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월의 시조마루/시조학

시조를 국민시로, 국민시를 세계화로 / 진규영

채현병 2012. 7. 1. 01:44

2012.04.26. 08:47 http://cafe.daum.net/hksjsl1247/4K2M/1 

     일본의 하이꾸와 와까는 선각자 9명의 노력으로 불이 당겨져 100년도 되기 전에

     일본국민들이 애송하는 국민시가 되었고, 나아가 세계인들이 사랑하는 세계시가 되었듯이,

 

     우리가 사랑하는 시조의 50년 뒤의 모습을 그려보며, 시조의 정격과 질적 향상으로

     시조의 국민시화, 시조의 세계화를 열어가는 먼 길에 동행자가 되어 

     <한국시조사랑운동>에 작은 힘을 보태고자

     졸저 <고향의 강>에서 주장한  "시조를 국민시로, 국민시를 세계화로"라는 글을 올린다.

     동행하는 시인과 시조사랑 동호인 여러분의 일독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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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조를 국민시로, 국민시를 세계화로

                                                                                                                              2005.3.15.   松石   陳圭英

                                                                              이 글은 지기들과 혹은 차를 들며 혹은 산길을 걸으며 시조에 관해 나눈

                                                                              대화 가운데 그 일부를 적은 것이다. 여기에서 시조는 단시조(평시조)를

                                                                              이름이고, 다른 갈래는 엇시조, 연시조, 사 설시조라 표기한다.

   

1. 쉽고 짧은 시조를 국민에게 돌려주자.

 

【문】현대시조는 읽기도 어렵고 읽어도 감흥을 느낄 수가 없어. 시조가 국민을 외면하고 너무 전문 시인들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답】시조를 읽는 일은 시조의 율격과 독자의 율독관습이 서로 호흡이 맞아서 음율적 쾌감을 느끼 고, 시인의 눈과 독자의 눈을 맞추어 시인의 감수성과 미의식이 추구하는 감동과 충격을 공유하고 삶의 의미를 탐색하는 것이 아닌가.

 

연인과 눈을 맞추지 않고는 사랑할 수 없듯이 시인과 눈을 맞추지 못 하는 독자가 그 시조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 것인가. 눈을 맞추려면 눈높이가 같아저야하듯이 독자에게 읽히려면 시조가 읽기 쉽고 외우기 쉽고 짧아져야 하지 않겠어.

 

시조는 주제가 명징하고 시어가 담백하며 묘사는 간결하고 형식은 단아하며 율격에 가락을 담았어. 자연과 희노애락을 노래하되 그 안에 삶의 의미를 엮어서 짧은 글에 긴 여운을 남기지. 이러한 특징을 지닌 고시조와 광복 전후의 시조는 읽

 

으면 감흥이 전해오고 즐거움이 솟았는데, 현대의 시조는 율격이 풀어지고 군더더기가 많고 길어지고 난삽해서 읽히지 않는다는 말을 종종 듣고 있다네.

 

시조가 독자인 국민을 염두에 두지 않고 쓰여지고, 국민은 어려워서 외면하고, 이렇게 해서 시조와 국민은 점점 멀어지고 말았지. 독자를 잃어버리면 시조가 존재할 수 있을까. 식견이 있는 여러 지식인들은 현대시조가 독자인 국민에게서

 

멀어지게 된 원인으로 시조의 난해성과 주지성, 기교성과 장대화 그리고 율격 일탈을 지적하고 있는데, 나는 전적으로 옳은 말이라 믿어지네.

 

첫째. 시조의 난해성으로 말하면, 현대시조는 시상이 복잡하고 시어가 난해하고 일상어법이 파괴되고 표현을 낯설게 하고 비꾸러지고 엇나가고 지루하게 하고 비유와 상징이 너무 비약되어 독자가 읽으면서 감흥과 위안을 받기는 커녕 머리만 혼란해져서 읽다가 외면하고 만다는 거여.

 

이렇게 난해하게 씀으로써 전문가인 시조시인들과 일부 동호인들만이 향유하는 시적 독점상태가 되고 말았으니, 독자를 잃어버린 현대시조가 어떻게 국민의 사랑을 받고 발전 할 수 있겠는가.

 

【문】이상의 시는 어려워서 참으로 재미없지 않던가.

【답】모더니즘이 풍미하던 1930년대 중반부터 한국의 자유시는 난해시의 고질병을 앓아왔고, 현재까 지도 그 질병은

 

치유되지 못한 채 남아서 난해시만이 현대시인 것처럼 펄럭거리고 있는데, 시조의 현대화를 외치며 그 뒤꽁무니를 추종하는 일부 튀는 시조작품들이 쉬운 시조를 사랑하는 다수 국민의 등을 떠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난해한 언어의 함정에서 탈피하여 국민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 한 시는 다시금 국민의 예술이 될 수 없다.”고 허버트 리드는 지적했어. 이제 시조는 난해시 시대의 허망한 기교와 무의미한 언어의 모방을 끊어버리고, 다시 국민 속으로 들어가서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어 생동하는 국민의 쉬운 언어로 국민의 삶을 노래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둘째. 기교성과 장대화를 말하자면, 난해성의 이야기와 중복되는 어법 파괴, 낯설게 하기, 비틀기, 비 유와 상징 등 언어세공과 표현기법 등의 문제는 생략하기로 하세.

