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월의 뜨락/문학계 소식

제8회 한국시조협회문학상 시상

채현병 2020. 12. 12. 12:23

<한국시조협회문학상 대상 수상작>

 

낙엽 / 천옥희

 

아름다운 날들이 바람에 날려가네
재회의 약속조차 할 수 없는 이별을
저렇듯 아무렇잖게 빙글 돌고 가다니.

 

 

<한국시조협회문학상 심사평>


            [좋은 시조란 정제된 형식의 틀 안에서
              율격이 살아나고 시혼이 꿈틀대야]


 한국시조협회 문학상은 회원들의 작품활동 활성화와 창작 동기 부여를
위해 매년 협회 기관지 ‘≪시조사랑≫ 여름호와 겨울호’에 수록된 작품 중
에서 뛰어난 작품을 선(選)하여 수여하는 시조문학상이다. 벌써 제8회가 되
었으니 문학상으로서의 연륜과 권위가 묻어난다.


 지난 11월 11일 오후 2시에 심사위원 3인이 모여 ‘제8회 한국시조협회
문학상’ 심사에 들어갔다. 이번 심사대상작은 ‘≪시조사랑≫ 18호와 19호’
에 수록된 회원들의 신작시조 532편이었다. 이 중에서 수상작 몇 편을 뽑는
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지만, (사)한국시조협회의 효율적인 심사과정
덕분에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최종심사까지 마칠 수 있었다. 그래도 워낙
작품의 수준이 높아 쉽게 결정할 수는 없었다.


 우리 협회의 고문단 및 부이사장단의 예심을 거쳐 본선에 오른 작품 수
는 50편이었다. 이 중에 심사위원 3명의 숙고를 거쳐 9편의 작품을 뽑아

결선에 올렸다. 결선에 오른 작품은 <가야금 소리> <그 가을의 메아리>

<낙엽> <대추볼> <만추> <바다와 냇물의 속삭임> <바람 부는 날>

<윤회> <홍시>이다. 엄정한 심사를 위해 시조시인의 이름을 삭제하였기
때문에 누구의 작품인지는 전혀 알 수 없도록 하였다.


 좋은 시조란 시학적(詩學的) 기반이 잘 다져진 시조이다. 시조의 정제된
형식적 틀 안에서 율격이 살아나고, 현대라는 시대정신(時代精神) 속에 치
열한 시혼(詩魂)이 꿈틀대고, 냉철하고 예리한 시선 속에서 온유돈후(溫柔
敦厚)한 성정(性情)을 살려내야 좋은 시조라 할 수 있다. 시조에 흐름이 있으
면 굽이가 있어야 하고, 마디가 있으면 풀림이 있어야 한다. 세련된 언어의
조탁과정(彫琢過程)을 거친 시상(詩想) 전개능력은 좋은 시조로서 갖추어야
할 중요한 항목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수상작을 선(選)하다 보니 여간 어려
운 게 아니었다. 여기에 결선에 오른 아홉 편의 시조 역시 좀처럼 우열을 가
릴 수 없는 수준 높은 작품들이었다.


 심사위원 세 사람은 숙의에 숙의를 거쳐 본선에 오른 아홉 편의 작품 중
에서 내면적 심리의 흐름을 감각적으로 형상화하는 데 성공한 천옥희 시조
시인의 「낙엽」을 대상작으로 선(選)하고, 본상 수상작에 이미숙 시조시인
의 「홍시」를 뽑고, 김성덕 시조시인의 「만추」와 김성수 시조시인의 「바람
부는 날」을 작품상으로 뽑았다. ‘제8회 한국시조협회 문학상’ 수상작 4편
을 선하고 나니 공교롭게도 단시조 2편과 연시조 2편이다. 그만큼 ‘단시조
의 중요성이 부각 되고 있다’라는 방증이 아닐까?


 대상(大賞) 수상작 「낙엽」은 천옥희 시인의 단시조로, 흔히 볼 수 있는 우
리 주변의 자연현상을 냉철하고 예리한 시선으로 포착하여 온유돈후(溫柔
敦厚)한 세계로 승화시킨 수작(秀作)이다. 아주 평이한 소재(낙엽)를 단시조
삼 장 속에 묻어두고 대우주 삼라만상의 이치를 아무렇지도 않게 아주 가
볍게 풀어내는 솜씨는 천옥희 시인만이 누릴 수 있는 시선(詩仙)의 세계이
며, 평생을 쌓아 온 경륜의 세계이고 자연까지 관조할 수 있는 격물치지(格
物致知)의 세계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새기면 새길수록, 읊으면 읊을수록
맛깔나는 시조이다. 우리네 선조들은 시조를 ‘악(樂)의 도(道)’라 하여 청구
영언(靑丘永言) 서문(序文)에서 ‘즐거워하면서도 넘치는 일이 없고(樂而不
淫), 슬퍼해도 상심의 빛이 없으며(哀而不傷), 원망으로 해소하더라도 노여
워하는 빛을 띠지 않아야 한다(怨而不怒)’라고 하였다.

