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월의 강좌 (2)/해월의 한글서예 강좌

궁체 생성에 기여한 대표적 궁녀 / 상궁 조두대

채현병 2019. 4. 8. 20:28

   2.1.2. 궁체 생성에 기여한 대표적 궁녀 / 상궁(尙宮) 조두대(曺豆大)

 

  왕조실록의 기록에 의하면 상궁 조두대는 어려서 광평대군(廣平大君)의 가비(家婢

)로 궁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세조가 아직 임금이 되기 전인 잠저(潛邸)에서 수양대군(首陽大君) 내외, 도원군(桃源君) 내외를 뫼셨다고 한다. 상궁 조씨(曺氏)는 영특하여 한문 뿐 아니라 이두도 능통하였으며 범어(梵語)에도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세조 때부터 여러 가지 궁중 일을 맡아 보았고, 그로 인하여 왕의 각별한 사랑 속에 석보상절(釋譜詳節), 월인석보(月印釋譜)를 인출하는데 간여했으며, 능엄경(楞嚴經)언해, 내훈(內訓), 두시언해(杜詩諺解) 등 각종 언해본(諺解本) 발간에 기여하였다. 이 때 조 상궁의 직급은 종칠품 전언(典言)이었다.

 

   세조 밑에서 7년 동안 글 심부름을 한 전언(典言) 조두대(曺豆大)는 세조가 승하한 후 정희왕후가 수렴청정을 하는 동안 동조(東朝)에서 정원(政院)으로 오가는 문서를 담당했다. 그러다가 정희왕후가 수렴청정을 거두기 석 달 전에 소혜왕후가 펴낸 내훈(內訓)의 발문(跋文)을 썼는데, 그 때 그는 궁녀로서의 최고품계인 정5품 상의(尙儀)에 올라 있었다,

 

    상의(尙儀) 조두대(曺豆大)가 쓴 내훈(內訓)의 발문(跋文) 및 행적

 

   공경스렵게도 제가 인수대비(昭惠王后) 전하를 뫼시고, 세조대왕께서 왕위에 오르기 전의 잠저에서부터 양쪽 궁궐 일을 받들어 왔다. 대비전하께서는 밤낮을 가림이 없이 부지런하시어 게으르지 아니 하셨고 빈으로 책봉되신 후에도 부도(婦道)를 다함에 한결같으셨다...(중략)... 대비께서는 타고난 성품이 엄정하시어 왕손들 양육에도 엄격하시었다. 조그마한 허물도 덮어두시려 하시지 않으셨고 늘 정색으로 신칙하셨기에 세조 내외분은 그에게 폭빈(暴嬪)이라는 애정어린 별명까지 지으셨다.

   대비께서는 부녀자들의 무지함을 염려하시어 열녀전(烈女傳), 여교(女敎), 명감(明鑑), 소학(小學) 등의 책에 여자들이 꼭 알아야 할 것들이 흩어져 있음을 안타깝게 생각하시고 슬기롭게 이것을 한 책으로 묶어 펴내셨으니 이것이 바로 내훈(內訓)이라는 책이다. 비록 어둔하고 어리석은 사람일지라도 쉽게 배우고 익힐 수 있도록 우리 말로 옮겨 놓으시기도 하셨다

                                                                                 <성화 을미 맹동 십유오일 상의 조씨 경발>

 

   조 상궁은 삼대에 걸쳐 궁중생활을 했다. 평생을 인덕으로 살아온 정희왕후, 엄정하고 원칙적이었던 소혜왕후, 그 뒤를 이은 정현왕후에게 한결같이 충성스러운 상궁이었다. 조 상궁은 오랫동안 궁중에서 문건을 서사(書寫)하는 생활을 했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글씨가 전하는 것이 한 점도 없다. 그러나 내훈(內訓)의 편저자인 소혜왕후가 믿고 글씨를 쓰게 한 사람이라면 그의 글쓰기 솜씨는 당대 제일이 아니었을까 짐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