명시조는 수사나 기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치열한 시혼, 시정신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닌가. 시조는 고도로 전문적인

 

시조창작기법을 배운 시인들만이 써야하는 전문가 영역이 아니지. 시조는 생활인의 교양영역으로서 소양있는 국민이면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읽고 쓰고 짓는 국민의 시조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문】요즘 시조는 모두 길어졌는데 왜 짧은 시조는 없는가.

 

【답】현대는 정보의 홍수 시대이고 생활체험이 복잡다양하여 시조의 장대화 당위성은 인정할 수 있 다 하겠으나, 1932년 가람이 연작시조를 쓰자고 주장한 이후 시조는 연작시조 일변도가 되어버렸고, 근래에는 단시조 엇시조 사설

 

시조와 연시조 등 여러 형식을 혼합해서 자유시보다 장대한 옴니버스시조라는 새로운 시형식을 만들어 놓고 21세기 우주시대의 위대한 발명품인 양 자화자찬하며 국민에게 읽으라고 하는데, 휴대폰 PC TV 모바일 등 IT시대의 재미있는 것이 많은 국민이 공감하고 감격하여 읽겠는가.

 

시상의 전개가 길면 고산의 〈어부4시사〉처럼 기존의 연시조 형식으로 얼마든지 길게 쓸 수 있지 않은가. 시형식이 없어서 또는 시형식이 낡아서 명시조를 쓰지 못 한다면 참으로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네. 외국에서 직수입한 설익은 문예사

 

조나 자유시의 모방적 작시기법을 시조에 적용하거나 어설프게 실험하는 것이 시조의 현대화이고 세계화라 할 수 있을까. 굳이 장대화 논리로 시조의 원형인 짧은 시조를 밀어낼 건 없지 않은가. 시조 3행으로도 한국의 정서, 가락과 울림, 하늘과 땅, 소리와 침묵, 과거와 미래를 다 담고도 남음이 있지 않은가.

 

물론 시조의 작은 틀에 여러 형태의 삶과 시대정신을 구체적으로 다 담아낼 수는 없는 것이지. 시란 그 일 부분 한 단면을 선택해서 그리는 것이니, 시조로 쓸 수 있는 만큼을 쓰고 써야할 몫만큼을 쓰면 족하지 않은가. 시조는 절제와 상징, 생략과 여백으로 추구하는 간결의 미학이지.

 

A. Poe는 시는 짧은 것이라고 했어. 하이꾸는 17자 1행의 짧은 시인데 계절과 자연과 인간을 노래하는 세계인의 시로 높이 평가받고 있지 않은가.

 

셋째. 주지성 문제인데, 인류의 역사는 지(知)를 토양으로 한 학문과 정(情)을 바탕으로 한 예술이라는 2개의 조화로운 수레바퀴에 의해서 발전되어 왔어. 시조는 그 바탕이 정서이어야 하고 그 흐름의 요체는 한국의 정조(情操)요 서정이어

 

야 함은 말할 나위없는 거지.

감동의 파동이 없는 머리에서 끄집어낸 관념의 파편들을 모아 기능공처럼 재조립해서 만들어 낸 이지적 시조가 무슨 감

 

동과 위안을 줄 수 있겠는가. 지만 남고 정이 빠진 시조는 고사목과 같아서 골격미는 있을지언정 생동감과 생명력은 없어지고 말지 않겠어.

 

넷째. 시조의 율격 일탈 문제인데, 시조는 한국인의 내재율이고 리듬의 고향이여. 3장 6구 12음보의 시조에는 흐름이 있고 굽이가 있으며 마디가 있고 풀림이 있어. 우리의 역사와 문물, 풍토와 습속, 생활리듬과 호흡, 언어와 율독관습이 어

 

우러져 이루어낸 한국적 율격이 있고, 이 율격 안에 우리의 성정과 정조가 녹아있어서 서정을 길어올리면 율격이 구성지고 율격이 어울어지면 서정이 아롱지게 된다 할까.

 

헌데 현대시조는 의식의 과잉과 길어진 군더덕이로 율격이 무너지고, 서정의 결핍으로 감정이 파동치는 시조의 율격을 일탈하고 있으니 리듬을 잃은 시조, 율격을 무너뜨린 시조가 어떻게 국민의 정조에 감동과 즐거움을 줄 수 있겠는가.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국민들에게서 멀어져버린 국민의 시조를 국민이 원하는 모습으로 다시 국민들에게 돌려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여기 조운(曺雲 1900 - ?)의 생활시조 한 수를 소개할까.

 

           쥘상치 두 손 받쳐

           한입에 우겨 넣다

 

           희뜩

           눈이 팔려 우긴 채 내다보니

 

           흩는 꽃 쫓이던 나비

           울 넘어로 가더라                                                 〈 상치쌈 - 조운 〉

 

독자들인 국민은 짧고 간결한 시조, 읽기 쉬운 시조, 외우기 쉬운 시조, 읽을수록 흥겨운 시조, 서정적인 생활시조, 아름다운 모국어를 배우고 정서를 순화시키는 시조, 삶의 의미와 시대정신을 일깨워주는 시조의 부활을 고대하고 있어.

 

이제 시조시인들은 이와 같은 국민의 기대와 욕구에 작품으로 성실하게 응답하기 위하여 국민 속으로 돌아가 짧고 쉬운 국민의 시조를 써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2. 시조를 국민시로 삼고 발전시켜 나아가자.

