 꼴입니다. 그렇기에 묵란을 그리는 행위를 통해 궁극적인 목적을 먼저 생각해야 함은 당연한 일입니다. 난초를 그리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된다고 해도 뭐라 탓할 수 없지만 조형적 탐닉(耽溺)은 그 한계가 분명함을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문인화로 대표되는 수묵화는 화폭 속에 담겨진 조형 요소 하나하나가 그리는 이의 내면 세계와 연관되어 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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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묵화를 접하기 위해 선연습 과정을 마쳤다면, 그 다음 과정으로 난초를 그리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묵란 표현법 중 잎을 그리는 과정은 선연습의 연장 과정으로 느껴질 정도로 그 묘사 방식이 유사하고 공간을 가르는 선묘의 단순함으로 한지(韓紙)의 아름다운 분할 면을 표현할 수 있으며, 그어진 선의 굵기, 속도, 농도와 붓을 누르는 정도에 따라 난초의 생태 묘사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흔히 수묵화를 배우기 위해 한자 용어가 필요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는 그 의미를 함축적으로 담아내기 위해 사용되는 용어일 뿐 그 용어에 매여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서 미리 그 용어를 사전에 설명하고자 합니다.
중봉(中鋒) : 붓끝을 선의 가운데로 하여 긋는 것
편봉(扁鋒) : 측봉이라고도 하며 붓끝이 선의 가장자리로 향하며 긋는 것
순입(順入) : 처음 붓을 댄 방향 그대로 들어가는 것
역입(逆入) : 순입의 반대로, 처음 붓을 댄 방향의 반대방향으로 거꾸로 들어가는 것
돈(頓,조아리다) : 굵은 난잎 그리는 방식을 의미하며, 손에 쥔 붓을 눌러 그리는 것
제(提, 끌어 일으키다) : 가는 난잎 그리는 방식을 의미하며, 붓을 들어 올려 그리는 것
서미(鼠尾, 쥐꼬리) : 난잎의 끝부분으로 쥐꼬리 모양을 닮았다는 뜻
당두(螳肚, 사마귀 배) : 난잎의 굵은 부분 모양을 묘사 / 당랑두(螳螂肚)라고도 함
기수(起手, 붓을 일으킴) : 난잎의 가늘어지는 방향으로 붓을 운필하는 방법을 의미
정두(釘頭, 못의 머리) : 역입을 하여 그리는 난잎의 뭉툭한 시작 부분을 묘사
첨두(尖頭, 뾰족한 머리) : 순입을 하여 그리는 난잎의 뾰족한 시작 부분을 묘사
봉안(鳳眼, 봉황새의 눈) : 두 잎이 교차하여 생기는 반달모양(半月形, 봉황새의 눈모양)
파봉안(破鳳眼, 봉안을 깨다) : 봉안을 이루고 있는 공간을 세 번째 잎이 지나가 깨지는 것
어두(魚頭, 물고기 머리) : 하나의 먹이에 몰려드는 물고기 떼 모양을 비유로한 것
어두(魚肚, 물고기 배) : 물고기의 배 모양을 본떠 점차 안으로 휘어지는 두 곡선을 의미
단엽(短葉, 짧은 잎) : 뿌리 근처에 있는 새로 나온 잎
엽포(葉苞) : 뿌리 가까이에 위치한 작은 잎
단엽(斷葉,끊어진 잎) : 잎이 오래되어 끊어진 것으로 대개 마르고 둔하게 표현함
묵란(墨蘭) 기본선 표현법
난잎을 그릴 때는 역입하여 중봉으로 선의 굵기에 유의하면서 진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난잎을 그리는 데는 첫 획이 가장 중요한데, 이는 정두(釘頭), 당두(螳肚), 서미(鼠尾)의 삼법이 기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획은 첫 번째 잎과 서로 걸치어 봉황의 눈(鳳眼)과 같은 모양을 만드는 것입니다.
