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월의 시조마루/시조학

가론(歌論) / 시조는 읽지 않고 읊어야... / 윤재근교수

채현병 2011. 5. 17. 23:47

 

         <歌論>

             "時調는 읽지 않고 읊어야 제대로 즐긴다 할 수 있어"

 

                                                                                                - 윤재근 교수 -

 

윤재근 교수, 詩·樂 이어 歌論, 일본·서양식 '시가 이해'에 비판

 


현재 한양대 명예교수(77·사진)인 그의 이름 석 자는 20년 전쯤 광화문 지하도 벽 광고 문안에 자주 등장했다.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마라'―. 장자 철학 우화집 총 3권은 100만질 넘게 팔렸다. 생계를 꾸리는 단계는 이미 넘어섰다. 그런 그가 1039쪽짜리 대작을 들고 돌아왔다. 주제는 전혀 다르다. '가론(歌論)'(나들목). 내용도 한문과 이를 풀어쓴 한글이 빽빽하게 차 있어 무슨 경전 해설서 같다.

윤 교수는 1990년 시론(詩論), 2008년 악론(樂論)을 썼다. 우리 전통 시가(詩歌)사상을 학문적으로 논한 3부작의 완결편인 셈이다. 그의 입장에서는 90년대 초반 노장(老莊) 우화집이 오히려 외도(外道)일 수 있겠다.

그는 일제강점기 우리가 수입한 서양의 시(poetry) 교육에 의해 고유한 시가(詩歌) 정신을 잃어버렸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지금 우리나라 시문(詩文)은 제 말을 버리고서 타국의 말을 따라 한다. 매우 서로 같다고 한들 그것은 단지 앵무새 인간의 말일 뿐이다." 김만중의 '서포만필'에 나오는 대목이다. 윤재근은 지금 우리가 그때보다 더 심한 앵무새 인간이 되어 구미 문화를 좇는 그림자 노릇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경남 함양 출신으로 어릴 적 서당교육을 받았다. 대학(서울대)에선 영문학, 같은 대학원에선 미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경희대 대학원 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영문학으로 갔던 그는 왜 다시 고전 시가로 돌아왔을까.

"선대(先代)가 물려준 즐거움, 즐거워하는 방법을 밝히고 싶었습니다. 조상들의 시와 노래를 우리는 서양식으로 번역해서 읽을 뿐입니다. 제 아버지 때만 해도 시조를 읽는 게 아니라 읊었습니다. 지금은 읊는 법을 잊었지요."

인문학에서 통용되는 어휘 대부분이 선대에게 물려받은 것들이 아니라 서구 문물을 수용하기 위해 들여온 일본식 조어들이라는 점도 큰 장애다. 그는 이를 회복하기 위해 맨 밑의 받침돌을 놓는 심정으로 시(詩)·악(樂)·가(歌) 3부작을 썼다고 했다.

"시론·악론·가론을 관통하는 것은 화(和)입니다. 같이 노래를 한다고 치면 내가 없어지고 하나가 될 뿐입니다. 시를 읊거나 노래 부를 때 우리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소리를 탈 뿐입니다."

동료 학자들보다 일찍 컴퓨터를 쓰기 시작했다는 그는 "컴퓨터에 아직도 책 여러 권 분량이 저장돼 있다"고 했다. 윤 교수는 "그걸 다 책으로 낼 때까지는 건강해야지요"라며 올 때와 마찬가지로 지하철을 향해 걸어갔다.

 

                                                                                                * 출처 : 조선일보 (2011. 5.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