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월의 뜨락/문학계 소식

2022 신춘문예 시조부문 당선작

채현병 2022. 1. 11. 00:14

2022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서울신문>

 

           길 고양이 / 배종도

 

서울역 앞 도로변에 고양이를 그렸습니다.

여기저기 깊은 상처 곤두세울 털도 없이

더께 껴

비루먹은 몸

박제되어 갑니다.

 

블랙홀 소용돌이 에돌아서 피했지만

오가는 자동차들 곡예 하듯 스쳐 가는

아찔한 순간, 순간은

숨이 턱턱 멈춥니다.

 

지상의 끝 간 데쯤 눈을 감고 웅크릴 때

심장에서 새는 피가 잔등 위에 그린 장미

그 꽃잎 바로 뒤편에

이정표가 있습니다.

 

경적의 여운들이 동동걸음 치는 곳에

왔다 가는 전조등이 어둠 몇 술 들어내고

눈을 뜬

개밥바라기

밝은 손을 내밉니다.

 

* 심사 / 이근배, 한분순

 

 

<조선일보>

 

            허블 등대 / 박샘

 

날리는 모래들이 눈에 자꾸 끼어든다

빠지고 싶어 했던 깊이가 있었다고

열리면 닫히는 문을 열고 또 연다

 

떴다가 감았다가 점멸하는 등대처럼

별이 든 눈에서는 깜빡이면 반짝여서

출처를 밝힐 필요가 모래에겐 없었다

 

들 만한 깊이라면 찾기가 쉽지 않아

운석을 지나왔고 사막을 건넜으나

빠지면 나오지 않아 없다고도 할 수 있다

 

껐다가 다시 켜진 반복은 언제 쉬나

왔다 간 잠이 또 온 불면의 행성에서

모래는 침몰을 향해 국경선을 넘는다

 

* 심사 / 정수자

 

 

<동아일보>

 

      꽃을 더듬어 읽다 / 김성애

 

리어카와 한 몸으로 꾸뻑이는 할머니

먼 길 걸어오셨나, 가슴이 흘러내린다

바람은 소리를 접어 산속으로 떠나고

 

비 맞아 꿉꿉해진 골목들의 이력같이

소나무 우듬지에 걸려있는 저 흰구름

공중에 새를 날려서 주름살 지워낸다

 

색 바랜 기억들이 토해놓은 노을인가

중복 지난 서녘에 붉은 섬 둥둥 띄워

초저녁 봉선화처럼 왔던 길을 되묻고

 

* 심사 / 이근배, 이우걸

 

 

<매일신문>

 

          재활병원 / 정경화

 

바장이던 시간들이 마침내 몸 부린다

한 평 남짓 시계방에 분해되는 작은 우주

숨 가삐 걸어온 길이

하나 둘씩 드러난다

 

시작과 끝 어디인지 알 수 없는 하늘처럼

종종걸음 맞물리는 톱니바퀴 세월 따라

녹슬고 닳아진 관절

그 앙금을 닦는다

 

조이고 또 기름 치면 녹슨 날도 빛이 날까

눈금 위 도돌이표 삐걱거리는 시간 위로

목 붉은 초침소리를

째깍째깍 토해낸다

 

* 심사 / 이종문

 

 

<국제신문>

 

          어머니 MRI / 이규원

 

미궁 속 당신의 뇌를 나는 전혀 모른다

아는 것은 낮은 코 주름진 눈 옅은 눈썹

쭈글한 얼굴이지만 팽팽했던 연륜 너머

 

도대체 뇌 속에 뭐가 몰래 스민걸까

보이고 싶지 않을 폐쇄성을 비춰보며

경색된 초미세 혈관 병변까지 들춰낸다

 

치명적인 과거는 소음 속에 분진 되고

멎을 듯한 들숨과 날숨 근육마저 경직되어

사십 분 그 시간 속이 이어질 듯 떨고 있다

 