 

 본상(本賞) 수상작 「홍시」는 태금 이미숙 시조시인의 3수 연시조이다.
<홍시>는 대 수술을 받은 어느 여류시인의 쾌유를 빌며 지은 시조이다. ‘가
지 끝에 명줄 걸고 매달린 홍시 하나. 무력한 신음 소리가 허공을 헤매는데
산까치가 쪼아댄 폐부에선 선혈이 낭자하고, 목덜미 시린 영혼이 쉼표를
찍던 날에는 업장을 비우는 듯 핏빛 머금은 부전나비가 파닥거리는 것 같
다.’ 연시조의 장점을 최대한 살린 시조로 홍시를 의인화하여 스러져가는
생명의 마지막 순간을 처절하리만치 잘 표현하였으나, 오히려 너무 처절하
여 쾌유를 비는 시어(詩語)로서의 적절성에 의문부호를 찍는다. 시상(詩想)
전개과정에서 잘 훈련된 언어 감각으로 조탁하여 뽑아낸 수작(秀作)이라
본상 수상작으로 하였다.


 작품상 수상작은 김성덕 시조시인의 「만추」와 김성수 시조시인의 「바람
부는 날」이다. 김성덕 시조시인의 4수 연시조 「만추」는 시상(詩想)의 전개
과정에서 다소 무리한 부분이 보이지만 깊어가는 가을 풍상(風霜)을 아주
밀도 있게 그려냈다. ‘서걱이는 낙엽’과 ‘무수한 그리움’과 ‘후회의 시간’과
‘빛바랜 사념’을 가을 속에 묻어두고 모두가 이별하는 자리에 화자는 어디
로 가야 하는가? 화자는 그가 살아온 길, 또 살아갈 길이 이별 속에 묻힌다
해도 바람의 지문을 밟고 한 길씩 깊어만 가는 계절을 향해 달빛 속의 아리
아처럼 나아가고자 한다.
 김성수 시조시인의 단시조 「바람 부는 날」은 바람 부는 가을날 달 밝은
밤에 섬광처럼 스쳐간 시상을 추억의 언덕에서 순간적으로 담아낸 작품이
다. 그래서 시상이 생생히 살아 움직인다. 바람이 몹시 부는 날에 화자는 걱
정이 태산이다. ‘모처럼 펼쳐놓은 달님의 저 피륙들이 밤바람에 구겨지면
어쩌나?’ 얼마나 해맑은 착상인가. 화자는 맑은 동심의 세계에 빠져 있다.
그리고 추억에 빠져 달빛 펼친 채로 시조를 쓴다.
‘時調’라는 특성에 알기 쉽게 접근한 수작(秀作)이다.


                                        심사위원 : 원용우, 이석규, 채현병(심사평)

 

<수상 소감> 천옥희

 

 낙엽이 흩날리는 날에 제가 쓴 시조 「낙엽」이 ‘한국시조협회문학상’ 대
상에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낙엽」을 대상으로 뽑아주신 심사위원님 고맙습니다. 하나님의 선물같
이 제게 온 대상의 무게가 무겁지만, 시조 쓰기에 더욱 열심을 내라고 주신
따뜻한 격려로 다가옵니다.


 바람에 날리어 가는 낙엽을 보면서, 태어나고 자라고 빛나고 퇴색되어
세월 속에 실려 가는 인생을 생각합니다. 낙엽에는 푸른 날의 꿈이 있고 붉
게 익는 사랑이 있고 헤어지는 아픔도 보입니다. 모든 것을 초월한 듯 순응
하는 순종도 있습니다. 마지막 잎사귀까지 떠나보낸 나뭇가지 사이로 하늘
빛이 가득 찰 때, 떠나온 나무에게 자신을 거름으로 주는 기쁨도 있을 것입
니다.


 발등에 얹힌 낙엽을 주워들고 햇빛에 비춰 봅니다. 풋풋한 마음으로 만
나고 함께 꿈을 꾸면서 지내온 정다운 인연들이 어립니다. 만날 날은 없어
도 언제나 맘속에서 저를 보는 그리운 얼굴들도 보입니다. 마음과 마음으
로 정을 쌓고 나눈 나날들이 저녁 어스름에 잠기는 그림자처럼 사라지는
때가 오리니, 아름다운 안녕을 위하여 더욱 사랑하며 살라고 낙엽이 제게
말해 줍니다. 낙엽의 현성을 닮아야겠습니다.
회원님들의 행복과 한국시조협회의 발전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대상 수상자 시조시인 천옥희 프로필

 

아호: 남정(南汀)
계간 ≪시조생활≫ 신인문학상 등단(2001)
서초문인협회 부회장, 한국시조협회, 한국문인협회,
세계전통시인협회한국본부,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시천시조문학상, 서초문학상, 한국시조협회문학상 본상 수상
시조집: 오늘 당신을 만났어요, 강둑에서 쓴
편지(한영대조시조집), 사랑의 기쁨
낙엽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