   

문】요즘 학생들의 정서가 황폐하고 언어가 암호화되고 비속해져서 나라의 장래가 걱정일세. 좋은 노래가 그러하듯이 좋은 시조도 정서를 순화하는 기능이 있지 않은가.

 

【답】국민소득이 13,000만 달러를 넘어서고 단군 이래 가장 부자나라가 되었다고들 하는데, 우리 사 는 현실을 보면 결식아동은 몇 십만명을 헤아리고, 노숙자는 날로 늘어나고, 가구마다 빚은 3천만원을 넘어서고, 일진회 등 청소년 범죄는

 

흉포해지고, 서민의 살림살이는 추수 끝난 허수아비처럼 갈수록 허전하기만 하다고들 그러네.

햄버거와 콜라로 사육되고 있는 청소년들, 휴대폰과 인터넷에 중독된 청소년들, 현란한 TV쑈와 폭력영화에 길들여진 청

 

소년들, 만화를 보아도 수입만화만 보고, 책을 읽어도 〈빨강 머리 앤〉을 읽고, 그리기를 해도 비너스 데생을 하며 자라나는 청소년들, 그리고 거칠고 오염된 언어로 몸살을 앓고 있는 우리 국민의 마음에 무슨 아름다운 한국정서가 깃들 것이

 

며, 순화된 정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현대인의 병리는 윤리의식의 마비에 있다.”고 T.S. 엘리어트는 지적했어. 어느 것이 선이고 어느 것이 악인지 분간하려는 의지조차 상실해버린 도덕적 진공상태에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청소년들을 비롯한 우리 국민의 병든 심성을 순화하고 우리 사회의 병리를 차유하며, 아름다운 국어생활을 통해 따뜻한 사회,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데 정치적 교육적 종교적 여러 방법들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예술적 방법으로 감성에 호소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네.

 

도덕의 기초는 설교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인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이다.”고 P. B. 러셀은 강조했어. 시는 주린 배를 채워 줄 수는 없어도 눈물은 닦아 줄 수는 있는 거지. 영혼을 노래하는 시는 사람들에게 고상한 감정과 선량한 행동을 빚어낸다고 빅토르 유고는 노래했어.

 

사람의 마음에 시가 없으면 그 가슴은 갈잎처럼 메마르고, 사회에 시가 없으면 그 사회는 황무지처럼 거칠어지며, 시가 없는 나라는 문화적 사막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공자는 민요 300편을 모아시경〉(詩經)을 엮어 가르치며, 해이하고 타락해 가는 백성들의 마음을 가다듬게 했는데, 그는 시가 사람의 마음에 파고들어 심성과 태도에 변화를 일으키고, 나아가 사회질서를 개조 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네.

 

삶의 자리가 황량한 벌판으로 느껴질 때 우리는 한 편의 시가 말로 다 할 수 없는 위안을 주는 경험을 하게 되지.

이러한 예술과 문학 중에서도 우리는 정서를 어루만져 주고 생활에 위안과 기쁨을 주는 시조를 오랫동안 누려오고 있지 않은가.

 

시조는 우리 겨레의 전통 정형시로서 고려 말에 완성되어 면면히 이어지며 발전해 오다가, 1910년 일제의 강제합방 이후 역사의 격동기에 구시대와 신시대 간에 단절되어가던 한국문화를 이으려고 힘쓰던 육당에 의해 재생하게 되었어.

 

【문】육당이 문화운동과 계몽운동도 하고 잡지도 냈다지.

 

【답】그렇다네. 육당은 일제가 말살하려는 시조에 조선주의와 불교사상을 담아 국민문학으로 삼고자 시조부흥운동을 전개했는데, 여기에 가람, 노산, 조운, 월탄, 무애, 팔봉, 일석 등 많은 문인 학자 들이 작품과 연구논문으로 동참했고, 신

 

문잡지의 신인발굴과 국민의 열성스런 참여로 시조부흥운동은 날로 발전해 갔을 뿐 아니라, 조선어가 끊기고 이름까지 창씨개명되던 위기에서도 한글시조 창작은 중단 없이 전국 어디서나 신문 잡지 또는 개인시집으로 발표되는 등 시조는

 

겨레의 독립정신과 우리 문학의 깃발로 꿋꿋하게 명맥을 이어왔다네.

 광복 후 국문학에 대한 열기가 일자 한때 시조는 지식층의 격조있는 교양과 취미생활에 제몫을 했으나 점점 국민에게서

 

멀어져 가고 말았지.

6.25 후 폐허 속에서 시조는 다시 부활의 태동을 하다가, 60년대 들어 시조 전문지가 창간되고 한국시조작가협회도 창립

 

되어 활동을 전개함으로써 전국 시조백일장이 열리고, 조선 동아 경향 등 주요 신문사의 신춘문예와 〈사상계〉〈 현대문학〉 등의 신인배출로 제2차 시조부흥을 맞이하게 되었어. 월하 이태극은 〈시조문학〉을 창간하고 140호 넘게 발행하

 

면서 수백명의 신인을 배출하는 등 가람과 노산의 뒤를 이어 시조발전에 크게 이바지 했다네.

그러나 시조는 시조시인들과 일부 동호인들이 향유할 뿐 국민에게서 점점 멀어져 갔는데, 그 까닭은 시조가 너무 어렵고,

 

길어지고, 율격이 흐트러져서 읽어도 맛을 못 느낀다는 것. 읽기 쉽고 외우기 쉬운 단시조는 자취를 감추고 자유시 같은 연시조나 사설시조만 있다는 것. 시조는 봉건시대의 낡은 시형식으로 현대감각에 맞지 않다는 불평들이었어.