난잎을 그리는 데는 좌측에서 우측으로 그리는 방식과 우측에서 좌측으로 그리는 방식이 있는데, 난잎을 그리는 행위를 그린다고 하지 않고 별(撇)한다고 하는 것은, 서예를 할 때 별법(撇法)을 쓰는 것과 같은 데가 있기 때문입니다. 별(撇)이란 글자에 닦다, 흔들다, 치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별법은 날법(捺法), 적법(趯法) 등과 함께 해서(楷書)의 서법입니다. 난잎을 그릴 때 좌측에서 시작해서 우측으로 긋는 것이 순수(順手), 즉 순리에 도움이 되는 것이고, 반대로 우측에서 좌측으로 긋는 것이 이와 반대 되는 역수(逆手)라 할 것입니다.
처음 배우는 분들은 운필에 편한 순수(順手, 좌에서 우측으로 긋는 방법)를 먼저 익히고 점차 반대 방향으로 긋는 역수(逆手)도 익혀서 양쪽 모두 자유롭게 운필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만약 한쪽 방향으로 그리는 것에만 익숙해진다면 자유로운 묵란 표현이 어렵게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난잎 2선 긋기 연습은 기울기에 따라 변화하는 선의 굵기에 유의하면서 그려야 하는데, 난잎의 중간쯤 가늘어 지는 부분(提)을 그리다 보면 간혹 끊어지기도 합니다.
"부방약단약속 의도필불도(不妨若斷若續 意到筆不到)"
붓으로 그은 선이 끊어지더라도 그 뜻이 전해진다면 상관없음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난의 두 잎을 그려 봉안을 만들었다면 봉안을 깨는 세 번째 잎을 그려 기본형태를 완성해 봅니다. 이 세 필선을 중심으로 한 기본 형태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난의 필선은 곡선이지만 시작과 끝이 거의 직선에 가깝게 변환된다는 점과 첫 번째 필선을 따라가는 두 번째 필선의 중간부분을 부드러운 곡선으로 유지시켜야 한다는 점, 그리고 세 개의 필선 시작 점을 서로 다른 위치에 놓아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또한 세 필선 모두 시작점을 연장시켰을 때 반드시 한 곳으로 모이게 해야 하는데, 마치 먹이를 향해 한 지점에 모여드는 물고기의 머리 모양을 닮았다 하여 어두(魚頭, 물고기 머리)라고 부릅니다. 이는 필선의 수가 늘어나도 한 촉의 난을 그릴 경우에는 같은 조건을 갖게 됩니다.
난잎의 기본 3선 또한 반대 방향인 우측에서 좌측으로 그려 양쪽 방향 모두 익숙하게 실습합니다. 특히 우측에서 좌측으로 필선을 그을 때, 붓을 잡은 손과 손목, 팔꿈치를 일직선으로 놓고 붓을 밀고 가면서 그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붓이 좌우로 흔들려 곧고 유연한 필선을 구사하기 어려운 방법입니다. 이는 좌측에서 우측으로 필선을 그을 때를 다시금 상기하며 붓을 잡은 손 모양을 생각한다면 우측에서 좌측으로 그리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예를 들어, 테니스나 탁구 라켓을 손에 쥐고 공을 칠 때의 모습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라켓을 쥔 손의 반대쪽 방향으로 스윙하여 공을 치는 포핸드(forehand) 방식과 라켓을 쥔 손쪽 방향으로 스윙을 하여 공을 치는 백핸드(backhand) 방식을 비교하면 어느 쪽이 더 공을 치기 쉬웠었는지 금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난을 칠 때 어렵게 여기는 우측에서 좌측으로의 방향이 테니스 라켓을 쉽게 휘두르던 포핸드 방향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왼손을 주로 쓰는 사람의 경우는 그 반대가 되겠지요.
묵란 기본 형태의 여러 방식 중에 아홉 개의 필선으로 구성된 묵란을 들 수 있습니다. 1번과 2번, 3번은 앞서 그 방향을 익혔지만 나머지 여섯 개의 필선은 생소할 수 밖에 없으며, 자칫 너무 복잡한 듯 보이지만 4~9번 필선들을 따로 떼어 놓으면 너무도 단순한 방식입니다. 4번에서 6번까지의 모양은 7번에서 9번까지의 모양과 서로 대칭되는 형태를 지닙니다.
