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의 향기와 정체성 확립의 문제
이광녕(문학박사, 시조시인)
Ⅰ. 들어가는 말
우리의 전통 시조는 격조와 운치가 넘치는 우리 민족만의 독특한 국민문학이다. 초 ․ 중 ․ 종장 3장으로 나누어져 3‧4조와 4‧4조의 기본 율격을 바탕으로 호흡이 멎어질 듯 굽이치며 반복적 리듬으로 이어지다가, 종장에 이르러서는 3‧5조로 꺾어지면서 높은 절벽에서 쏟아져 내리듯 폭포수 같은 긴장감을 조성하면서, 마지막엔 잔잔한 물거품처럼 4.3조의 리듬으로 여운을 남기는 우리 민족만의 독특한 정형 문학이다. 거기엔 우리 조상들의 얼이 고여 있고 우리 민족의 성정이 깃들어 있다.
시조 문학의 연원에 대하여는 고대의 노랫가락설, 향가(鄕歌)1)기원설, 민요(民謠)기원설, 별곡체(別曲體)기원설, 고려가요(高麗歌謠)기원설, 역학(易學)기원설 등이 있으나 고대로부터 내려온, 특정 문학의 생성과 존속은 그 특정한 장르 현상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분야별로 상호 영향을 주면서 혼융․발전되어 온 것이기 때문에 어느 학설이 꼭 옳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학술적 고증과 연구를 거쳐 대체적으로 설득력을 인정받고 있는 것은 향가기원설2)이다. 향기기원설을 중심으로 따진다면 시조문학의 역사는 약 1200년. 시조가 정립된 고려 말로 따져볼 때는 약 700년 이상 되었으니 하나의 문학 장르로서 그 전통성과 위상이 얼마나 장구하고 고유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시조문학은 고려중엽에 그 틀이 형성되고 고려 말에 완성을 보아서 조선시대에는 그 중흥기를 맞이하여 활짝 꽃이 피었다. 그러나 조선말 개화기 때에는 서세동점의 서양문물 유입으로 기존질서가 무너지고 신체시가 선보이는 등 전통문학의 혼란현상이 가중되어 시조의 정체성은 많이 실종되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1926년을 전후한 시기에 최남선, 이광수, 이병기 등이 시조부흥운동을 일으켜 활기를 되찾고 전통의 맥을 이어나간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학교 교육현장에서 시조교육은 비교적 관심 있게 다루어져 왔다. 교과서에는 시조의 게재 편수가 많았고 소중히 다루어져 학생들은 주로 시조를 암송하며 문학적 소양을 키워 나갔다. 그리하여 1950대부터 1970년대 청소년 시기에 시조교육을 받아왔던 연령의 학생들은 성장해서 그 때 암송하고 익혀두었던 시조교육의 영향이 그들의 문학적 소양과 창작의 씨앗이 되어왔다. 자유시보다는 시조를 더 많이 알고 더 좋아서 문학적 역량을 시조에 쏟았던 그들이었다, 현재의 문단에는 그 비율로 보아 시조시단이 자유시단보다 원로급과 고연령 층이 더 많다는 것은 이를 증명해 준다.
그러나, 최근 2000년대 들어 시조교육은 거의 고사 직전에 직면하여3) 관심 있는 소수의 시조시인들에 의해 겨우겨우 연명해 오고 있는 실정이다. 제6차 교육과정 이후 교과서에서는 시조의 게재편수가 급감해 시조교육은 크게 위축되었다.4) 그리고 일부 몰지각한 시조시인들마저 혁신과 현대화라는 미명하에 정통성을 망가뜨리고 변태적 창작 행위를 서슴지 않으니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실정이다.
시조문학의 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은 시조문학에 대한 그릇된 선입견이다. 자유시는 신식 문학이고 시조는 고리타분한 구습이라는 고정관념이 문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말은 글로벌화 시대에 피부로 느껴지는 진실이다. 서양엔 소네트가 있고, 중국엔 한시가 있으며, 일본엔 그들만의 하이꾸가 있다. 유치원 때부터 교육을 받는 일본의 하이꾸는 전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영어권에서 두루 창작․ 번역되고 있는 사이, 하이꾸보다 훨씬 품이 넓고 멋있는 우리의 시조는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것이다.
본고는 이러한 시조의 현주소를 인식하고 우리 시조의 위상과 멋과 맛을 재음미해보고 그릇된 창작의 예를 들어 그것을 바로 잡아줄 뿐만 아니라, 그 정체성 확립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하는데 목적이 있다.
Ⅱ. 시조와 자유시
돌이켜 보면, 근대화 이래 외래 문물의 홍수 속에서도 우리들은 알게 모르게 일상생활은 물론 문학 방면에서 우리만의 전통적 리듬감에 젖어왔다. 민요나 시조 또는 가사조의 3.4조와 4.4조는 그 커다란 줄기로써 우리의 시가 문학을 구성하는 율격의 바탕이었다.
다음 시들을 주목해 보자.
A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 조지훈, 「승무」일부
B
기달이는 세월을 / 학같이 목에 감고 //
마음의 囚衣를 빨아 / 蜀道에 말리우니 //
바람 찬 늦인 가을에 // 구름이 울고 간다.
- 이설주, 「저녁」전문
C
살이 잎새 되고 / 뼈가 줄기 되어//
붉은 피로/ 꽃 한 떨기 피우는 날엔 //
비린내 나는 운명도 / 향내를 풍기오리
- 구상, 「목숨이여」1~3연
위의 작품들은 시조인가 자유시인가? 위의 글들은 현대 자유시로 발표된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을 낭송해 보고 음보의 체계를 살펴보면 그 호흡이나 형태면에서 분명히 시조에 가깝다. 이 글들을 시조의 형식5)에 비추어본다면 부분적으로 과음수(過音數) 또는 소음수(小音數)가 자리잡고 있으나, 이러한 현상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시조를 쓴 것이 아니고 자유시를 쓰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현상이며, 시간의 등장성(等長性)을 고려하여 낭송해 보면 시조로서의 큰 무리는 없다. 시조 3장의 형식미가 갖추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종장 첫 구도 시조의 율격에 맞고 전체적 율박(律拍)도 형태에 알맞아 분명히 시조라고 볼 수 있다.
