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요즘은 한국신화라고 하면, 자청비나 당금애기 이야기 같은 무속 신화를 많이 이야기 합니다. 그렇습니다만, 이런 부류의 무속 신화는 1930년 발표된 손진태의 “조선신가유편” 이후 20세기에 조사된 것이 대부분입니다. 물론 이런 것들도 좋은 소재이기는 합니다만, 어떤 형태로 언제부터 전래된 것인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신화의 내용은 먼 옛날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20세기 이후에 창작된 이야기가 끼어 있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여기서는 그런 요즘 많이 이야기하는 현대에 조사된 무속신화를 보충하는 의미로, 고려시대에 나온 책인 “삼국유사”에서 신령, 마귀에 관한 이야기, 신화들만 뽑아 보았습니다. 이 이야기들은 삼국과 신라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고려시대에 기록된 내용인 만큼, 오랜 옛날, 삼국과 신라의 신화를 짐작하게 해 주고 그런 이야기들이 고려시대까지 어떻게 전래되며 남아 있는가 하는 내용도 상상하게 해 줍니다. 또한 이런 이야기들 중에는 비슷한 소재, 비슷한 구성의 내용들이 조선시대 이후로도 이어지는 것들이 많아서, 긴 시간 이어지며 정착된 한국신화의 형태가 어떤 것인지 상상해 볼 여지도 충분 합니다.
아래에서는 대략 37종으로 항목을 나누어 편성해서 “삼국유사” 속의 신화를 정리했습니다. 정리해 놓고 보니, 우리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한국신화의 전형적인 형태대로, 산을 관장하는 산신이나 산신령, 물과 바다를 관장하는 용이나 용왕 계통의 이야기가 많고, “삼국유사”의 저자가 불교 승려인만큼, 이런 신들이 불교와 어떻게 관련을 맺었는지에 관한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신화 속 신들의 성격과 특징은 의외로 다채로운 편이어서 훑어 보면 제법 볼만하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이 내용에서 힌트, 아이디어를 얻어 재미난 이야기, 그림을 지어내시는 분 계시다면 얼마든지 마음껏 써 보시기 바랍니다.
아래 내용 중 삽화는 본문 내용과는 대체로 직접 관련은 없으며, 그냥 제가 비슷한 분위기를 느끼시라고 적당히 한국계 유물 사진을 대강 찾아 올려 놓은 것이니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1. 환인(桓因)
(제주도 내왓당 무신도 중 제석위)
하늘 위 세계의 일부를 지배하는 임금 같은 것으로, "삼국유사”에서는 불교 신화에 등장하는 “제석(帝釋)"을 말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불교에서 제석은 악을 물리치고 불교를 수호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그만큼 싸움에 매우 뛰어나고 술을 잘 마시는 느낌도 있는 등 괄괄한 느낌도 있습니다.
"삼국유사”에서는 흥륜사 이야기 등의 대목에서 제석이 하늘의 임금인 “천제(天帝)"와 동일시 되는경우도 있는데, 흥륜사 이야기에서는 제석이 지상에 나타나면 주변의 건물과 나무, 흙, 돌에 이상한 향기가 풍기고 오색구름이 일대를 뒤덮으며 근처 연못의 물고기들이 뛰어오른다고 되어 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불교 문화가 더욱 널리 퍼지면서 제석에 대해 숭배하는 것이 무당의 굿에 포함되었다는 기록도 나오는데, 이규보의 “노무편(老巫篇)” 같은 시가 그 예입니다. 이런 경우 제석은 주로 건강, 재물, 아기가 태어나는 것을 기원하는 신이 됩니다.
2. 환웅(桓雄)
(제주도 내왓당 무신도 중 천자위)
환인의 서자로, 하늘 위 세계에서 살고 있지만 하늘 아래 인간 세계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환인의 서자라고 했으니, 아마 그 형이나 어머니가 다른 적자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상상해 보자면 그 환웅의 형이 자신이 살고 있는 하늘 위 세계에 관심이 있는 반면, 환웅은 특별히 인간 세상에 관심이 많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 세상에 내려 와서는 농사, 의술, 형벌, 선악과 같은 인간 세계 360가지의 일을 주관하였다고 되어 있으니, 역시 인간을 위하는 신이면서 인간 세상의 여러 제도에 대한 신으로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환웅은 이상한 마늘과 쑥을 동물에게 먹게 해서 동물을 사람으로 바뀌게 하는 술법을 쓸 수 있는 것으로도 나오는데, 곰이 사람으로 변하는데 성공하고, 사람으로 변신한 곰, 즉 웅녀가 혼인할 사람을 구하자 직접 사람으로 변신해 곰과 혼인하기도 하는 등, 여러 모로 특이할 정도로 인간, 인간됨에 대한 애착을 보여 주는 신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3. 아사달(阿斯達) 산신(山神) - 단군(壇君)
(영식필 산신도 백운사본)
아사달 산신은 단군이 임금의 자리에서 떠나서 신선처럼 변해서 수천년 이상 살 수 있게 된 것을 말합니다. 단군은 웅녀가 단수(壇樹)아래에서 기도드린 결과로 태어났다고 되어 있으니 나무의 신으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세종실록”의 기록처럼 단군이라는 말 자체를 박달나무 임금이라는 뜻의 단군(檀君)이라고 할 때도 있고, “제왕운기”에 실린 이야기처럼 단수신(檀樹神), 즉 박달나무 신의 자식으로 단군이 태어났다고 할 때도 있으니, 역시 나무 또는 박달나무 신의 성격을 이어 받았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행적에서 드러나는 특징은 세속의 부귀영화를 벗어 던지고 산에 들어 가서 신선처럼 된다는 점이 눈에 뜨입니다. 일단 “삼국유사”에 실린 이야기에서부터 임금으로 살다가 임금 자리를 벗어 던지고 아사달의 산신이 되어 1908세까지 살았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임금으로 지낸다 한들, 속세의 삶은 죽으면 그 뿐이니, 오히려 산에 들어 가서 도를 닦으며 살면서 신선이 되어 수천년을 사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엿보인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후대에는 단군을 적극적으로 신선술의 상징으로 본 사례도 있습니다. 조선시대 소설인 “금오신화”의 “취유부벽정기”에서는 궁전의 공주라 하더라도 전쟁이 일어나고 난리가 나면 비참한 신세가 되는 것이 속세의 삶이니 차라리 속세를 떠나는 것이 낫다는 이야기를 해 주는 신령으로 단군에 해당하는 것이 나타나는 것으로 되어 있고, "해동이적” 같은 책에서는 단군을 신선이 되는 방법을 알아내려한 사람들의 시초로 보고 있기도 합니다.
또한 당연히 단군은 최초의 나라인 고조선을 세운 인물로 되어 있는 만큼, 이후 한반도와 인근 나라들의 신으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조선시대에 이르면 단군을 최초의 임금으로 조정에서도 숭배하기 시작하며, 이동휘의 “동사” 같은 책에서는 이후 모든 나라들이 다 단군의 후예라는 식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4. 천제(天帝)
(중앙박물관 소장 고려 시왕도 중 평등대왕)
하늘을 다스리는 임금으로 볼 수 있는 것으로, "삼국유사”의 북부여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해모수(解慕漱)와 동일시 되어 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는 오룡거(五龍車), 즉 다섯마리 용이 이끄는 수레를 타고 하늘과 땅을 오가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늘을 다스리는 임금으로 흔히 옥황상제 같은 도교 색체가 더 뚜렷한 표현을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삼국유사”에는 천제라는 표현이 더 많이 나오고, 한국사 최초의 신화 기록이라고 할 수 있는 “광개토왕릉비”의 앞부분에도 하늘을 다스리는 임금을 "천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삼국유사”의 표훈대덕 이야기 부분을 보면, 사람이 태어날 때 어떤 모습으로 태어나느냐 하는 것을 천제가 결정할 수 있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한편, 이목 이야기 부분을 보면, 이목이 자신의 능력으로 가뭄이 든 곳에 비를 내리자 하늘의 이치를 어겼다고 해서 화를 내고 번개로 공격한다는 대목도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보면, 하늘의 임금이기는 하지만, 세상 다른 일에 비해서 사람을 특별히 중시하지는 않는 듯 하여 사람에게는 비정하게 대하는 것이라고 상상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5. 하백(河伯) - 유화(柳花), 동명성제(東明聖帝)
(제주도 내왓당 무신도 본궁위)
하백이라는 말은 강물의 신이라는 뜻으로 중국 고전에서도 흔히 쓰는 표현인데, "삼국유사”에는 고구려를 세운 주몽의 외할아버지를 일컫는 경우가 가장 많이 나옵니다. "광개토왕릉비"에서도 언급 됩니다. "삼국유사”에서는 주몽이 위기에 처했을 때 거북과 자라가 물 위에 떠올라서 주몽이 도망칠 수 있는 다리를 만들어 주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런 것을 하백의 힘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외에 이규보의 “동명왕편”에서는 하백이 매우 좋은 술을 갖고 있는데 한 번 마시면 7일 동안 깨지 않는 술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도 소개 되어 있고, 여러가지 동물로 변신하는 재주를 갖고 있다는 장면도 나와 있습니다. 딸인 유화에게 벌을 내릴 때에는 입을 팔 다리 길이만큼 길게 튀어나오게 바꿔 버렸다는 이야기도 소개 되어 있습니다.
한편 유화는 “삼국유사”에서 하백의 딸로 되어 있고, 주몽은 그 유화의 아들인데 "삼국유사”에서는 동명성제라는 이름으로도 나타나 있습니다. 동명성제는 활을 아주 잘 쏘는 사람이라서 직접 활을 만들어 사용했고, 주몽이라는 이름 자체도 활 잘 쏘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삼국사기”에는 고구려에서 유화와 동명성제에게 제사를 지내고 신령처럼 숭배하는 듯한 묘사가 나와 있는 대목도 있는데, 예를 들어, 당나라 군사들이 요동성에 침입 했을 때 동명성제의 사당에 미녀를 단장시켜 부인으로 들여 보내면서 무당이 이제 동명성제가 기뻐하실테니 당나라 군사들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규보의 “동명왕편”에서는 유화 외에도 그 여동생으로 위화(葦花), 훤화(萱花)가 있다는 이야기도 언급 되어 있고, 유화가 물 속에서 살면서 어부가 물고기 잡는 것을 빼앗아 먹다가 그물에 잡혀 올라 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한편 동명성제에 대해서는 같은 글에서 구제궁(九梯宮)이라는 궁전을 하늘의 힘으로 구름 속에서 단숨에 만들었다는 이야기라든가, 옥기린(玉麒麟)을 길들여서 말처럼 타고 다녔다는 이야기라든가, 조천석(朝天石)이라는 돌을 타고 하늘에 올라가서 하늘 위 세상과도 오갈 수 있었다든가 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광개토왕릉비”에는 세상을 떠날 때 용의 머리를 딛고 하늘로 올라 갔다고 되어 있습니다.
6. 운제(雲帝) - 운제산(雲梯山) 성모(聖母)
(제주도 내왓당 무신도 중 중전위)
신라 2대 임금인 남해 차차웅의 부인인 운제부인(雲帝夫人)을 상징하는 신으로 현재의 포항 운제산에 깃들어 있는 신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름대로 구름의 여신인 셈인데, "삼국유사”에도 가뭄이 들었을 때 운제산 성모에게 기도를 드리면 영험이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7. 함달파(含達婆) – 28용왕(龍王), 적녀국(積女國), 적룡(赤龍)
(중앙박물관 소장 신중도 중 발췌)
함달파는 동해 건너 먼 곳에 있다는 용성국(龍城國) 또는 정명국(正明國), 완하국(琓夏國), 화하국(花廈國)이라는 곳을 다스리는 임금으로 용왕입니다. 총 28명의 용왕이 그 나라에 있다고 하는데, 서로 다투거나 따지지 않고 전부 순리대로 임금의 자리를 계승한다고 하며, 용왕이지만 사람과 혼인하여 여자의 몸에서 자손을 이어 간다고 되어 있습니다. 함달파는 적녀국(積女國)의 공주와 결혼했다고 되어 있는데, "삼국사기”에는 여국(女國)이라고 되어 있으니 이곳을 여자들만 사는 나라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함달파는 아들이 없어서 7년 동안 기도했더니 왕비가 커다란 알을 낳았고, 이것은 좋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멀리 보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서 이 알과 일곱가지 보물, 노비들을 모두 배 안에 있는 큰 상자에 넣어 배를 띄워 보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배가 적룡 즉 붉은 용의 보호를 받으며 떠다니다가 신라에 도착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함달파는 동해 먼바다의 신으로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고, 적룡을 부릴 수 있는 항해와 배의 신이라고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8. 동악신(東岳神) – 석탈해(昔脫解)
(석굴암 금강역사상)
신라의 임금인 탈해 이사금은 함달파와 적녀국 공주의 자식인 셈인데, 세상을 떠난 뒤에 동악(東岳), 즉 토함산의 신이 되었다고 합니다. 석탈해는 몸 뼈 길이가 9척 7촌으로 대단히 길어서 덩치가 크고, 두개골 둘레는 3척 2촌으로 큰 덩치를 고려해 봐도 유난히 머리가 긴 편입니다. 특히 이와 뼈가 한 덩어리로 이어져 있으며, 세상에서 누구도 이길 수 없는 힘이 센 사람 모양의 골격이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대단히 힘이 세고 강한 신입니다.
한편 풍수지리를 따져서 호공의 집터가 좋다고 보고 속임수로 그 집터를 빼앗았다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이런 내용을 보면 풍수지리에 밝고, 속임수에도 밝은 신으로 볼 수 있습니다. 속임수를 쓸 때 자신이 예로부터 대장장이였다고 소개하는 대목이 있는 것을 보면, 대장장이의 신이나 철의 신으로 상상해 볼 여지도 있을 것입니다.
신라에서는 탈해 이사금의 뼈를 부수어 넣은 신상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처음에는 궁전에 두다가 나중에는 토함산에 두었다고 합니다.
9. 치술신모(鵄述神母)
(국사당 무신도 중 곽곽선생)
신라 눌지 마립간 시절에 박제상은 왜국에 가 있는 왕자를 몰래 빼내 오기 위해 왜국왕을 목숨 걸고 속이다가 결국 죽게 됩니다. 목숨을 걸고 일을 해내고 고문 당하다 죽을 때까지 충성을 외치는 모습 때문에 흔히 목숨 바치는 충신의 모습으로 박제상은 자주 언급됩니다.
그런데, 박제상의 부인은 왜국으로 떠난 박제상이 언제나 돌아올까, 치술령(鵄述嶺)이라는 고개에 올라 가 항상 바라 보다가 결국 통곡하다가 죽었다고 합니다. 이후, 박제상의 부인은 치술신모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며 신으로 섬김 받았습니다. 그러니, 상상해 보자면 치술신모는 그리움의 신, 기다림의 신, 이별의 신, 슬픔의 신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딸이 셋 있었다고 하니, 치술신모의 후손이 이어지기도 했을 것입니다.
10. 천사(天使)
(달성 용연사 금강계단 중 일부)
신라 진평왕이 즉위한 해에 하늘과 땅을 오가는 하늘의 신하, 심부름꾼 즉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서 옥으로 만든 허리띠 하나를 주고 진평왕이 그것을 받자 다시 하늘로 올라 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흔히 하늘에서 준 옥대라고 하여 천사옥대(天賜玉帶)라고 부르는 것인데, 이 옥대를 전해 준 천사에 대해서는 특별히 자세한 묘사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는 하늘 위를 다스리는 임금을 상황(上皇)이라고 말하고 있고, 진평왕이 꿇어 앉아 그것을 받았다는 것으로 보아, 하늘을 위를 다스리는 임금은 신라의 임금도 높여 섬긴다는 정도는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뒤에 나오는 이목(璃目) 이야기에서는 이목이 어디있냐고 천사가 물었을 때, 승려가 오얏나무를 가리키자 오얏나무를 번개로 쳐서 꺾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보면, 천사는 뻔한 거짓말도 곧이 곧대로 너무 잘 믿는 성격을 갖고 있고, 한편으로는 번개를 무기로 쓸 수 있는 힘도 갖고 있습니다.