4번 필선은 밖으로 진행되다 다시 안으로 들어오는 형태이고 5번 필선은 밖으로 휘어지고, 6번 필선은 안으로 살짝 들어오지만 거의 직선에 가깝습니다. 특히 가장자리에 위치한 5번과 6번 필선이 이루는 형태가 물고기의 배 모양을 닮았다 하여 어두(魚肚, 물고기 배)라고 불립니다.
그리고 맞은편 7번에서 9번까지의 필선은 이와 대칭되게 표현하면 완성되는 것입니다.
엽포(葉苞) 단엽(短葉) 단엽(斷葉) 단엽(短葉)
난잎은 가장자리로 갈수록 길이가 짧은 단엽(短葉) 표현이 많아집니다. 이러한 난잎의 필선 표현은 대개 젖은 듯 윤기있고 날카롭게 표현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중간에 끊어진 단엽(斷葉)의 경우에는 필선을 마르고 둔하게 표현하여 오래된 느낌을 표현합니다. 그리고 뿌리 끝에 가까이 붙어있는 작은 잎인 엽포(葉苞)를 그릴 때는 위에서 뿌리 방향으로 붓을 강하게 긋는데, 그 끝모양은 가늘고 밑부분은 굵게 표현합니다.
주의해야 할 필선 방향(동일 간격 벌어지는 것,
한 점에서 만나는 것, 평행한 것, 십자 교차한 것)
그러나 이렇게 필선의 숫자가 많아지면 주의해야 할 필선의 방향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가장 빈번하게 나타나는 필선은 두 개 이상의 선들이 평행하게 그어지는 것인데, 특히 평행한 두 필선이 서로 교차하여 우물 정(井)자 모양을 만드는 것은 반드시 피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 필선들이 같은 간격으로 벌어져 마치 손가락 모양으로 되거나 세 개 이상의 필선이 한점을 지나치는 것 또한 주의해야 할 사항입니다.
아홉개의 필선으로 구성된 묵란 기본형태 또한 그 반대 방향으로 그어서 운필법을 연습합니다.
난잎의 운필법을 연습할 때 효과적인 방법으로 난 잎의 곡선 정도에 따른 다양한 기울기 연습입니다. 이는 좌측에서 우측으로, 그리고 우측에서 좌측으로 실습하면서 기울기에 따른 난잎의 방향을 자유자재로 운필할 수 있도록 하는 연습합니다.
이것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난의 뿌리를 가운데 두고 좌우로 방향을 옮겨가며 필선을 그어 종합적인 난잎 표현법을 완성합니다.
잎을 더하여 그린 묵란의 필선은 그 형태에 따라 달리 보이는데, 그 중 세로로 길게 그리는 것도 반드시 연습해야 할 부분입니다.
세로로 길게 그리는 구도는 대체로 세워서 잎이 위로 향하게 그리지만 전체 뿌리 방향과 길게 뻗은 난잎의 진행방향은 다르게 표현합니다.
세로 구도의 난잎 필선 또한 반대 방향으로 긋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기본 묵란 표현에서도 조금 다른 느낌을 살려 뿌리 방향이 수직으로 향하는 필선도 연습합니다.
가장 긴 첫 번째 필선의 경우, 세 번 꺾었다 하여 삼절(三折)이라 하는데, 난잎 끝 방향의 연장선이 땅으로 떨어지지 않게 주의하여 긋습니다.
이 역시 두 필선의 세 번 꺾인 삼절(三折)이 서로 얽혀 있는 모양으로 표현연습을 합니다.
그리고 난잎 필선의 주의사항을 상기하며 기본 아홉 개의 잎에다 잎을 더하여 표현합니다.
묵란의 잎표현 방법 중 마지막으로 두 포기 이상의 난을 한 화면에 표현하여 실습합니다.
< 다음은 묵란의 꽃표현 방법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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