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월의 강좌 (2)/한국고대신화 찾아가기

한국고대신화를 찾아서 (5) / 국회 헌정지 2019년 2월호 게재

채현병 2019. 2. 8. 22:24

                  한국고대신화를 찾아서 (5)

                                                                                                   (국회 헌정지 / 2019년 2월호 게재)

                                                                                                                           蔡 賢 秉

                                                                                                                       시조시인, 서예가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만주 창세신화 / 천궁대전(天宮大戰)

 

한국은 신()의 나라다. 전국 방방곡곡 어디를 가나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신들이 북적거린다. 만주 지역도 신()과 샤먼(薩滿)의 고장이다. 수많은 신과 신화와 샤먼이 토문강, 송화강, 흑룡강가에 자리 잡고 있다. 먼 옛날부터 우리 한민족은 그들과 함께 만주벌판을 누비며 동일 문화권 속에서 살아왔다.

동북아시아에 뿌리를 둔 우리 한민족은 만주족, 몽고족과 함께 백색을 숭상하였다. 중국 한족이 숭상하는 붉은 색을 꺼려하였다. 이 세 민족의 공통점은 산악지대에 살면서 산을 생명의 기원으로 간주하고 산신을 숭배한다는 점이다.

 

1. 천궁대전(天宮大戰) 우리 신화의 한 줄기

 

. 백두산과 우리, 그리고 만주족

우리 한민족과 만주족은 백두산을 마주보고 양쪽에 서 있는 두 형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에 같은 모태를 가운데 두고 서로 마주 앉아서 나는 너와 다르다고 다툰 것이다. 이것이 고구려(발해)가 망하고 난 이후의 만주족과 우리의 자화상이다.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의 건국신화는 만주족이 장백산, 즉 우리 민족의 성산(聖山)인 백두산을 자기 민족의 모태로 간주하고 있다. 백두산 천지에서 흘러내리는 세 줄기 강(압록강, 토문강, 두만강)이 자기들의 생명의 젖줄이라고 이야기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그들과 한 줄기임을 말해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 만주족의 창세신화 천궁대전(天宮大戰)

만주족의 창세신화인 <천궁대전>은 우리 신화의 한 줄기이다. 천궁대전은 우주와 인간, 그리고 그를 둘러 싼 일체의 현상에 대한 본풀이이다. 또한 샤먼의 기원을 밝히는 샤먼 본풀이며, 세계와 인간생명의 기원을 설명하는 기원 본풀이기도 하다.

천궁대전은 한문화(漢文化)된 이름이다. 원래 이름은 퉁구스어로 우처구우러본(鳥車姑鳥勒本)인데, 우리말로 풀이하면 조상신들의 이야기로 조상신과 그들의 가르침을 씨족에게 알리는 장엄하고 경건한 종교적 이야기이다. 이 신화에는 천모신(天母神) 아부카허허(阿布卡赫赫), 별자리여신(希里神) 와러두허허(臥勒多媽媽), 지모신(地母神) 바나무허허(巴那吉額姆) 계통의 150여 여신(女神)이 등장하며, 이름만 나오는 여신을 포함하면 300여 여신(女神)이 등장하는 대서사무가(大敍事巫歌)이다.

천궁대전은 만주족의 여러 성씨들이 공유하고 있는 자료로 신의 가르침을 전하는 신서(神書)로 존중받아 왔다. 이는 천궁대전의 분포지역이 넓고 소수민족이 다양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그만큼 천궁대전은 만주에 삶의 둥지와 의식의 뿌리를 두었던 여러 민족과 조상들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선조들의 모습과 생각과 얼도 이 안에 들어 있을 것이다.

하늘에서의 큰 싸움이란 뜻의 <천궁대전>은 아홉 개의 모링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링이란 여진족 토착어로 차례, 혹은 회()라는 의미인데 신에게 제사를 올릴 때의 순서나 차수를 나타내기도 한다.

 

2. 천궁대전(天宮大戰) 내용

 

. 1모링 - 샤먼(薩嗎)은 어디에서 왔는가

사하렌(薩哈連/흑룡강) 하류 동방에서 아홉 가지 뿔의 신록(神鹿)을 탄 버어더인무샤먼(博額德音姆)께서 걸어오신다.’

연세가 백여 세인데도 얼굴에는 홍조가 넘치고, 백발이 머리를 덮었으 나 힘이 장사이다. 신매(神鷹)께서 그녀에게 정력(精力)을 주셨고, 어 신(魚神)께서 물재주를 주셨고, 아부카(阿布卡)께서 신의 수명(壽命)을 주셨기 때문에 온갖 기술로 사악한 것을 물리치고, 모든 일을 환히 꿰뚫어보며, 백 가지 재난을 점쳐 아시어 여러 종족을 사랑하시는 그 깊은 정은 동방의 태양빛처럼 대지를 환히 비추어 주고 있다.

. 2모링 - 물거품, 창조여신과 우주를 만들다

하늘은 물 같았고 물 또한 하늘같았다. 하늘과 물이 서로 이어져서 끊임없이 흘러넘쳐 물거품이 많아졌다. 그 물거품 속에서 아부카허허(阿布卡赫赫)가 나타났다. 그녀는 물방울처럼 작았지만 공기로 만물을 만들고, 빛으로 만물을 만들고, 자기 몸으로 만물을 만들었다.