11. 나림(奈林), 혈례(穴禮), 골화(骨火) 삼신(三神)
(상주 신라 석조천인상)
신라 김유신이 백석(白石)이란 사람과 함께 다른 나라를 정탐하러 가는 길에 세 명의 여자를 만났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세 사람은 김유신, 백석에게 아름다운 과일을 대접하면서 서로 즐겁게 이야기했다고 하는데, 그러다가 세 사람이 긴히 김유신에게 말하기를, 백석만 떼어 놓고 숲 속으로 들어 가서 더 깊은 정에 대해 이야기 하자고 합니다. 김유신은 즐거워하면서 따라가는데, 막상 숲 속 깊이 세 사람을 따라 들어 가 보니, 그때 세 사람은 신의 모습으로 변신해서 정체를 드러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사실 나림, 혈례, 골화 세 곳에 깃든 나라를 지키는 신인데, 백석이 사실은 김유신을 속이고 있는 첩자이기 때문에 그 사실을 김유신에게 알려 준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나림, 혈례, 골화 삼신은 우선 첩자의 신, 첩자를 밝혀내는 신으로 볼 수 있을 것이고, 김유신 일행과 대화를 나눈 과정을 살펴 보면, 유혹의 신이나 과일, 간식의 신으로 상상해 볼 여지도 있을 겁니다. 나림, 혈례에 해당하는 신이 먼저 나타나고 골화에 해당하는 신이 나중에 나타난 것을 살펴 보면, 나림과 혈례가 조금 가까운 편이고 골화는 둘과는 조금 덜 친한 신으로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산 이름인 나림과 혈례라는 지역에 비해 골화라는 지역은 냇물이 있다는 점을 따로 언급한다는 점도 차이가 납니다.
신의 모습을 드러낸다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사람 모습으로 있을 때와 신으로 변했을 때가 겉보기에도 확연히 달라서, 신의 모습이 되면 옷차림이나 얼굴 색, 주변을 감도는 빛이나 서 있는 모습 등이 기이하게 되는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도 있을 겁니다.
12. 귀입궁중(鬼入宮中:귀신이 궁전 안에 들어 왔다는 말)
(제주도 내왓당 무신도 중 홍아위)
백제 의자왕 말기에 백제가 망조가 들었다는 것을 소개할 때 나오는 것으로, 귀신 하나가 궁전 안에 들어 왔는데 “백제는 망한다, 백제는 망한다."하고 크게 외치다가 문득 땅 속으로 꺼져 버렸다고 합니다. 꺼진 자리를 파 보았더니 땅 속 깊은 데에서 거북이 나왔고 그 등에 글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거기에는 “백제는 보름달 같고 신라는 초생달 같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임금이 무당에게 그 뜻을 묻자, "보름달은 이제 차차 줄어들 것이니 백제는 쇠약해 지고, 초생달은 이제 차차 차오를 것이니 신라는 점점 강해진다는 뜻”이라고 해설하자 임금은 화를 내면서 그 무당을 처형해 버렸습니다. 그러자 다른 무당이 임금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보름달은 밝으니 백제는 강하고 초생달은 어두우니 신라는 약하다는 뜻”이라고 하니까 임금이 기뻐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정말로 이런 일이 있었다면, 아마도 누가 일부러 백제 조정의 분위기를 흉흉하게 만들기 위해 엉뚱한 내용을 거북 등에 새겨서 몰래 파묻어 두고, "귀신이 들어간 자리에서 이런 게 나왔다”라면서 속임수를 쓴 것이겠습니다만, 이 이야기는 백제 멸망을 예언하는 귀신의 흉흉한 모습과 그 예언을 대하는 의자왕의 졸렬한 모습을 비난하는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예언을 하는 귀신이 있어서 갑자기 나타나고, 또 갑자기 땅으로 꺼지는데 그 아래를 파 보면 이상한 짐승이 있어서 또 예언이 적혀 있다는 식의 묘사는 어떤 예언, 신탁을 드러내는 형태로 흥미롭기도 합니다.
13. 오악삼산신(五岳三山神)
(청자 인물형 주전자)
오악삼산은 신라에 있는 다섯 방향에 위치한 명산과 경주 일대의 신성한 산 세 곳을 말하는 것으로, 오악의 경우, 동악은 토함산, 서악은 계룡산, 남악은 지리산, 북악은 태백산, 중악은 팔공산이며, 삼산은 나림, 혈례, 골화, 세 곳입니다. 이 중에서 동악과 삼산에 깃든 신은 동악신과 나림, 혈례, 골화 삼신 이야기에서 이미 설명했습니다. 북악의 신은 뒤에 옥도금이라는 이름으로 소개 되어 있기도 합니다.
신라 경덕왕 때, 오악 삼산의 신이 궁전의 뜰에 직접 나타나 임금을 모셨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것을 보면, 신라 국토를 상징하는 이 여덟 산의 산신령들은 신이지만 모든 인간 보다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신라 조정의 명령을 받고 신라 임금께 충성을 다하는 것으로 묘사된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신라에는 유독 산에 깃든 신이 많고 나라에서도 그런 신들을 중시하는 편인데, 이것은 이후의 한국사에도 어느 정도 이어지는 특징입니다. 이러한 특징이 당시 당나라 사람 등이 보기에도 특이해 보였는 지, "구당서"등 중국계 문헌에서도 신라의 풍속을 소개하면서 특별히 "산신에게 제사지내기를 좋아한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한편 "삼국유사"의 오악삼산신에 대한 업근은 신라가 당나라로부터 “도덕경”을 도입한 후에 묘사 되고 있는데, “도덕경”이 중국 도교의 가장 중심이 되는 경전이라는 면에서 보면, 오악 삼산신에 대한 이런 믿음은 도교 느낌이 강할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신라 하대의 김가기 같은 사람은 당나라로 건너 가서 도교의 신선이 되었다는 전설을 중국에 남기기도 했으니, 어느 정도는 도교 문화가 신라에 퍼져 있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몸을 단련하거나 신비로운 약을 만들어서 황금을 만들어 낸다거나, 사람을 영원히 살 수 있게 한다거나, 하늘을 날 수 있게 한다거나 하는 도교 술법과 오악 삼산의 신이 관련이 있어서, 오악 삼산의 신이 그런 비법을 전수해 줄 수 있다거나 그런 비법을 알아내려는 사람들이 오악 삼산이 깃들어 있다는 곳에 가서 기도를 하면서 연구를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14. 북천신(北川神)
(제주도 내왓당 무신도 중 감찰위)
신라 원성왕이 김주원과 임금의 자리를 놓고 다툴 때, 원성왕이 북쪽에 있는 냇물의 신, 즉 북천신에게 기도를 했더니, 김주원이 궁전에 들어오려고 할 때 북천 물이 갑자기 불어 나서 물을 건너오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때 원성왕이 재빨리 궁전에 들어 와서 임금이 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북천신은 어떤 자리를 놓고 사람들이 다툴 때, 그것을 도와 주는 신으로 볼 수 있고, 좀 더 나아가서 출세나 승진에 대한 신으로 상상해 볼 여지도 있을 것입니다. 갑자기 냇물이 불어난 일을 일으켰으니, 홍수의 신이기도 합니다.
15. 동지(東池), 청지(靑池), 분황사정(芬皇寺井) 삼룡(三龍)
(경복궁 근정전 천장 장식)
신라 원성왕 때 두 사람이 임금 앞에 찾아 와서 자신들은 동지, 청지 두 연못에 사는 용의 부인인데, 하서국(河西國)이라는 곳에서 온 사람이 자신의 남편들과 분황사정에 사는 용까지 세 용을 조그마한 물고기로 바꾸어서 잡아 갔다고 하소연 합니다. 이에 원성왕이 하서국 사람을 붙잡아 처형하겠다고 위협해서 용을 풀어주게 하고 그러자 무사히 세 용들이 풀려 났다는 이야기입니다.
세 용은 신라를 지키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고 하는데, 땅 속의 물길을 따라 동해에서부터 이 연못과 우물에 드나들 수 있었다고 합니다. 상상해 보자면, 세 용은 땅 속에 있는 샘물, 땅 속의 신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용이 풀려 나자 우물 물이 높이 치솟았다고 하는 이야기도 실려 있는데, 그렇다면 기분이 좋을 때는 그렇게 물을 치솟게 할 수도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세 용이 어떤 술법에 당해 작은 물고기로 변하게 되면 꼼짝 못하고 잡혀 가는 수 밖에 없어서 그것이 약점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세 용을 살던 곳으로 보내자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물 밖으로 꺼냈을 때 힘이 약해진다는 느낌입니다. 또한 하서국은 중국 서쪽의 위구르인이 사는 지역을 말하는데, 그렇게 보면 이 이야기는 신라와 위구르의 교류에 대한 전설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위구르 사람들이 이상한 요술을 부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위협을 느끼기도 했다고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 동지, 청지의 용은 부인이 와서 구해 달라고 하는데, 분황사정의 용은 그런 것이 없는 것을 보면, 이 용들은 사람과 혼인하여 지내는데, 동지, 청지의 용은 짝이 있지만 분화사정의 용은 짝이 없는 외로운 신세라고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이 사실은 용의 부인들이라는 점을 보면, 용의 부인에 대해서도 신령처럼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16. 동해룡(東海龍)
(고구려 강서대묘 벽화 중 청룡도)
신라 헌강왕이 동해 근처에 왔을 때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자욱해졌는데, 그러자 신하는 이것이 동해룡의 짓이라고 하면서, 이럴 때는 좋은 일을 해야 한다고 해서 근처에 절을 세우자 안개가 걷혔다고 합니다. 그리고 동해룡은 기뻐하면서 일곱 아들과 함께 임금의 덕을 칭송하며 춤을 추고 음악을 연주했다고 하는데, 그 일곱 아들 중 한 명이 처용입니다.
안개가 너무 심해서 길을 잃을 정도라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면, 동해룡은 안개의 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으로 길 잃은 사람들의 신으로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음악과 춤으로 임금의 덕을 칭송했다는 것을 보면 음악의 신으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17. 역신(疫神)
(국사당 무신도 중 호구아씨)
신라 헌강왕 때 처용의 부인과 몰래 바람을 피우는 신으로, 이름의 뜻대로 병, 전염병을 일으키는 신입니다. 처용의 부인이 너무 아름다워서 부인에게 다가간 것으로 되어 있는데, 처용이 그 사실을 알고도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한탄만 하자, 부끄러움과 감동을 느끼고 처용에게 사죄한 후, 앞으로는 처용의 모습을 그린 것만 보아도 그 근처에는 가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후로, 사람들이 처용의 형상을 문에 붙여서 사악한 귀신을 쫓아내는 풍습이 생겼다고 합니다.
18. 처용(處容)
(악학궤범 중 처용 가면 설명 부분)
처용은 동해룡의 아들로 신라 임금을 따라 와서 벼슬을 하다가 부인의 미모에 반한 역신이 부인과 바람이 나자, 그것을 한탄하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 사람입니다. 역신은 이에 부끄러움을 느껴서 이후로는 처용의 모습을 그린 것만 보아도 그 근처에는 가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후로, 사람들이 처용의 형상을 문에 붙여서 사악한 귀신을 쫓아내는 풍습이 생겼다고 합니다.
역신을 쫓아 낸다는 의미에서 처용은 의술의 신이기도 하고, 춤과 노래로 역신을 감복시켰다는 면에서는 춤과 노래의 신이기도 합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처용의 춤이 궁전에서 행사로 시행되기도 했는데, 연산군 같은 임금은 처용 춤에 특히 능했다고도 합니다. 이러한 조선시대의 춤에서는 처용의 얼굴 모습으로 사악한 귀신을 쫓는다는 것이, 처용의 가면을 쓰고 춤을 추는 것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한편 역신이 처용의 부인과 바람난 것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면, 오쟁이진 남편의 신, 배우자가 바람난 처지의 신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19. 상심(祥審)
(국사당 무신도 중 창부씨)
신라 헌강왕 때 임금이 포석정에 갔을 때, 남산의 신이 나타나서 춤을 추었는데 주변의 신하들은 보지 못하고 임금만 그 모습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러자 임금이 스스로 직접 춤을 추어 그 모습을 주변에 보여 주었다고 합니다. 이때 이 신의 이름을 상심, 그 춤을 어무상심(御舞祥審) 또는 상염무(霜髥舞)라고 했다고 합니다. 또 이 춤의 모습을 조각으로 새겨서 보존했다고도 합니다.
상심은 춤의 신인 셈인데, 임금이 직접 춤을 추게 했을 정도이니, 춤의 모습이 단순하면서도 대단히 흥겨웠을 것이라고 상상해 볼 수 있을 겁니다. 다만 “삼국유사”에서는 이때 상심이 춤을 보여준 것을 임금은 흥겹고 즐거운 것으로만 여겼지만 사실은 이제 점차 나라가 기울고 있으니 주의하라는 경고의 의미로 보여준 것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20. 지백급간(地伯級干) – 옥도금(玉刀鈐)
(상주 신라 석조천인상)
신라 헌강왕 때 임금이 상심을 만난 후, 비슷하게 금강령에 임금이 갔을 때는 북악의 신이 나타나 춤을 추었고, 동례전에서 잔치를 할 때에는 땅의 신이 나타나 춤을 추었다고 합니다. 이때 북악의 신은 이름을 옥도금이라고 하고, 땅의 신은 이름을 지백급간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때 춤을 추면서 “지리다도파도파(智理多都波都波)"라고 흥얼거렸다고 하는데, 그냥 흥얼거리는 소리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 의미가 지혜로운 사람들은 모두 도망치고 나라의 도읍은 파괴된다는 말로 볼 수도 있어서 멸망의 예언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지백급간은 이름의 뜻도 땅의 신이라는 것입니다. 지백급간이 춤을 보여 준 것은 사실 나라가 망할 징조로 경계하는 의미에서 보여준 것인데, 당시 임금과 신하들은 그저 즐거운 것으로만 생각하고 향락에 빠져 더욱 멸망의 길로 나갔다는 것이 “삼국유사”에 실린 이야기의 결론입니다. 그런 면에서, 즐겁고 들뜬 가운데 사실 파멸의 징조가 서려 있는 양면성을 나타내는 신으로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편, 이 무렵에는 동해룡, 처용, 상심, 옥도금, 지백급간 같은 다양한 신들이 임금 앞에 직접 나타나서 춤과 노래를 보여 준다는 이야기가 무더기로 나옵니다. 처용을 중앙아시아나 그 보다 더 서쪽 지역의 먼 나라 사람이라고 추정하는 요즘의 연구를 받아들인다면, 이때 나타난 신들이란 사실 그 복장과 모습이 특이한 먼 나라 사람들이 그 나라의 독특한 노래와 춤, 또는 묘기나 마술을 임금 앞에서 보여준 것이 와전된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이 이야기들은 특이한 나라의 갖가지 이상한 놀이에 몰두하는 임금의 모습으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21. 서해약(西海若)
(제주도 내왓당 무신도 중 상사위)
신라 진성여왕 때 거타지 이야기에 나오는 신으로 서해 바다를 다스리는 신입니다. 곡도(鵠島)라는 섬에 머무는데 보통 때는 노인의 모습이지만 용이기도 합니다. 곡도의 연못에서 살다가 노인의 모습인채로 연못에서 걸어 나와 모습을 드러내는데, 바다를 다니는 배를 보호해 줄 때에는 용 두 마리를 보내어 그 배를 등에 지고 가게 해 줄 수 있습니다.