 

【문】현대시조는 팍팍해서 읽어도 맛을 모르겠어. 안 그런가.

 

【답】그러면 이 점들을 살펴보기로 하지.

 

첫째. 음식에 맛이 있듯이 시조에도 맛이 있는 거지. 씹으면서 음식의 맛을 즐기듯이 좋은 시조는 읽 으면 맛이 느껴지고 맛이 있으면 외우게 되지. 씹히지도 않는 음식은 뱉아버리듯 어렵고 맛이 없고 가락이 없는 시조는 읽다 말지 않은가.

좋은 시조는 요란한 이념 주장도 심오한 철학탐구도 영롱한 수사도 아니여. 독자인 국민이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는 평범하고 간결한 생활시조가 아니겠는가.

 

둘째. 1932년 가람이 시조의 혁신을 논하며 연작시조를 쓰자고 주장한 이후 지난 70여년 동안 시조 는 연작시조 일변도가 되어 버렸어. 시조를 쓰면 작품 취급 받기도 어렵고 시인대접 받기도 껄끄러운 현상이 이어져 오고 있지.

 

나는 당선 시상식에서 “시조의 원형은 단시조이고, 단시조는 한국 서정시의 고향입니다. 나는 우리 삶의 한 단면을 쉽고 정감있고 격조 높게 그려내는 간결한 완결미의 단시조를 추구하고자 합니다”라고 당선소감을 밝힌 바 있어.

 

승용차도 대형차를, 아파트도 대형아파트를 선호하고, 소설도 대하소설이 인기를 누리는 세태지만, 황진이, 홍낭, 매창의 보물급 시조는 모두 단시조가 아닌가. 독자인 국민이 원하는 짧은 시조, 읽기 쉬운 시조, 생활시조를 쓰는 일이 시인이 할 일이 아닌가.

 

셋째. 시조는 봉건시대의 낡은 시형식이라는 주장은 근거없는 논리듯 싶네. 영어권에는 13세기부 터 지금까지 소네트( Sonnet)라는 14행시가 쓰여지고 있고, 중국에는 6~9세기부터 절구와 율시가 지어지고 있으며, 일본에도 수 백

 

년 동안 하이꾸와 와까가 원형 그대로 쓰여져 오고 있을 뿐 아니라, 하이꾸는 이미 세계인의 하이꾸시로 국제화되어 널리 사랑받고 있지 않은가.

 

시조의 형식은 멀리 신라의 향가로부터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우리 겨레의 역사와 풍토, 언어와 율독관습, 정서와 사고체계, 호흡과 생체리듬 등 모든 문화 요소들이 어울려 자연스럽게 빚어낸 3장 6구 12음보의 독특하고 예술성 높은 미학

 

이 아닌가. 문제는 시조의 연조나 형식이 아니라 시조의 내용과 표현이 아니겠는가. 우리 시조는 간결한 틀에 현대적 감성으로 이 시대의 삶과 시대정신을 담아 참신하게 표현하는 생활시조가 되어야 하리라 믿네.

 

이 시대는 문화폭발의 시대여. 특정한 몇몇 문화귀족들만이 문화를 독점하고 누리던 시대는 이미 지났어. 의상문화 음식문화 주거문화 독서문화 관람문화 여행문화 등 온갖 문화가 생겨나고 있고, 누구나 문화에 참여하는 시대가 되었어. 먹고

 

살기에 팍팍한 삶 속에 기왕이면 윤기를 더하려 하는데, 이런 욕구가 바로 문화를 만들어가는 원동력이 아니겠는가.

가령 옷을 입더라도 이 양복에 어느 구두가 어울릴까, 넥타이는 무슨 색을 골라 매어야 멋있고 세련되어 보일까를 생각하

 

는 문화의식이 확산되면서 삶의 질도 향상되게 되는데, 이렇게 문화인구가 확대되고 사회에 활력이 증대되는 것이 곧 발전하는 국력의 바탕이 아니겠는가.

 

나라에는 애국가가 있고 나라꽃이 있듯이 문화국가에는 국민시가 있으니, 우리는 국민이 읽기 쉽고 외우기 쉽고 짓기 쉬우며, 국민정서에 맞고 민족적 개성이 뚜렷한 예술성 높은 시조를 우리 국민시로 정할 것을 나는 주장하는 것이네.

 

【문】일본의 하이꾸 같은 국민 누구나 쉽게 짓는 시 말인가.

 

【답】그렇다네. 시조는 형식이 3행으로 짧고 표현이 간결하며 내용이 삶의 애환을 노래하는 격조 높 은 전통 서정시로서, 읽기 쉽고 외우기 쉬우며 읽으면 그 가락에서 흥취가 솟아나와 온 국민이 누구나 쉽게 친숙했던 오랜 민족의 전통시가 아닌가.

 

국민시가 갖추어야 할 요건을 들어보면,

    

     ① 시형이 일정하고 간결하며,

     ② 한국적 가락이 있어야 하고,

     ③ 내용이 읽기 쉽고, 알기 쉽고, 외우기 쉽고, 짓기 쉬우며, 깊은 뜻이 있어야 하고,

 

     ④ 우리의 삶과 시대정신을 노래해야 하고,

     ⑤ 예술성이 있고 격조가 높아야 할 것이라고 보네.

