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대신화를 찾아서 (3)
蔡 賢 秉
한국고대신화는 누천년동안 한민족의 기쁨과 슬픔과 웃음과 눈물이 마디마디 배어있는 대서사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모르는 사이에 잊혀진 존재로 잠들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마음의 소리로 그들을 부를 때에 홀연히 깨어나 달려올 준비가 되어 있었는가 보다. 우리의 의식 속에서 점점 잊혀져가던 우리의 고대신화는 요즘 들어 끈질긴 생명력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그 회귀의 대열에 「시루말」 신화도 앞장서 있다.
「시루말」 신화는 1930년대 경기도 수원군 성호면 오산리에서 남무(男巫) 이종만(李鍾萬)의 구연자료를 일본인 아카마쓰 지조와 아키바 다카시의 채록에 의하여 1937년『조선무속의 연구』상권에 수록하여 전해진 무가이다. 경기도 화성지방의 큰굿은 열두거리로 진행되는데, 「시루말」 신화는 부정거리 다음의 두 번째 거리에서 구연된 무가이다. 구연자 이종만은 경기 지역의 세습무로서 대동굿 등 마을 공동으로 행하는 정기적 무속 의례를 주관하였고, 여러 가지 민속 예능에도 능했던 인물이다. 「시루말」이란 시루에 떡을 쪄서 시루 째로 술과 함께 신에게 바치는 제의무가(祭儀巫歌)로 ‘시루성신풀이’라고도 한다.
시루말 / 경기도 화성지방의 무가(巫歌)
[전문]
앗가 몬져 놀아나신 님신은
시골은 부졍가망, 서울운 영졍가망
영부졍 상가망 질거이 놀아나고
금이 좃처 오시는 님신은 시루셩신이 오실적에
동두칠셩, 남두칠셩, 서두칠셩, 북두칠셩
태일셩(太一星), 태백셩(太白星), 견우 직녀셩
당칠셩 업위왕님 오실 적에
이 ᄯᅢ는 어는 ᄯᅢ인고?
ᄯᅥᆨ갈남게 ᄯᅥᆨ이 열고, 쌀이남게 쌀이 열고
말머리에 ᄲᅮᆯ이 나고, 쇠머리에 갈기 나고
비금주수(飛禽走獸) 말을 하고
인간은 말 못하든 시졀이라,
텬하궁 당칠셩이 디하궁당 날여 와서
가구젹간(家口籍間) 인물추심(人物推尋) 단이실제
동영(東嶺)에 소슨 달이 서역강에 일몰하고
길즘ᄉᆡᆼ 날버러지는 졔집차저 들어가고
갈곳이 젼혀업서
한곳을 바라보니, 난데업는 불빗이 보이거늘
들으랑이 들어보고, 살피랑이 살펴보와라.
불이 어인 불이냐?
ᄆᆡ화ᄯᅳᆯ ᄆᆡ화부인(梅花婦人)의 집이로소이다.
당칠셩 일은 말삼, 말머리를 돌니여라.
ᄆᆡ화ᄯᅳᆯ 당도하니, ᄆᆡ화부인 거동보소.
쇠직이 쇠열어라, 문직이 문열어라.
동성방 서리 차고, 남성방 하긔 하고
자리업시 한자리, 벼ᄀᆡ업시 한벼ᄀᆡ
그날밤을 유식(留息)할 ᄯᅢ, 자리동품 하실 적에
초경(初更)녁에 ᄭᅮᆷ을 ᄭᅮ니, 오른억ᄀᆡ ᄒᆡ가 돗고
이경(二更)녁에 ᄭᅮᆷ을 ᄭᅮ니, 왼억ᄀᆡ에 달이 돗고
삼경(三更)녁에 ᄭᅮᆷ을 ᄭᅮ니, 쳥룡황룡 얼클어저
텬하궁에 올나가 보이거늘,
하롯밤을 지ᄂᆡᆫ 후에, 동영이 발가오니
당칠셩 갈야하니, ᄆᆡ화부인 하는 말이,
ᄭᅮᆷ ᄒᆡ몽(解夢)을 하야주고 가소사.
당칠셩이 하는 말삼,
ᄒᆡ가 도다 뵈는 것은 나의 직셩이요.
달도다 뵈는 것은 부인의 직셩이요.
쳥룡황룡 뵈난 것은 귀쟈형뎨(貴子兄弟) 날것이요.
당칠셩 간연후에, 그달붓터 태긔(胎氣)잇서
석부졍(席不正) 부좌(不坐)하고, 이불쳥(耳不聽) 음셩(淫聲)하고,
목불시(目不視) 이ᄉᆡᆨ(惡色)하고, 활부졍(割不正) 불식(不食)하고,
침불침(立不蹕) 좌불변(臥不側)하고, 십삭(十朔)만에 나아노니
먼저 난이 선문이요, 뒤에 난이 후문이요.
