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월의 강좌 (2)/한국고대신화 찾아가기

한국고대신화를 찾아서(4) / 국회월간 헌정지 2019년 1월호 게재

채현병 2019. 1. 4. 09:45

<헌정지 ‘19년 1월호 원고>

                                  한국 고대신화를 찾아서 (4)
                                                                                                                                    蔡 賢 秉
                                                                                                           시조시인, 서예가
                                                                                                           (사)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제석본풀이 / 당금애기 신화


 ‘제석본풀이’라 불리는 ‘당금애기’신화는 천신(天神) 시준(世尊)님과 해동국(海東國) 당금애기의 만남과 결합을 통하여 세 아들을 얻음으로써, 당금애기는 아이를 점지해 주고 순산하게 하며 병 없이 키워내는 신력(神力)을 지닌 여신(女神) ‘삼신할머니’가 되고, 당금애기의 세쌍둥이 아들은 인간의 수명 • 자손 • 운명 • 농업을 관장하는 제석신(帝釋神)이 되는 천부지모형(天父地母型) 신화이다.
 이 신화는 전국적 전승유형의 서사무가(敍事巫歌)로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온 자료만 해도 60종이 넘는다. 제석본풀이는 여러 편의 전승 자료이다 보니 그 내용이나 구성 면에서 서로 많은 차이가 있다. 주인공의 이름만 하더라도 ‘당금애기’외에 제석님 딸애기, 서장애기, 상남아기, 시준애기, 자지명애기 등 가지각색이다. 하지만 이름과 상관없이 ‘순결한 모성’의 표상으로서 기본성격은 같다고 볼 수 있다.
 본 호에서는 당금애기 전승자료 60여 편 중에서 가장 원형에 가깝다고 생각되는 동해안 지역 자료를 소개한다.

 
       제석본풀이 내용 / 동해안 지방의 무가(巫歌)  

  

 시준(世尊)님의 근본


 시준님 근본이 어디인가 하면 하늘나라다. 시준님은 하늘나라에 살다가 인간세상 서쪽 나라 개비랑국 태자의 몸으로 환생하여 태어났다. 부모가 늦은 나이에 그를 얻어 보배같이 아꼈으나 세월이 무상한지라 시준님이 십여 세 때에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니 외톨이 고아가 되고 말았다. 그래도 나라 백성들은 그를 왕으로 모시려 하였으나, 그는 이미 속세에 뜻을 잃은 뒤라 부친 옥새를 깊숙이 감춰두고 황금산 깊은 산중에 꼭꼭 파묻혀 세월을 보내면서 도를 닦으니 6년 만에 깨달음을 얻었다. 이리하여 시준님은 장삼을 걸쳐 입고 바랑을 걸머진 채 사람 사는 마을로 나오는데, 검고 얽고 찡긴 얼굴에 귀밑으로 때가 얼기설기 흘렀다. 그러나 등 뒤에 보일 듯 말 듯 북두칠성이 웅하고 두 어깨에 해와 달이 응하였다.


 시준님, 당금애기를 만나다


 시준님이 넓은 세상을 두루 찾아다니던 중, 발걸음이 머나먼 동쪽 나라 해동조선에 다다랐다. 산천의 수려함으로 성인이 여럿 태어날 땅이었다. 그 땅에 누가 있었던가. 이름도 아름다운 당금애기가 있었다. 해동(海東)의 제일 부자 만년 장재비가 아들을 아홉 낳은 다음, 명산대천에 정성껏 빌어서 얻은 귀한 딸이었다. 금이야 옥이야 사랑하며 딸을 기르니, 천상 선녀의 화신인 듯 맑은 자태와 고운 마음씨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시준님이 열두 대문 겹겹이 두른 당금애기 집을 찾아갔다. 집 앞에 다다르니 세 길 담장이 사방을 둘러싸고 우뚝 솟은  솟을대문이 꽁꽁 닫혀 있다. 하늘을 나는 새와 땅을 기는 쥐도 감히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였다.

