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월의 강좌 (2)/한국고대신화 찾아가기

한국고대신회를 찾아서(2) / 헌정지 10월호 게재

채현병 2018. 10. 5. 10:06

한국고대신화를 찾아서(2)

대한민국 국회 월간지 / 헌정지 10월호 게재



                              한국 고대신화를 찾아서 (2)
                                                                                                                                     蔡賢秉


   우리의 창세신화(創世神話)


 신화란 사람들이 경외감 속에 소중히 간직하고 가꾸어 온 신성한 이야기이다. 신화는 일상적인 경험으로 측정할 수 없는 자연현상과 사회현상의 기원과 질서에 관한 신과 인간의 이야기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신화는 과학의 시초이고 종교와 철학의 본체이며, 역사 이전의 역사’라고 언급한 비얼레인(J.F.Bierlain)의 견해가 상당한 지지를 받는다. 


 우리의 신화를 분류하면 창세신화, 생명신화, 홍수신화, 운명신화, 삶과 죽음의 신화, 영웅의 신화, 사랑의 신화, 부모와 자식의 신화, 건국신화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창세신화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최초로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서술하는 이야기이다. 다행히 우리나라의 창세신화의 화소들이 의외로 많이 남아 전해 내려오고 있다. 지난 호에 소개했던 ‘천지왕 본풀이’를 비롯하여 창세가, 시루말, 당금아기가 있으며, 그 이외에 일식과 월식 이야기, 북두칠성 이야기, 선문대 할망 이야기, 백두산과 압록강 두만강이 만들어진 이야기 등이 있는데, 이번 호에서는 함흥지방의 「창세가」를 찾아가고자 한다.


  창세가 / 함흥지방의 무가(巫歌)


 미륵이 세상을 만들다

 처음에 이 세상이 생겨날 적에는 하늘과 땅이 붙어 있었는데, 미륵이 태어나 하늘을 위로 떠밀어 올려 솥뚜껑처럼 도드라지게 하고, 땅의 네 귀에 구리기둥을 세워 하늘을 받치니 비로소 하늘과 땅이 분리되었다. 그러자 하늘에 해와 달이 두 개씩 나타났는데, 그 때문에 낮에는 너무 뜨겁고 밤에는 너무 추워서 이 땅에는 아무도 살 수 없었다. 이에 미륵은 달 하나를 떼어서 북두칠성과 남두칠성을 만들고, 해 하나를 떼어서 임금과 대신을 담당하는 큰 별과 백성을 담당하는 작은 별들을 만들었다.


