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신(死六臣) 역사공원(歷史公園)
-사육신이 남긴 시조-
海月 채 현 병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된 사육신묘는 오늘날 성역으로 가꾸어져 있다. 한강 인도교와 노량진역 중간의 높은 언덕에 자리한 사육신묘는 조선조 단종을 강제로 내쫓고 왕위를 빼앗은 세조에 항거하다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 김문기 등 일곱 충신 절사의 묘역이다.
거열형을 당한 이들은 3일간 효수(梟首)되었는데, 어두운 새벽을 틈타 생육신의 한 사람이던 김시습이 이들의 시신을 수습, 한강을 건너 노량진에 이들의 시신을 모셨다. 이 묘가 사육신묘의 시초이다. 이후 200여 년이 흐른 뒤, 숙종은 사육신의 충성심과 장렬한 의기를 추모하기 위해 1681년(숙종7년)에 이곳에 서원을 세우고, 정조 6년(1782)에는 신도비(神道碑)를 세우고 제사를 지냈다.
사육신 공원(死六臣公園)은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동에 있는 사육신묘와 그 외 사육신비 등의 유적지를 공원화한 곳이다. 원래 이곳에 있던 성삼문 · 이 개 · 박팽년 · 김문기의 묘에, 하위지 · 유성원의 가묘를 새로 조성하였다.
총 면적 49,400㎡에 33종 15,000주의 수목으로 조성된 사육신 공원에는 사당인 의절사, 홍살문, 삼문(불이문), 육각비, 신도비 등이 있다. 신도비 비각과 마주 보고 있는 육각형의 사육신비는 1955년에 세워진 것이다. 현재 사육신공원은 봄이면 벚꽃 등 갖가지 꽃들이 피어나고 여름에는 녹음이 시원해서 시민들이 많이 찾는다.
(위치 /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로 191)
■ 성삼문(成三問, 1418~1456)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고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얏다가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 하리라
수양산 바라보며 이제(夷齊)를 한하노라
주려 죽을지언정 채미(採薇)도 하는 것 가
아무리 풋새엇 것인들 그 뉘 땅에 났더니
■ 박팽년(朴彭年, 1417~1456)
금생여수(金生麗水)라 한들 물마다 금이 나며
옥출곤강(玉出崑岡)이라 한들 뫼마다 옥이 나랴
아무리 여필종부라 한들 임마다 좇을소냐
까마귀 눈비 맞아 희는 듯 검노매라
야광(夜光) 명월(明月)이 밤인들 어두우랴
임향한 일편단심이야 변할 줄이 있으랴
■ 하위지(河緯地, 1412~1456)
객산문경(客散門扃)하고 풍미월락(風微月落)할 제
주옹(酒甕)을 다시 열고 시구(詩句)를 흣부르니
아마도 산인득의(山人得意)는 이뿐인가 하노라
전원(田園)에 남은 흥(興)을 전나귀에 모두 싣고
계산(溪山) 익은 길로 흥치며 돌아와서
아이야 금서(琴書)를 다스려라 남은 해를 보내리라
■이개(李塏, 1417~1456)
창밖에 혔는 촛불 눌과 이별 하였관대
눈물을 흘리면서 속 타는 줄 모르는고
우리도 저 촛불 같아여 속 타는 줄 몰라라
■유성원(柳誠源, ?~1456)
초당(草堂)에 일이 없어 거문고를 베고 누워
태평성대(太平聖代)를 꿈에나 보려터니
문전(門前)에 수성어적(數聲漁笛)이 잠든 나를 깨와라.
■ 유응부(兪應孚, ?~1456)
간밤에 불던 바람 눈서리 치단말가
낙락장송(落落長松)이 다 기울어 가노매라
하물며 못다 핀 꽃이야 일러 무엇 하리오.
■김문기(金文起, 1399~1456)
벽해는 아스라이 땅끝에 망망하니
함께 가고파도 갈 수 없는 몸이기에
차디찬 눈보라 속을 견디어 머무르리.
(서사가 있는 시조인방 야외학습, 2024.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