이 작품들의 작가가 시조를 염두에 두고 창작했을 리는 없다고 판단된다. 단지, 시의 창작 과정에서 우리 한국인의 몸에 배인 전통적 율감이 습작 과정에서 우러나와 우연히도 시조와 근접된 작품을 내놓게 되었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 민족의 가슴 속에 알게 모르게 접맥되어 흘러내려오고 있는 우리의 뿌리 문학 ‘시조(時調)’의 실체이다. 이러한 현대시들은 시조로 발표했다면 시조가 되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시조는 우리 민족의 호흡과 성정에 알맞은 뿌리 문학이다.
현대 자유시는 은연중에 시조의 영향을 받고 창작되었다. 이태극은 김동환, 구상, 조지훈 등에 이르는 작가들의 예를 들어 “이들이 바로 현대시를 개척한 공로자들인데 이들은 역시 한국적인 시의 형식과 율감에서 창작을 했기 때문에 그러한 근사치의 작품을 썼다고 본다. 우리 현대시에도 우리의 고유시였던 시조의 영향이 상당히 계승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다.“6)라고 언급하였다.
Ⅲ. 시조문학의 멋과 맛
미적 감각(美的感覺, aesthetic sense)이란 미의식과 관련된 용어로서, 하나의 대상물에 대하여 시각, 청각 등의 여러 가지 감각이나 감정에 의하여 예술적 감각을 획득하는 것을 말한다. 시조에서 느낄 수 있는 미적 감각의 핵심 요소는 절제미, 긴장미, 균제미, 완결미이다. 평시조형의 단시조인 경우 3장 6구라는 제한적 틀 안에서 미적인 감각 요소들을 창출해 내야 되기 때문에 다른 어떤 장르들보다도 엄격한 시어의 선택과 응축․절제된 표현 기교가 요구된다. 가장 응축된 시의 모형임에도 불구하고 시조에서 미묘한 시적 매력을 느끼게 되는 것은 이러한 미적 요소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1. 압축과 간결의 멋
초․중․종 3장 형식의 압축적 표현으로 완결의 미학을 창출해 내는 시조는 정서표현의 불완전성을 보이는 일본의 하이꾸7)나 대체로 사족이 많아 늘어지는 경향이 잦은 자유시와는 달리 독특한 맛과 멋이 깃들어 있다. 이러한 이유는 3장형식의 시조가 지니고 있는 절제미와 간결미, 그리고 독특한 리듬감각 속에 긴장으로 이어지는 의미의 전달력 때문이다.
A
梨花에 月白고 銀漢이 三更인제
一枝春心을 子規ㅣ야 아랴마
多情도 病인 냥여 못드러 노라.
- 이조년
B
가만히 오는 비가 낙수져서 소리하니
오마지 않는 이가 일도 없이 기다려져
열릴 듯 닫힌 문으로 눈이 자주 자주 가더라.
- 최남선,「혼자 앉아서」
글 A는 고려 시조 중 가장 문학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은하수 높은 한밤중, 밝은 달빛이 하얗게 쏟아져 내려 배꽃은 더욱 희게만 보인다. 이러한 배경 속에 서려 있는 봄밤의 애틋한 그리움의 정서를 소쩍새만은 알아줄 수 있을까? 작품 속에서 서정적 자아는 이렇듯 다정함도 병인 양하여 좀처럼 잠을 이룰 수가 없다는 애틋한 심경을 종장에서 드러냄으로써 그리움의 정서를 간결하고도 독특하게 마무리해 내고 있다.
이 글은 선경후정(先景後情)의 구조적 틀도 완벽하고 한밤중을 배경으로 배꽃과 달빛과 두견이 조화를 이루어 봄밤의 애상적 정서를 압축적 기법으로 멋지게 표현해 내고 있다.
글 B도 기다림의 정서를 압축적으로 잘 드러내고 있다. 이글의 절창은 종장이다.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인생살이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통인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이글의 시적 자아는 열릴 듯 닫힌 문으로 눈이 자주 가는 것이다. 설렘과 기다림의 정서를 ‘문’이라는 객관적 상관물을 통하여 돌려서 표현한 종장의 이 한 장이 시조의 멋과 맛을 단적으로 드러내 주고 있다.
이러한 사연들을 독자들에게 세세히 전달하기 위해서는 그 시상 전개의 장황한 수식과 서술이 필요하다. 그러나 작가는 시조 3장를 통하여 극도의 절제와 함축적 표현으로 간결하게 표현하여 사고의 확장과 여운을 유도해 내면서 미적 가치를 생산해 내고 있다.
2. 풍류와 가락의 멋
A
靑山도 절로 절로 綠水도 절로 절로
山절로 水절로 山水間에 나도 절로
그 中에 절노 란 몸이 늙기도 절로 리라.
- 우암(尤庵) 송시열8)
B
해거름도 주워 먹고 풋풋함도 주워 먹고
콩밭두렁 콩콩 튀는 콩깎지를 코에 대니
나더러 들풀이란다 콩잎에다 시를 쓴다.
- 이광녕, 「콩밭타령」3수 중 제1수
본래 ‘풍류’라는 용어는 『삼국사기』진흥왕조에 ‘난랑비서문(鸞郞碑序文)’에 나온다. 즉 최치원(崔致遠)이 화랑 난랑(鸞郞)을 위해 쓴 난랑비 서문에 “나라에 심오하고 미묘한 도가 있는데 풍류(風流)라 한다.”9)에서 유래된다. 이와 같이 풍류는 화랑도와 관련이 있는데, ‘삼교(三敎)를 포함한 것으로써 여러 백성을 접촉하여 교화시켰다.’10)라는 기록으로 보아 유불선(儒佛仙) 3교와도 관련이 깊었음을 알 수 있다.
시에서 풍류는 한국인의 독특한 감각으로 여과·표출되는 미적 형태로서 고상한 풍격이나 운치를 말한다. 풍류 속에는 가락의 멋이 깃들어 있다. 그러기 때문에 ‘풍류의 멋’이라 하면 음악적 리듬감과 함께 고상한 풍격이나 운치가 깃들어 있어야 한다.
글 A의 작품 세계에는 자연 친화정신과 풍류가락이 흘러넘친다. ‘절로’라는 표현이 9번이나 반복하여 나오기 때문에 반복적 미감을 즐길 수 있으며, 여대(麗代)의 「청산별곡」과 같이 ‘ㄹ’음이 주는 유음의 효과가 부드러움과 가락의 멋을 더해주고 있다.