서해약에게는 원래 부인과 여러 자손이 있었는데, 늙은 여우가 용의 간과 창자를 빼먹으려고 공격해 와서 다 죽고 부인과 딸 하나만 살아 났다고 합니다. 늙은 여우가 용의 간을 특히 노리는 것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서해약의 간이 특별한 효능이 있는 약이라고 상상해 볼 여지도 있습니다. 늙은 여우와 싸울 때 물 위에 모습이 드러나게 된 후 당한다는 점으로 짐작해 보면, 물 속 깊이 있을 수록 힘을 발휘할 수 있는데 물 바깥에 가깝게 되면 약해진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겁니다.
이름 그대로 서해를 다스리는 신이자, 항해하는 배들의 신이기도 합니다. “삼국유사”의 이야기는, 서해약이 거타지의 배를 용으로 보호하면서 당나라로 가게 하니, 그것을 보고 당나라 임금이 놀라서 잔치를 베풀어 주고 큰 상을 내렸다는 이야기가 결말입니다. 특히 신라 하대에 서해가 신라와 당나라 사이의 외교, 무역에 자주 활용 되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서해약은 무역상들과 외교사절을 보호해 주는 신이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겁니다. 한편 처음 뱃사람들이 곡도에 내려 보낼 사람을 정할 때 제비뽑기를 했는데, 유독 거타지의 제비만 물에 가라앉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기에 초점을 맞추면, 서해약이 제비뽑기나 도박의 결과를 바꿀 수 있는 신이라고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겁니다.
22. 곡도(鵠島) 노호(老狐)
(청자 퇴화점문 나한좌상)
신라 진성여왕 때 거타지 이야기에 나오는 신으로 곡도에 사는 늙은 여우 입니다. 보통 때의 모습은 사람, 그 중에서도 승려와 같은 모습인데 매일 해가 뜰 때 하늘에서 내려와서 주문을 외우면서 공격하면 곡도에 사는 용들과 서해약의 간을 빼먹을 수 있습니다. 주문을 외울 때는 연못을 세 바퀴를 도는데, 그렇게 하고 나면 물 속 깊이 살고 있는 서해약의 가족들이 물 위로 다 떠오르게 됩니다. 이때 이들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이 늙은 여우의 약점은 하늘에 있을 때 화살로 공격하는 것입니다. 이때 화살을 맞게 되면 원래 모습인 늙은 여우로 변하면서 땅에 떨어져 죽게 됩니다. 거타지는 활을 잘 쏘았으므로, 서해약이 거타지에게 늙은 여우를 향해 화살을 쏘아 줄 것을 부탁해서 이 늙은 여우는 죽게 됩니다.
거타지 일행은 배를 타고 곡도 근처를 지나다가 풍랑을 만나서 곡도에 머무르게 되는데, 곡도에 사는 서해약을 괴롭히는 것이 이 늙은 여우라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이 늙은 여우는 평화로운 바다를 거스르는 신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나아가 풍랑의 신으로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23. 일산(日山), 오산(吳山), 부산(浮山) 신인(神人)
(기원사 산신도)
백제의 전성기 때 백제의 서울, 사비 주변의 세 산인, 일산, 오산, 부산에는 각각 신령스러운 사람, 즉 신인이 살았다고 합니다. 이 세 신인은 아침 저녁으로 날아서 서로 왕래하기를 끊이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러므로 백제의 전성기를 나타내는 신, 백제의 신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으로 날아서 왕래했다는 묘사가 특성으로 나타나 있는 점에 초점을 맞추면, 하늘을 나는 것에 대한 신, 하늘을 나는 술법을 알고 있고 가르쳐 줄 수 있는 신으로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현재 부여의 부산(浮山)을 이 세 산 중 부산으로 보고, 오산(烏山)이 오산이고, 금성산(錦城山)이 일산이 아닌가 추정한다고 합니다. 부여군에서 펴낸 “전통문화의 고장 부여-내고장전통가꾸기”에 실려 있는 이야기라고 합니다.
24. 수릉왕묘(首陵王廟) 맹사(猛士)
(선정릉 무인상)
금관가야, 곧 가락국을 건국한 임금인 수로왕의 사당에 보물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도적들이 그것을 훔치러 왔는데, 그러자 사당 안에서 갑자기 한 맹사, 즉 용맹한 사람 형체가 나왔다고 합니다. 그 형체는 투구와 갑옷을 쓰고 있고 활과 화살을 사방에 비 오듯이 쏘아서 도적들을 몰아 냈다고 합니다. 얼마 후 도적이 다시 왔을 때는 눈빛이 번개 같은 아주 거대한 뱀이 도적들을 몰아냈다고 합니다. 이후로 사람들은 수로왕릉 근처에는 신령스러운 것이 있어서 왕릉을 지킨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에서는 이 수릉왕묘의 맹사와 거대한 뱀 모양의 괴물이 서로 동료로서 같이 사당과 왕릉을 지키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이것은 수로왕릉을 지키는 신입니다. 좀 더 나아가 보자면, 금관가야 지역을 지키는 신, 도둑들을 물리치는 신, 보물을 지키는 신으로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25. 사방대력신(大力神) – 대귀(大鬼), 소귀(小鬼)
(청도 운문사 석조사천왕상)
신라 김양도(金良圖)가 어린 아이일 때 입이 붙고 몸이 굳어져 말도 못하고 몸이 마비되는 병에 걸렸는데, 이때 김양도가 보니 항상 대귀(大鬼), 즉 큰 귀신이, 소귀(小鬼), 즉 작은 귀신 여럿을 거느리고 와서 집안을 돌아 다니며 음식을 먹는 등 행패를 부렸다고 합니다. 대귀는 소귀들을 거느리면서 명령하는데, 소귀들은 철퇴로 무장하고 있어서 만약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보이면 철퇴로 머리를 때려 죽여 버렸습니다. 한편 대귀는 자신만만하고 대범한 성격인데 비해, 소귀는 좀 더 조심스러운 성격으로 나타나 있기도 합니다.
이 귀신을 물리치기 위해 밀본(密本)이라는 승려를 부르자, 밀본은 사방대력신을 불러서 귀신을 잡아가게 합니다. 사방대력신은 빛나는 쇠 갑옷을 입고 있고 기다란 창으로 무장하고 있는데, 사방대력신인 만큼, 동, 서, 남, 북, 네 방향을 상징하는 네 명일 것입니다. 그리고 대력신이라고 부르는 만큼, 덩치가 크고 힘이 세며, 싸움을 잘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귀신을 잡아간 후, 여러 천신(天神)들이 둘러싸고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는데, 구체적인 묘사는 없지만 상상해 보자면, 이 천신들은 병사들과 같은 모습, 또는 관복을 입은 관리들과 같은 모습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러니, 이 이야기에서 대귀, 소귀는 병을 일으키고, 사람을 마비시키고, 음식을 훔쳐 먹는 신입니다. 한편 사방대력신은 병을 물리치는 신, 귀신을 잡아 가는 신으로 볼 수 있을 겁니다.
보통 현대의 무속에서는 동서남북 네 방향에 중앙을 더하여 다섯 방향에 대해 장군 같은 신이 있다고 보고, 오방신장 또는 오방장군이라는 체계를 더 많이 씁니다. 이것은 중국 도교 문화의 영향으로 보이는데, 사방대력신은 그에 비해서는 사천왕으로 나타나는 불교 문화의 영향이 더 강한 느낌 아닌가 싶습니다. 대력신이라는 말 자체도 불교에서 힘이 센 괴물, 귀신 같은 것을 묘사할 때 종종 쓰는 말인데, 예를 들어 아수라들의 세상에는 대력신이 살고 있는데, 이 대력신은 항상 화를 내고 있고 싸움을 좋아한다는 이야기가 불교에는 있었습니다. 불교의 사천왕에 견주어 볼 경우, 여기에서 나오는 긴 창을 들고 있다는 묘사는 사천왕 중 다문천왕(多聞天王)과 특히 비슷해 보입니다.
음양오행에서 동, 서, 남, 북, 중앙이 각각 청색, 백색, 적색, 흑색, 황색과 대응된다고 보고, 또 각각 나무, 쇠, 불, 물, 흙이 대응된다고 보기도 하는데, 그때문에 현대 무속에서는 오방신장의 이름을 동방청제, 서방백제 같은 식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그렇게 보면, 사방대력신에 대해서도 남방의 대력신은 붉은 색이고 불에 관한 힘을 갖고 있고, 북방의 대력신은 검은 색이고 물에 관한 힘을 갖고 있다는 식으로 상상해 볼 여지도 있을 것입니다.
한편 “삼국사기”의 “잡지”에는 신라의 여러 제사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4가지 방향에 대해 제사를 지내는 사례가 나오기도 합니다. 앞서 설명한 오악, 즉 중앙과 네 방향의 산 다섯군데에 제사를 지내는 것을 제외하면, 4방향의 큰 길에 지내는 제사, 4방향의 바다, 하천등에 지내는 제사 등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이 중에 4방향의 큰 길에 깃든 신을 소개해 보면, 동, 서, 남, 북, 차례로 고리신(古里神), 저수신(渚樹神), 첨병수신(簷幷樹神), 활병기신(活倂岐神)이 되고, 각각 나무, 쇠, 불, 물을 상징하는 것이 됩니다. 이 네 군데 큰 길에서는 압구제(壓丘祭), 벽기제(辟氣祭) 같은 신라 고유의 제사를 지낸다는 기록도 있으니 제법 중시되던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압구제와 벽기제는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기 어렵지만, 압구제는 건물이나 무덤 같은 것을 짓기 전에 그 건물이 운수가 좋으라고 터를 잡으면서 지내는 제사, 벽기제는 사악한 기운을 쫓는 제사로 추측한다고 합니다.
26. 기장산(機張山) 웅신(熊神) – 정씨지류(鄭氏之柳)
(세종실록 중 오례에서 웅후 그림)
사악한 용이 당나라 황족에게 깃들어 병을 일으키자 신라의 승려 혜통(惠通)이 술법을 일으켜서 이 용을 내쫓아서 병을 고칩니다. 그런데 이 용은 이제 신라의 문잉림(文仍林)이라는 숲에 가서 큰 소란을 부렸기 때문에 신라의 정공(鄭恭)이라는 사람이 혜통에게 부탁해서 혜통은 문잉림에서 다시 용을 쫓습니다. 그러자 이 용은 정씨지류, 즉 정공의 집 앞 버드나무에 깃드는데, 거기에 정공은 홀려서 버드나무를 너무나 좋아하게 됩니다. 그래서 임금이 길을 내기 위해 정씨지류를 자른다고 하자 “내 목은 잘라도 이 버드나무는 못 자른다”고 거역하게 해서 결국 정공은 사형 당합니다. 이후, 용은 신라 공주에게 또 병을 일으키는데, 혜통이 다시 퇴치하고 이때 혜통은 이 용을 독룡이라고 부릅니다. 그후 독룡은 마지막으로 기장산에 가서 웅신, 즉 곰과 비슷한 형태의 신령이 되어서 사람들을 괴롭힙니다. 결국 혜통이 불교의 가르침을 전수하며 타이르자 해를 끼치는 것을 멈추었다고 합니다.
다양한 모습으로 변하고 형체가 없어져서 병을 일으키는 형태로 깃들기도 합니다만, 사람을 유혹해서 홀리게 하는 버드나무 형태의 신령과 곰과 비슷한 형태의 신령이라는 것, 두 가지는 독특한 면이 있습니다. 병을 일으키는 신이면서 한편으로는 버드나무의 신, 곰의 신인 셈인데, 상상해 보자면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풀, 나무와 짐승 부류를 나타내는 신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27. 선도성모(仙桃聖母) - 선도대왕(仙桃大王)
(경기도 박물관 요지연도 중 발췌)
선도성모는 선도산에 깃든 신으로 겉모습이 아름답고 구슬로 쪽진 머리를 장식한 모습이라고 되어 있으며. 신라에서 제사를 지내던 여러 신들 중에서도 가장 우선하는 신으로 손꼽히던 것이라고 합니다. 선도성모는 먼 옛날 서쪽의 다른 땅에서 신선을 술법을 얻어 신라 가까운 곳에 왔다고 하는데, 그 후 솔개를 따라서 어느 산에 머물지 정했다고 합니다. 신라 경명왕 때에는 임금이 매사냥에 쓰던 매를 잃어버리고 나서 선도성모에게 기도하면서, "매를 찾으면 작호를 내리겠다”고 하자 매가 돌아 왔으므로 임금이 선도성모에게 대왕의 작호를 내렸다고도 합니다.
여러 천선(天仙) 즉 하늘의 신선 내지는 하늘의 경지에 이른 신선들에게 명령을 내려 비단을 짜게 했고 그것을 비색(緋色)으로 물들여 남편의 관복으로 주었다는데, 이 관복에 신기한 힘이 있었다고도 합니다. 그 후에 낳은 자식이 신라의 첫 임금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고 언급되어 있습니다.
한편 이후 중국 송나라 사람들은 선도성모가 옛날 중국 황제의 딸이 신라 지역으로 건너간 것이라고 믿었다고 하는데, 이렇게 보면 선도성모는 중국 전한시대, 신선술에 심취한 어느 황제의 딸이 되는 셈입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보면, 선도성모는 영원히 사는 법을 익힌 신선 부류이면서, 옷감, 옷의 신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솔개, 매에 대한 이야기와 엮인 것을 보면 새의 신으로 상상해 볼 수도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중국 문화의 전래를 상징하는 신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 어느 비구니가 절을 세우기 위한 재물이 필요해 기도하자 꿈에 나타나 황금 10근이 묻혀 있는 장소를 알려 주었다는 이야기도 나와 있는데, 황금을 내려 주는 신, 숨겨져 있는 보물을 찾아 주는 신으로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28. 명사(冥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시왕도 중 오도전륜대왕 그림에서 발췌)
명사는 저승사자 내지는 저승을 관장하는 높은 관리라는 뜻인데, "삼국유사”에는 망덕사의 승려 선율(善律)이 저승에 갔다가 돌아 오는 이야기에 소개 되어 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는 선율이 불교 경전 편찬을 하기 위해 일을 하던 도중에 죽어서 저승에 오게 되자, 그 일을 다 완수하라고 다시 이승으로 돌려 보내주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저승에서 이승으로 다시 돌려 보내 준다고는 해도, 그냥 육체만 그대로 되살아나게 해 주는 것이라서, 선율은 무덤에 묻힌 상태로 깨어 났고, 무덤 속에서 3일 동안 살려달라고 외친 끝에 지나가던 목동이 그 소리를 들어서 나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외에 저승에서 다른 죽은 사람의 사연을 듣는 장면도 이야기 속에 나와 있습니다.
그러니까 “삼국유사”의 이 이야기 속 저승의 모습은 관청에서 업무 보는 것과 같은 형태로 이루어져 있으며, 특별한 판단에 따라서는 죽은 사람을 되살아나게 해 주는 경우도 있으며, 비슷한 시기에 죽은 사람들끼리는 살아 생전의 모습과 비슷한 모습으로 오가다 만날 수도 있는 세상인 것입니다.