 

그런데 우리 시조의 특성 살펴 보면,

 

① 시조는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3행시이면서 한국어에 알맞은 정형시이네. 그 간결하고 단아한 형식 미에 더하여 자음과 모음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우리말은 음절을 자유롭게 줄일 수도 늘일 수도 있으므로 정형시의 율격에 맞추기가 어렵거

 

나 어색하지 않을 뿐 아니라, 말을 줄이거나 늘임으로써 오히려 응축 절제 간결미와 이완 여유 음악적 울림의 묘미를 더할 수가 있으니 안성맞춤이 아닌가.

 

② 시조는 민요와 판소리 같은 3.4조 4.4조의 한국적 운율이 기본인데, 이 가락은 우리 겨레의 호흡 과 율독관습, 언어와 생활풍습, 역사와 풍토 등 여러 문화요소들이 오랜 세월 어울려 빚어낸 독특한 토종 가락이네.

 

시조에는 이 가락이 3장 6구 12음보의 마디마다 깃들어 시조의 율격을 이루고 있지. 초장과 중장은 3.4 또는 4.4 음수로 반복되다가 종장에서 3.5.4.3으로 맺고 풀어서 마무리를 짓는데, 3음수에서 5음수로 넘어가는 이 리듬의 변화에서 우리

 

겨레의 독특하고 탁월한 가락이 빚어져 나오는 것으로, 여기에서 어머니의 다듬이 소리가 들리고, 아버지의 도리깨 소리가 나며, 바라춤의 소매자락이 휘돌아가는 운치가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역사적인 가락으로 해서 시조는 읽으면 감칠맛이 있고 감흥이 절로 일어나는 것이라네.

 

③ 시조는 호흡에 맞는 3.4조나 4.4조의 생체리듬적 율격이 있을 뿐 아니라 본시 3행으로 짧아서 읽 기 쉽고, 알기 쉽고, 외우기 쉬우며, 읽으면 읽을수록 흥이 솟아나 재미가 있었지.

 

④ 충무공과 김종서는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시대정신을 싸움터에서 시조로 지어 노래했어. 우리 선 인들은 시대상황에 따라 전란 때는 애국충정을, 평화시에는 안빈락도와 자연 찬미를, 당쟁 때는 도피와 은둔을, 후학에는 수양과 인륜도덕을

 

그리고 여인들은 사랑과 이별을 시조에 담아 삶의 의미와 애환을 격조 높고 운치있게 노래했어.

그리고 1910년 일제의 강제합방 때는 문인 학자 지식인을 비롯해서 가정주부에 이르까지 자주독립을 쟁취하고 매국노를 규탄하는 500여편의 시조를 지어 국민계몽운동을 펼치며 일제에 끈질기게 저항했던 것이 다름 아닌 시조였다네.

 

⑤ 시조는 3행으로 짧은만큼 군더더기는 모두 제거해서 시상이 명징하고, 의미가 간결하며, 표현이 절제되고, 단아한 형식미에 맺고 푸는 가락을 둔 기발한 종지법의 미학으로써 예술성 높고 격조있는 문학이지.

 

무애는 홍낭의 〈묏버들 갈해 걲어〉를 국보라 칭송했고, 어느 시인은 지은 이를 모르는〈나비야 청산 가자〉를 보물이라 찬미했거니와 이능우는 시조 6수와 한시 8편을 남긴 황진이의 문학 두고 ”우리 고전을 송두리째 바꾸는 한이 있더라도 당할 수 있는 것“이라고 그의 〈이조시사〉(李朝詩史)에서 칭송하고 있네.

 

【문】아, 시조가 그렇게 훌륭한 문화유산인가.

 

【답】그렇다네. 이렇게 볼 때 시조는 국민시가 될만한 요건을 고루 다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지 않 은가.

노랫말 시의 시대를 보내고 읽는 시의 시대를 불러온 것이 개화기 신시의 시대였다면, 그리고 서정시의 시대를 보내고 이

 

야기시의 시대를 불러온 것이 1980년대였다면, 이제 이야기시의 시대를 보내고 낭송시와 노래시의 시대를 열어가는 것이 21세기 시문학의 미래모습이 아닐까 싶네.

 

정보화시대가 열리고 있는 지금 자유시가 있고 시조가 있듯이 미래에는 영상매체의 시가 있고 인쇄매체의 시가 있을 수 있겠지. 시조는 이 시대의 문학에서 일시 소외되고 있지만 어쩌면 영상매체의 시가 주도하는 미래에는 시도 문자시보다

 

소리시를 지향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토속적 가락과 전통적 운율이 구성진 시조야말로 우리 국민시의 가능성이 크다 아니할 수 없지 않은가.

 

21세기는 상품만 수출하는 시대가 아니고 문화를 함께 수출하는 시대이지. 시조를 국민시로 삼아 온 국민이 사랑하고 발전시켜 장차 세계문단에 수출하기 위해 우리는 할 일이 많다네.

 

문화관광부는 한글날 개천절 광복절 제헌절 등 국경일에 전국규모의 청소년 및 성인의 시조백일장을 열어 큰 상을 주고 격려해주면 좋겠지.

 

교육인적자원부는 초중고 대학의 국어교과서에 더 많은 시조를 실어서 가르치게 하고, 옛날에 있었던 재미있는 시조그림카드를 다시 만들어 어린이들이 카드놀이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외우도록 하며, 유치원에서도 이를 활용하면 좋지 않

 

을까. 한국에 오는 외국의 유학생들에게는 전공에 관계없이 누구나 시조를 필수교양으로 배우도록 하고, 각급 사회교육기관에는 시조강좌를 열어서 관심있는 성인들을 가르치도록 장려했으면 좋지 않을까.