글 B는 배고픈 시절, 으스름한 초저녁 콩밭에서 콩서리하며 콩을 주워 먹던 추억을 리듬감 있게 나타낸 글이다. 향토적 정서에 몰입된 시적 자아는 풍시를 읊듯, 하나의 자연인으로 돌아가 물아일체의 상념으로 어릴 때의 고향 추억을 반추하고 있다. 이 글의 특징은 풍월을 읊는 듯, 작품 전반에 흐르는 자연스런 리듬감이다. ‘풍류’에는 이와 같이 ‘가락의 멋’이 수반되어 시조의 맛과 멋을 한층 살려주고 있다.
3. 촌철살인의 교훈과 비판의 멋
A
말 기 죠타 고 의 말을 마를 거시
의 말 내 면 도 내 말 거시
말로셔 말이 만흐니 말 마름이 죠해라.
- 작자 미상
B
풍랑이 심하구나 흔들리는 이 지축
이훌랑은 열지 마오 입방정이 구렁인 걸
十(십자)를 ×(엑스)로 본다면 그대 입은 지옥문,
- 이광녕 「설화(舌禍)」
글 A는 고시조로서 말조심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시조는 ‘말’의 연속적 반복으로 인한 강조와 리듬감으로 시적 분위기를 드러내면서, 말을 함부로 하거나 말 많은 사람들에게 정곡을 찔러주는 경계심을 부여해 주고 있어 교훈성이 짙다.
글 B의 경우도 ‘화종구출(禍從口出)’의 경계심을 부여해 주고자 하는 단시조이다. 함부로 뱉아 놓은 말 때문에 세상은 시끄럽고 당사자는 구렁텅이에 빠지기도 한다. 십자가도 삐딱하게 보는 이에겐 엑스로 보이니 부정적으로 보지 말고 좋은 말 밝은 말로 긍정적인 사고를 지녀야 한다는 비판정신과 경계심이 드러나 있다.
이와 같이 시조는 초․중․종 3장의 짤막한 형식으로 시상을 리듬감 있게 전개시켜 정문일침(頂門一鍼)의 효과를 거두는 멋과 맛을 지닌 문학이다.
4. 비유와 풍자의 멋
A
투박한 나의 얼굴 두둘한 나의 입술
알알이 붉은 뜻을 내가 어이 이르리까
보소라 임아 보소라 빠개 젖힌 이 가슴
- 조운,「석류」
B
백설이 자진 골에 구루미 머흐레라
반가온 梅花 어 곳 퓌엇고
夕陽에 홀로 셔 이셔 갈 곳 몰나 노라.
- 이 색
비유나 상징 그리고 풍자는 작시법의 근간을 이루는 장치이다. 비유나 상징, 반어나 역설, 풍자 등은 그것이 없는 시는 시가 아니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기법이다. 한 여성의 야박성과 표독스러움을 표현할 때, “저 여자는 깍쟁이다”라고 하는 것보다 “저 여자는 불여우다”라고 비유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것과 같이, 더 실감실정 있는 표현, 명확한 표현을 위해서는 직접적 설명보다는 다른 사물에 빗대어 간접적으로 돌려 표현해 주는 비유의 기법을 잘 활용해야 한다.
글 A는 시의 비유적 기법을 잘 활용한 작품이다. 석류의 생김새를 감정이입 수법을 이용하여 의인화시켜 비유하면서 종장에 빠알갛게 벌어진 석류 속에 자아의 거듭남을 실었다. 외면의 투박함을 내면의 뜨거움과 열정으로 밀도 높고 실감나게 구상화시킨 작품으로 평가 받는 수작이다.
글 B에서 ‘백설’은 고려의 유신들을, ‘구름’은 간신배나 이성계 일파들을, ‘반가온 梅花’는 지조를 지키는 고려 말의 우국지사들을 비유․풍자하고 있다. 이와 같이 비유나 상징, 역설, 반어 등은 직접적 전달이 어려울 때에 간접적으로 돌려 표현함으로써 주문이휼간(主文而譎諫)11)의 방식으로 품위 있게 멧세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어 고시조의 초창기부터도 널리 쓰였다.
5. 여유와 재치, 화답의 멋
A
靑山裏 碧溪水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
一到 滄海면 다시 오기 어려오니
明月이 滿空山니 쉬여 간들 엇더리.
- 黃眞伊
B < 이방원과 정몽주 >
이런들 엇더며 저런들 엇더리 이몸이 주거주거 一百 番 고쳐 주거
萬壽山 드렁츩이 얼거진들 긔 엇더리 白骨이 塵土되여 넉시라도 잇고 업고
우리도 이 치 얼거져 百年지 누리리라 .님 向 一片丹心이야 가싈 줄이 이시랴
- 李芳遠 - 鄭夢周
C < 임제와 한우 >
北天이 다커늘 雨裝 업시 길을 나니 어이 어러 자리 무스 일 얼어 자리
山에는 눈이 오고, 들에는 비로다 鴛鴦枕 翡翠衾을 어듸 두고 어러 자리
오은 비 마자시니 얼어 잘 노라. 오늘은 비 마자시니 녹아 잘 노라.
- 林悌 - 寒雨
D < 정철과 진옥 >
玉을 玉이라커 燔玉만 너겨니 鐵이 鐵이라커 무쇠 섭鐵만 너겨니
이제야 보아 니 眞玉일시 젹실다 이제야 보아니 正鐵일시 분명다
내게 송곳 잇던니 러 볼가 노라. 나에게 골풀무 잇던니 뇌겨 볼가 노라
- 鄭澈 - 眞玉
글 A는 여유와 재치가 넘치는 조선시대의 명기 황진이의 시조다. 주지하다시피 이 시조는 ‘벽계수’, ‘명월’ 등과 같은 중의적 비유기법을 동원하여 풍류12)의 분위기를 자아내면서 상대를 유혹하고 있다. 단 3장이라는 짧은 형식을 통하여 인생무상이라는 순리 앞에 굴복하도록 철학적 의미나 자연의 이치까지 내세워 이성을 농락하려는 황진이의 표현기법이 비범하다. 그러나 열락을 종용하고 있지만 속되지 않고, 풍류의 멋과 격조가 오히려 높이 평가되는 것은 이러한 황진이만의 천재적인 시어의 조합 기교와 운용의 묘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된다.