29. 보대사(普大士)
(도갑사 보현동자상)
신라에 지통(智通)이라는 노비가 있었는데 17세때 승려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 까마귀가 나타나 “영축산(靈鷲山)의 낭지(朗智)에게 의탁하라”고 말을 해 줍니다. 그 말을 듣고 영축산에 갔는데 이때 골짜기의 한 나무 아래에서 쉬고 있을 때, “보대사(普大士)”라는 기이한 사람을 만나고 잠깐 대화를 나누며 가르침을 받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문득 지혜가 생겨 깨우침을 얻었다고 합니다. 이때, 보대사는 불교의 보현보살을 말하는 것이면서 한편으로는 영축산의 산령, 곧 산신령을 말하는 것인데, 한편으로 영축산의 산신령은 변재천녀(辨才天女)였다는 말도 소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보대사는 불교의 보현보살, 변재천녀의 성격을 띄는 영축산의 산신령인 셈인데, 그렇게 보면, 보현보살이 상징하는 진리, 수행, 장수의 신이고, 변재천녀가 상징하는 장수, 부유의 여신으로 볼 수 있기도 합니다. 이야기 속에서는 노비 출신의 젊은이가 단숨에 깨달음을 얻어 경지가 높은 승려가 되었다는 내용이 중심이므로, 진리, 지혜를 상징하는 면이 강합니다.
30. 정성천왕(靜聖天王)
(경기도 박물관 요지연도 중 발췌)
정성천왕은 비슬산에 깃든 신으로 사람들이 비슬산에서 향나무에서 향을 채취해 가고 나면 밤에 저절로 빛을 내뿜어 촛불처럼 보이는데, 이것이 바로 정성천왕의 신비한 힘이라고 여겼다고 합니다. 이것을 일컬어 빛을 얻은 시절이라는 뜻으로 득광지세(得光之歲)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정성천왕은 지금 세상과는 다른 먼 과거의 다른 시대에 부처의 당부를 받고 1천명의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이 산에서 나오기를 기다리겠다고 하면서, 불교 승려가 많이 생기기를 돕는 신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성천왕은 향나무의 신, 수행의 신으로 볼 수 있을 것이고, 득광지세라는 말에 초점을 맞춘다면 밤을 밝히는 빛의 신으로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31. 이목(璃目)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석제 십이지신상 중 뱀)
신라 승려 보양(寶壤)이 중국에서 신라로 오는 길에 바다에서 용궁에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경전을 외우자 용궁의 임금이 보물을 주고 그 아들을 보양에게 딸려 보냅니다. 이 아들의 이름이 이목입니다.
이목은 보양이 창건한 절 옆에 있는 연못에서 살았는데 가뭄이 들면 비를 내려 주는 일을 하는 등, 사람을 돕고 착한 일을 하려고 했던 듯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늘의 순리를 거스르는 행동이라서 천제는 이목에게 번개를 내려 죽이려고 하는데, 그러자 이목은 절의 승려에게 살려 달라고 하는데 승려는 이목을 책상 밑에 숨겨 준 뒤에, 천제가 보낸 천사가 이목을 내놓으라고 했을 때에는 오얏나무를 가리킵니다. 그러자 천사는 오얏나무를 번개로 부순 뒤에 되돌아갑니다. 이후, 이목은 오얏나무를 쓰다듬는데 그러자 나무가 되살아납니다.
이렇게 보면, 이목은 사람을 돕고 나무를 살려 주려는 착한 신으로, 비의 신, 죽은 나무를 되살리는 신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일부 연구자들은 이 “이목”이라는 이름이 용이 되기 전 상태의 뱀 비슷한 괴물을 일컫는 말인 “이무기”라는 말과 발음이 비슷하므로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닐까 보고 있기도 합니다.
32. 마령(馬嶺) 신인(神人)
(경기도 박물관 요지연도 중 발췌)
고구려의 마령에 나타난 신령스러운 사람 같은 것으로 “너희 나라가 망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고구려에 망조가 든 것을 알립니다. 이 이야기는 고구려 연개소문 시절에 연개소문이 적극적으로 도교를 받아 들이면서 상대적으로 불교가 소홀해 진 것을 비판하는 이야기 말미에 소개된 것으로, 신선이 되는 방법을 중시하는 도교를 비판하며 불교를 중시해야 한다는 이야기로 나와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마령의 신인은 예언의 신이면서, 망조와 파멸을 예감하는 신, 도교나 신선술을 비판하는 신, 영원히 사는 술수를 비판하는 신, 하늘 위 세상으로 오르기 위해 애쓰는 술수를 비판하는 신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고구려의 운명이나 고구려의 신으로 본다는 것도 아주 이상하지는 않겠지만, 예언에서 고구려를 “너희 나라”라고 말한 것을 보면 그런 느낌은 약한 편입니다.
33. 금전문(金殿門) 노승(老僧), 장사(壯士)
(경기도 박물관 요지연도 중 발췌)
신라에서 황룡사를 건설할 때, 백제의 장인 아비지(阿非知)를 막대한 재물을 들여 초청합니다. 신라에 온 아비지가 처음 기둥을 세우던 날에 백제가 멸망하는 꿈을 꾸자 불길하게 여겨서 황룡사 건설에서 손을 떼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러자 문득 지진이 나더니 그 와중에 금전문에서 한 늙은 승려 모습의 형체와 한 장사 모습의 형체가 홀연 나타나 기둥을 세우고 다시 신비롭게 사라집니다. 이 모습을 보고 아비지는 황룡사 건설이 어쩔 수 없는 일임을 깨달아 마음을 고쳐 먹고 건설 작업을 계속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 금전문에 나타난 노승과 장사는 건물을 세우는 작업에 대한 신, 그 중에서도 고층 건물을 세우는 신, 고층 건물의 신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34. 만어산(萬魚山) 오나찰녀(五羅刹女) - 옥지(玉池) 독룡(龍)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신중도 중 발췌)
가라국(訶囉國)이라고도 하던 가락국, 금관가야 지역에 만어산이 있었는데 그곳에 사악한 신인 다섯명의 나찰녀, 즉 오나찰녀가 있었습니다. 한편 가라국에는 옥지라는 연못이 있고 그 안에는 사악한 독룡이 살고 있었는데, 오나찰녀와 독룡은 서로 왕래하며 사귀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번개와 비를 내려 4년 동안 농사를 방해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가라국 임금이 주술로 막아 보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결국 불교의 설법으로 감복시켜 나찰녀를 불교에 귀의시켜 해결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에서 오나찰녀와 옥지 독룡은 흉작의 신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나찰녀는 불교 계열 신화에서도 익히 언급되는 것인데, 대체로 사람을 잡아 먹는 마귀 같은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35. 장천굴(掌天窟) 굴신(窟神)
(용적사 독성도)
울진군 성류굴(聖留窟)의 옛이름이 장천굴인데 승려 보천이 허공을 날아다니는 경지에 도달했을 때, 날아서 장천굴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보천은 수구다라니(隨求陁羅尼)라는 불교의 주문을 밤낮 외었는데, 그러자 장천굴 굴신이 나타나 자신이 굴신이 된 지 2천년이 지났는데 드디어 수구다라니의 참된 도리를 들었으니 이제 불교에 귀의하고자 한다고 말합니다. 그 후에는 동굴이 형체가 없어져서 놀랐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에서 장천굴 굴신은 긴 세월 진리를 찾아 계속해서 기다린 신으로 되어 있고, 한편으로는 동굴 그 자체가 사라지고 나타난 일이 일어난 것을 보면 굴을 생기게 하고 없애는 신으로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36. 길달(吉達) - 비치제귀(飛馳諸鬼), 비형랑(鼻荊郞)
(하동 쌍계사 감로왕도 중 발췌)
신라 진지왕 때 사량부(沙梁部) 도화랑(桃花娘)이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매우 아름다워서 임금이 유혹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도화랑은 임금이 있어 임금의 청을 거절했고, 임금은 그러면 남편이 죽고 나면 되겠냐고 말하자 도화랑은 그렇다고 합니다. 그 후 임금도 죽고 얼마 후 도화랑의 남편도 죽는데, 그러자 임금의 혼령이 도화랑에 나타났고 이후 임금의 혼령과 도화랑 사이에서 태어난 기이한 사람이 비형랑입니다.
비형랑은 임금이 불러 들였는데도 밤마다 멀리 나가서 놀았고, 용사 50명으로 지켜도 뚫고 나가서 놀았는데, 그때마다 월성을 넘어 황천 언덕에 가서 지내면서 귀신 떼들을 불러 모아 지냈다고 하며, 귀신 떼들은 절의 종소리에 맞춰 모였다가 흩어졌다고 합니다. 나중에 임금의 부탁을 받고, 비형랑은 귀신 떼들을 부려서 하룻밤 사이에 큰 다리를 건설했으니, 이 다리를 귀교(鬼橋)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 귀신 떼 중에 나랏일을 도울만한 사람으로 비형랑이 추천한 것이 길달인데, 길달은 흥륜사(興輪寺) 남쪽에 누각이 있는 높은 문을 세우고 항상 그 위에서 잤으므로, 그 문을 길달문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하루는 길달이 여우로 변해서 도망가려고 하자 비형랑이 다른 귀신들을 시켜 죽였다고 합니다.
그만큼 여러 귀신들이 비형랑을 무서워했기 때문에 당시 신라 사람들은 비형랑이 있으니 귀신들은 물러 가라는 글을 짓고 그 글(聖帝魂生子 鼻荊郞室亭 飛馳諸鬼衆 此處莫留停)을 써 붙여 귀신을 쫓았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도깨비 이야기의 원형으로도 가끔 언급되는 내용입니다. 그렇습니다만, 이 이야기 속 귀신이 조선시대 이후 한글로 표기 되는 “도깨비”와 얼마나 계통이 비슷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귀신을 물리치는 글에서는 비형랑이 부리는 귀신들을 일컬어 “날고 뛰는 여러 귀신”, 즉 “비치제귀(飛馳諸鬼)”라는 표현으로 묘사 했습니다.
길달과 이 귀신 떼들은 건설의 신, 그 중에서도 다리와 문을 짓는 일에 대한 신으로 볼 수 있을 것이고, 한편으로 비형랑은 귀신을 쫓는 신, 귀신을 다스리는 신으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귀신 떼들은 여우 같은 동물로 변할 수 있고, 한편으로는 비형랑에게 명령을 받는 처지에서 벗어나 도망치려고 애를 쓰는 것이기도 합니다. 비형랑이 50명의 용사들을 뚫고도 자연스럽게 탈출했다는 대목에 초점을 맞추면 탈출의 신으로 상상해 볼 수도 있을만 합니다.
한편 앞의 귀신을 쫓는 글을 조금 더 살펴 보면, “이곳은 비형랑의 집이니 귀신들이 올 곳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는데, 비형랑의 집을 일컬어 “비형랑실정(鼻荊郞室亭)”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비형랑실정”이라고 부르는 곳은 귀신들이 올 수 없는 곳인 셈입니다. “이곳은 귀신들이 올 곳이 아니다”라는 말은 “차처막류정(此處莫留停)”이라는 말로 표현했는데, 이것을 보면 “차처막류정”이라는 말이 귀신을 쫓는 주문처럼 쓰인 것입니다.
37. 호국대룡(護國大龍)
(황룡사지 출토 기와)
신라 문무왕 때에 임금이 죽으면서 유언을 남기기를 죽어서는 호국대룡, 즉 나라를 지키는 커다란 용이 되겠다고 합니다. 문무왕 김법민은 이미 평생 전쟁을 하며 삼국통일을 완수 했으니, 이제는 바다 건너에서 오는 적만 막으면 되기 때문에 죽어서는 용이 되어 바다를 건너 오는 적을 막겠다는 뜻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승려, 지의법사는 불교의 환생설을 설명하면서, "용이 되는 것도 축생이 되는 것이니 업보가 좋지 않은 것 아닙니까?"라고 묻는데, 그러자 임금은 호쾌하게도 어차피 자신은 임금으로 살았고 삼국을 통일하기까지 했으니 "세상의 영화에는 이제 더 이상 관심이 없어진 지 오래다. 축생이 되어도 내 뜻에 합당하다"고 대답합니다.
그래서 그 후 신라 사람들은 임금이 동해에서 호국대룡이 되었다고 믿었습니다. 그렇다면, 호국대룡은 나라를 지키는 신이고, 나아가 전쟁의 신입니다. 조금 더 나아가서 상상해 보자면 한반도 지역의 통일을 상징하는 신으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38. 일월지정(日月之精)
(집안 오회분 4호묘 고구려 벽화 중 해의 신과 달의 신)
일월지정은 일지정(日之精), 즉 해의 정기와 월지정(月之精), 즉 달의 정기를 함께 말하는 것입니다. 이 일지정이나 월지정은 어떤 사람이나 물건에 내려와 서려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나 물건은 해와 달의 빛을 제대로 내뿜게 하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 반대로 일지정이나 월지정이 서려 있는 사람이나 물건은 해와 달의 빛을 조정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고 상상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서기 157년 무렵에, 바닷가에서 살던 연오랑이라는 사람이 해초를 따고 있었는데, 바다에서 바위가 나타나 연오랑을 태우더니 저절로 움직여 왜국으로 갔는데, 그러자 왜국에서는 연오랑을 신성하게 여겨서 왕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얼마 후, 연오랑의 부인이었던 세오녀는 남편을 찾다가 남편의 신발이 바닷가 바위 위에 있는 것을 보고 그 바위 위에 올라 갔더니, 역시 바위가 움직여 왜국으로 데려가서 왕비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신라에는 해와 달이 빛을 잃었다고 하는데, 일관(日官) 즉 천문을 살피고 점을 치는 관리에게 물어 봤더니, 원래 일월지정이 우리나라에 내려 와 있었는데 지금 일본으로 가서 이렇게 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신라 임금이 왜국에 사신을 보내서 두 사람을 찾았더니, 직접 돌아갈 수는 없고 세오녀가 짠 고운 비단이 있으니 이것을 가지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면 될 거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 비단을 두고 제사를 지냈더니, 해와 달이 빛을 다시 되찾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신라 조정에서는 이후 이 비단을 왕비가 준 물건을 넣어 둔 창고라는 뜻인 “귀비고(貴妃庫)”라는 창고에 보관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보면, 일지정, 월지정이 서린 사람은 바다를 떠돌아 다니는 바위를 타고 다니게 되고, 또한 일지정이 서린 사람은 해초를 좋아하고, 월지정이 서린 사람은 옷감을 잘 짠다, 일지정이 서린 사람과 월지정이 서린 사람은 서로 부부가 된다, 일지정이 서린 사람이나 월지정이 서린 사람이 만든 물건에도 정기가 서려 있다는 식으로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일지정, 월지정이 서린 물건을 보관해 놓은 보물 창고가 있어서 그 이름이 귀비고라는 것도 재밌습니다. 해와 달의 정기가 서린 옷감, 옷이 있다면, 그런 옷감을 두르거나, 옷을 입게 된 사람의 이야기를 상상해 볼 수 있을 법도 합니다.
조금 다른 기록으로 “삼국사기”의 “잡지” 부분에는 신라에서 “일월제”라고 해서 해와 달에 대해 제사를 지내는 것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고, 중국 기록인 “수서”등의 내용 중에도 신라 사람들이 새해 첫날 마다 조정에서 연회를 베풀어 벼슬아치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또 일신, 즉 해의 신과 월신, 즉 달의 신에게 제사를 지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명확하지는 않지만, 신라에서 해와 달에 대한 숭배가 있었다는 것은 사실로 보입니다. 새해 첫날에 조정에서 지내는 제사라면 꽤 중요한 신으로 다루어진 셈일 텐데, 그런 신의 정기를 상징하는 사람이나 물건이 신라 어디인가에 있다는 식의 발상이 있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특히, 해와 달이라는 매우 중요한 하늘에 있는 것이, 그냥 평범해 보이는 어느 어부, 그냥 바닷가에 사는 어느 보통 베짜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는 내용은 인상적입니다.