 

문화재관리청은 도자기 그림 서지 석탑 건축물 그리고 인간문화재처럼 명시조를 심의해서 문화재로 지정하고, 유명시조작가의 유적을 발굴 보존하여 국민시 학습의 장을 마련해 주면 어떨까.

 

그리고 민관합동으로 국민시진흥재단을 만들어 역량있는 시조시인을 지원 육성하고, 역대 명시조집을 계속 발간 배포하며, 공원과 놀이터, 관광지에 명시조탑을 세워 국민 누구나 지나다가 친숙하게 읽을 수 있도록 해 주면 좋겠어.

 

【문】시조 문학관을 세워서 교육의 장으로 하면 어떨까.

 

【답】그 거 좋은 생각이네. 각 TV방송은 국민시 시간을 두고 시청자 투고를 받아 방송해 주고, 각 신문사는 국민시란을 두어 독자투고를 받아 작품평과 함께 실어주면 국민의 큰 호응을 받을 걸세. 각종 잡지와 기관지, 회지와 사보는 국민시

 

란을 두고 투고를 받아 실어주면 좋겠지.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국민들이 시조를 많이 읽고 외우고 지어 보면 좋지 않을까 싶네.

 

우리는 세계에 유례 없는 독창적인 전통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다른 문학과 달리 한글로만 작품을 쓰는 시조문학과 한글을 비하 말살하기 위하여 간악한 일제가 날조한 식민지논리, 일본문화와 일본을 통해 들어온 서구문화가 우리 전통문

 

화보다 우수하다는 수입품논리, 봉건시대 양반들의 여기라는 1920년대 카프파의 계급문학논리와 맹목적이며 무비판적인 문화적 사대주의 전통문화이면 무엇이나 봉건시대의 버려야 할 못 쓸 유물 천대하는 악습 때문에, 빛나는 문학유

 

산을 100년 동안이나 묵정밭으로 방치하고 있지 않았는가. 제 나라 전통시를 모르는 사람은 문화적 실향민이요 국적없는 이방인이 아니겠는가.

앞으로 우리 시조는 국민의 생활감정과 관심사를 국민의 쉬운 언어로 써서 국민에게 바침으로써,

 

       거칠어진 국민정서를 어루만져주는 국민시,

       오염되고 기형화된 국어를 순화시켜주는 국민시,

 

       타락한 사회병리를 건강하게 치유시켜주는 국민시,

       아름다운 모국어와 한국정서의 고향인 시조를 발전시켜 세계문학에 기여하는 국민시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 겨레의 전통시인 시조를 국민시로 삼아 발전시켜 나아갈 하이네나 이시가와 다꾸보꾸(石川琢木) 같은 국민시인이 하루 속히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네.

 

  

3. 국민시를 세계화로 밀고 나아가자.

 

 

【문】이제 우리는 세계 10대 교역국이 되었으니 우리 문학도 세계로 나아갈 때가 되지 않았는가. 한 국문학의 세계화는 가능하다고 보는가.

 

【답】문학의 세계화가 구미문학의 세계평정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고 여러 나라의 독특하고 개성있는 문학을 세계인이 상호 이해하고 향유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한국문학의 개성이요 우리 겨레의 정조(情操)를 담은 시조를 세계문학의 광장

 

에 내세워야 마땅하리라 보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먼저 겨레의 개성이 뚜렷하고 예술성이 높은 시조를 현대적 감성으로 갈고 닦아서 온 국민

 

이 사랑하는 국민시로 삼아 발전시키고, 나아가 국민시를 기반으로 세계문단에 진출하여 세계인의 이해와 사랑을 받도록 하는 데에 우리 한국문학 세계화의 길이 있다고 믿고 있네.

 

하이꾸를 세계인의 시가 되게 한 일본의 예를 살펴보세. 하이꾸는 일본 중세기부터 수 백년 동안 와까(和歌)에서 렝까(連歌)로, 렝까에서 하이가이(俳諧)로 변모를 거듭하다가 17세기에 이르러 걸출한 민족시인 마쓰오 바쇼오 (松尾芭蕉

 

1644-1694)에 의하여 불교사상을 바탕으로 자연을 찬미하고 서민의 애환을 노래하는 평민문학의 한 장르로 재창조된 일본의 전통 정형시이네.

 

하이꾸는 5. 7. 5의 17자 음수율로 된 1행시로서 세계에 그 유례가 없는 짧은 시인데, 일본인들은 그 전통시의 형태는 단 한 자의 가감도 없이 원형을 그대로 고스란히 유지한 채, 변화하는 시대를 시의 내용에만 반영하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백년 동안 국민대중의 시로 계승발전시켜 왔었다네.

특히 19세기 중엽 일본이 메이지유신(明治維新)으로 문호를 개방하고 서구문물을 받아들여 온 나라의 개혁을 단행할 때,

 

거세게 밀어닥치는 서구문화 속에 일본의 야마또정신(大和精神)과 전통문화가 익사당할 것을 우려한 시인 마사오까 시끼(正岡子規)는 동지를 모아 9인가회(九人歌會)를 만들어 일본정신을 지키고 하이꾸와 와까 등 전통시를 부흥계몽하여 국민시로 발전시키는 데에 온갖 노력을 다 했다네.