본래 창을 전제로 한 시조는 특별한 장소에서의 즉흥적 화답의 기능을 수행했던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 중에 잘 드러나 있는 것이 위의 B, C, D와 같은 세 경우라고 볼 수 있다. 글 B는 고려 말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던 조선 건국의 신흥세력과 고려의 유신, 이 두 유파를 대표하는 이방원과 정몽주의 ‘하여가(何如歌)’와 ‘단심가(丹心歌)’이다. 이 화답가에서도 비록 경색된 정치협상의 테이블이지만, 직접적 화술보다는 간접 방법의 화술로써 부드럽고 멋지게 본심을 주고받고 있다.
글 C도 너무나 잘 알려진 임제와 한우의 화답가이다. 이 글에서 ‘ 비’는 기생 ‘寒雨’의 중의적 표현이다. 내면은 일부러 숨기고 ‘오늘은 찬 비 맞았으니 얼어잘까’라는 임제의 외형적 제의에, ' 비' 만났으니 하룻밤을 따듯하게 녹여주겠다는 한우의 화답이 정겹고 재치가 넘친다.
글 D는 송강 정철(鄭澈)이 강계로 유배되었을 때, 오동잎 지는 스산한 밤에 기녀 진옥(眞玉)과 주고받은 외설적 시조이다. 귀양살이로 무료함을 달래고자 지어 읊은 정철의 시조에 정철을 사모하는 진옥은 즉석시조로 자자구구(字字句句) 대구(對句) 형식으로 재치 있게 화답하니 정철은 그녀의 뛰어난 시적 재능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고 한다. 이 글에서 ‘번옥燔玉)’은 구워 만든 가짜 옥(玉)을, ‘섭철(鍱鐵)’은 무쇳가루가 섞인 잡된 쇠를 의미하지만, 각각 시원찮은 상대방으로 인식하는 비유이고, ‘眞玉’과 ‘正鐵’은 상대방을 참되고 바르고 아주 귀하며 수준 높은 존재로 인식하는 비유이다. 그리고 이 글을 외설적 분위기로 이끌고 있는 ‘송곳’과 ‘골풀무’는 각각 남녀의 성기를 암유하고 있다. 두 남녀의 재치 있는 멋과 운치가 전편에 흘러 화답시조의 진수를 맛보게 한다.
이와 같이 복잡다단한 현실생활을 벗어난 탈속의 경지에서 풍류와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정서의 펼침은 시조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멋과 맛이다.
고시조의 화답 풍류는 우리 민족의 시적 정서에 많은 영향을 끼쳤고 시조만의 멋과 맛을 한껏 풍겨주었다. 창(唱)을 전제로 하는 고시조와는 달리 문학성을 강조하는 현대시조에서는 즉흥 화답시의 창작은 여건상 어렵다. 그러나 대화창을 이용하여 주고받는 문학적 교류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따라서 새로움을 추구하며 맛과 멋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야 하는 현대시조에서, 즉흥성과는 거리가 멀다 할지라도 대화창을 이용한 문학적 교류나 화답 시조의 창작은 옛 멋을 살리는 길이며 현대시조의 품격도 높여줄 것이라 생각된다.
Ⅳ. 시조문학의 정통성 확립
시조의 맛과 멋은 3장 미학의 묘미에 있다. 현대시조가 그 독자성 내지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시조만의 미적 감각을 살려나가려면 고시조에서 보여주었던 시조만의 미학적 텍스트성을 인식하고 명품으로서의 3장 체계가 손상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창작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현대시조 중에는 시조의 3장 기본 틀을 무시한 작품들이 현대적 실험정신이라는 미명 하에 버젓이 양산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시조문학의 미적 아우라(aura)에 손상을 입히고 시조 문학의 발전에 크게 저해가 되고 있다. 현대시조는 고시조의 단조로움이나 진부함에서 벗어나 새로움과 현대성을 추구해야 함에서는 ‘열린 문학’이지만, 또 한편으로 3장의 균제미와 절제미학을 추구해야 함에는 ‘닫힌 문학’으로서 엄정한 정형시라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1. 현대시조의 형식실험과 변조․일탈
필자가 조사한 바로는『현대시조 100인선』13)에 실려 있는 7,240편 중 탈격이나 실험적인 경향을 띤 작품들은 조사 결과 전체 185편으로써 약 2.6%에 해당된다. 현대시조 100편 중에 2∼3편 꼴로 변격이 창작되었다는 말인데, 현대시조에서 시적 일탈의 범위를 어느 선까지 한정할 것인지는 구체적인 제시가 어렵고 또 논란의 여지도 많다. 형식적 변용의 실험 문제가 쟁점이 되고 있는 이유는 형식의 변용에 있어서 지나치게 개성이 강조되다 보면 오히려 시조문학의 정통성 확보나 공감대가 떨어져 문학의 미학적 가치를 상실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병기는 시조를 ‘定型詩’가 아닌 ‘整型詩’로 보았고(1966,가람문선), 이은상은 “定型而非定型이요,非定型而定型이다(1928,동아일보).”라고 하였다. 정형시라고 하자니 정형이 아니고 정형시가 아니라고 하자니 정형이라는 말이다. 이와 같이 알쏭달쏭한 말은 아마도 우리말 특유의 어미나 조사의 가변성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가변성을 부여한다 해도 시조의 멋과 맛은 3분 구조 완결의 미학이라는 정형미에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형태적 변용에 있어서 지나치게 개성을 강조하다 보면 시조만이 가지고 있는 3장 미학의 맛과 멋이 조금씩 허물어지고 와해되어 전통문학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절장(단장)시나 양장시나 4장시와 같은 탈장형들은 일종의 실험적 시도로 지어진 형태다. 이러한 형태들은 시조에서 가장 중요시되고 있는 기본 정형의 틀인 3장 원리를 도외시한 탈격형들이기 때문에 시조의 범주에 넣을 수가 없다.14)
1) 절장(단장)시
절장시나 양장시는 정격인 3장 시조보다는 더욱 짧아진 실험적 형태로서 시적인 응축미가 더욱 과감하게 시도된 작품이다.
A
애꾸의 눈사람이 앉아 오가는 이 웃기네.