 마침 당금애기 아버지 어머니는 산천유람을 떠나고 아홉 오라비는 나랏일을 돌보러 떠나 집에 있는 이는 당금애기와 몸종 금단춘과 명산군 뿐이었다. 이 때에 난데없는 염불 소리가 들렸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명산군이 시주승의 기색을 엿보는데 염불을 외던 시준님이 열리지 않는 문을 향해 주문을 외기 시작하자 철통같은 대문이 와그랑 창창 소리를 내며 활짝 열렸다. 깜짝 놀란 명산군이 잽싸게 안으로 뛰어들며 이 문 저 문을 꼭꼭 잠가보았지만 시준님의 신통력을 당할 수 없었다. 열두 대문이 스르렁 툭탁 열리고 나니 당금애기 거처하는 별당 앞이다.
 
 “서천 서역 땅 금불암 화주승이 당금애기님께 시주를 청하나이다.”
 얼굴이 빨개진 당금애기가 가슴이 콩콩 뛰어 어쩔 줄 모르다가 고개를 살짝 숙이고 합장한 채 앵두처럼 붉은 입을 열어 하는 말이,
 “스님, 때를 잘못 맞추셨습니다. 부모님과 오라버니들이 잠시 집을 떠나 곳간이 꼭꼭 잠겼으니 시주 동냥을 드릴 수 없습니다.”
 “그 일일랑 걱정 마오.”
 시준님이 짚고 있던 쇠지팡이를 하늘로 치켜들고 왼발로 땅을 세 번 구르니 꼭꼭 닫혔던 곳간 문이 스르렁 덜컹 열렸다. 당금애기가 놀란 마음을 겨우 진정시키면서 말하였다.
 “스님, 어떤 쌀로 드릴까요? 아버지 드시던 쌀을 드릴까요?”
 “그 쌀은 누린내가 나서 받을 수 없습니다.”
 “어머니가 드시던 쌀은 비린내가 나서 못 받겠습니다.”
 “오라버니가 먹던 쌀은 땀내가 나서 받을 수 없습니다.”
 “당금애기님 드시던 쌀로 손수 서 말 서 되 서 홉을 퍼주오.”

 당금애기는 하는 수 없이 곳간으로 들어가 자기 쌀독에서 깨끗한 쌀 서 말 서 되 서 홉을 떠다가 동냥자루에 조심스럽게 담았다. 그런데 자루에 들어간 쌀이 땅바닥으로 주루룩 쏟아지고 말았다.
 “어찌 밑 빠진 자루를 가지고 동냥을 다닌단 말씀입니까?”
 당금애기는 얼른 동냥자루를 기운 후, 빗자루를 찾아들고 땅에 쏟아진 쌀을 쓸어 모으려 했다.
 “부처님께 올릴 쌀을 험하게 다루면 안 됩니다. 싸리나무 젓가락으로    하나하나 주워 담아야지요.”
 당금애기는 묘한 떨림을 가슴속에 간직한 채, 후원에 올라 싸리나무를 꺾어다가 젓가락을 만들어 땅에 떨어진 쌀을 주워 담기 시작했다. 발그레한 얼굴에 땀방울이 송송 맺히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주어 담다보니 어느새 해가 서산으로 기울어졌다.
 “스님, 다 됐습니다. 날이 저무니 어서 바삐 길을 나서세요.”
 “듣던 말과 다르군요. 이렇게 저문 날에 어디로 가란 말씀입니까? 유    수같이 흐르는 밤에 하룻밤만 묵어가게 해주오.”


 시준님과 당금애기, 결합하다


 당금애기가 하릴없이 방을 내주려는데 아버지 자던 방을 주자 하니 누린내가 나서 못 잔다 하고, 어머니 자던 방은 비린내가 나서 못 잔다하며, 오라비 자던 방은 땀내가 나서 못 잔다고 한다.