 

【문】일본의 신문 방송은 하이꾸를 경쟁적으로 계몽했다지.

 

【답】그 결과 오늘날 일본에는 하이꾸시인만 해도 100만명을 헤아리게 되었고, 초등학교 어린이로부 터 시골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도시고 농촌이고 국민 누구나 하이꾸를 즐겨 읽고 짓게 되었으며, 하이꾸는 친근한 생활시, 국민시로 널리 사

 

랑을 받으며 정서와 언어를 순화시키고 삶의 질을 높이고 있다네.

뿐만 아니라 하이꾸는 1910년대에 에즈라 파운드를 중심으로 한 서구 현대시의 이미지즘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으

 

며, 이렇게 서구 여러 나라에 소개된 하이꾸는 자연과 계절을 곁들여 인간 실존을 노래하는 세계인의 서정시, 세계의 하이꾸로 널리 사랑을 받게 되었다네.

 

오늘날 유럽에는 수많은 하이꾸시인들이 있고 현지어의 하이꾸시집도 계속 발간되고 있으며 여러 대학에 하이꾸 강좌도 개설되어 있다 하네. 연전에 뉴욕 타임즈는 하이꾸 란을 두고 독자투고를 받아 작품평과 함께 날마다 계재했는가 하면,

 

미국 어느 주의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는 바쇼오와 잇짜의 하이꾸를 실어서 가르치기도 한다니 부럽지 않을 수 없네.

얼마 전 국제 PEN대회 때 외국 문인 학자들이 우리 시조에 관심을 보이고 묻기도 했다거니와, 언젠가 한국문인들이 노벨

 

상을 관계하는 스웨덴 한림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시조에 관해 질문을 받았으나 누구 하나 응답을 못 했다 하네. 한국적 개성이 뚜렷하고 예술성이 높아서 외국인들마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우리의 전통시인 시조를 한국문인들이 모르다니 참으로 부끄럽고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네.

 

같은 전통 정형시지만 중국에는 4행의 절구와 8행의 율시가 있고, 일본에는 1행의 하이꾸와 2행의 와까가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3행의 시조가 있으니 이것은 이웃한 동양 3국의 역사적 문화적 필연일는지 음미하게 된다네.

 

그리고 운을 두는 한시나 음수율인 하이꾸와 와까는 자수에 한 자의 가감이나 시형의 변형도 할 수 없는 엄격한 정형시(定型詩)이지.

 

예를 들면 이렇다네.

 

            寺在白雲中      가람은 구름 속에 묻혀 있건만

            白雲僧不掃      스님은 구름자락 쓸지를 않아

            客來門始開      나그네 찾아드니 열리는 문

            萬壑松花老      골짝마다 누렇게 송화꽃 나네

  

            5 자×4 행 = 20자                                                        5언절구      山寺 - 李達

 

 

        

 

           年暮ぬ 笠きて 草鞋 はきながら                 한 해 저무네 삿갓 쓰고 짚신을 신는 사이에 = 17자

            

             5    +        7      +       5      =    17자                         < 하이꾸 - 바쇼오 〉

 

 

 

 

 

           ふるさとの 訛なつかし 停車場の               두고 온 고향 사투리도 그리워 정거장으로

                5      +         7      +     5     +

            人ごみの 中に そを 聽に ゆく                  분비는 사람 틈에 그 말 들으러 가네 = 31자

                 7        +          7         =      31자

                                                                           와까 - 이시가와 다꾸보꾸 〉

 

이에 반해 시조는 초장과 중장에서 자수의 융통성이 있을 뿐 아니라 종장에서는 3.5.4.3으로 맺고 푸는 변화를 주는 종지법(終止法)으로 완결미를 추구하는 정형시(整型詩)인데,

 

이러한 율격은 세계에 그 유례가 없는 독창적인 리듬으로서 이 리듬 속에는 한국의 다듬이 소리, 벅구 소리의 가락과 멋이 숨쉬고 있는 것일세. 자수에 융통성이 있고 여운이 긴 우리 시조의 예를 하나 들어 보면,

 

            어저 내 일이여 그릴 줄을 모르던고

            이시라 하더면 가랴마는 제 구태여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시조 - 황진이

 

명시인 황진이가 남긴 구슬보다 영롱한 시조 6수 중의 하나이네. 아름다운 우리말을 매끄럽게 다루어 쓰는 솜씨도 빼어나거니와 사랑하는 사람을 어쩔 수 없이 보낸 회한과 곡진한 연모의 정이 읽는 이의 가슴에 절절히 젖어드는 듯 하지.

 

가람 이병기는 이 시조를 읽고 이 한 수의 시조가 나의 스승이다.”고 감탄하며 일생의 대업으로 시조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하네.

 

지금 우리는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국운이 상승하는 역동적인 때를 만났네. 일제 식민살이 빈곤에서 벗어났고 경제건설을 성공시켜 세계 10대 교역국으로 성장하여 OECD에도 가입되었으며, 판소리 국악 사물놀이 오페라 영화 등 우리 예술이 세계무대

 

에서 상도 받고 호평을 받고 있지 않은가.

김치와 술 등 발효식품은 세계인의 기호식품이 되었고, 온돌은 유럽에서 이상적인 난방방식으로 평가되어 날로 보급이 늘고 있으

 

며, 유럽 패션계에 한복류가 영감과 영향을 주고 있다 하지 않은가. 올림픽과 월드컵경기를 잘 치루어 내며 우수한 성적도 거두었

고, 질서있고 열정있는 응원문화로 세계인을 놀라게도 했지. 세계에 불고있는 놀라운 한류열풍을 보게.