- 이명길,「눈사람」전문
B
말로 다 할 수 있다면 꽃이 왜 붉으랴.
- 이정환,「서시(序詩)」전문
위에 제시된 글들은 종장 하나만으로 이루어진 소위 ‘절장’(絶章, 또는 單章)시들이다. 절장시는 한 수의 내용을 종장 하나의 형식만을 빌어 단장으로 응축하여 긴장미를 드러내야 된다. 시상의 효과를 단장으로 이루어 내야 되기 때문에 시적인 응축미의 집약 효과를 과감하게 시도한 것이다. A와 B는 지나친 축소로 작가가 처한 상황이나 심리를 제대로 이어나기지 못해 시적 긴장감이 적고 시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반복적 운율감도 너무나 미약하다.
이러한 절장시에 대하여 김학성은 “이는 순간성의 포착으로 영원을 지향하는 하이꾸의 여백의 미학에 근접한 것이지 시조의 미학과는 거리가 멀다. 초․중장의 결손으로 인한 반복의 미학을 음미할 수 없는데다가 그 반복을 벗어나는 종장의 변형 4보격이 갖는 전환의 미학을 즐길 기회가 차단되어 시조의 맛을 향유할 수 없다.”15)라고 지적하였다.
이러한 글들은 형식면에서 3장 6구의 시조적 기본 틀과는 거리가 멀어서 아무리 압축적 상징적 의미를 지녔다고 해도 시조로서의 긴장감이나 반복적 운율감을 느낄 수가 없고 시조만의 3장 미학을 음미할 수가 없으므로 시조의 범주에 넣을 수는 없다.
2) 양장(2장)시
흔히 ‘양장시조’로 일컫고 있는 양장시는 초장과 종장으로 이루어진 2장시형으로서, 이은상의 「소경되어지이다」,「입다문 꽃봉오리」,「달」등이 있다. 양장시는 일찍이 개화기 때부터 『제국신문』과 여러 학회지 등에 발표16)되다가 현대시조 초기 이은상17)에 의하여 그 양식적 실험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어온 바 있다.
A
오늘 누가 슬픈 노래 못다 하고 떠나는가
충혈된 그대 눈망울 하늘 보고 웃는데
- 조순애,「노을」전문
B
이몸이 죽어가서 낙락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하리라
- 이은상, 성삼문의 「이몸이 죽어가서」개작
위의 글들은 초장과 종장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양장시들이다. 양장시는 개화기 때에도 목단산인(본명 김수철) 등에 의해 발표된 적 있지만, 본격적인 형식 실험대에 오른 것은 노산 시조에서부터다. 노산은 1930년대부터 새로운 시 형태를 모색하던 중, 1932년 『노산시조집』에 소위 ‘양장시조 試作篇’에 2행으로 된 시형으로 「소경되어지이다」외 6편을 발표하였다. 이러한 양장 형태의 글은 당시 일본의 시 가운데 2행으로 된 와카(和歌)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양장형의 글들은 노산 이후 크게 환영받지 못하였다. 이러한 결과는 양장보다는 3장 미학의 원리가 우리 민족의 성정에 가장 알맞은 시형이라는 점을 입증해 준 결과이다. 시조는 초장에서 일으키고 중장에서 율동적 반복에 의해서 음미하고 종장에서 전환의 미적 단계를 밟으면서 종결을 지어야 하는데, 양장형의 글은 중장의 생략으로 율동적 반복의 미학을 즐기지 못하고 곧바로 종장으로 치닫기 때문에 시조의 3분 구조상의 미학적 특성을 살리지 못하여 바람직한 창작은 아니다.
3) 4장시
정형시인 한시의 구성은 기승전결의 4단구조로 이루어진다. 우리의 시조가 기승전결의 구조로 파악되는 것도 있지만, 개념상 3장체계로 이루어지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런데 시조작가 중에는 실험정신 혹은 의미의 확대라는 미명 하에 3장체계를 무시한 소위 ‘4장시조’를 창작하여 시조문학의 정통성을 훼손시키는 사례가 많다.
A
무려 16개 나라 일거에 덤볐으나
정의의 전쟁이기에 우리는 이기었소,
당이야 인민이야 그 진한 땀이야 피!
옷깃이 절로 여며지고 손이 쥐여집니다
- 조운,「전승 기념관」
B
길손이 막대전져 천리강산 헤매더니
여기가 어디메오 그림 속에 들었구나
무등산 눈얼음이 녹아풀려 흘러내려
양림천(楊林川) 굽이굽이 봄풍악이 요란하다.
이은상,「전남특산가(全南特産歌)」 전 26수 중 제1수
윗글 A는 작가 조운(1949년 월북)이 북에서「평양8관」중 ‘전승기념관’을 보고 지은 소위 ‘4장시조’이다. 명시조「석류 」(단시조)와 「구룡폭포」(사설시조)로 널리 알려진 작가가, 사회적 이념의 굴레 안에서 그 작품성향이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예이다. 글 B는 전 26수의 장시로 연첩된 ‘4장시조’ 중의 첫수로서 전남특산품의 선전과 판로개척을 위하여 노래한 노산의 실험적 문학 형태이다.
시조의 3장은 논자에 따라서는 ‘天-地-人’ 삼재의 의미로도 분석18)하거니와 각 장 나름대로 ‘起-敍-結’이라고 하는 장별 의미의 독립성을 확보하고 있고, 3단형 종결이라는 미학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위의 글들은 4장으로 시상을 전개시킴으로써 전체적으로 긴장감이 사라지고 늘어지는 결과를 초래함으로 3장의 완결 미학을 해치게 되었다. 이렇게 3장 미학의 원리를 무시하고 실험정신이라는 미명하에 4단으로 시도하는 것은 한시의 起-承-轉-結 구도를 답습하는 것에 불과하고 정통성을 확보하고 계승하려는 시조의 작법과는 거리가 멀다.
시조문학의 3장 미학을 무시하고 전통성을 훼손시키는 절장형, 양장형, 4장형과 같은 무리한 실험적 형태의 시조창작은 바람직한 창작태도가 아니며 결코 시도되어서는 안된다.
2. 시행의 무리한 변용과 일탈
앞에서, 절장시, 양장시, 4장시형 등은 정형시인 시조의 미학과 정체성을 잃게 하므로 그러한 파격형에 대해서는 또다시 시도되어서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경향들 못지않게 시행의 무리한 변용 또한 현대시조의 심각한 문제점으로 대두되고 있다.
