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월의 강좌 (2)/해월의 한글서예 강좌

해월의 한글서예 강좌 (1)

채현병 2019. 3. 9. 22:20

                   海月 채현병의 한글서예 강좌 (1)                                  (2019. 3. 6)

 

    Ⅰ. 한글서예
   
  유네스코는 한글(훈민정음 해례본)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1997. 10)하였으며, 우리는 한글을 세계 제일의 자랑거리로 여기고 있다.
  올해는 한글을 창제∙반포(세종 28년, 1446년)한지 573돌이 되는 해이다. 그동안 세계 여러 나라들은 자국의 언어와 문자로써 세계문화시장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다각도로 힘을 기울이고 있을 때, 우리 한글은 많은 우여곡절과 변화를 겪으면서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로 자리매김하여 왔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한글의 연구는 소리중심으로 이루어져 왔으며, 자형(字形)과 조형성(造形性)에 대한 연구는 소홀히 여겼을 뿐만 아니라 전문 연구기관도 전무하다. 그래서인지 오늘날에는 ‘한글사랑’이라는 美名아래 서양 사람들이 손으로 쓴 그림문자 개념인 ‘한글 캘리그라피(Calligraphy)'가 난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현상은 디지털 산업사회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하여 ’새롭고 다양한 것‘을 추구한다는 관점에서 다소 수용할 수 있지만,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반포 이후 오랜 세월에 거쳐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 정착한 한글 자형(字形)의 장점인 ’선이 맑고 곧으며, 단정하고 아담한 글씨체‘가 우리들의 인식 속에서 점차 사라져 간다는 점에서는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아니 슬픈 일이다.

 

  서예는 시각적 부호인 문자의 가독성(可讀性), 변별력(辨別力), 예술성(藝術性)을 높이기 위하여 붓으로 글씨를 쓰는 예술이다. 그리고 한글서예란 한글로 사람들의 사상, 감정, 정서, 지식 등을 전달하거나 기록해 두기 위해 지면에 조형미를 살려 우리 전통의 붓으로 쓴 글씨 예술이다.
  한글 서체(書體)는 판본체(훈민정음 해례본체, 훈민정음 언해본체, 목판본체 등), 궁체(정자체, 흘림체, 진흘림체 등), 나름체(개인 나름으로 쓴 체)가 있다. 이 중에서 본 강좌는 나름체를 열외로 하고, 궁체와 판본체를 다룬다.


     1. 한글 서체(書體)의 특징

 

  세계의 수많은 글자 중에서 그 창제자와 창제시기, 그리고 창제원리를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한글뿐이다.
  글자는 음성언어를 근간으로 하여 생겨난 2차적 언어기호이다. 인류가 글자를 만들어 사용하게 된 동기는 음성언어의 순간성을 보충하고자 하는 의도, 즉 기억 보조 장치의 한 방편으로 필요했기 때문이다. 기억 돕기의 방편은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인류의 사고가 복잡해지고 주변의 현상을 다양하게 인식함으로써 음성언어가 발달하게 되고 이에 따라 그 정밀도가 높아졌다.

 

    1.1. 글자의 본질과 자형(字形)

 

  음성언어가 음소(音素)를 최소단위로 하여 운용되듯이 글자언어는 자소(字素)를 최소단위로 운용된다. 한글은 음소글자이기 때문에 음소와 낱자가 일치하며, 음성언어에서의 음소단위와 자소단위가 일치한다.
  음성언어는 음성형식과 언어형식의 일정한 규칙을 바탕으로 의사소통이 원만하게 이루어지는데, 글자언어는 음성형식 대신에 글자형식을 사용하여 의사소통이 이루어진다. 이 점을 바탕으로 하여 글자언어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단위인 ‘글자의 본질’을 밝혀 본다.