여기서는 그런 요즘 많이 이야기하는 현대에 조사된 무속신화를 보충하는 의미로, 고려시대에 나온 책인 “삼국유사”에서 신령, 마귀에 관한 이야기, 신화들만 뽑아 보았습니다. 이 이야기들은 삼국과 신라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고려시대에 기록된 내용인 만큼, 오랜 옛날, 삼국과 신라의 신화를 짐작하게 해 주고 그런 이야기들이 고려시대까지 어떻게 전래되며 남아 있는가 하는 내용도 상상하게 해 줍니다. 또한 이런 이야기들 중에는 비슷한 소재, 비슷한 구성의 내용들이 조선시대 이후로도 이어지는 것들이 많아서, 긴 시간 이어지며 정착된 한국신화의 형태가 어떤 것인지 상상해 볼 여지도 충분 합니다.
아래에서는 대략 37종으로 항목을 나누어 편성해서 “삼국유사” 속의 신화를 정리했습니다. 정리해 놓고 보니, 우리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한국신화의 전형적인 형태대로, 산을 관장하는 산신이나 산신령, 물과 바다를 관장하는 용이나 용왕 계통의 이야기가 많고, “삼국유사”의 저자가 불교 승려인만큼, 이런 신들이 불교와 어떻게 관련을 맺었는지에 관한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신화 속 신들의 성격과 특징은 의외로 다채로운 편이어서 훑어 보면 제법 볼만하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이 내용에서 힌트, 아이디어를 얻어 재미난 이야기, 그림을 지어내시는 분 계시다면 얼마든지 마음껏 써 보시기 바랍니다.
아래 내용 중 삽화는 본문 내용과는 대체로 직접 관련은 없으며, 그냥 제가 비슷한 분위기를 느끼시라고 적당히 한국계 유물 사진을 대강 찾아 올려 놓은 것이니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1. 환인(桓因)
(제주도 내왓당 무신도 중 제석위)
하늘 위 세계의 일부를 지배하는 임금 같은 것으로, "삼국유사”에서는 불교 신화에 등장하는 “제석(帝釋)"을 말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불교에서 제석은 악을 물리치고 불교를 수호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그만큼 싸움에 매우 뛰어나고 술을 잘 마시는 느낌도 있는 등 괄괄한 느낌도 있습니다.
"삼국유사”에서는 흥륜사 이야기 등의 대목에서 제석이 하늘의 임금인 “천제(天帝)"와 동일시 되는경우도 있는데, 흥륜사 이야기에서는 제석이 지상에 나타나면 주변의 건물과 나무, 흙, 돌에 이상한 향기가 풍기고 오색구름이 일대를 뒤덮으며 근처 연못의 물고기들이 뛰어오른다고 되어 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불교 문화가 더욱 널리 퍼지면서 제석에 대해 숭배하는 것이 무당의 굿에 포함되었다는 기록도 나오는데, 이규보의 “노무편(老巫篇)” 같은 시가 그 예입니다. 이런 경우 제석은 주로 건강, 재물, 아기가 태어나는 것을 기원하는 신이 됩니다.
2. 환웅(桓雄)
(제주도 내왓당 무신도 중 천자위)
환인의 서자로, 하늘 위 세계에서 살고 있지만 하늘 아래 인간 세계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환인의 서자라고 했으니, 아마 그 형이나 어머니가 다른 적자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상상해 보자면 그 환웅의 형이 자신이 살고 있는 하늘 위 세계에 관심이 있는 반면, 환웅은 특별히 인간 세상에 관심이 많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 세상에 내려 와서는 농사, 의술, 형벌, 선악과 같은 인간 세계 360가지의 일을 주관하였다고 되어 있으니, 역시 인간을 위하는 신이면서 인간 세상의 여러 제도에 대한 신으로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환웅은 이상한 마늘과 쑥을 동물에게 먹게 해서 동물을 사람으로 바뀌게 하는 술법을 쓸 수 있는 것으로도 나오는데, 곰이 사람으로 변하는데 성공하고, 사람으로 변신한 곰, 즉 웅녀가 혼인할 사람을 구하자 직접 사람으로 변신해 곰과 혼인하기도 하는 등, 여러 모로 특이할 정도로 인간, 인간됨에 대한 애착을 보여 주는 신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3. 아사달(阿斯達) 산신(山神) - 단군(壇君)
(영식필 산신도 백운사본)
아사달 산신은 단군이 임금의 자리에서 떠나서 신선처럼 변해서 수천년 이상 살 수 있게 된 것을 말합니다. 단군은 웅녀가 단수(壇樹)아래에서 기도드린 결과로 태어났다고 되어 있으니 나무의 신으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세종실록”의 기록처럼 단군이라는 말 자체를 박달나무 임금이라는 뜻의 단군(檀君)이라고 할 때도 있고, “제왕운기”에 실린 이야기처럼 단수신(檀樹神), 즉 박달나무 신의 자식으로 단군이 태어났다고 할 때도 있으니, 역시 나무 또는 박달나무 신의 성격을 이어 받았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행적에서 드러나는 특징은 세속의 부귀영화를 벗어 던지고 산에 들어 가서 신선처럼 된다는 점이 눈에 뜨입니다. 일단 “삼국유사”에 실린 이야기에서부터 임금으로 살다가 임금 자리를 벗어 던지고 아사달의 산신이 되어 1908세까지 살았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임금으로 지낸다 한들, 속세의 삶은 죽으면 그 뿐이니, 오히려 산에 들어 가서 도를 닦으며 살면서 신선이 되어 수천년을 사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엿보인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후대에는 단군을 적극적으로 신선술의 상징으로 본 사례도 있습니다. 조선시대 소설인 “금오신화”의 “취유부벽정기”에서는 궁전의 공주라 하더라도 전쟁이 일어나고 난리가 나면 비참한 신세가 되는 것이 속세의 삶이니 차라리 속세를 떠나는 것이 낫다는 이야기를 해 주는 신령으로 단군에 해당하는 것이 나타나는 것으로 되어 있고, "해동이적” 같은 책에서는 단군을 신선이 되는 방법을 알아내려한 사람들의 시초로 보고 있기도 합니다.
또한 당연히 단군은 최초의 나라인 고조선을 세운 인물로 되어 있는 만큼, 이후 한반도와 인근 나라들의 신으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조선시대에 이르면 단군을 최초의 임금으로 조정에서도 숭배하기 시작하며, 이동휘의 “동사” 같은 책에서는 이후 모든 나라들이 다 단군의 후예라는 식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4. 천제(天帝)
(중앙박물관 소장 고려 시왕도 중 평등대왕)
하늘을 다스리는 임금으로 볼 수 있는 것으로, "삼국유사”의 북부여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해모수(解慕漱)와 동일시 되어 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는 오룡거(五龍車), 즉 다섯마리 용이 이끄는 수레를 타고 하늘과 땅을 오가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늘을 다스리는 임금으로 흔히 옥황상제 같은 도교 색체가 더 뚜렷한 표현을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삼국유사”에는 천제라는 표현이 더 많이 나오고, 한국사 최초의 신화 기록이라고 할 수 있는 “광개토왕릉비”의 앞부분에도 하늘을 다스리는 임금을 "천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삼국유사”의 표훈대덕 이야기 부분을 보면, 사람이 태어날 때 어떤 모습으로 태어나느냐 하는 것을 천제가 결정할 수 있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한편, 이목 이야기 부분을 보면, 이목이 자신의 능력으로 가뭄이 든 곳에 비를 내리자 하늘의 이치를 어겼다고 해서 화를 내고 번개로 공격한다는 대목도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보면, 하늘의 임금이기는 하지만, 세상 다른 일에 비해서 사람을 특별히 중시하지는 않는 듯 하여 사람에게는 비정하게 대하는 것이라고 상상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5. 하백(河伯) - 유화(柳花), 동명성제(東明聖帝)
(제주도 내왓당 무신도 본궁위)
하백이라는 말은 강물의 신이라는 뜻으로 중국 고전에서도 흔히 쓰는 표현인데, "삼국유사”에는 고구려를 세운 주몽의 외할아버지를 일컫는 경우가 가장 많이 나옵니다. "광개토왕릉비"에서도 언급 됩니다. "삼국유사”에서는 주몽이 위기에 처했을 때 거북과 자라가 물 위에 떠올라서 주몽이 도망칠 수 있는 다리를 만들어 주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런 것을 하백의 힘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외에 이규보의 “동명왕편”에서는 하백이 매우 좋은 술을 갖고 있는데 한 번 마시면 7일 동안 깨지 않는 술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도 소개 되어 있고, 여러가지 동물로 변신하는 재주를 갖고 있다는 장면도 나와 있습니다. 딸인 유화에게 벌을 내릴 때에는 입을 팔 다리 길이만큼 길게 튀어나오게 바꿔 버렸다는 이야기도 소개 되어 있습니다.
한편 유화는 “삼국유사”에서 하백의 딸로 되어 있고, 주몽은 그 유화의 아들인데 "삼국유사”에서는 동명성제라는 이름으로도 나타나 있습니다. 동명성제는 활을 아주 잘 쏘는 사람이라서 직접 활을 만들어 사용했고, 주몽이라는 이름 자체도 활 잘 쏘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삼국사기”에는 고구려에서 유화와 동명성제에게 제사를 지내고 신령처럼 숭배하는 듯한 묘사가 나와 있는 대목도 있는데, 예를 들어, 당나라 군사들이 요동성에 침입 했을 때 동명성제의 사당에 미녀를 단장시켜 부인으로 들여 보내면서 무당이 이제 동명성제가 기뻐하실테니 당나라 군사들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규보의 “동명왕편”에서는 유화 외에도 그 여동생으로 위화(葦花), 훤화(萱花)가 있다는 이야기도 언급 되어 있고, 유화가 물 속에서 살면서 어부가 물고기 잡는 것을 빼앗아 먹다가 그물에 잡혀 올라 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한편 동명성제에 대해서는 같은 글에서 구제궁(九梯宮)이라는 궁전을 하늘의 힘으로 구름 속에서 단숨에 만들었다는 이야기라든가, 옥기린(玉麒麟)을 길들여서 말처럼 타고 다녔다는 이야기라든가, 조천석(朝天石)이라는 돌을 타고 하늘에 올라가서 하늘 위 세상과도 오갈 수 있었다든가 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광개토왕릉비”에는 세상을 떠날 때 용의 머리를 딛고 하늘로 올라 갔다고 되어 있습니다.
6. 운제(雲帝) - 운제산(雲梯山) 성모(聖母)
(제주도 내왓당 무신도 중 중전위)
신라 2대 임금인 남해 차차웅의 부인인 운제부인(雲帝夫人)을 상징하는 신으로 현재의 포항 운제산에 깃들어 있는 신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름대로 구름의 여신인 셈인데, "삼국유사”에도 가뭄이 들었을 때 운제산 성모에게 기도를 드리면 영험이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7. 함달파(含達婆) – 28용왕(龍王), 적녀국(積女國), 적룡(赤龍)
(중앙박물관 소장 신중도 중 발췌)
함달파는 동해 건너 먼 곳에 있다는 용성국(龍城國) 또는 정명국(正明國), 완하국(琓夏國), 화하국(花廈國)이라는 곳을 다스리는 임금으로 용왕입니다. 총 28명의 용왕이 그 나라에 있다고 하는데, 서로 다투거나 따지지 않고 전부 순리대로 임금의 자리를 계승한다고 하며, 용왕이지만 사람과 혼인하여 여자의 몸에서 자손을 이어 간다고 되어 있습니다. 함달파는 적녀국(積女國)의 공주와 결혼했다고 되어 있는데, "삼국사기”에는 여국(女國)이라고 되어 있으니 이곳을 여자들만 사는 나라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함달파는 아들이 없어서 7년 동안 기도했더니 왕비가 커다란 알을 낳았고, 이것은 좋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멀리 보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서 이 알과 일곱가지 보물, 노비들을 모두 배 안에 있는 큰 상자에 넣어 배를 띄워 보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배가 적룡 즉 붉은 용의 보호를 받으며 떠다니다가 신라에 도착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함달파는 동해 먼바다의 신으로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고, 적룡을 부릴 수 있는 항해와 배의 신이라고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8. 동악신(東岳神) – 석탈해(昔脫解)
(석굴암 금강역사상)
신라의 임금인 탈해 이사금은 함달파와 적녀국 공주의 자식인 셈인데, 세상을 떠난 뒤에 동악(東岳), 즉 토함산의 신이 되었다고 합니다. 석탈해는 몸 뼈 길이가 9척 7촌으로 대단히 길어서 덩치가 크고, 두개골 둘레는 3척 2촌으로 큰 덩치를 고려해 봐도 유난히 머리가 긴 편입니다. 특히 이와 뼈가 한 덩어리로 이어져 있으며, 세상에서 누구도 이길 수 없는 힘이 센 사람 모양의 골격이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대단히 힘이 세고 강한 신입니다.
한편 풍수지리를 따져서 호공의 집터가 좋다고 보고 속임수로 그 집터를 빼앗았다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이런 내용을 보면 풍수지리에 밝고, 속임수에도 밝은 신으로 볼 수 있습니다. 속임수를 쓸 때 자신이 예로부터 대장장이였다고 소개하는 대목이 있는 것을 보면, 대장장이의 신이나 철의 신으로 상상해 볼 여지도 있을 것입니다.
신라에서는 탈해 이사금의 뼈를 부수어 넣은 신상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처음에는 궁전에 두다가 나중에는 토함산에 두었다고 합니다.
9. 치술신모(鵄述神母)
(국사당 무신도 중 곽곽선생)
신라 눌지 마립간 시절에 박제상은 왜국에 가 있는 왕자를 몰래 빼내 오기 위해 왜국왕을 목숨 걸고 속이다가 결국 죽게 됩니다. 목숨을 걸고 일을 해내고 고문 당하다 죽을 때까지 충성을 외치는 모습 때문에 흔히 목숨 바치는 충신의 모습으로 박제상은 자주 언급됩니다.
그런데, 박제상의 부인은 왜국으로 떠난 박제상이 언제나 돌아올까, 치술령(鵄述嶺)이라는 고개에 올라 가 항상 바라 보다가 결국 통곡하다가 죽었다고 합니다. 이후, 박제상의 부인은 치술신모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며 신으로 섬김 받았습니다. 그러니, 상상해 보자면 치술신모는 그리움의 신, 기다림의 신, 이별의 신, 슬픔의 신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딸이 셋 있었다고 하니, 치술신모의 후손이 이어지기도 했을 것입니다.
10. 천사(天使)
(달성 용연사 금강계단 중 일부)
신라 진평왕이 즉위한 해에 하늘과 땅을 오가는 하늘의 신하, 심부름꾼 즉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서 옥으로 만든 허리띠 하나를 주고 진평왕이 그것을 받자 다시 하늘로 올라 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흔히 하늘에서 준 옥대라고 하여 천사옥대(天賜玉帶)라고 부르는 것인데, 이 옥대를 전해 준 천사에 대해서는 특별히 자세한 묘사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는 하늘 위를 다스리는 임금을 상황(上皇)이라고 말하고 있고, 진평왕이 꿇어 앉아 그것을 받았다는 것으로 보아, 하늘을 위를 다스리는 임금은 신라의 임금도 높여 섬긴다는 정도는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뒤에 나오는 이목(璃目) 이야기에서는 이목이 어디있냐고 천사가 물었을 때, 승려가 오얏나무를 가리키자 오얏나무를 번개로 쳐서 꺾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보면, 천사는 뻔한 거짓말도 곧이 곧대로 너무 잘 믿는 성격을 갖고 있고, 한편으로는 번개를 무기로 쓸 수 있는 힘도 갖고 있습니다.