시조의 내용은 형식과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 시조는 한 수가 3장으로의 완결성을 가지며 그것이 연시조형으로 이어갈 경우에도 전체 주제를 향한 각 연의 독립성이 엄연히 존립하면서 연과 연 사이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져야 한다. 3장 단위로 구조화되는 정형장르이기 때문에 내용의 응집성이 강하게 요구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章)이나 연(聯)의 경계를 무시하고 임의로 떼어놓거나 붙여 놓는 것은 자유시 형태를 흉내 낸 꼴이 되고 만다. 그렇게 되면 시조 장르의 독특성이 상실되어 자유시와의 경쟁력이 떨어질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불볕 더위에
불알이 축 늘어진 황소
개울물 핥지 못한 채
두 눈 끔뻑이며 들여다 보고 있다.
황소의 깊은 눈망울 속
송알송알 맺힌
송사리들
- 장수현, 「교감·2」 전문
위의 글은 전체 6연으로 이루어져 있다. 황소의 우직함을 송사리떼의 ‘송알송알’ 거리는 모습으로 그 순진성을 이입시켜, 시각적 이미지로 잘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위의 글은 과다한 연갈이와 행갈이로 인한 의미체계 인식의 혼선을 일으키게 된다. 시조의 3分 구조 원칙이 혼란스러울 때 시조로서의 균제미와 완결미는 급감하게 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이 글은 자유시에 넣으면 자유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만큼 시조로서의 응집성과 변별력은 약해진 형태이기에 시조문학의 사멸을 우려하게 된다.
A
청송땅 샛별 품은 갈맷빛 외진 못물 갓밝이 저뭇한 숲 휘감아 도는 골짝만 된비알 뼈마디 꺾는 물소리 가득하다
조성문, 「주산지 물빛」4수중 제1수19)
주산지 호반의 신비감을 묘사한 이 글을 처음으로 대하는 독자들이 이 글을 시조라고 인식하기는 어렵다. 음독을 반복하면 그 골격을 짐작하겠지만, 장이나 연의 구분이 없이 줄글식으로 내리닫아 써내려간 이 글에서 독자들은 언뜻 장르 인식의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다. 이 글을 재인식의 차원에서 다시한번 행갈이를 하여 보자.
A-1
청송 땅 샛별 품은 갈맷빛 외진 못물
갓밝이 저뭇한 숲 휘감아 도는 골짝만
된비알 뼈마디 꺾는 물소리 가득하다.
앞의 글 A를 A-1과 같이 재구성을 하면 1수(전체는 4수의 연시조임)의 평시조로 구성되어 있음이 선명히 드러난다. A보다는 A-1이 시조로서의 형태가 잘 드러나며, 통사적 의미관계도 잘 인식할 수 있어서 음독이나 내용의 이해에도 훨씬 도움된다. 그러나 작가는 구태의연한 형식적 틀과 일관성에서 벗어나 개성과 현대 감각을 추구한다는 목적으로 행과 연의 나눔을 생략하고 장별 휴지부도 없이 줄글식으로 이어나간 것으로 생각된다. A-1와 같이 배열하여 선명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 개념을 인식하도록 하면 될 것을 굳이 현대적 감각을 살린다는 미명 아래 혼란을 야기시키는 배열을 택한 것이 과연 현명한 창작법이었는가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간밤에 시인들이 떼로 몰려왔습지요 연거푸 파지를 내며 머릴 쥐어뜯으며 밭두덕 비탈마다
술잔을 내던지며 그렇게 온밤을 짓치던 하늘시인들입죠 개울을 줄기째 들었다 태질을 치곤
했다는데요
- 박기섭, 「하늘 시인」 전문
위의 글은 짖궂은 자연현상을 은유기법을 통하여 재치 있게 형상화하여 작가의 구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러나 위와 같이 문장의 휴지부나 종지부호도 없이 연기식(連記式) 줄글로 나열했을 때 자유시로 볼 것인가, 시조로 볼 것인가, 산문으로 볼 것인가. 작가는 그의 시론에서 억지나 작위적인 시조 작법을 지적하면서 “자연스러움은 시조미학의 품격을 결정하는 관건이다. (중략) 사설의 맥락을 평시조 음보의 변화 없는 반복으로 몰고가는 건 비루한 품격이다.”20)라고 주장하였다.
작가는 위의 글을 세 문장으로 분류하여 처음부터 ‘~몰려왔습지요’까지 초장, ‘연거푸~하늘시인들입죠’까지가 중장, ‘개울을~했다는데요’까지가 종장으로 처리하여 중장이 길어진 사설시조로 창작하였으리라 짐작된다. 연기식 줄글로 자연스럽게 개성적 형식미를 구가하였다는 데 의미를 두면 이해는 가나, 정형시 존립의 가치까지 무력화시키는 작시법은 문제가 있다고 보며, 음악성보다는 시각성과 문학성을 중시하는 현대시조 조류로 보아서도 혼란이 야기되지 않을 수가 없다. 시상 전개에 따라 굳이 줄글식 배행을 해야 할 경우, 장별 구조에 따라 휴지부나 종지부를 활용하거나 또는 행갈이를 하여서 시조 장르로서의 변별적 기능을 제공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3. 의미체계와 종장의 탈격
현대시조 시인들이 시조의 독특한 율격 인식과 통사․의미 체계의 인식을 거부하고 혼란한 산문형이나 미완의 꼴로 구성해 놓는다면 시조로서의 미학적 가치는 기대할 수 없다.
A
그대는 어디서 숨어 있다 흔드는가
오늘밤 외로움이 한밤중에 가득해서
소슬한 봄바람 타고 성큼성큼 오소서.
- 학생 작품
B
길 위의 질척거림 불빛은 하나 둘 씩
서정은 어둠 따라 옷자락 적셔 오고
만날 것 / 같은 그 누구 / 빗속으로 온다면.