 

   1.1.1. 글자의 형식과 구성

  음성언어를 구성하는 최소단위는 음소(音素)이다. 음성의 변별은 음성형식이 가지고 있는 음성자질에 따르지만, 글자의 변별은 시각에 의존한 글자형식과 구성의 차이에 따른다. 음성언어는 뜻과 음성형식의 자의적 결합으로 성립되지만, 글자언어는 음가(音價)와 글자형식, 또는 뜻과 글자형식의 자의적 결합으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1.1.2. 글자의 기능

  글자가 가지는 기능은 음성언어와 마찬가지로 의사소통의 중심이 된다. 음성언어가 담화현장(談話現場)을 중심으로 한 청각성(聽覺性)을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진다면, 글자는 비담화현장(非談話現場)에서 시각성(視覺性)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음성언어는 태어나면서 주변청각환경을 통해 자연적으로 습득하는데 반해, 글자는 일정한 학습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습득할 수가 없다.
  글자를 통한 의사소통은 ‘읽기’와 ‘쓰기’로 이루어지는데, ‘읽기’는 시각에 의존한 인지적(認知的) 이해과정이다. 이 때 서체(書體)는 바로 인지(認知)의 효율성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게 된다. ‘쓰기’는 행위의 측면에서 보면 시간의 절약과 공간 활용의 효율성과 편이성을 고려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시간과 공간의 활용도가 높고 편이성이 확보된 글자는 글자생활에서 ‘우수한 글자‘인 것이다.
  동일 글자의 변이는 시간을 절약하고 공간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자연적으로 발생한다. 이는 로마자의 필기체, 한자의 초서, 한글의 흘림체에서 찾아볼 수 있다.

 

   1.1.3. 글자의 운용(運用)

  음성언어는 발음에 의존하는 것으로 조음적(調音的) 관점에서 음성기관의 움직임에 따라 나오는 소리가 변별력을 갖기 때문에 별도의 외적(外的)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글자는 기록이 중심이 되기 때문에 반드시 기록하기 위한 도구가 필요하다. 이를 통상 서사(書寫) 도구라 일컫는데, 그 종류에 따라 기록의 방편이 달라진다. 로마자의 서체는 유럽의 대표적 필기구인 ‘깃털‘이 영향을 준 것이고, 한글이나 한자는 ’붓‘이라는 필기구로 서체의 고유 특성이 생기게 되었다.
  서체(書體)에 미치는 또 다른 외적요인(外的要因)은 글자가 평면에 기록된다는 점이다. 음성언어에서 말하는 이가 자신의 심리상태나 지위, 신분, 분위기, 감정에 따라 ‘어조’를 달리 하듯이, 글자표기에서도 서사자(書寫者)가 자신의 심리상태 등을 글씨 형태에 반영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서체(書體)의 예술성이 발현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글자의 시각성, 예술성, 항구성과 서사도구의 특성이 어우러져 글자의 운용상(運用狀)을 보여준다. 이것이 바로 서예(書藝)이다.

 

    1.2. 한글의 서사적(書寫的) 특성

  

 1.2.1. 단형성(單形性)

  한글은 한 소리에 대응하는 낱자의 모양이 한가지뿐이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로마자의 경우는 한소리에 대응하는 낱자가 4개이고, 일본글자는 ‘히라가나‘와 ’가타카나’ 2개이고, 한자는 전서, 예서, 해서 등이 모두 모양이 다르며 갑골자와 금석글자로 들어가면 그 모양이 더욱 다르다.
  물론, 한글도 낱자의 분포에 따라 그 모양이 약간 다르나, 이는 다른 낱자와 어울려 음절글자를 이룰 때에 조화를 이루기 위하여 그 크기나 구성방향 등이 다소 변형되었으나 기본 글자의 틀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것은 글자의 모양을 아름답게 보이기 위한 것으로 문자디자인이나 서체상의 필법(筆法)과도 맥이 통한다.