   여보 아가씨요 그 말씀을 마옵시고
   아가씨 자는 방에 이몰 병풍 거래 병풍 쌍쌍이 둘러 쳐놓고
   아가씨는 병풍 안에 잠을 자시고
   소승은 병풍 밖에 잠을 자겠습니다.

 눈이 동그래졌다가도 끝내 거절을 못 하고 자기 방 윗목을 내주는 당금애기, 시준님이 자리에 누워 춘포 장삼 벗어 덮고 잠을 청하다가 슬쩍 병풍 아래를 훔쳐보니 당금애기가 그린 듯 앉아서 수를 놓는데 밤을 꼬박 새울 양이다. 시준님이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슬쩍 주문을 외우니 당금애기는 강물처럼 졸음이 밀려와 깊은 잠에 빠져 들고 말았다.

   당금아가씨 원 같은 방 안에 누워 있는데
   얼굴은 돋아 오르는 반달이요
   어찌 곱게도 어여쁘게 맵짜게 잘도 생겼는지
   백옥 같은 젖통을 내놓고 누웠으니
   시준님이 난데없이 상사병이 일어난다.
   얼굴이 붉으락 희락 붉으락
   시준님 도술을 피우더니만
   난데없이 왕거미가 되어가지고
   병풍으로 굼실굼실 넘어간다.
   아가씨 머리맡에 쪼그리고 앉더니
   아가씨를 폭으로 내려다보고 있더니만
   아가씨 자는데 단침 이불 속으로 굼실굼실 기어들어가더니
   아가씨 가는 허리를 아드답싹 끌어안고
   죽을지 살지, 살지 죽을지
   바꿈 줄여 끌안고 입을 쪽쪽 맞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당금애기는 새벽 닭 울음소리에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 앉았다. 꿈이라기에는 너무 놀랍고 생생했다. 주위를 살펴본 당금애기는 다시 한 번 깜짝 놀랐다. 자기가 덮고 자던 비단이불은 간 곳이 없고 화주승이 입었던 춘포 장삼이 제 몸을 덮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에 당금애기는 어쩔 줄을 모르며 발만 동동 굴렀다.

 이윽고 날이 새자 자리를 떨치고 일어난 시준님은 눈빛으로 저를 잡는 당금애기를 외면한 채 떠나려 했다. 해몽이나 해달라고 붙잡는 당금애기의 청에 ‘귀한 아이를 낳을 꿈이니 아이들을 낳거든 부디 잘 키우라’는 한마디 말만 남기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길을 나서는 것이었다.


 잉태한 당금애기, 온갖 시련을 겪다


 어머니 아버지가 돌아오고 아홉 오라비들이 돌아왔다. 반가움보다 두려움이 앞을 가렸다. 몸에 이상한 변화가 생긴 터였다. 갑자기 밥에서 비린내가 나고 물에서 흙내가 나서 도무지 먹을 수가 없고 개살구나 능금같이 신 것만 자꾸 먹고 싶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슬금슬금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다. 당금애기가 애써 그 기색을 감추려 했지만, 한 울타리 안에 사는 가족을 끝까지 속일 수는 없었다. 해산날이 다가 오던 어느 날 당금애기는 오라비들한테 부른 배를 들키고 말았다. 오라비들은 노발대발하고 부모는 대경실색하였다.
 “우리가 너를 보배처럼 꽃처럼 사랑했는데 어찌 이렇게 우리를 배반     한단 말이냐?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도 이처럼 슬프지는 않으리     라. 너는 더 이상 내 딸이 아니다!”
 아버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홉 오라비가 달려들어 당금애기를 훌쩍 채가지고 뒷산으로 향했다. 그들이 제 동생을  뒷산 돌구멍 속에 매몰차게 밀어 넣으니 당금애기는 깜깜한 어둠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오라비들이 집으로 향해 돌아가는데 마른하늘에서 난데없는 천둥 번개가 치더니 사방이 어두워지면서 흙비와 돌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흙비 돌비가 몇 날 며칠을 한없이 쏟아지자 발을 동동 구르던 어머니는 비가 개자마자 뒷산으로 뛰어올라갔다. 돌구멍 앞에 다다라 안을 들여다보니 죽었는지 살았는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당금애기, 아들 세 쌍둥이를 낳아 기르다


