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서공단(典書公壇)에서
海月 채현병
세 분이 배 위에서 높은 뜻 새기시고
바닷가 새로 일궈 낟알을 거두시니
이 쌀이 임인듯하여 눈물 짓고 계시네
(2009.1.4)
전서공단(典書公壇) : 신답 서보공을 모신 곳
충청남도 천안시 목천읍 동리
전서공(典書公) 서보(徐輔)
호(號)는 신답(新畓). 이천서씨(利川徐氏).두문동 72현.
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써 문장이 뛰어나고 몸가짐이 중후하여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품으로 간성왕조에 등과하여 벼슬
이 공조전서(工曹典書)에 이르심.
고려의 운이 다하매 송악산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시다 뜻을
같이한 채(蔡),박(朴)전서공과 벽란진(碧爛津)을 건너며 백이
숙제(伯夷叔齊)의 충절을 다짐한 후에 채(蔡)전서공은 다의촌
(多義村)으로, 박(朴)전서공은 고산(高山)으로, 서(徐)전서공
은 평산(平山)으로 들어가심. 평산 남연화동(南蓮花洞)에 들
가신 公은 마을 동남쪽에 바위돌을 성처럼 쌓아 놓고서 그 쪽
(한양)을 향해 바라보지도 않으심.
성안쪽에 있는 띠비밭을 일구어 새로이 논을 만들어 벼농사를
지으시고, 이 논에서 생산한쌀을 옥(玉)이라 하여 왕씨(王氏)
에 대한 충의를 대신하심.
그리하여 신답(新畓)이라는 호로 칭송 받으시다가 향년 70 세
에 돌아가셨으니 고려조에 대한 충절을 몸소 실천한 분이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