 

   1.2.2. 선구성성(線構成性)

  세계의 모든 글자들은 점(點), 선(線), 호(弧)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한글은 창제 당시에 선(線), 점(點), 원(圓)으로 구성되어 내려왔다. 한자는 대부분 점, 선, 삐침으로 이루어져 있고 호는 거의 없으며, 일본글자 중 가타카나는 한자의 특징 그대로이며 히라가나는 대부분 점과 호로 이루어졌다.
  한글 창제 당시의 기본 낱자 28자의 획 구성을 보면 선(線)이 약 74%, 점(點)이 20%, 원(圓)이 6% 정도의 비율로 이루어져 있다. 한글은 기본 낱자를 ‘모아쓰기‘하면서 문자생활을 함에 있어서 서사(書寫)나 판각(板刻)으로 시대적 상황에 따라 변화를 거듭해 왔다.


   1.2.3. 합자성(合字性)

  한글의 또 다른 서사상(書寫上)의 특성은 낱글자를 모아 음절단위의 글자로 쓰는 ‘모아쓰기’이다. 로마자로 글자생활을 하는 나라에서는 음절단위로 쓰는 것이 아니라 낱말단위의 ‘풀어쓰기’로 한다.
  한글의 ‘모아쓰기’ 합자(合字)의 구성을 살펴보면 어떤 중성자(中聲字)는 초성자(初聲字) 밑으로 쓰고, 어떤 중성자는 초성자 오른쪽에 쓰며, 종성자(終聲字)는 횡(橫)으로가 아닌 종(從)으로 쓴다.
  ‘풀어쓰기’를 하는 글자에는 끝소리가 표시되지 않으며 ‘모아쓰기’ 경우에만 끝소리가 표시된다. 따라서 끝소리(終聲)를 글자로 표시하여 첫소리(初聲)와 나누어서 적는 방식을 사용하는 글자는 한글 하나뿐이다. 참고로 초성자와 중성자로 ‘모아쓰기’하는 글자는 힌디글자, 타이글자, 아랍글자, 히브리글자 등이 있다.

 

   1.2.4. 한글 합자성(合字性)의 조형적(造形的) 변별력(辨別力)

  필사(筆寫)에 따른 한글 글자꼴의 수월성(秀越性)을 보면 서사순서(書寫順序)에 의해 쓰게 되므로 조형성을 위한 작은 변화에도 그 변별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그러므로 정자(正字), 흘림, 진흘림에 의한 서체구분(書體區分)이 가능하다. 즉 글자형을 따로 익히지 않아도 서체에 맞게 다양한 흐름 축을 형성하면서 서사(書寫)할 수 있다.
  한글 초성자, 중성자, 종성자는 각기 다른 자형(字形)의 작은 변화로써 서사체계(書寫體系)를 이루면서 서로 어우러져 조형미를 만들어 간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는 자소(字素)의 서사순서(書寫順序)에 따라, 글자 합자(合字)에서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게 되는 합자 가로쓰기를 용이하게 할 수 있다. 오른쪽 줄부터 써 내려가는 ‘세로줄쓰기’는 서사적 예술성을 높일 수 있는 반면에, 서사시(書寫時) 시선장애(視線障碍)로 인하여 다소 불편한 점이 발생된다. 이는 수많은 습득과정을 거쳐 해소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1.3. 한글 서체(書體)의 자형적(字形的) 특성

 

  한글 서체의 기반이 되는 것은 훈민정음 창제 28자의 자형(字形)이다. ‘모아쓰기’를 기준으로 하는 한글 서체는 판각(板刻)과 활자(活字)와 필서(筆書)가 중심이 되어 발전해 왔다. 따라서 한글 창제 28자의 자형적(字形的) 특성을 밝혀보고자 한다.

 

   1.3.1 한글 창제 28자의 자형적(字形的) 특성
  한글은 창제된 글자로 서체 정립은 낱자 28자의 자형(字形)으로부터 출발한다. 훈민정음 반포당시 제시된 28자의 자형은 다음과 같다.

 

   1.3.2. 초성자(初聲字) 자형(字形) 17자 

. 아음자(牙音字) : , ,

. 설음자(舌音字) : , , ,

. 순음자(脣音字) : , ,

. 치음자(齒音字) : , , ,

. 후음자(喉音字) : , ,


  
   1.3.3. 중성자(中聲字) 자형(字形) 11자 

. 기본자(基本字) : , ,

. 초출자(初出字) : , , ,

. 재출자(再出字) : , , ,

 

   1.3.4. 종성자(終聲字) 자형(字形)

  종성자(終聲字)는 ‘끝소리 글자’로, 초성자(初聲字) 자형(字形)을 함께 쓰되 글자 아래에 종(從)으로 합자(合字)한다.