11. 나림(奈林), 혈례(穴禮), 골화(骨火) 삼신(三神)
(상주 신라 석조천인상)
신라 김유신이 백석(白石)이란 사람과 함께 다른 나라를 정탐하러 가는 길에 세 명의 여자를 만났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세 사람은 김유신, 백석에게 아름다운 과일을 대접하면서 서로 즐겁게 이야기했다고 하는데, 그러다가 세 사람이 긴히 김유신에게 말하기를, 백석만 떼어 놓고 숲 속으로 들어 가서 더 깊은 정에 대해 이야기 하자고 합니다. 김유신은 즐거워하면서 따라가는데, 막상 숲 속 깊이 세 사람을 따라 들어 가 보니, 그때 세 사람은 신의 모습으로 변신해서 정체를 드러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사실 나림, 혈례, 골화 세 곳에 깃든 나라를 지키는 신인데, 백석이 사실은 김유신을 속이고 있는 첩자이기 때문에 그 사실을 김유신에게 알려 준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나림, 혈례, 골화 삼신은 우선 첩자의 신, 첩자를 밝혀내는 신으로 볼 수 있을 것이고, 김유신 일행과 대화를 나눈 과정을 살펴 보면, 유혹의 신이나 과일, 간식의 신으로 상상해 볼 여지도 있을 겁니다. 나림, 혈례에 해당하는 신이 먼저 나타나고 골화에 해당하는 신이 나중에 나타난 것을 살펴 보면, 나림과 혈례가 조금 가까운 편이고 골화는 둘과는 조금 덜 친한 신으로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산 이름인 나림과 혈례라는 지역에 비해 골화라는 지역은 냇물이 있다는 점을 따로 언급한다는 점도 차이가 납니다.
신의 모습을 드러낸다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사람 모습으로 있을 때와 신으로 변했을 때가 겉보기에도 확연히 달라서, 신의 모습이 되면 옷차림이나 얼굴 색, 주변을 감도는 빛이나 서 있는 모습 등이 기이하게 되는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도 있을 겁니다.
12. 귀입궁중(鬼入宮中:귀신이 궁전 안에 들어 왔다는 말)
(제주도 내왓당 무신도 중 홍아위)
백제 의자왕 말기에 백제가 망조가 들었다는 것을 소개할 때 나오는 것으로, 귀신 하나가 궁전 안에 들어 왔는데 “백제는 망한다, 백제는 망한다."하고 크게 외치다가 문득 땅 속으로 꺼져 버렸다고 합니다. 꺼진 자리를 파 보았더니 땅 속 깊은 데에서 거북이 나왔고 그 등에 글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거기에는 “백제는 보름달 같고 신라는 초생달 같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임금이 무당에게 그 뜻을 묻자, "보름달은 이제 차차 줄어들 것이니 백제는 쇠약해 지고, 초생달은 이제 차차 차오를 것이니 신라는 점점 강해진다는 뜻”이라고 해설하자 임금은 화를 내면서 그 무당을 처형해 버렸습니다. 그러자 다른 무당이 임금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보름달은 밝으니 백제는 강하고 초생달은 어두우니 신라는 약하다는 뜻”이라고 하니까 임금이 기뻐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정말로 이런 일이 있었다면, 아마도 누가 일부러 백제 조정의 분위기를 흉흉하게 만들기 위해 엉뚱한 내용을 거북 등에 새겨서 몰래 파묻어 두고, "귀신이 들어간 자리에서 이런 게 나왔다”라면서 속임수를 쓴 것이겠습니다만, 이 이야기는 백제 멸망을 예언하는 귀신의 흉흉한 모습과 그 예언을 대하는 의자왕의 졸렬한 모습을 비난하는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예언을 하는 귀신이 있어서 갑자기 나타나고, 또 갑자기 땅으로 꺼지는데 그 아래를 파 보면 이상한 짐승이 있어서 또 예언이 적혀 있다는 식의 묘사는 어떤 예언, 신탁을 드러내는 형태로 흥미롭기도 합니다.
13. 오악삼산신(五岳三山神)
(청자 인물형 주전자)
오악삼산은 신라에 있는 다섯 방향에 위치한 명산과 경주 일대의 신성한 산 세 곳을 말하는 것으로, 오악의 경우, 동악은 토함산, 서악은 계룡산, 남악은 지리산, 북악은 태백산, 중악은 팔공산이며, 삼산은 나림, 혈례, 골화, 세 곳입니다. 이 중에서 동악과 삼산에 깃든 신은 동악신과 나림, 혈례, 골화 삼신 이야기에서 이미 설명했습니다. 북악의 신은 뒤에 옥도금이라는 이름으로 소개 되어 있기도 합니다.
신라 경덕왕 때, 오악 삼산의 신이 궁전의 뜰에 직접 나타나 임금을 모셨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것을 보면, 신라 국토를 상징하는 이 여덟 산의 산신령들은 신이지만 모든 인간 보다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신라 조정의 명령을 받고 신라 임금께 충성을 다하는 것으로 묘사된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신라에는 유독 산에 깃든 신이 많고 나라에서도 그런 신들을 중시하는 편인데, 이것은 이후의 한국사에도 어느 정도 이어지는 특징입니다. 이러한 특징이 당시 당나라 사람 등이 보기에도 특이해 보였는 지, "구당서"등 중국계 문헌에서도 신라의 풍속을 소개하면서 특별히 "산신에게 제사지내기를 좋아한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한편 "삼국유사"의 오악삼산신에 대한 업근은 신라가 당나라로부터 “도덕경”을 도입한 후에 묘사 되고 있는데, “도덕경”이 중국 도교의 가장 중심이 되는 경전이라는 면에서 보면, 오악 삼산신에 대한 이런 믿음은 도교 느낌이 강할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신라 하대의 김가기 같은 사람은 당나라로 건너 가서 도교의 신선이 되었다는 전설을 중국에 남기기도 했으니, 어느 정도는 도교 문화가 신라에 퍼져 있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몸을 단련하거나 신비로운 약을 만들어서 황금을 만들어 낸다거나, 사람을 영원히 살 수 있게 한다거나, 하늘을 날 수 있게 한다거나 하는 도교 술법과 오악 삼산의 신이 관련이 있어서, 오악 삼산의 신이 그런 비법을 전수해 줄 수 있다거나 그런 비법을 알아내려는 사람들이 오악 삼산이 깃들어 있다는 곳에 가서 기도를 하면서 연구를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14. 북천신(北川神)
(제주도 내왓당 무신도 중 감찰위)
신라 원성왕이 김주원과 임금의 자리를 놓고 다툴 때, 원성왕이 북쪽에 있는 냇물의 신, 즉 북천신에게 기도를 했더니, 김주원이 궁전에 들어오려고 할 때 북천 물이 갑자기 불어 나서 물을 건너오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때 원성왕이 재빨리 궁전에 들어 와서 임금이 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북천신은 어떤 자리를 놓고 사람들이 다툴 때, 그것을 도와 주는 신으로 볼 수 있고, 좀 더 나아가서 출세나 승진에 대한 신으로 상상해 볼 여지도 있을 것입니다. 갑자기 냇물이 불어난 일을 일으켰으니, 홍수의 신이기도 합니다.
15. 동지(東池), 청지(靑池), 분황사정(芬皇寺井) 삼룡(三龍)
(경복궁 근정전 천장 장식)
신라 원성왕 때 두 사람이 임금 앞에 찾아 와서 자신들은 동지, 청지 두 연못에 사는 용의 부인인데, 하서국(河西國)이라는 곳에서 온 사람이 자신의 남편들과 분황사정에 사는 용까지 세 용을 조그마한 물고기로 바꾸어서 잡아 갔다고 하소연 합니다. 이에 원성왕이 하서국 사람을 붙잡아 처형하겠다고 위협해서 용을 풀어주게 하고 그러자 무사히 세 용들이 풀려 났다는 이야기입니다.
세 용은 신라를 지키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고 하는데, 땅 속의 물길을 따라 동해에서부터 이 연못과 우물에 드나들 수 있었다고 합니다. 상상해 보자면, 세 용은 땅 속에 있는 샘물, 땅 속의 신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용이 풀려 나자 우물 물이 높이 치솟았다고 하는 이야기도 실려 있는데, 그렇다면 기분이 좋을 때는 그렇게 물을 치솟게 할 수도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세 용이 어떤 술법에 당해 작은 물고기로 변하게 되면 꼼짝 못하고 잡혀 가는 수 밖에 없어서 그것이 약점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세 용을 살던 곳으로 보내자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물 밖으로 꺼냈을 때 힘이 약해진다는 느낌입니다. 또한 하서국은 중국 서쪽의 위구르인이 사는 지역을 말하는데, 그렇게 보면 이 이야기는 신라와 위구르의 교류에 대한 전설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위구르 사람들이 이상한 요술을 부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위협을 느끼기도 했다고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 동지, 청지의 용은 부인이 와서 구해 달라고 하는데, 분황사정의 용은 그런 것이 없는 것을 보면, 이 용들은 사람과 혼인하여 지내는데, 동지, 청지의 용은 짝이 있지만 분화사정의 용은 짝이 없는 외로운 신세라고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이 사실은 용의 부인들이라는 점을 보면, 용의 부인에 대해서도 신령처럼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16. 동해룡(東海龍)
(고구려 강서대묘 벽화 중 청룡도)
신라 헌강왕이 동해 근처에 왔을 때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자욱해졌는데, 그러자 신하는 이것이 동해룡의 짓이라고 하면서, 이럴 때는 좋은 일을 해야 한다고 해서 근처에 절을 세우자 안개가 걷혔다고 합니다. 그리고 동해룡은 기뻐하면서 일곱 아들과 함께 임금의 덕을 칭송하며 춤을 추고 음악을 연주했다고 하는데, 그 일곱 아들 중 한 명이 처용입니다.
안개가 너무 심해서 길을 잃을 정도라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면, 동해룡은 안개의 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으로 길 잃은 사람들의 신으로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음악과 춤으로 임금의 덕을 칭송했다는 것을 보면 음악의 신으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17. 역신(疫神)
(국사당 무신도 중 호구아씨)
신라 헌강왕 때 처용의 부인과 몰래 바람을 피우는 신으로, 이름의 뜻대로 병, 전염병을 일으키는 신입니다. 처용의 부인이 너무 아름다워서 부인에게 다가간 것으로 되어 있는데, 처용이 그 사실을 알고도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한탄만 하자, 부끄러움과 감동을 느끼고 처용에게 사죄한 후, 앞으로는 처용의 모습을 그린 것만 보아도 그 근처에는 가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후로, 사람들이 처용의 형상을 문에 붙여서 사악한 귀신을 쫓아내는 풍습이 생겼다고 합니다.
18. 처용(處容)
(악학궤범 중 처용 가면 설명 부분)
처용은 동해룡의 아들로 신라 임금을 따라 와서 벼슬을 하다가 부인의 미모에 반한 역신이 부인과 바람이 나자, 그것을 한탄하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 사람입니다. 역신은 이에 부끄러움을 느껴서 이후로는 처용의 모습을 그린 것만 보아도 그 근처에는 가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후로, 사람들이 처용의 형상을 문에 붙여서 사악한 귀신을 쫓아내는 풍습이 생겼다고 합니다.
역신을 쫓아 낸다는 의미에서 처용은 의술의 신이기도 하고, 춤과 노래로 역신을 감복시켰다는 면에서는 춤과 노래의 신이기도 합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처용의 춤이 궁전에서 행사로 시행되기도 했는데, 연산군 같은 임금은 처용 춤에 특히 능했다고도 합니다. 이러한 조선시대의 춤에서는 처용의 얼굴 모습으로 사악한 귀신을 쫓는다는 것이, 처용의 가면을 쓰고 춤을 추는 것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한편 역신이 처용의 부인과 바람난 것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면, 오쟁이진 남편의 신, 배우자가 바람난 처지의 신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19. 상심(祥審)
(국사당 무신도 중 창부씨)
신라 헌강왕 때 임금이 포석정에 갔을 때, 남산의 신이 나타나서 춤을 추었는데 주변의 신하들은 보지 못하고 임금만 그 모습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러자 임금이 스스로 직접 춤을 추어 그 모습을 주변에 보여 주었다고 합니다. 이때 이 신의 이름을 상심, 그 춤을 어무상심(御舞祥審) 또는 상염무(霜髥舞)라고 했다고 합니다. 또 이 춤의 모습을 조각으로 새겨서 보존했다고도 합니다.
상심은 춤의 신인 셈인데, 임금이 직접 춤을 추게 했을 정도이니, 춤의 모습이 단순하면서도 대단히 흥겨웠을 것이라고 상상해 볼 수 있을 겁니다. 다만 “삼국유사”에서는 이때 상심이 춤을 보여준 것을 임금은 흥겹고 즐거운 것으로만 여겼지만 사실은 이제 점차 나라가 기울고 있으니 주의하라는 경고의 의미로 보여준 것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20. 지백급간(地伯級干) – 옥도금(玉刀鈐)
(상주 신라 석조천인상)
신라 헌강왕 때 임금이 상심을 만난 후, 비슷하게 금강령에 임금이 갔을 때는 북악의 신이 나타나 춤을 추었고, 동례전에서 잔치를 할 때에는 땅의 신이 나타나 춤을 추었다고 합니다. 이때 북악의 신은 이름을 옥도금이라고 하고, 땅의 신은 이름을 지백급간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때 춤을 추면서 “지리다도파도파(智理多都波都波)"라고 흥얼거렸다고 하는데, 그냥 흥얼거리는 소리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 의미가 지혜로운 사람들은 모두 도망치고 나라의 도읍은 파괴된다는 말로 볼 수도 있어서 멸망의 예언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지백급간은 이름의 뜻도 땅의 신이라는 것입니다. 지백급간이 춤을 보여 준 것은 사실 나라가 망할 징조로 경계하는 의미에서 보여준 것인데, 당시 임금과 신하들은 그저 즐거운 것으로만 생각하고 향락에 빠져 더욱 멸망의 길로 나갔다는 것이 “삼국유사”에 실린 이야기의 결론입니다. 그런 면에서, 즐겁고 들뜬 가운데 사실 파멸의 징조가 서려 있는 양면성을 나타내는 신으로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편, 이 무렵에는 동해룡, 처용, 상심, 옥도금, 지백급간 같은 다양한 신들이 임금 앞에 직접 나타나서 춤과 노래를 보여 준다는 이야기가 무더기로 나옵니다. 처용을 중앙아시아나 그 보다 더 서쪽 지역의 먼 나라 사람이라고 추정하는 요즘의 연구를 받아들인다면, 이때 나타난 신들이란 사실 그 복장과 모습이 특이한 먼 나라 사람들이 그 나라의 독특한 노래와 춤, 또는 묘기나 마술을 임금 앞에서 보여준 것이 와전된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이 이야기들은 특이한 나라의 갖가지 이상한 놀이에 몰두하는 임금의 모습으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21. 서해약(西海若)
(제주도 내왓당 무신도 중 상사위)
신라 진성여왕 때 거타지 이야기에 나오는 신으로 서해 바다를 다스리는 신입니다. 곡도(鵠島)라는 섬에 머무는데 보통 때는 노인의 모습이지만 용이기도 합니다. 곡도의 연못에서 살다가 노인의 모습인채로 연못에서 걸어 나와 모습을 드러내는데, 바다를 다니는 배를 보호해 줄 때에는 용 두 마리를 보내어 그 배를 등에 지고 가게 해 줄 수 있습니다.