김〇〇,「우중에」 전 3수중 제1수
C
청간정 뒤로 두고 / 떠나가기 어려워라 //
물새를 떼어 놓고 / 돌아가기 차마 어려워 //
담배를 피워물고 / 우두커니 내가 섰네
- 조종현,「淸澗亭」 전문
글 A는 초장 1문장, 중․종장 1문장, 두 개의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초장의 문장을 보면 어색하기 그지없다. 어색한 이유는 ‘흔드는가’의 목적어가 빠졌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글의 음수율만을 의식해서 3․3․4․4형의 초장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 글을 의미상 완전한 체계로 만들려면 2음보가 다소 길어져 3‧7‧4‧4가 되더라도 율독에는 큰 문제가 없으므로, “그대는 √ 어디서 숨어 있다 √ (내 마음을) √ 흔드는가”로 하여 목적어인 ‘내 마음을’을 삽입해야 한다. 그리고 조사나 어미의 쓰임도 시상 전개에 큰 영향을 미친다. 중장의 ‘오늘밤’은 ‘기다림의 정서’를 의식하여 역시보조사인 ‘도’를 붙여서 ‘오늘밤도’라고 하여 의미를 강화시켜주고, ‘한밤중에 가득해서’는 종속적 연결어미 ‘~니’를 사용하여 ‘한밤중에 가득하니’로 해야 시상 의미가 살아난다. 연결어미나 접속어를 어울리게 배치하지 못했을 경우 시조의 응집력이나 결속력이 약해지게 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리고 종장의 ‘성큼성큼’은 시상에 비해 너무 큰말에 해당됨으로 ‘몰래몰래’나 ‘살금살금’과 같이 어울리는 시어로 대치해야 할 것이다
글 B는 종장에서 강조점 찍힌 부분(3·5의 자리)은 시조의 종장 초구 분할이 불합리하게 이루어져 있다. ‘만날 것’과 ‘같은’은 의미의 연속을 필요로 하는 말인데 3·5의 음수율만을 의식하여 위와 같이 억지로 분할을 해 놓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종장 습작 시에 다음과 같은 경우도 시조 종장 초구(3·5의 자리)의 자리에 배치함이 불가하다.
예) : ① 견디어 √ 낸다고 하는 게 √ 어찌 그리 √ 쉽더냐-----(×)
② 보이지 √ 않는 고향을 √ 꿈 속에서 √ 만난다-------(×)
③ 참을 것 √ 같은 이 고통 √ 견딜수록 √ 괴롭다------(×)
④ 도와줄 √ 데 없지마는 √ 찾아보면 √ 있겠지--------(×)
이러한 예는 시조를 의미의 율격체계로 인식하지 못하고 외형적 음수율로만 파악한 결과라고 본다. 특별히 보조용언에 구속되는, ‘~어(아), ~게, ~지, ~고’ 등이 붙은 말이나 의존 명사등과 연결되어 불완성을 보이는 경우에는 의미의 분할이 부적절하다는 원리를 알고 창작을 해야 한다.
글 C는 강조점 부분 종장의 초구 3·5의 자리에 3·4 가 위치하여 탈격이다. 이와 같이 창작된 것은 종장 ‘3․5’에 대한 의식 부족이거나 고시조나 가사의 ‘3․4’ 또는 ‘4․4’율조에 익숙해진 작가의 창작 관습에서도 영향을 받은 것으로도 생각된다.
시조는 정형시이다. 현대시조는 이 정형성을 바탕으로 한 율격적 특성을 살리면서, 다양한 체험에서 우러나온 인생관이나 그에 따른 개성적, 미적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 그러나 많은 작가들이 시조의 율격적 특성이나 유기적인 구성 체계 등을 의식하지 않거나 인식하지 못한 채, 개성과 현대성만을 강조한 나머지 파격을 일삼으며 임의로 창작을 하고 있어 현대시조의 미적 가치를 훼손시키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실정이다.
Ⅴ. 맺음말
유구한 역사를 통해 정제되어 내려온 시조는 3장 6구라는 틀 안에서 압축적으로 시상을 표현하여 완결미를 창출해 내는 우리의 국민문학이요 전통문학이다. 이것은 하이꾸나 한시의 ‘닫힌 문학’ 형식의 미감과는 차이가 있다. 시조는 종장의 첫 음보가 3자 고정이고 둘째 음보는 5자수 이상(주로 5~7)이라야 하지만, 초․중․종장의 나머지 음수는 한 두자 내외 가감이 가능하여 단행의 단조로움이나 평측압운에 얽매인 하이꾸나 한시에 비해 숨통이 트이고 품이 넉넉한 ‘열린 문학’이기도 하다.
본문에서 살펴 보았듯이 우리의 시조는 다양한 멋과 맛을 지니고 있는 우리만의 고유문학이요 전통문학이다. 시 창작의 습작과정과 발표를 통한 활동에서 오랫동안 많은 체험을 한 원로작가들은 자유시보다는 시조문학의 창작에 더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무절제한 표현 방식보다는 절제미와 긴장미 그리고 균제미 속에 펼쳐지는 완결미 등 시조가 갖는 독특한 표현 방식과 음악적 감성이 우리의 성정과 체형에 알맞으며 매력이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깨닫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전통 문학인 시조에 대해서 자부심과 긍지를 가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 것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한 많은 작가들이 멋모르고 외래적인 겉멋만을 추구하며 자유시 쪽으로만 훨씬 기울고 있는 것은 인식의 부족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현대시조를 쓰는 일부 작가들조차 현대성의 부여나 진화라는 미명 하에 시조의 정통성을 무시하고 기형적으로 변모시키고 일탈의 창작을 서슴지 않고 있는 현실은 참으로 우려할 만한 일이다. 우리의 고유 시조가 정통성을 잃고 중병에 시달린다면 사멸의 위기가 닥쳐올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시조가 바르게 알려지고 바르게 쓰이도록 시조부흥의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작품 창작에 있어서도 현대시조시인들은 무미건조한 음풍농월식 상투적 작시태도21)에서 벗어나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으로 작시법을 탐구 ․ 계발하여 시조문학의 미적 가치도 한층 더 높여 놔야 할 것이다. 글로벌화 시대에 뿌리 문학의 생활화와 세계화는 어쩌면 우리 시대에 주어진 사명인지도 모른다. 외국의 지각 있는 연구자들이나 작가들은 누구나 다 하는 ‘자유시’를 요구하지 않고 우리의 고유의 것인 ‘시조’를 요구하고 있다. 시조는 한국적인 자부심이요 자존심이기 때문에 노벨상의 위업도 시조가 이루어내야 더욱 우리 민족이 영광스러워진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시조를 바로 알고 바로 세우는 일과 시조부흥 운동과 번역 등을 통한 세계화 운동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리라 생각된다.