    1.4. 한글 창제 28자의 전형성(典型性) 확보
 
  한글은 이미 존재하는 글자를 모방하거나 변용한 것이 아니라 독창적으로 창제한 글자로서, 글자의 본(本)을 정확하게 제시할 필요와 함께 한글 서체의 전형성을 확보하였다.

 

   1.4.1. 창제 28자의 서체 전형성

 가. 자형(字形)이 바른네모꼴(正方形)로 획의 굵기가 일정하다.
 나. 획과 획은 대개 직각으로 만나며, 획의 끝과 모서리가 둥근 자형(字形)이다.
 다. 자형(字形)이 좌우, 상하, 대각선으로 대칭을 이룬다.
 라. 자형(字形)의 구성이 선, 점, 원인데 그 중에서 직선이 주종을 이룬다.
 마. 직선은 주로 수평선과 수직선이다.
 바. 낱자 하나하나에 글꼴의 유래와 함께 해당 음가(音價)를 제시하고 있다.
 
    1.5. 한글 서체의 생성(生成)과 변인(變因)

 

  한글은 음소(音素) 글자로 창제되었기 때문에 창제 당시에는 음소(音素)에 해당하는 닡자형이 주된 관심사였으나, 실제로 글자생활을 음절단위인 ‘모아쓰기’로 했기 때문에 자연히 합자형(合字形)에 관심을 두게 되어, 한글 서체는 합자(合字)의 구조 속에서 변이하게 된다. 한글 서체가 분화∙발전한다는 것은 기본 서체가 존재함을 전제로 한다. 그것은 바로 훈민정음 해례본에 나타나는 합자형(合字形)으로서의 서체이다.
  이후, 훈민정음에 대한 학습이 이루어지고 일반화하는 운용과정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훈민정음 서체가 변화∙생성하게 된다.

 

   1.5.1. 구성적(構成的) 변인(變因)

  한글은 음소글자로 글자생활에서는 낱자들을 모아쓰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는 훈민정음 해례본의 합자례(合字例)에서 제시된 것으로, 훈민정음 반포 이후 지금까지 그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초성자, 중성자, 종성자가 모여서 한 글자를 형성하며, 이로써 각 낱자는 분포환경을 가지게 되며, 이에 따라 자형(字形)이 변이하게 되어 하나의 서체(書體)를 형성한다.
  낱자 초성자(初聲字)는 정방형(正方形)이고, 중성자(中聲字)는 정방형이 아니다. 이들이 초성자, 중성자, 종성자(終聲字)로 모여 다시 정방형, 혹은 장방형(長方形)으로 구성되는 과정에서 자소(字素)의 크기와 가로, 세로 비율이 변하게 된다.
  예를 들면 초성자 ‘ㄱ’은 각 음절에 따라 그 분포환경이 달라지는데, 초성자 ‘ㄱ’의 오른쪽에 중성자(中聲字)가 결합하면 ‘가,갸,거,겨,기’가 되고, 초성자 ‘ㄱ’의 아래쪽에 중성자와 결합하면 ‘고,교,구,규,그’가 되며, ‘ㄱ’이 종성자(終聲字) 위치에 분포하면 ‘악,익,옥,욱’ 등이 된다. 즉 초성자 ‘ㄱ’은 그 분포환경 위치에 따라 ‘ㄱ’의 자형(字形), 가로 세로의 구성비율 및 크기가 달라진다. 이는 한글의 ‘모아쓰기’ 합자형(合字形)에 따라 생기는 근본적인 서체변이현상(書體變異現象)이다.