 물과 불의 근본을 알다

 하지만 미륵은 입을 옷감이 없어 벌거벗고 지낼 수밖에 없었으므로 이 산 저 산 벋어가는 칡을 파내어, 벗겨내고 삼아내고 이어내어, 하늘 아래로 베틀을 놓고 구름 속에 잉앗대를 건 다음, 들고짱짱 놓고짱짱 짜내어서 칡 장삼을 간신히 마련했다. 미륵이 겨우 옷을 만들어 입고 한숨 돌리고 나니 배가 고파왔다. 그러나 물과 불이 없어 날것을 그대로 먹어야 할 처지였다.
 그리하여 미륵은 물과 불의 근본을 알아야겠다고 생각한 끝에 풀메뚜기를 잡아다가 형틀위에 올려놓고 무릎뼈를 세 차례 치면서 물었다.
 “여봐라, 풀메뚜기야! 물의 근본, 불의 근본을 아느냐?”
 풀메뚜기가 찌르르 찌르르 울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밤이면 이슬만 받아먹고, 낮이면 햇발만 받아먹고 사는 짐승이 어찌    그 근본을 알겠습니까? 나보다 먼저 태어난 풀개구리를 불러다가 물어   보십시오” 
 그리하여 미륵은 풀개구리를 잡아다가 형틀위에 매어놓고 무릎뼈를 세 차례 치면서 물었다.
 “여봐라 풀개구리야. 너는 물과 불의 근본을 아느냐?”
 그러자 풀개구리도 풀메뚜기와 같은 말을 했습니다.
 “밤이면 이슬 받아먹고 낮이면 햇발 받아먹고 사는 짐승이 어찌 그 근   본을 알 수 있겠습니까? 저보다 먼저 태어난 새앙쥐를 잡아다가 물어보   심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새앙쥐를 붙잡아 와 형틀에 묶어놓고 무릎뼈를 세 차례 치면서 물어 보았다.
 “물의 근본, 불의 근본을 아느냐?”
 그러자 새앙쥐가 새까만 눈을 깜빡거리며 되물었다.
 “예. 미륵님, 제가 그 근본을 알고 있습니다. 만약에 그것을 기르쳐 드   리면, 그 대신에 저에게 무슨 공을 내려 주시겠습니까?”
  이에 미륵은 속으로 ‘요놈 참 맹랑하네. 내가 하늘을 들어 올려 땅을 만들어 제 놈을 살게 해 주었거늘, 은혜도 모르고 감히 대가를 요구하다니...... 하지만 그럴 만도 하겠지. 세상에서 자기만 아는 비밀을 맨입으로 가르쳐 줄 수야 없겠지.’라고 생각했다.
 “좋다. 그것을 가르쳐 주면, 너에게 천하의 뒤주를 차지하게 하리라”
 미륵으로부터 약속을 받아낸 새앙쥐는 물과 불의 근원을 말했다.
 “금정산에 들어가서 한 손에 차돌 들고, 또 한 손에 시우쇠 들고 툭툭   치니 불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소하산에 들어가면 물이 솔솔 흘러나   오는 샘물이 있답니다. 이것이 물과 불의 근본이랍니다.”
 새앙쥐는 이렇게 아뢴 후, 그 사이 궁금하게 여기던 것을 물었다.
 “제가 물과 불의 근본을 가르쳐 드렸으니, 대신에 미륵님께선 인간의    근본에 대해 알려 주십시오.”


 이 세상에 인간이 태어나다

 미륵은 웃으며 인간을 처음 만든 이야기를 해 주었다.
 “옛날 옛시절에 미륵님이, 한 쪽 손에 은쟁반 들고 한 쪽 손에 금쟁반   들고 하늘에 축사하니, 하늘에서 벌레가 떨어져 금쟁반에도 다섯이오,   은쟁반에도 다섯이라, 그 벌레를 지극정성으로 길렀더니 금벌레는 사    내 아이 되고 은벌레는 계집아이 되었지. 그래서 그들이 자라난 후에    부부의 인연을 맺어 주었지. 그 덕에 세상에 사람이 생겨나게 되었단    다.”
 이 때 세상에 처음으로 태어난 사람들은 착하기 그지없었고, 미륵님의 세월에는 모두들 부지런하며 사이좋게 잘 살았다. 미륵님이 다스릴 때는 사람들이 입고 마시고 먹는데 부족한 것이 없이 모든 남녀가 서로 화합하여 가정을 이루어 잘 살았다. 그래서 미륵은 하나도 힘들이지 않고도 이 세상을 잘 다스릴 수 있었다.


 미륵이 창조한 세상을 석가가 가로채다

 그러자 미륵이 다스리는 세상을 보고 있던 석가는 미륵세상이 탐이 났다. 그래서 석가는 미륵을 찾아가 이 세상을 자신이 다스려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이에 미륵이 ‘아직은 내 세월이라 네 세월은 못된다.’라 했으나, 석가가 ‘미륵 세월은 다 갔다. 이제는 내 세월을 만들겠다’라고 하며 내기를 하여 이긴 자가 이 세상을 다스리자고  했다. 미륵은 그 도전을 받아주기로 하고 석가와 인세(人世)차지 내기를 벌였다.
 그런데 내기를 하는 족족 미륵이 이기자, 석가는 마지막으로 잠을 자면서 무릎에 꽃을 피우는 내기를 하자고 제안하고, 미륵이 잠든 틈에 미륵이 피운 꽃을 가져다가 자기 무릎에 꽂았다. 이러자 미륵은 석가의 성화에 못 이겨 이 세상을 내주기로 하고, 주문을 외우며 저 세상으로 떠나갔다.
 “축축하고 더러운 석가야, 내 무릎에 자란 꽃을 네 무릎에 꽂았으니,    꽃 피어도 열흘 못 가고 꽃 심어도 십년 못 간다.”            
 “음흉하고 비겁한 석가야. 네 세상이 되면 집집마다 솟대 서고, 가문마   다 기생 나고, 과부 나고, 무당 나고, 역적 나고, 백정 나고, 네 세월이   될라치면 삼천 중에 일천 거사가 반역을 하리라. 그런즉 세월이 말세가   된다.”
 그리하여 그 뒤 이 세상은 온갖 범죄가 들끓고, 좋지 못한 일들이 끊임없이 벌어지게 되었다.