셩은 셩신(星辰)이라.
한두살에 거름ᄇᆡ고, 사오셰에 말을ᄇᆡ워,
십여셰 당도하야, 글방에 느엇드니
글 동접(同接) 아ᄒᆡ들이 아비 업는 자식이라 하기로
그 말이 듯기 실혀
어머님, 날비러지 길즘ᄉᆡᆼ도 아비셩본(姓本) 잇다는데
날갓흔 자식은 아비셩본 업ᄉᆞ오니가?
ᄆᆡ화부인 하는 말이,
너의 형뎨(兄弟) 낫튼 ᄒᆡ에
텬하궁 당칠셩이 디하궁에 날여와서
가구젹간(家口籍間) 인물추심(人物推尋) 단이다가
서산에 일모허니, 우리집 와서 수인 후로
너의 형뎨 난 것이다.
저 ᄋᆡ기 그말 듯고, 못할 저조(才操) 젼혀 업시
텬하궁에 올나갈졔, 검은구름 노를 저어
무지ᄀᆡ로 다리놋코, ᄉᆡᆽ별로 원앙달아
흰구름 잡어타고, 텬하궁 올나가서
아비본 차질 젹에, 당칠셩 하는 말ᄉᆞᆷ이,
너의 모친이 너의 형뎨 낫슬졔
셩은 무엇이라 하며, 일홈은 무엇이라 하시든야?
먼저 난이 선문이요, 뒤에 난이 후문이라 하옵듸다.
셩은 셩신이라 하는이다.
먼저 난이 선문이는 대한국을 진여 먹고
뒤에 난이 후문이는 소한국을 진이실졔
옛날 시졀에는 달도 두 분이 도드시고
ᄒᆡ도 두분이 도드실졔
쳘궁(鐵弓)에 시윗살 멕여들고
ᄒᆡ 하나 쏘와 뎨셕궁(帝釋宮)에 걸어두고
달 하나 쏘와내어 명모궁(明圖宮)에 걸어두고
가즁불젼에 들어갈졔
남북ᄒᆡ동 조선국, 아모면 아모동리
아모셩씨 한가즁, 수명장수 하옵기를
친밀축수(親密祝壽) 졍성이로소이다.
* 출전 : 심치열 • 박정혜 편. 『신화의 세계』. 성신여자대학교 출판부. 2000
[해설]
「시루말」 신화는 우리나라 중부지방에 전해 내려오는 창세신화로써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비교적 짧은 서사무가라 하지만 태초의 혼돈과 천지개벽(天地開闢), 천부지모(天父地母)의 결연, 인세시조(人世始祖)의 출현, 일월(日月)의 조정 등 창세신화로써의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천하궁 당칠성님, 이 땅에 내려오다
「시루말」의 주인공인 천하궁 당칠성이 이 땅에 오실 때는 ‘떡갈나무에 떡이 열리고 싸리나무에 쌀이 열리고, 말머리에 뿔이 나고 쇠머리에 갈기 나고, 날짐승과 네발달린 짐승들이 말을 하고 인간들이 말 못하는 시절’이라 했다.
이는 혼돈의 시대에서 천지개벽하여 이 세상이 만들어진 후, 온갖 초목(草木)이 생겨나고 날짐승, 들짐승들이 살기 시작했으나 아직 질서가 잡히지 않아 떡갈나무에는 떡이 열리고 싸리나무에는 쌀이 열리고, 말머리에 뿔이 나고 쇠머리에 갈기가 나며, 인간들은 아직 말을 못하고 짐승들만이 말을 하던 시절에 하늘의 당칠성님과 지상의 매화부인이 천부지모(天父地母)의 결연을 맺을 때의 시대적 배경을 서술하고 있다.
이 땅에는 매화부인이 살다
천부(天父) 당칠성의 배필로 지모(地母) 매화부인을 택하는 과정은 설화적 요소가 짙게 깔려 있지만, 매화(梅花)가 정절과 순결의 상징인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최상의 선택일 것이다. 이 땅에 사는 매화는 추운 겨울을 이겨내며 오직 봄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꽃이다. 겨우내 찬바람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을 단단하게 닫아걸고 있다가 봄기운이 일기 시작하면 그 어느 꽃보다도 먼저 마음의 문을 열고 그윽한 향기를 내뿜는다. 더군다나 이른 봄 달빛을 머금은 매화의 모습을 보면 밝기로는 눈부신 백자요, 정한하기로는 새하얀 모시옷이요, 서기(瑞氣)로는 새벽빛 깃든 한지 바른 창문 같은 존재가 아닌가?