 

   1.5.2. 운용상(運用上) 변인(變因)

  ‘모아쓰기’가 서체 변이를 일으키는 구성적 변인이라고 하면, 글자쓰기 환경이라는 ‘실용성과 편이성에 따르는 운용적 요인‘도 서체의 변인(變因)이 된다. 글자의 중요한 기능이 ’기록보관‘임을 고려할 때 기록의 목적과 방편이 서체를 결정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훈민정음 반포이후, 이를 널리 보급하기 위해 다양한 간행사업이 펼쳐졌는데 이것의 기본이 ‘판각(板刻)’이었다. 이 때 서체(書體)가 판각의 편의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한글 자형에 직선적인 획이 많고, 각수(刻手)에 의해 서선(書線)이 변형되었다.
  서사도구(書寫道具) 또한 서체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작용을 한다. 훈민정음 창제 이후 서사도구는 한결같이 ‘붓’인 점을 감안할 때, ‘붓글씨’가 가지는 여러 특성이 서체의 변이를 이끌었다고 할 수 있다.

 

   1.5.3. 문화(文化) 환경적(環境的) 변인(變因)

  한글의 글자생활이 일반화되면서 서사자(書寫者)들이 가진 기존의 글자생활과 관련한 문화 및 환경적 요소들이 서체 변인으로 작용하였다.
  조선시대 한글 서사자들에게 영향을 끼친 대표적인 환경요소가 바로 ‘한자 서사 방법’이다. 당시 ‘내려쓰기’ 한자 서사 방법은 한글쓰기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일정한 한글 서체의 특성이 되었다.
  ‘오른손 쓰기’ 또한 서체 결정에 중요한 작용을 하였다. 인체공학적 측면에서 ‘오른손 쓰기’는 자연히 필획(筆劃)을 좌에서 우로,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방식을 취하게 한다. 따라서 한글의 필획은 초성자, 중성자, 종성자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고, 이 점이 ‘좌하우상형(左下右上形)’ 가로 서선(書線)이 생기는 서체를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결국 ‘내려쓰기’와 ‘오른손쓰기’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바로 ‘세로축흐름’이라는 한글 서체의 특성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특수한 계층의 특수 목적이 정형화된 서체를 낳게 하는 환경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조선시대 궁중이라는 특수한 문화 환경에서 궁중 여성들에 의해 새로운 서체인 ‘궁체(宮體)’가 형성되어 우리나라 한글 서예사(書藝史)에 길이 빛나는 금자탑을 세우기도 하였다.


      2. 한글 서체(書體)의 유형(類型)
 
     2.1. 한글 서체의 유형 분류기준

 

  서체(書體)도 음성언어와 마찬가지로 의사소통의 한 방편으로 실현되기 때문에 언어가 가지는 특성인 생성(生成), 성장(成長), 소멸(消滅)의 과정을 거친다. 다만 글자는 기록으로 보존되기 때문에 현재 쓰이지 않는 서체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복원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서체는 음성언어와 다른 특성을 지닌다. 이런 점을 통해서 볼 때 서체는 그 생성과 소멸 시기를 기준으로 분류해 볼 수 있다.

 

     2.2. 한글 서체 유형 및 명칭

 

   2.2.1. 훈민정음 해례본(解例本) 서체

  훈민정음 해례본 서체를 줄여서 ‘해례본체’라 부른다. 해례본체는 훈민정음 창제와 더불어 처음으로 목판으로 나온다. 여기에 나오는 글자는 낱자의 모아쓰기 형태로서 자형(字形)이 바른네모꼴이다. 서선(書線)이 곧고 획의 굵기가 일정하여 마치 그려서 디자인한 모양이므로 붓글씨의 맛은 없다.
  이 서체는 글자를 목판에 새기거나 활자로 만들면서 처음부터 붓의 맛보다는 칼의 맛이 강하게 강조되어 있으며, 창제 글자의 전형을 보여주는 형태로서 시각적으로는 강하고 뚜렷한 글자형을 나타내고 있다. 그 모체(母體)가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해례본체‘로 분류되는 자료로는 ① 훈민정음 해례본(1446), ② 용비어천가(1447), ③ 월인천강지곡(1447), ④ 석보상절(1447), ⑤ 동국정운(1448), ⑥ 월인석보(1459)가 있다.

