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궁체(宮體)
1. 궁체(宮體)의 개념
궁체는 지밀(至密)에 속하는 궁녀(宮中女官)들이 쓴 글씨체로써 “일정한 법도 안에서 맑고 깨끗하며, 바르고 단정하며, 정성이 깃든 글씨”이다.
1.1. 궁체(宮體)의 탄생
궁(宮) 안에는 500여 명 안팎에 달하는 궁녀(宮中女官)가 있었는데, 이 가운데에는 소주방(燒廚房), 세답방(洗踏房), 세수간(洗手間), 생과방(生果房) 등의 부서에 소속되어 있다. 이들은 대개 십이삼 세에 간택의 과정을 거쳐 궁에 들어오게 되는데, 기본적으로 궁녀가 지켜야 할 준엄한 규범수칙과 함께 한글을 깨치는 정도의 교육을 받는다. 이들 중에 별도로 지밀(至密)에 딸린 궁녀들은 윗전의 필요에 따라, 혹은 동조(東朝)가 필요로 하는 공문서 및 기타 문서를 작성하기 위해 엄격하고 철저한 글씨공부 과정을 거쳐 ‘궁체’라고 하는 독특한 서체를 창출할 수가 있었다. 그러므로 궁체는 멋을 부리는 글씨나 변형된 글씨를 용납하지 않았다.
궁체(宮體)는 세계의 문자사상(文字史上) 가장 특기할만한 문화유산이며, 여성사상(女性史上) 가장 보배로운 문자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궁체는 부드러움으로써 씀을 알고, 약함으로써 아름다움을 삼으며, 맑고 깨끗함으로써 한 점 흐트러짐이 없는 올곧은 마음가짐을 가지고, 바르고 단정함으로써 왕실의 법도를 지키며 윗전을 공경하는 것을 근본으로 한 글씨체이다. 그러므로 궁체는 제멋대로의 삐침과 흘림도 없고, 멋을 부리는 글씨도 일체 용납하지 않으며, 오직 바르고 단정한 글씨만 있을 뿐이다.
지밀에 속하는 궁녀들은 한글을 잘 쓰기 위하여 특별히 엄한 교육을 받았다. 글씨본을 바탕으로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분량을 써야 할 뿐만 아니라 기대한 만큼의 글씨를 써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궁체는 다른 어떤 글씨와도 다른 특성을 가진 하나의 독특한 유형(類型)으로 발달하였다.
1.2. 지밀궁녀(至密宮女)
궁녀(宮女)란 내명부의 총칭으로 궁중여관(宮中女官)을 달리 이르는 말이다. 궁녀는 정5품직인 상의(尙儀) 상궁(尙宮)을 최고로 하며 상공, 전빈, 전찬, 주궁 등 종9품까지 10품계로 나뉘어 있으며, 행사나 의식이 없는 평상시에는 상궁과 내인(나인)이라는 두 종류의 말로 불렸다.
지밀궁녀(至密宮女)란 지밀에 속하는 궁녀들로써 전체궁녀의 약 10%정도를 차지한다. 그 명칭이 말하듯이 대궐 안에서도 이른바 금중(禁中)인, 가장 지밀하고 중요하여 말 한마디도 새어나가지 못한다는 엄밀한 공간으로 왕과 왕비, 대비들이 생활하는 구중궁궐의 핵심이며 가장 깊은 곳인 내전과 침전에서 윗전의 수발을 담당하는 궁녀들을 말한다. 이들은 지밀상궁과 시녀상궁의 지휘아래 왕과 왕비, 대비, 동궁 등 윗전들의 시중을 들면서 신변보호와 기거, 의식, 침수에 따르는 모든 것을 살필 뿐 아니라 내전의 물품관리, 내시부, 내의원, 전선사(典膳司) 등과 긴밀한 교섭을 담당하고, 궁중의 대소행사인 가례, 진연, 진작, 그리고 묘견례(廟見禮), 다례 때에 윗전을 시위, 전도하는 업무와 서적의 관리 및 글 읽기와 쓰기를 담당한다.
이 외에 각 종실과 외척들의 집에 내리는 하사품의 관리와 대소사까지도 관여하며, 왕비나 대비의 특사로 연락을 담당하는 봉명상궁의 역할도 담당하고, 왕의 사친을 모시는 사당에 배치되기도 한다.
1.3. 서체명(書體名)으로써의 궁체(宮體)
서체명(書體名)으로 ‘궁체(宮體)’라는 말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다. 세조(世祖)의 비(妃) 정희왕후(貞熹王后)가 수렴청정을 하면서 정원(政院), 의정부(議政府)등 조정에 많은 한글문서를 보냈으나 그 모두를 언문교서, 언문교지, 언교 등으로 기록되어 있을 뿐, ‘궁체’란 말은 찾아볼 수 없다.
‘궁체’라는 말의 최초 기록은 이옥(李鈺, 영조36년~순조12년)의 문집 중에서 도시 부녀자들의 노래(俚言) 가운데 ‘사족녀(士族女)들의 노래, 아조(雅調)’에서 나온다.
早習宮體書(조습궁체서) / 일찍 익힌 궁체 글에
異凝微有角(이응미유각) / 이응자에 모가 뾰족
舅姑見書喜(구고견서희) / 글씨 보신 시부모님들
諺文女提學(언문여제학) / 언문 여제학 났구먼
이 기록으로 보아 적어도 영∙정조시대에는 궁체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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