서해약에게는 원래 부인과 여러 자손이 있었는데, 늙은 여우가 용의 간과 창자를 빼먹으려고 공격해 와서 다 죽고 부인과 딸 하나만 살아 났다고 합니다. 늙은 여우가 용의 간을 특히 노리는 것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서해약의 간이 특별한 효능이 있는 약이라고 상상해 볼 여지도 있습니다. 늙은 여우와 싸울 때 물 위에 모습이 드러나게 된 후 당한다는 점으로 짐작해 보면, 물 속 깊이 있을 수록 힘을 발휘할 수 있는데 물 바깥에 가깝게 되면 약해진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겁니다.
이름 그대로 서해를 다스리는 신이자, 항해하는 배들의 신이기도 합니다. “삼국유사”의 이야기는, 서해약이 거타지의 배를 용으로 보호하면서 당나라로 가게 하니, 그것을 보고 당나라 임금이 놀라서 잔치를 베풀어 주고 큰 상을 내렸다는 이야기가 결말입니다. 특히 신라 하대에 서해가 신라와 당나라 사이의 외교, 무역에 자주 활용 되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서해약은 무역상들과 외교사절을 보호해 주는 신이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겁니다. 한편 처음 뱃사람들이 곡도에 내려 보낼 사람을 정할 때 제비뽑기를 했는데, 유독 거타지의 제비만 물에 가라앉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기에 초점을 맞추면, 서해약이 제비뽑기나 도박의 결과를 바꿀 수 있는 신이라고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겁니다.
22. 곡도(鵠島) 노호(老狐)
(청자 퇴화점문 나한좌상)
신라 진성여왕 때 거타지 이야기에 나오는 신으로 곡도에 사는 늙은 여우 입니다. 보통 때의 모습은 사람, 그 중에서도 승려와 같은 모습인데 매일 해가 뜰 때 하늘에서 내려와서 주문을 외우면서 공격하면 곡도에 사는 용들과 서해약의 간을 빼먹을 수 있습니다. 주문을 외울 때는 연못을 세 바퀴를 도는데, 그렇게 하고 나면 물 속 깊이 살고 있는 서해약의 가족들이 물 위로 다 떠오르게 됩니다. 이때 이들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이 늙은 여우의 약점은 하늘에 있을 때 화살로 공격하는 것입니다. 이때 화살을 맞게 되면 원래 모습인 늙은 여우로 변하면서 땅에 떨어져 죽게 됩니다. 거타지는 활을 잘 쏘았으므로, 서해약이 거타지에게 늙은 여우를 향해 화살을 쏘아 줄 것을 부탁해서 이 늙은 여우는 죽게 됩니다.
거타지 일행은 배를 타고 곡도 근처를 지나다가 풍랑을 만나서 곡도에 머무르게 되는데, 곡도에 사는 서해약을 괴롭히는 것이 이 늙은 여우라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이 늙은 여우는 평화로운 바다를 거스르는 신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나아가 풍랑의 신으로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23. 일산(日山), 오산(吳山), 부산(浮山) 신인(神人)
(기원사 산신도)
백제의 전성기 때 백제의 서울, 사비 주변의 세 산인, 일산, 오산, 부산에는 각각 신령스러운 사람, 즉 신인이 살았다고 합니다. 이 세 신인은 아침 저녁으로 날아서 서로 왕래하기를 끊이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러므로 백제의 전성기를 나타내는 신, 백제의 신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으로 날아서 왕래했다는 묘사가 특성으로 나타나 있는 점에 초점을 맞추면, 하늘을 나는 것에 대한 신, 하늘을 나는 술법을 알고 있고 가르쳐 줄 수 있는 신으로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현재 부여의 부산(浮山)을 이 세 산 중 부산으로 보고, 오산(烏山)이 오산이고, 금성산(錦城山)이 일산이 아닌가 추정한다고 합니다. 부여군에서 펴낸 “전통문화의 고장 부여-내고장전통가꾸기”에 실려 있는 이야기라고 합니다.
24. 수릉왕묘(首陵王廟) 맹사(猛士)
(선정릉 무인상)
금관가야, 곧 가락국을 건국한 임금인 수로왕의 사당에 보물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도적들이 그것을 훔치러 왔는데, 그러자 사당 안에서 갑자기 한 맹사, 즉 용맹한 사람 형체가 나왔다고 합니다. 그 형체는 투구와 갑옷을 쓰고 있고 활과 화살을 사방에 비 오듯이 쏘아서 도적들을 몰아 냈다고 합니다. 얼마 후 도적이 다시 왔을 때는 눈빛이 번개 같은 아주 거대한 뱀이 도적들을 몰아냈다고 합니다. 이후로 사람들은 수로왕릉 근처에는 신령스러운 것이 있어서 왕릉을 지킨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에서는 이 수릉왕묘의 맹사와 거대한 뱀 모양의 괴물이 서로 동료로서 같이 사당과 왕릉을 지키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이것은 수로왕릉을 지키는 신입니다. 좀 더 나아가 보자면, 금관가야 지역을 지키는 신, 도둑들을 물리치는 신, 보물을 지키는 신으로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25. 사방대력신(大力神) – 대귀(大鬼), 소귀(小鬼)
(청도 운문사 석조사천왕상)
신라 김양도(金良圖)가 어린 아이일 때 입이 붙고 몸이 굳어져 말도 못하고 몸이 마비되는 병에 걸렸는데, 이때 김양도가 보니 항상 대귀(大鬼), 즉 큰 귀신이, 소귀(小鬼), 즉 작은 귀신 여럿을 거느리고 와서 집안을 돌아 다니며 음식을 먹는 등 행패를 부렸다고 합니다. 대귀는 소귀들을 거느리면서 명령하는데, 소귀들은 철퇴로 무장하고 있어서 만약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보이면 철퇴로 머리를 때려 죽여 버렸습니다. 한편 대귀는 자신만만하고 대범한 성격인데 비해, 소귀는 좀 더 조심스러운 성격으로 나타나 있기도 합니다.
이 귀신을 물리치기 위해 밀본(密本)이라는 승려를 부르자, 밀본은 사방대력신을 불러서 귀신을 잡아가게 합니다. 사방대력신은 빛나는 쇠 갑옷을 입고 있고 기다란 창으로 무장하고 있는데, 사방대력신인 만큼, 동, 서, 남, 북, 네 방향을 상징하는 네 명일 것입니다. 그리고 대력신이라고 부르는 만큼, 덩치가 크고 힘이 세며, 싸움을 잘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귀신을 잡아간 후, 여러 천신(天神)들이 둘러싸고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는데, 구체적인 묘사는 없지만 상상해 보자면, 이 천신들은 병사들과 같은 모습, 또는 관복을 입은 관리들과 같은 모습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러니, 이 이야기에서 대귀, 소귀는 병을 일으키고, 사람을 마비시키고, 음식을 훔쳐 먹는 신입니다. 한편 사방대력신은 병을 물리치는 신, 귀신을 잡아 가는 신으로 볼 수 있을 겁니다.
보통 현대의 무속에서는 동서남북 네 방향에 중앙을 더하여 다섯 방향에 대해 장군 같은 신이 있다고 보고, 오방신장 또는 오방장군이라는 체계를 더 많이 씁니다. 이것은 중국 도교 문화의 영향으로 보이는데, 사방대력신은 그에 비해서는 사천왕으로 나타나는 불교 문화의 영향이 더 강한 느낌 아닌가 싶습니다. 대력신이라는 말 자체도 불교에서 힘이 센 괴물, 귀신 같은 것을 묘사할 때 종종 쓰는 말인데, 예를 들어 아수라들의 세상에는 대력신이 살고 있는데, 이 대력신은 항상 화를 내고 있고 싸움을 좋아한다는 이야기가 불교에는 있었습니다. 불교의 사천왕에 견주어 볼 경우, 여기에서 나오는 긴 창을 들고 있다는 묘사는 사천왕 중 다문천왕(多聞天王)과 특히 비슷해 보입니다.
음양오행에서 동, 서, 남, 북, 중앙이 각각 청색, 백색, 적색, 흑색, 황색과 대응된다고 보고, 또 각각 나무, 쇠, 불, 물, 흙이 대응된다고 보기도 하는데, 그때문에 현대 무속에서는 오방신장의 이름을 동방청제, 서방백제 같은 식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그렇게 보면, 사방대력신에 대해서도 남방의 대력신은 붉은 색이고 불에 관한 힘을 갖고 있고, 북방의 대력신은 검은 색이고 물에 관한 힘을 갖고 있다는 식으로 상상해 볼 여지도 있을 것입니다.
한편 “삼국사기”의 “잡지”에는 신라의 여러 제사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4가지 방향에 대해 제사를 지내는 사례가 나오기도 합니다. 앞서 설명한 오악, 즉 중앙과 네 방향의 산 다섯군데에 제사를 지내는 것을 제외하면, 4방향의 큰 길에 지내는 제사, 4방향의 바다, 하천등에 지내는 제사 등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이 중에 4방향의 큰 길에 깃든 신을 소개해 보면, 동, 서, 남, 북, 차례로 고리신(古里神), 저수신(渚樹神), 첨병수신(簷幷樹神), 활병기신(活倂岐神)이 되고, 각각 나무, 쇠, 불, 물을 상징하는 것이 됩니다. 이 네 군데 큰 길에서는 압구제(壓丘祭), 벽기제(辟氣祭) 같은 신라 고유의 제사를 지낸다는 기록도 있으니 제법 중시되던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압구제와 벽기제는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기 어렵지만, 압구제는 건물이나 무덤 같은 것을 짓기 전에 그 건물이 운수가 좋으라고 터를 잡으면서 지내는 제사, 벽기제는 사악한 기운을 쫓는 제사로 추측한다고 합니다.
26. 기장산(機張山) 웅신(熊神) – 정씨지류(鄭氏之柳)
(세종실록 중 오례에서 웅후 그림)
사악한 용이 당나라 황족에게 깃들어 병을 일으키자 신라의 승려 혜통(惠通)이 술법을 일으켜서 이 용을 내쫓아서 병을 고칩니다. 그런데 이 용은 이제 신라의 문잉림(文仍林)이라는 숲에 가서 큰 소란을 부렸기 때문에 신라의 정공(鄭恭)이라는 사람이 혜통에게 부탁해서 혜통은 문잉림에서 다시 용을 쫓습니다. 그러자 이 용은 정씨지류, 즉 정공의 집 앞 버드나무에 깃드는데, 거기에 정공은 홀려서 버드나무를 너무나 좋아하게 됩니다. 그래서 임금이 길을 내기 위해 정씨지류를 자른다고 하자 “내 목은 잘라도 이 버드나무는 못 자른다”고 거역하게 해서 결국 정공은 사형 당합니다. 이후, 용은 신라 공주에게 또 병을 일으키는데, 혜통이 다시 퇴치하고 이때 혜통은 이 용을 독룡이라고 부릅니다. 그후 독룡은 마지막으로 기장산에 가서 웅신, 즉 곰과 비슷한 형태의 신령이 되어서 사람들을 괴롭힙니다. 결국 혜통이 불교의 가르침을 전수하며 타이르자 해를 끼치는 것을 멈추었다고 합니다.
다양한 모습으로 변하고 형체가 없어져서 병을 일으키는 형태로 깃들기도 합니다만, 사람을 유혹해서 홀리게 하는 버드나무 형태의 신령과 곰과 비슷한 형태의 신령이라는 것, 두 가지는 독특한 면이 있습니다. 병을 일으키는 신이면서 한편으로는 버드나무의 신, 곰의 신인 셈인데, 상상해 보자면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풀, 나무와 짐승 부류를 나타내는 신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27. 선도성모(仙桃聖母) - 선도대왕(仙桃大王)
(경기도 박물관 요지연도 중 발췌)
선도성모는 선도산에 깃든 신으로 겉모습이 아름답고 구슬로 쪽진 머리를 장식한 모습이라고 되어 있으며. 신라에서 제사를 지내던 여러 신들 중에서도 가장 우선하는 신으로 손꼽히던 것이라고 합니다. 선도성모는 먼 옛날 서쪽의 다른 땅에서 신선을 술법을 얻어 신라 가까운 곳에 왔다고 하는데, 그 후 솔개를 따라서 어느 산에 머물지 정했다고 합니다. 신라 경명왕 때에는 임금이 매사냥에 쓰던 매를 잃어버리고 나서 선도성모에게 기도하면서, "매를 찾으면 작호를 내리겠다”고 하자 매가 돌아 왔으므로 임금이 선도성모에게 대왕의 작호를 내렸다고도 합니다.
여러 천선(天仙) 즉 하늘의 신선 내지는 하늘의 경지에 이른 신선들에게 명령을 내려 비단을 짜게 했고 그것을 비색(緋色)으로 물들여 남편의 관복으로 주었다는데, 이 관복에 신기한 힘이 있었다고도 합니다. 그 후에 낳은 자식이 신라의 첫 임금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고 언급되어 있습니다.
한편 이후 중국 송나라 사람들은 선도성모가 옛날 중국 황제의 딸이 신라 지역으로 건너간 것이라고 믿었다고 하는데, 이렇게 보면 선도성모는 중국 전한시대, 신선술에 심취한 어느 황제의 딸이 되는 셈입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보면, 선도성모는 영원히 사는 법을 익힌 신선 부류이면서, 옷감, 옷의 신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솔개, 매에 대한 이야기와 엮인 것을 보면 새의 신으로 상상해 볼 수도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중국 문화의 전래를 상징하는 신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 어느 비구니가 절을 세우기 위한 재물이 필요해 기도하자 꿈에 나타나 황금 10근이 묻혀 있는 장소를 알려 주었다는 이야기도 나와 있는데, 황금을 내려 주는 신, 숨겨져 있는 보물을 찾아 주는 신으로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28. 명사(冥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시왕도 중 오도전륜대왕 그림에서 발췌)
명사는 저승사자 내지는 저승을 관장하는 높은 관리라는 뜻인데, "삼국유사”에는 망덕사의 승려 선율(善律)이 저승에 갔다가 돌아 오는 이야기에 소개 되어 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는 선율이 불교 경전 편찬을 하기 위해 일을 하던 도중에 죽어서 저승에 오게 되자, 그 일을 다 완수하라고 다시 이승으로 돌려 보내주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저승에서 이승으로 다시 돌려 보내 준다고는 해도, 그냥 육체만 그대로 되살아나게 해 주는 것이라서, 선율은 무덤에 묻힌 상태로 깨어 났고, 무덤 속에서 3일 동안 살려달라고 외친 끝에 지나가던 목동이 그 소리를 들어서 나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외에 저승에서 다른 죽은 사람의 사연을 듣는 장면도 이야기 속에 나와 있습니다.
그러니까 “삼국유사”의 이 이야기 속 저승의 모습은 관청에서 업무 보는 것과 같은 형태로 이루어져 있으며, 특별한 판단에 따라서는 죽은 사람을 되살아나게 해 주는 경우도 있으며, 비슷한 시기에 죽은 사람들끼리는 살아 생전의 모습과 비슷한 모습으로 오가다 만날 수도 있는 세상인 것입니다.