시상면(矢狀面)의 용종과 심란한 비린내

우지 마라 괘안타 살 만큼 살았으니

망(望) 구십, 턱 막혀버린 깊고 깊은 우물이다

 

* 심사 / 이승은, 전연희

 

 

<불교신문>

 

        내성천변 물래실 / 구지평

 

어정쩡한 물안개가 저녁 강을 서성이다

속기 벗는 투명함에 산 빛이 검어질 때

실골목 저뭇해지는 내성천을 감싸고

 

굼닐대던 저녁연기 모래톱으로 불러내면

속 깊도록 시(詩)에 숨어 우련한 물래실이

갈라진 시간 틈새로 제 몸피를 드러낸다

 

허물어진 돌담 너머 마당귀에 마른 장작더미

텅 빈 방 잠긴 시간 푸른 여백 문장인데

이제야 적요를 푸는 한 올 한 올 자화상

 

평면으로 구겨지는 빛바랜 담초(談草) 위에

창문마다 달이 뜨면 거기에, 아! 거기에

묏등에 답청하시는 어머니가 서 있네

 

※물래실 : 경상북도 예천군 마을 이름

 

* 심사 / 문태준

 

 

<농민신문>

 

           기울다 / 홍외숙

 

5.5도 기운 탑처럼 5도 휘어진 척추

중력도 비켜 가는 지구 위의 작은 행성

내 몸은 피사의 사탑, 기울기가 생겼다

 

마음의 길 따라서 기울어지는 몸길

애 끓인 날 수만큼 아파하고 있었겠다

몸에도 길이 있다는 걸 이제야 알겠네

 

숨어 휘청거리는 탑, 어쩌지도 못한 채

막막한 중심은 자꾸만 넘어진다

너에게 기우는 마음, 무중력에선 직선일까

 

* 심사 / 정수자, 염창권

 

 

<경상일보>

 

          오래된 꽃밭 / 정경화

 

이른 가을 강쇠바람 시린 상처 들쑤신다

움켜쥔 시간만큼 안으로만 말라 가다

까맣게 옹이가 되어 불길 적막 견디는 날

 

핏기 없는 손톱 끝에 긴 침묵이 묻어나고

비 젖은 목소리로 귓바퀴가 울려올 때

선홍빛 흉터 하나가 겹무늬로 앉는다

 

벼룻길 하나 없는 삶이 어디 있겠는가

끝물 동백 이우는 해 잡았다 놓는 바위 난간

아찔한 순간순간이 모두 다 꽃밭이다

 

* 심사 / 민병도

 

 

<경남신문>

 

              달의 뒤축 / 정두섭

 

굽 닳잖게 살살 가소

얼매나 더 산다꼬

잦바듬한 달이 간다 살 만큼 산 달이 간다

작년에 갈아 끼운 걸음으로 아득바득 가긴 간다

 

너저분 문자향을 공들여 염하고서

널브러진 서권기 오물오물 씹으면서

골목을 통째로 싣고 살 둥 죽을 둥 가긴 간다

 

참 서럽게 질긴 목숨이 등허리 휜 달빛을

닳고 닳은 달빛을 흘리지 않아, 시방

만월동

만월 수선소 일대가 무지로 깜깜하다

 

* 심사 / 김진희, 장선진

 

 

<부산일보>

 

           삭제하다 / 전영임

 

누구 하나 기별 없는 전화기를 매만지다

도무지 알 수 없는 번호들을 지운다

절두산 망나니 손이

칼춤 추듯, 칼춤 추듯

 

삭제한 낯선 이름 온 저녁을 붙잡는다

단칼에 날린 순간 불현듯 떠오르는

아뿔싸, 목을 벤 후에

도착한 어명 같은

 

산다는 핑계 속에 까마아득 잊혀져간

나는 또 누구에게 삭제될 이름일까

희미한 번호를 뒤져

늦은 안부 묻는다

 

* 심사 / 이우걸

 

 

<한라일보> / 수상작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