당칠성과 매화부인, 천부지모(天父地母)의 인연을 맺다
당칠성과 매화부인이 인연을 맺는 모습은 가히 환상적이다. 당칠성이 매화뜰 매화부인 댁에 당도하니 매화부인이 기다린 듯 반겨 맞이하였으나 유식(留息)할 방이 하나밖에 없었다. 방안에 들어가 보니 잠자리(寢牀)도 하나요, 베개도 하나뿐인지라 자연스럽게 매화부인과 동침을 하게 되었다.
당칠성이 매화부인과 초경(初更;7~9시)녁에 잠자리에 들으니 자연히 매화부인의 오른쪽 어깨 위에 밝은 해가 돋는 듯 하였고, 이경(二更;9~11시)녁이 되니 당칠성의 왼쪽 어깨 위에 수줍은 달이 둥실 떠 있는 듯 하였다. 이윽고 삼경(三更;11~01시)이 되니 청룡 황룡이 한데 어우러져 한몸이 되어 천하궁에 오른 듯 황홀하기 그지없었다. 이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꿈길을 헤매다보니 어느새 동령(東嶺)이 밝아왔다.
당칠성은 매화부인에게 ‘앞으로 귀자형제(貴子兄弟)를 낳을 것이니 이름을 선문이와 후문이로 짓고, 성(姓)은 성신(星辰)이라 하시오’라고 당부하고 하늘로 올라갔다. 이리하여 당칠성과 매화부인은 천부지모(天父地母)의 인연이 이어가게 되었다.
매화부인, 태교를 하다
당칠성이 떠난 후, 얼마 안 있어 태기(胎氣)를 느낀 매화부인은 태교(胎敎)에 들어갔다. 자리가 바르지 않으면 앉지를 않았고(席不正不坐), 귀로는 음란한 소리를 듣지 않았고(耳不聽淫聲), 눈으로는 나쁜 색깔의 형상을 보지 않았고(目不視惡色), 자른 것이 반듯하지 않은 음식은 먹지 않았으며(割不正不食), 외발로는 서지 않고(立不蹕), 누울 자리를 살펴 모로 눕지 않았다(臥不側).
인세(人世)의 시작을 알리는 매화부인의 태교의 모습을 보면 그렇게 슬기롭고, 그렇게 헌신적일 수가 없다. 그 모습은 성스럽기까지 하다. 그래서 우리 한민족(韓民族)이 세계에서도 우수한 민족이 되었나 보다.
매화부인, 귀자형제(貴子兄弟)를 낳아 기르다
열 달 만에 이 세상에 나온 쌍둥이 형제는 한두 살에 걸음마를 배우고, 사 오세에 말을 배우며 무럭무럭 자라나 글방에 들어갔다. 여기에서 학문을 닦던 중에 학동들에게 ‘아비없는 자식’이라 놀림을 받고나서 어머니(매화부인)로부터 출생의 비밀을 안 쌍둥이 형제는 아버지 당칠성을 만나기 위해 하늘나라로 올라갔다.
귀자형제 / 아버지로부터 권한을 부여받아 이 땅을 다스리다
하늘에 오른 쌍둥이 형제는 아버지인 천하궁 당칠성님을 만나서 형 선문이는 대한국을 다스릴 권한을, 아우 후문이는 소한국을 다스릴 권한을 부여받고 지상으로 내려왔다.
귀자형제(貴子兄弟)가 지상에 내려와 보니 해도 둘이요, 달도 둘이었다. 이에 귀자형제는 철궁(鐵弓)에 화살을 메겨 쏘아내어 해 하나를 제석궁(帝釋宮)에 걸어두고, 달 하나를 명도궁(明圖宮)에 걸어두었다. 이는 바로 인세시조(人世始祖)의 시작이었다.
이후 선문이, 후문이 귀자형제는 이 땅에 삶과 죽음, 여름과 겨울, 낮과 밤,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루는 나라, 진정한 인간들이 모여 사는 나라 해동성국(海東盛國)을 건설하였다.
*사진설명
- 사진1) <당칠성님이 이 땅에 처음 내려 올 때의 세상>
- 사진2) <매화부인, 당칠성님과 천부지모(天父地母)의 인연을 맺다>
- 사진3) <떡시루>
'해월의 강좌 (2) > 한국고대신화 찾아가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고대신화를 찾아서(6) / 국회 헌정지 2019년 3월호 게재 (0) | 2019.03.08 |
---|---|
한국고대신화를 찾아서 (5) / 국회 헌정지 2019년 2월호 게재 (0) | 2019.02.08 |
한국고대신화를 찾아서(4) / 국회월간 헌정지 2019년 1월호 게재 (0) | 2019.01.04 |
한국고대신회를 찾아서(2) / 헌정지 10월호 게재 (0) | 2018.10.05 |
한국고대신화를 찾아서 / 대한민국 국회 월간지 <헌정 지 9월호>부터 연재 (0) | 2018.09.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