 딸이 죽었구나 싶어 울음이 터져 나오는데 돌구멍 속에서 작은 소리가 들렸다. 귀를 기울여보니 아기 울음소리였다. 어머니는 칡넝쿨을 붙잡고 구멍 속으로 기어 내려가니, 당금애기 품안에는 아이가 하나, 둘, 셋이 안겨 어미 젖가슴을 헤치면서 칭얼대고 있었다.
 “이 여린 몸으로 어찌 혼자서 아이를 셋이나 낳았단 말이냐! 가자.      집으로 가자꾸나. 하늘이 너를 살렸는데 누가 너를 해칠까?”

 어머니를 따라 집으로 온 당금애기는 후원 별당에서 세 아이를 키우기 시작했다. 처녀 몸으로 세 아이를 키우자니 그 답답함이야 오죽할까. 두 아이에게 젖을 주면 한 아이가 울었다. 그보다 더 힘든 것은 주위의 손가락질이었다. 아이들은 쑥쑥 자라났지만, 그들을 맞이한 건 아비 모를 자식이라는 설운 이름이었다. 어느 날 참기 힘든 모욕을 당한 삼형제는 어머니 앞에 무너져 울음을 터뜨렸다.
 “어머니! 우리는 왜 아버지가 없습니까? 서러워 죽고 싶습니다.”
 “울지 말거라. 다 말해주마.”
 당금애기는 가슴속 깊이 묻어두었던 하룻날 하룻밤의 기막힌 일을 세 아들에게 풀어놓았다. 그리고 품안에 고이고이 간직했던 박 씨 세 알을 꺼냈다.
 “너희 아버지가 남기신 증표다.”
 박 씨를 받은 삼형제는 곧바로 뒤뜰에 심었다. 박 씨는 하룻밤 사이에 싹이 돋더니 덩굴이 자라나 담 너머로 출렁출렁 뻗어가기 시작했다.


 당금애기와 삼형제, 시준님을 찾아가다


 삼형제는 가마에 어머니를 태우고, 박 덩굴을 쫒아서 길을 나섰다. 셀 수 없이 물을 건너고 산을 넘어서 삼형제가 다다른 곳은 머나먼 서쪽 나라의 낯선 땅이었다. 박 덩굴은 황금빛으로 빛나는 산으로 접어들더니 골짜기 속으로 깊이깊이 스며갔다. 덩굴이 멈춘 곳은 조그만 암자 앞이었다. 안에서 불경을 외는 소리가 들리는데 당금애기가 가만히 들어보니 목소리가 낯설지 않다.
 “내가 왔습니다. 동쪽나라 당금애기가 아이들을 데리고 당신을 보러     왔습니다.”
 그러자 방문이 열리며 한 스님이 나오는데 그 모습이 낯설다. 검고 얽고 땟물이 흐르기는커녕 이목구비가 그린 것 같고 살결이 백옥 같아 티 한 점 없다. 놀란 당금애기가 눈을 감았다 떠서 다시 보니 얼굴은 다르되 눈빛은 그대로다.