 우리의 「창세가」는 세상 만물 가운데 옷의 유래와 물과 불의 근본을 말하고 있다. 하늘과 땅을 열고 난 후, 이 산 저 산 뻗어가는 칡뿌리를 캐어, 하늘에 베틀을 걸어 옷감을 짜냈다니 흥미로운 상상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후, 미륵은 물과 불의 근본을 알아내고자 풀메뚜기, 풀개구리, 새앙쥐를 차례로 잡아 형틀에 올려놓고 다그치는 과정은 상상만으로도 웃음이 절로 나는 해학의 극치이다. 그 가운데 새앙쥐가 물과 불의 근본을 알고 있었다는 것은 빨빨거리며 다니는 쥐의 생태로 보아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대목이다. 또한 새앙쥐가 쌀뒤주를 차지한 것이 창세신에게 허락받은 권리라고 하는 장면에서는 자잘한 일상사를 광대무변한 우주섭리로 승화시키는 것으로, 우리 선조들의 사유세계의 범주를 짐작케 하는 데 모자람이 없다. 


 인간이 이 세상에 처음으로 태어나는 과정은 또 어떤가? 하늘에서 벌레가 내려와 인간이 되었다는 내용은 그 설정이 아주 독특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얼핏 보면 그 서술이 아주 간단한 것 같지만, 이 속에는 진화론적 사유가 깃들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벌레’라는 말은 인간의 원초적 생명체를 일컫는 말일 터, 먼지같이 아주 작은 정자가 난자와 결합하여 인간이 되는 과정을 설명한 것이 아닐까? 이는 특별히 선택된 인간의 존재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처음에 한 쌍이 아닌 다섯 쌍의 남녀가 생겨났다는 설정도 특이하다. 이는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의 다양성에 대한 신화적 설명으로 이해가 된다. 하늘과 땅의 다양한 정기를 담아내기 위해서도 최소한 다섯 쌍의 인원이 필요했던 것이다. 


 「창세가」의 마지막 장에서 미륵이 창조한 세상을 석가가 속임수로 가로채가는 과정은 심히 충격적이다. 「창세가」가 함경남도 함흥지방에서 몇 천 년 이상 대대로 구전되어 내려온 ‘무가’라는 입장에서 보면, 이 신화에 등장하는 미륵과 석가는 불교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경외적인 존재일 것이다. 오랜 세월동안 「창세가」가 무가로 구전되어 내려오는 과정에서 그 주인공의 이름을 ‘불교에서 빌려 온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다. 


 함흥지방의 「창세가」는 제주지방의 「천지왕 본풀이」 및 경기도 중부지방의 「시루말」과 동해안 지방의 「당금아기」와 함께 우리나라의 창세신화로서 매우 중요한 자리에 있으며, 우리 고유의 얼이 담겨져 있는 문화유산으로서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관련 그림]

                                         (이 세상에 인간이 태어난 이야기)
                                         (미륵의 세상을 가로챈 석가)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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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오, 「우리 신 이야기」,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편, 현암사, 2008
  ∙김화경, 「한국의 신화 / 세계의 신화」, 새문사, 2015
  ∙김정배 외 46인. 「한국의 자연과 인간」, 우리교육, 1997
  ∙정 욱 (역), 「삼국유사」, 진한M&B, 2007
  ∙북애자 저, 민영순 (역), 「규원사화」, 2008



▪채현병(蔡賢秉)
  - 시조시인, 서예가,
  - (사)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