 

또한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라고 인정 받고 있으며, 1997년에는 종묘 제례와 제례악이 그리고 2001년에는 판소리가

유네스코에 의해서 세계를 통틀어 〈인류구전 및 무형 유산 걸작 47개〉 중 2개로 선정되는 등 우리의 전통문화는 이렇게 우수하고 가치있는 세계인의 문화로 평가 받고 있지 않은가.

 

이런 국운 융성을 더욱 빛내기 위해서 그리고 한국문학의 발전과 세계문학에 기여하기 위해서 우리 문단은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추진해야 할 때가 왔으며, 한국문학을 세게화하여 우리 시가 세계의 시가 되기 위해서는 가장 한국적인 개성이 있고 예술성이 높

 

으며, 세계 운문계에 그 유례가 없는 독특한 율격을 지닌 시조가 아니면 달리 무엇이 있겠는가. 나는 시조를 들고 세계화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네.

 

시조는 3행의 정형시로 일정한 틀이 있고, 짧아서 읽고 외우고 짓기가 쉬우며, 격조 높고 예술성 있는 생활의 시, 국민의 시가 분명하지 않은가.

 

또한 명징한 시상미, 일상적인 시어미, 절제된 표현미, 함축과 생략의 여백미, 은은한 여운미, 단아한 형식미에 맺고 푸는 기발한 종지법까지 우리 민족의 심성과 언어, 생활습속과 예술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지 않은가.

 

어느 민족이나 그 민족 고유의 오랜 전통운율이 있는데, 시조의 운율은 우리 겨레의 고유한 운율임이 밝혀졌어. 시조는 3.4조와 4.4조의 4음보격 율격과 가락으로 이루어졌는데, 이 율격은 우리의 언어와 생체리듬, 호흡과 율독관습, 풍토와 생활양식, 역사와 문화 등 모든 문화요소들이 오랜 세월 어우러져 이루어낸 우리 겨레의 개성이며 생활리듬이 아닌가.

 

우리의 시조를 세계화하려면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시조를 먼저 국민시로 삼아 온 국민이 사랑하고,

다음으로 국민시를 바탕으로 세계화하는 수순을 취해야 하지 않을까. 시조를 국민시로 삼아 발전시키는 일은 앞서 살펴보았거니와 국민시를 세계화하는 데에는 장기적이고 범국민적 역량이 모아지고 지속적인 노력이 있어야 하리라고 보네.

 

예를 들면,

 

   ① 국악을 배경음악으로 명시조 낭송 CD를 만들고, 명시조집과 그 번역본을 발간해서 원본과 함께 한 국문학을 연구하

       는  외대학에 정기적으로 보내는 일.

   ② 한국문학을 하는 외국교수들을 초빙해서 발표회 등을 열고 계속 자료를 보내주는 일.

 

   ③ 재외 한국문화원과 공관을 통해 홍보 하는 일.

   ④ 대외방송에 시조시간을 두어 명시조를 낭송하고 투고를 받는 등 홍보하는 일

 

   ⑤ 세계PEN대회와 노벨상위원회그리고 외국의 여러 문인단체 등에 자료를 제공하고 홍보하는 일.

   ⑥ 각종 국제회의 때 자료를 배부하고 홍보하는 일.

 

   ⑦ 한국무역협회와 무역업체 등이 상품이나 용역과 함께 문화상품으로 시조 마케팅을 하는 일.

   그밖에 유능한 인재들의 좋은 아이디어를 많이 동원하면 큰 성과가 있으리라 믿어진다네.

 

얼마 전 우리나라의 저명한 어느 화가는 외국의 유명한 미술전에 초대를 받고 감격하여, 최고의 캔버스와 최상의 물감을 구입하여 혼신의 노력을 다해 서양화를 그려 출품했는데 막상 전시장에서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더라네. 깨달은 바 있어 다음해에는 장판

 

지에다 한국화풍으로 그려 출품했더니 지나는 사람마다 발을 멈추어 감상하며 칭송했고 그 작품이 높은 값으로 팔렸다는 것이여. 세계의 화단은 한국적 개성이 있는 한국의 그림을 원한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가장 민족적인 것이 곧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고 괴테는 강조했어.

 

     자유시를 서양화라면  시조는 한국화요,

     자유시를 아리아라면  시조는 판소리이지.

     자유시를 발레라면  시조는 한국춤이며,

     자유시를 웨스트민스터종이라면  시조는 에밀레종이요,

     자유시를 수입시라면  시조는 신토불이의 토종시가 아닌가.

 

이제 문학의 세계화 시대를 맞이하여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위해 자유시의 본고장인 서구 문학계와 세계 문단에, 저들의 시형식을 빌어 저들의 이론과 작시기법으로 쓴 한국의 자유시를 내놓을 것인가.

 

아니면, 한국적 율격의 3행 전통시이며 겨레의 개성이 뚜렷하고 예술성과 격조 높은 토종 시조를 내놓을 것인가.

한국문학의 세계화는 그 해답이 시조에 있음이 명백하지 않은가.

 

우리는 시조를 온 국민이 사랑하는 국민시로 키워내고,

이를 기반으로 하여 국민시를 세계화로 어기차게 밀고 나아가야 이 아니겠는가. ♣ 동행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