29. 보대사(普大士)
(도갑사 보현동자상)
신라에 지통(智通)이라는 노비가 있었는데 17세때 승려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 까마귀가 나타나 “영축산(靈鷲山)의 낭지(朗智)에게 의탁하라”고 말을 해 줍니다. 그 말을 듣고 영축산에 갔는데 이때 골짜기의 한 나무 아래에서 쉬고 있을 때, “보대사(普大士)”라는 기이한 사람을 만나고 잠깐 대화를 나누며 가르침을 받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문득 지혜가 생겨 깨우침을 얻었다고 합니다. 이때, 보대사는 불교의 보현보살을 말하는 것이면서 한편으로는 영축산의 산령, 곧 산신령을 말하는 것인데, 한편으로 영축산의 산신령은 변재천녀(辨才天女)였다는 말도 소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보대사는 불교의 보현보살, 변재천녀의 성격을 띄는 영축산의 산신령인 셈인데, 그렇게 보면, 보현보살이 상징하는 진리, 수행, 장수의 신이고, 변재천녀가 상징하는 장수, 부유의 여신으로 볼 수 있기도 합니다. 이야기 속에서는 노비 출신의 젊은이가 단숨에 깨달음을 얻어 경지가 높은 승려가 되었다는 내용이 중심이므로, 진리, 지혜를 상징하는 면이 강합니다.
30. 정성천왕(靜聖天王)
(경기도 박물관 요지연도 중 발췌)
정성천왕은 비슬산에 깃든 신으로 사람들이 비슬산에서 향나무에서 향을 채취해 가고 나면 밤에 저절로 빛을 내뿜어 촛불처럼 보이는데, 이것이 바로 정성천왕의 신비한 힘이라고 여겼다고 합니다. 이것을 일컬어 빛을 얻은 시절이라는 뜻으로 득광지세(得光之歲)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정성천왕은 지금 세상과는 다른 먼 과거의 다른 시대에 부처의 당부를 받고 1천명의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이 산에서 나오기를 기다리겠다고 하면서, 불교 승려가 많이 생기기를 돕는 신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성천왕은 향나무의 신, 수행의 신으로 볼 수 있을 것이고, 득광지세라는 말에 초점을 맞춘다면 밤을 밝히는 빛의 신으로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31. 이목(璃目)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석제 십이지신상 중 뱀)
신라 승려 보양(寶壤)이 중국에서 신라로 오는 길에 바다에서 용궁에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경전을 외우자 용궁의 임금이 보물을 주고 그 아들을 보양에게 딸려 보냅니다. 이 아들의 이름이 이목입니다.
이목은 보양이 창건한 절 옆에 있는 연못에서 살았는데 가뭄이 들면 비를 내려 주는 일을 하는 등, 사람을 돕고 착한 일을 하려고 했던 듯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늘의 순리를 거스르는 행동이라서 천제는 이목에게 번개를 내려 죽이려고 하는데, 그러자 이목은 절의 승려에게 살려 달라고 하는데 승려는 이목을 책상 밑에 숨겨 준 뒤에, 천제가 보낸 천사가 이목을 내놓으라고 했을 때에는 오얏나무를 가리킵니다. 그러자 천사는 오얏나무를 번개로 부순 뒤에 되돌아갑니다. 이후, 이목은 오얏나무를 쓰다듬는데 그러자 나무가 되살아납니다.
이렇게 보면, 이목은 사람을 돕고 나무를 살려 주려는 착한 신으로, 비의 신, 죽은 나무를 되살리는 신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일부 연구자들은 이 “이목”이라는 이름이 용이 되기 전 상태의 뱀 비슷한 괴물을 일컫는 말인 “이무기”라는 말과 발음이 비슷하므로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닐까 보고 있기도 합니다.
32. 마령(馬嶺) 신인(神人)
(경기도 박물관 요지연도 중 발췌)
고구려의 마령에 나타난 신령스러운 사람 같은 것으로 “너희 나라가 망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고구려에 망조가 든 것을 알립니다. 이 이야기는 고구려 연개소문 시절에 연개소문이 적극적으로 도교를 받아 들이면서 상대적으로 불교가 소홀해 진 것을 비판하는 이야기 말미에 소개된 것으로, 신선이 되는 방법을 중시하는 도교를 비판하며 불교를 중시해야 한다는 이야기로 나와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마령의 신인은 예언의 신이면서, 망조와 파멸을 예감하는 신, 도교나 신선술을 비판하는 신, 영원히 사는 술수를 비판하는 신, 하늘 위 세상으로 오르기 위해 애쓰는 술수를 비판하는 신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고구려의 운명이나 고구려의 신으로 본다는 것도 아주 이상하지는 않겠지만, 예언에서 고구려를 “너희 나라”라고 말한 것을 보면 그런 느낌은 약한 편입니다.
33. 금전문(金殿門) 노승(老僧), 장사(壯士)
(경기도 박물관 요지연도 중 발췌)
신라에서 황룡사를 건설할 때, 백제의 장인 아비지(阿非知)를 막대한 재물을 들여 초청합니다. 신라에 온 아비지가 처음 기둥을 세우던 날에 백제가 멸망하는 꿈을 꾸자 불길하게 여겨서 황룡사 건설에서 손을 떼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러자 문득 지진이 나더니 그 와중에 금전문에서 한 늙은 승려 모습의 형체와 한 장사 모습의 형체가 홀연 나타나 기둥을 세우고 다시 신비롭게 사라집니다. 이 모습을 보고 아비지는 황룡사 건설이 어쩔 수 없는 일임을 깨달아 마음을 고쳐 먹고 건설 작업을 계속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 금전문에 나타난 노승과 장사는 건물을 세우는 작업에 대한 신, 그 중에서도 고층 건물을 세우는 신, 고층 건물의 신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34. 만어산(萬魚山) 오나찰녀(五羅刹女) - 옥지(玉池) 독룡(龍)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신중도 중 발췌)
가라국(訶囉國)이라고도 하던 가락국, 금관가야 지역에 만어산이 있었는데 그곳에 사악한 신인 다섯명의 나찰녀, 즉 오나찰녀가 있었습니다. 한편 가라국에는 옥지라는 연못이 있고 그 안에는 사악한 독룡이 살고 있었는데, 오나찰녀와 독룡은 서로 왕래하며 사귀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번개와 비를 내려 4년 동안 농사를 방해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가라국 임금이 주술로 막아 보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결국 불교의 설법으로 감복시켜 나찰녀를 불교에 귀의시켜 해결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에서 오나찰녀와 옥지 독룡은 흉작의 신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나찰녀는 불교 계열 신화에서도 익히 언급되는 것인데, 대체로 사람을 잡아 먹는 마귀 같은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35. 장천굴(掌天窟) 굴신(窟神)
(용적사 독성도)
울진군 성류굴(聖留窟)의 옛이름이 장천굴인데 승려 보천이 허공을 날아다니는 경지에 도달했을 때, 날아서 장천굴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보천은 수구다라니(隨求陁羅尼)라는 불교의 주문을 밤낮 외었는데, 그러자 장천굴 굴신이 나타나 자신이 굴신이 된 지 2천년이 지났는데 드디어 수구다라니의 참된 도리를 들었으니 이제 불교에 귀의하고자 한다고 말합니다. 그 후에는 동굴이 형체가 없어져서 놀랐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에서 장천굴 굴신은 긴 세월 진리를 찾아 계속해서 기다린 신으로 되어 있고, 한편으로는 동굴 그 자체가 사라지고 나타난 일이 일어난 것을 보면 굴을 생기게 하고 없애는 신으로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36. 길달(吉達) - 비치제귀(飛馳諸鬼), 비형랑(鼻荊郞)
(하동 쌍계사 감로왕도 중 발췌)
신라 진지왕 때 사량부(沙梁部) 도화랑(桃花娘)이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매우 아름다워서 임금이 유혹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도화랑은 임금이 있어 임금의 청을 거절했고, 임금은 그러면 남편이 죽고 나면 되겠냐고 말하자 도화랑은 그렇다고 합니다. 그 후 임금도 죽고 얼마 후 도화랑의 남편도 죽는데, 그러자 임금의 혼령이 도화랑에 나타났고 이후 임금의 혼령과 도화랑 사이에서 태어난 기이한 사람이 비형랑입니다.
비형랑은 임금이 불러 들였는데도 밤마다 멀리 나가서 놀았고, 용사 50명으로 지켜도 뚫고 나가서 놀았는데, 그때마다 월성을 넘어 황천 언덕에 가서 지내면서 귀신 떼들을 불러 모아 지냈다고 하며, 귀신 떼들은 절의 종소리에 맞춰 모였다가 흩어졌다고 합니다. 나중에 임금의 부탁을 받고, 비형랑은 귀신 떼들을 부려서 하룻밤 사이에 큰 다리를 건설했으니, 이 다리를 귀교(鬼橋)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 귀신 떼 중에 나랏일을 도울만한 사람으로 비형랑이 추천한 것이 길달인데, 길달은 흥륜사(興輪寺) 남쪽에 누각이 있는 높은 문을 세우고 항상 그 위에서 잤으므로, 그 문을 길달문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하루는 길달이 여우로 변해서 도망가려고 하자 비형랑이 다른 귀신들을 시켜 죽였다고 합니다.
그만큼 여러 귀신들이 비형랑을 무서워했기 때문에 당시 신라 사람들은 비형랑이 있으니 귀신들은 물러 가라는 글을 짓고 그 글(聖帝魂生子 鼻荊郞室亭 飛馳諸鬼衆 此處莫留停)을 써 붙여 귀신을 쫓았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도깨비 이야기의 원형으로도 가끔 언급되는 내용입니다. 그렇습니다만, 이 이야기 속 귀신이 조선시대 이후 한글로 표기 되는 “도깨비”와 얼마나 계통이 비슷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귀신을 물리치는 글에서는 비형랑이 부리는 귀신들을 일컬어 “날고 뛰는 여러 귀신”, 즉 “비치제귀(飛馳諸鬼)”라는 표현으로 묘사 했습니다.
길달과 이 귀신 떼들은 건설의 신, 그 중에서도 다리와 문을 짓는 일에 대한 신으로 볼 수 있을 것이고, 한편으로 비형랑은 귀신을 쫓는 신, 귀신을 다스리는 신으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귀신 떼들은 여우 같은 동물로 변할 수 있고, 한편으로는 비형랑에게 명령을 받는 처지에서 벗어나 도망치려고 애를 쓰는 것이기도 합니다. 비형랑이 50명의 용사들을 뚫고도 자연스럽게 탈출했다는 대목에 초점을 맞추면 탈출의 신으로 상상해 볼 수도 있을만 합니다.
한편 앞의 귀신을 쫓는 글을 조금 더 살펴 보면, “이곳은 비형랑의 집이니 귀신들이 올 곳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는데, 비형랑의 집을 일컬어 “비형랑실정(鼻荊郞室亭)”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비형랑실정”이라고 부르는 곳은 귀신들이 올 수 없는 곳인 셈입니다. “이곳은 귀신들이 올 곳이 아니다”라는 말은 “차처막류정(此處莫留停)”이라는 말로 표현했는데, 이것을 보면 “차처막류정”이라는 말이 귀신을 쫓는 주문처럼 쓰인 것입니다.
37. 호국대룡(護國大龍)
(황룡사지 출토 기와)
신라 문무왕 때에 임금이 죽으면서 유언을 남기기를 죽어서는 호국대룡, 즉 나라를 지키는 커다란 용이 되겠다고 합니다. 문무왕 김법민은 이미 평생 전쟁을 하며 삼국통일을 완수 했으니, 이제는 바다 건너에서 오는 적만 막으면 되기 때문에 죽어서는 용이 되어 바다를 건너 오는 적을 막겠다는 뜻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승려, 지의법사는 불교의 환생설을 설명하면서, "용이 되는 것도 축생이 되는 것이니 업보가 좋지 않은 것 아닙니까?"라고 묻는데, 그러자 임금은 호쾌하게도 어차피 자신은 임금으로 살았고 삼국을 통일하기까지 했으니 "세상의 영화에는 이제 더 이상 관심이 없어진 지 오래다. 축생이 되어도 내 뜻에 합당하다"고 대답합니다.
그래서 그 후 신라 사람들은 임금이 동해에서 호국대룡이 되었다고 믿었습니다. 그렇다면, 호국대룡은 나라를 지키는 신이고, 나아가 전쟁의 신입니다. 조금 더 나아가서 상상해 보자면 한반도 지역의 통일을 상징하는 신으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38. 일월지정(日月之精)
(집안 오회분 4호묘 고구려 벽화 중 해의 신과 달의 신)
일월지정은 일지정(日之精), 즉 해의 정기와 월지정(月之精), 즉 달의 정기를 함께 말하는 것입니다. 이 일지정이나 월지정은 어떤 사람이나 물건에 내려와 서려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나 물건은 해와 달의 빛을 제대로 내뿜게 하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 반대로 일지정이나 월지정이 서려 있는 사람이나 물건은 해와 달의 빛을 조정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고 상상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서기 157년 무렵에, 바닷가에서 살던 연오랑이라는 사람이 해초를 따고 있었는데, 바다에서 바위가 나타나 연오랑을 태우더니 저절로 움직여 왜국으로 갔는데, 그러자 왜국에서는 연오랑을 신성하게 여겨서 왕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얼마 후, 연오랑의 부인이었던 세오녀는 남편을 찾다가 남편의 신발이 바닷가 바위 위에 있는 것을 보고 그 바위 위에 올라 갔더니, 역시 바위가 움직여 왜국으로 데려가서 왕비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신라에는 해와 달이 빛을 잃었다고 하는데, 일관(日官) 즉 천문을 살피고 점을 치는 관리에게 물어 봤더니, 원래 일월지정이 우리나라에 내려 와 있었는데 지금 일본으로 가서 이렇게 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신라 임금이 왜국에 사신을 보내서 두 사람을 찾았더니, 직접 돌아갈 수는 없고 세오녀가 짠 고운 비단이 있으니 이것을 가지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면 될 거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 비단을 두고 제사를 지냈더니, 해와 달이 빛을 다시 되찾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신라 조정에서는 이후 이 비단을 왕비가 준 물건을 넣어 둔 창고라는 뜻인 “귀비고(貴妃庫)”라는 창고에 보관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보면, 일지정, 월지정이 서린 사람은 바다를 떠돌아 다니는 바위를 타고 다니게 되고, 또한 일지정이 서린 사람은 해초를 좋아하고, 월지정이 서린 사람은 옷감을 잘 짠다, 일지정이 서린 사람과 월지정이 서린 사람은 서로 부부가 된다, 일지정이 서린 사람이나 월지정이 서린 사람이 만든 물건에도 정기가 서려 있다는 식으로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일지정, 월지정이 서린 물건을 보관해 놓은 보물 창고가 있어서 그 이름이 귀비고라는 것도 재밌습니다. 해와 달의 정기가 서린 옷감, 옷이 있다면, 그런 옷감을 두르거나, 옷을 입게 된 사람의 이야기를 상상해 볼 수 있을 법도 합니다.
조금 다른 기록으로 “삼국사기”의 “잡지” 부분에는 신라에서 “일월제”라고 해서 해와 달에 대해 제사를 지내는 것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고, 중국 기록인 “수서”등의 내용 중에도 신라 사람들이 새해 첫날 마다 조정에서 연회를 베풀어 벼슬아치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또 일신, 즉 해의 신과 월신, 즉 달의 신에게 제사를 지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명확하지는 않지만, 신라에서 해와 달에 대한 숭배가 있었다는 것은 사실로 보입니다. 새해 첫날에 조정에서 지내는 제사라면 꽤 중요한 신으로 다루어진 셈일 텐데, 그런 신의 정기를 상징하는 사람이나 물건이 신라 어디인가에 있다는 식의 발상이 있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특히, 해와 달이라는 매우 중요한 하늘에 있는 것이, 그냥 평범해 보이는 어느 어부, 그냥 바닷가에 사는 어느 보통 베짜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는 내용은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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