1) ‘향가(鄕歌)’는 한시 ‧ 범패(漢詩 ‧ 梵唄) 등 외국의 가요에 대하여 ‘동방고유의 노래’란 뜻으로 불려진 명칭이다. 따라서 우리 민족 고유의 독특한 지방색을 나타낸 노래는 모두가 다 광의의 ‘향가’라 볼 수 있으나 여기서는 국문학 장르로 자리 잡은 신라가요만을 대상으로 명칭을 사용하기로 한다.
2) 향가기원설은 이태극,정병욱 등이 주장하였다.
3) 제7차 교육과정(1997년 이후) 중등 국어교과서의 경우, 자유시는 58편이 실려 있지만, 현대시조는 단 2편(김상옥의「봉선화」, 유재영의 「둑방길」)만이 실렸을 뿐이다.
4) 중등은 42편(제2차), 고등은 50편(제1차)까지 실렸던 시조가 점차적으로 줄어 6차(1992년 이후)에 들어선 중등 11편, 고등 3편으로 급감하였다.
5) 시조의 형식은 일반적으로 조윤제의 기준안을 따르고 있다. 조윤제는 그의 「시조잣수고」(신흥 4호,1930.11)에서 시조의 기준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1) 시조 1수의 잣수는 44~45자 혹은 45자에 중심을 두고 41~50자 범위에 있다.
(2) 장별 잣수 배열은 초장 3․4․4(3)․4, 중장 3․4․4(3)․4, 종장 3․5․4․3이라는 기준을 가지고 규정의 최단자수에서 최장잣수 내에서 신축한다. (초장, 중장, 종장 표기는 필자)
6) 이태극,「시조의 사적연구」, 삼우출판사, 1981, p.127
7) 하이꾸 : 5.7.5조 17자형으로 이루어지는 일본의 짧은 시. 주로 사계절을 소재로 하여 자연과의 교감을 표현하는데 매력이 있으나, 품이 넉넉한 3장 시조에 비해 한 줄의 시구 안에서 표현 욕구를 다 채워야 하기 때문에 반복의 미학을 음미할 수 없고 정서 표현의 불완전성을 보일 수 있다.
* 하이꾸의 예) : 가는 봄이여/ 묵직해진 비파를/ 껴안은 마음
(ゆく春やおもたき琵琶を抱きごころ) - 요사부송(与謝蕪村) 작
8) 이 시조의 작가에 대해서는 기록상 이문(異文)이 많아 김인후(金麟厚, 1510~1560)의 작품으로 보기도 한다.박을수의『한국시조대사전』에서는 우암 송시열(宋時烈·1607~1689)의 작품(출전:樂學拾零, 靑丘永言珍本)으로 보고 작가가 이황(李滉)으로 표기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고 주석을 달아놓았다. 또한, 심재완의 『시조대전』에는 우암의 작품을 정본으로, 김인후의 작품을 이문(異文)으로 다루었으며, 이 글의 작가가 이황(李滉)으로 표기된 경우도 있다는 주석을 달고 있다.
9) 이재호 옮김, 김부식,『삼국사기』(제1권), 솔출판사, 2003. 150~151면.
10) 위의 책, 151면.
11) 글을 쓸 때 직설적이지 않고 우회적으로 돌려 표현하는 것을 말함(上以風化下, 下以風刺上, 主文而譎諫, 言之者無罪, 聞之者足以戒. 故曰風 : 윗사람은 풍으로써 아랫사람을 교화시키고, 아랫사람은 풍으로써 윗사람을 찌를 수 있다. 꾸밈을 주로 함으로써 은근하게 간하기 때문에 이를 말한 자는 죄가 없고 이를 듣는 자는 충분히 경계로 삼을 만하다. 고로 풍이라 한 것이다.- 詩經의 毛詩序)
12) 풍류(風流)는 당초(신라 때) 강호 여유를 즐기던 선비풍이 아니라 제의적(祭儀的) 행사로써 종교적 사상이었으나 조선시대에 들어와 종교성이 탈락하고 자연과 친화하면서 시문(詩文)·음주가무·청담(淸談) 등을 즐기는 풍치있고 우아한 태도나 생활을 일컫게 되었으며 그것은 선비들이나 기류(妓流)의 일상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조선시대의 풍류는 시문에 의한 탈속성(脫俗性)과 술에 의한 무아경(無我境) 등이 풍류의 주요소로 작용하였다.
13) 이지엽외,『현대시조 100인선』,태학사, 2006.
14) 본고에서는 소위 ‘절장시조’, ‘양장시조’, ‘4장시조’들은 시조의 기본 틀인 3장체계를 안 지켜 시조가 될 수 없기에, ‘절장시’, 양장시‘, ’4장시‘로 통칭하였다.
15) 김학성,「시조의 3장구조와 미학적 지향」,『한국시조시학』, 고요아침, 2006, 122면.
16) 양장시는 노산 이전, 일찍이 개화기인 1907년『제국신문』에 명누․ 충현 외 8명에 의해서「경세목탁」9수, 1908년『태극학보』에 목단산인․용골산인에 의해서「만슈셩절을 축함」2수, 1909년『대한홍학보』에 소앙에 의해서「국시2수」가 발표된 바 있다.(김영철,「한국개화기 시가 연구」, 새문사, 2004, 288∼289 면 참조).
17) 노산은 그의「시조창작문제」(동아일보, 1932.4.11)에서 소위 ‘절장시조’, ‘양장시조’, ‘4장시조’ 등의 신축성 있는 새로운 실험적 형태를 제안하였다.
18) 원용문, 『시조문학원론』, 백산출판사, 1999녕, 187면.
19) 2006년『조선일보』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20) 박기섭,「차라리 물병을 차 버려라!」,『사설시조의 특성과 그 전망』, 고요아침, 2008, 81∼88면.
21) 김동욱은 ‘황진이 이후 황진이가 없다‘라고 하였다. 이는 그녀의 천재적인 탁월한 문장 구사력을 칭송한 것이기도 하지만, 현대시조시인들의 작시적 결함과 무능을 질타한 것이라고도 생각된다. (김동욱,「황진이와 허난설헌」,『황진이 연구』,창학사 1986, 58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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