 “아버지! 우리 아버지 맞지요?”
달려드는 삼형제에게 시준님은 얼굴빛을 엄하게 하면서 말했다.
 “너희들이 내 자식이라면 뒷동산에 올라가 죽은 지 삼년 된 소뼈를 살   려내어 거꾸로 타고 와라.”
 삼형제가 소뼈를 주워 모아 살려내고 거꾸로 타고 오니, 이번에는
 “짚으로 닭을 만들어 살아 움직이게 해라.”
 삼형제가 짚으로 닭을 만들어 숨을 불어넣어 살아 움직이게 하니,
 “아직 부족하다. 손가락의 피를 내어 이 그릇에 담아봐라.”
 삼형제가 피를 내어 그릇에 흘리니 시준님도 피를 내어 그릇에 흘렸다. 그러자 네 사람의 피가 구름처럼 몽실몽실 싸여져 똘똘 뭉쳐졌다.
 “그래, 너희들은 내 자식이 분명하다.”


 삼형제, 이름을 짓다


 삼형제는 세상에 난 뒤 처음으로 아버지 품에 안겨서 말했다.
 “우리는 그동안 이름도 없이 살아왔습니다. 이름을 지어주세요.”
 “그래. 큰아이 이름부터 지어보자. 푸른 띠 하였으니 청산이라 하자.”   그러자 당금애기가 나서서 말했다.
 “청산은 삼사월이나 청산이지 구시월에도 청산이리까. 몹쓸 이름입니    다. 맏이로 태어났으니 맏형 자에 부처 불 형불(兄佛)이라 합시다.”
 “그렇게 하지요. 둘째 아이는 누른 띠 하였으니 황산이 어떠리까?”
 “황산은 구시월에나 황산이지 동지섣달에도 황산이리까. 그 이름도 못   쓰겠습니다. 둘째 아이니 두재 자 써서 재불(再佛)이라 합시다.”
 “막내의 이름이 백산(白山)은 어떠합니까?”
 “동지섣달이나 백산이지 오뉴월에도 백산이 있으리까. 그 아이는 셋째   아이니 삼불(三佛)이라 지읍시다.”
 “그 이름 좋습니다. 형불, 재불, 삼불. 세 부처가 꼭 되겠습니다.”


 당금애기, 삼신할머니가 되고,
 삼형제, 제석신이 되어 인세(人世)를 관장하다

그렇게 해서 쌍둥이 삼형제는 삼불제석, ‘제석신’이 되었다.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고 복을 나누어주는 것이 제석신의 일이다. 그리고 그 어머니 당금애기는 어떤 신이 되었는가? ‘삼신’이 되었다. 집집마다 아이를 점지하여 순산하도록 도와주고 병 없이 잘 자라게 돌보아주는 생명신(生命神), 삼신할머니 말이다. 이로써 시준님은 어질고 착하며 어여쁜 당금애기를 만나 이 세상에 대한 귀하디 귀한 소명을 무사히 마쳤다. 
                                                                                [출전] 신동흔. 살아 있는 우리 신화. 한겨레출판(주). 2006


 천상의 사랑이던, 지상의 사랑이던, 사랑은 아름답고 위대한가 보다. 어찌 보면 사랑은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순결과 동정의 표상인 당금애기가 세속과 절연된 열두 대문 안 ‘죄업의 무풍지대’에서 성장하여, 어느 날 갑자기 거짓말처럼 신성(神聖)이 다가옴을 감지하고, 그것이 검고 얽고 땟국물이 잘잘 흐르는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두려운 가운데 가슴 졸이며 ‘신성한 결연‘을 받아드렸으니 이로부터 우리들의 재복과 풍요를 관장하는 ’제석신‘이 탄생했으며, 스스로는 우리들의 자애로운 여신(女神)인 ’삼신할머니‘가 되어 이 세상 사람들의 생명의 빛이 되었다.
 삶에 있어 성(性)은 금기(禁忌)의 극점(極點)에서 벌어진 강렬하고도 진솔한 유혹이며,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켜 분신(分身)을 이어가게 해 주는 생명의 성스러운 근원이 아닌가 싶다.

                                    (젓가락으로 쌀알을 줍는 당금애기)

                                                       (쌍둥이 삼형제 잉태)

                                                               (삼신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