 

   2.2.2. 훈민정음 언해본(諺解本) 서체

  훈민정음 언해본 서체를 줄여서 ‘언해본체’라 부른다. 언해본체는 당시 널리 사용되던 서사용구인 ‘붓‘의 특징을 살려서 쓴 서체이다. 다시 말하면 붓으로 쓴 육필(肉筆), 혹은 육필을 모본(母本; 등재본)으로 하여 판각(板刻)한 판본이나 활자본에 나타난 서체이다.
  이 서체는 당시 널리 쓰이던 한문의 해서나 행서에 익숙한 사람의 글씨를 등재본으로 하여 판각한 것으로 기필, 송필, 수필의 기맥(氣脈)이 뚜렷하고, 가로획 서선은 오른쪽으로 어깨가 차츰 올라갔으며, 서사(書寫)하는 순서에 의해 초∙중∙종성자가 놓이는 위치와 모양이 다르게 변하기도 하고, 획의 시작과 중간과 끝에 서사적(書寫的) 특징이 있어 획간(劃間), 자간(字間)의 흐름속에 필서(筆書)로서의 속도감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붓글씨체이다.
  ‘언해본체’로 분류되는 자료로는 ① 훈민정음 언해본(1447), ② 세종어제훈민정음(1459), ③ 정철, 양사언, 선조, 허목, 곽주, 효종, 김정희 등의 글씨, ④ 이선본(1690), ⑤ 성주본(1747), 관서본(1768), 오륜행실도(1797) 등이 있다.

 

   2.2.3. 궁중(宮中) 서체

  궁중 서체를 줄여서 ‘궁체’라 부른다. 궁체는 오직 궁중에서만 사용하던 서체라는 개념에서가 아니라 , 궁중이라는 특수 환경에서 창안되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궁체’는 붓으로 필서(筆書)한 흐름과 특징이 확연한 글씨로, 한자체(漢字體)나 해례본체 및 언해본체와는 아주 다른 독특한 붓글씨체로 발전하였다. 이는 궁중이라는 공간적 특수성과 궁녀라는 신분적 특수성을 배경으로 하여 창안된 붓글씨체이다.
  ‘궁체’가 하나의 서체로 완전한 필법과 결구(結構)로 자형(字形)이 정립되기까지는 오랜 역사적 과정을 거치면서 그 특징을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 서체의 명명(命名)에 있어 최초 창안자나 대표적 간본(刊本) 자료의 이름을 쓰지만, ‘궁체’만은 서체가 창안된 특수한 환경적 요인과 그 배경을 중시하여 명명한 것이다.
  ‘궁체‘의 자료로는 ① 정미가례시일기(1727), ② 옥원중회연(1800년경), ③ 낙성비룡(19세기경), ④ 서기이씨글씨(1850년경) 등이 있다.


     2.3. 한글 서체의 유형별 세분(細分)

 

 한글 서체는 유형별 하위 개념으로 정자(正字), 흘림, 진흘림으로 분류한다.

 

   2.3.1. 정자

  한 자(字) 한 자, 한 획(劃) 한 획을 연결 없이 또박또박 쓴 서체이다.

 

   2.3.2. 흘림

  획(劃)과 획의 붓길(筆意)에 따른 연결과, 글자와 글자 간의 연결과 흐름을 살린 서체이다.

 

   2.3.3. 진흘림

  글자와 글자를 흐르는 듯 연결하며 획을 축약(縮約)으로 변형하는 등, 연결 정도가 커서 어떤 것은 마치 암호처럼 사용한 서체이다.

 

   2.3.4. 한글 서체의 분류

  ① 해례본체
  ② 언해본체
     - 언해본체 정자(정자 언해본체)
     - 언해본체 흘림(흘림 언해본체)
     - 언해본체 진흘림(진흘림 언해본체)
  ③ 궁체
     - 궁체 정자(정자 궁체)
     - 궁체 흘림(흘림 궁체)
     - 궁체 진흘림(진흘림 궁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