어느 날, 아부카허허(阿布卡赫赫)의 하신(下身)이 찢어지며 지모신(地母神) 바나무허허(巴那吉額姆)를 생산해 냈다. 이렇게 하여 하늘과 땅 두 자매신이 있게 되었으나, 공기는 하늘에 떠다니고 빛이 빛 속을 떠다니므로 공기가 빛을 단속할 수가 없었다. 이에 아부카허허(阿布卡赫赫)는 상신(上身)을 찢어 별자리신(希里神) 와러두허허(臥勒多媽媽) 여신을 만들어냈는데, 이 신은 움직이기를 좋아하여 하늘과 땅을 돌아다니며 밝은 빛을 담당하였다. 아부카허허, 바나무허허, 와러두허허는 같은 몸, 한 뿌리로서 함께 현현(顯現)하였다. 아부카허허는 공기에서 구름과 우레를 만들고, 바나무허허는 피부에서 골짜기와 샘물을 만들고, 와러두허허는 아부카허허의 눈에서 해와 달과 작은 북두칠성을 만들어냈다. 이 세 신은 영생영육(永生永育)하며 대천(大千) 세계를 양육하였다.

 

. 3모링 - 창조여신, 여자를 먼저 만들다

아부카허허(阿布卡赫赫)께서는 성격이 자애롭고, 바나무허허(巴那吉額姆)께서는 잠이 많으시고, 와러두허허(臥勒多媽媽)께서는 성질이 급하셨다. 원래 이 세 신께서는 만물을 만들 때 힘을 모아 하자고 약속했었는데 바나무허허께서 잠이 곯아떨어져 깨지 못하였다. 아부카허허께서는 몸에서 살 한 덩이를 뜯어내어 오친(敖欽)여신을 만들었는데 머리가 아홉에 팔이 여덟 개였다. 그리고 바나무허허는 어깨뼈와 겨드랑이의 털을 뽑아 남자를 만들었다. 그래서 남자가 여자보다 힘이 세고 수염과 털이 많게 되었으나 그 외에는 남녀의 구분이 없었다. 이 세상에는 모두 여신뿐이었기 때문에 남자가 어떤 것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바나무허허는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곰의 사타구니에서 소소(索索)를 떼 내어 그들이 만든 남자의 사타구니에 붙였다. 그래서 남자의 소소는 곰의 소소와 길이나 모양이 비슷하게 되었다.

 

. 4모링 - 악신 예루리 탄생하다

오친(敖欽)여신의 아홉 개의 두뇌가 생각하는 것은, 모든 짐승을 훨씬 능가하였고, 눈은 언제나 동그랗게 뜨고 있었으며, 귀는 언제나 듣고 있었고, 코는 언제나 냄새를 맡고 있었고, 입은 언제나 뭔가를 먹고 있었다. 그녀의 손은 언제나 바나무허허(巴那吉額姆)를 흔들었으므로 산악을 움직일 수 있는 강력한 힘이 있었다. 또한 그녀의 몸은 아부카허허(阿布卡赫赫)와 와러두허허(臥勒多媽媽)에게서 비롯되었으므로 토해내는 운기와 열화가 바나무허허의 안정을 깨뜨렸다.

바나무허허는 원래 오친여신을 성가시게 여겼던지라 홧김에 몸에 있던 큰 바위 두 개를 던졌는데, 하나는 오친여신 머리의 외뿔이 되어 허공을 찌르고, 다른 하나는 오친여신의 배 밑에 붙어서 소소로 변했다. 그래서 오친여신은 뿔 하나에 머리 아홉, 팔이 여덟 개가 달린 양성(兩性)의 기괴한 모양으로 변했다. 그녀는 자신에게 소소가 있어 스스로 생육(生育)할 수 있었다. 게다가 아부카허허, 와러두허허, 바나무허허의 몸의 골육과 혼백을 이어 받았고, 또 아홉 개의 머리로 배운 온갖 기술과 재간을 가졌다.

그녀는 하늘과 대지를 찌를 수 있는 날카로운 뿔로 바나무허허를 찌르고는 뱃속으로 들어가서 자신과 같은 기이한 신을 무수히 생산해 냈다. 이제 오친(敖欽)여신은 언제 어디서나 무적인 자생자육(自生自育) 양성괴신(兩性怪神) 예루리(耶魯里)가 되었다. 남성신이기도 한 예루리는 성품이 포악하고 급해서 공기가 되어 하늘에 오르고 빛이 되어 해에 들어갈 수 있으며, 뿔로 땅 속에 들어갈 수 있어서 세 여신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여신들을 얕보고 괴롭히기까지 하였다. 예루리 때문에 산과 땅이 동요하고, 살이 잔혹하게 찢기고 땅에는 물이 넘쳐나고, 비바람이 사방에 퍼붓고, 해와 달이 빛을 잃고, 유성이 하늘 가득 날아다니고, 만물이 참혹히 죽어갔다.

 

. 5모링 - 천궁대전(天宮大戰)이 일어나다

이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는 양성괴신(兩性怪神) 예루리(耶魯里)가 창조여신 아부카허허(阿布卡赫赫)의 권능을 빼앗으려 전쟁을 일으키는데, 이를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격전 천궁대전(天宮大戰)’이라 한다.

우주의 운행을 누가 관장할 것인가를 겨루는 1차전에서는 예루리가 승리하고, 그 기세로 혹독한 추위를 몰고 온 악신(惡神) 예루리와의 2차전에서는 선신(善神)들이 열기와 빛으로 대항하여 예루리를 물리친다.

 

. 6모링 - 바람과 돌의 신, 천신을 구하다

계속되는 선신(善神)과 악신(惡神)의 싸움은 불과 얼음의 대결이다. 땅의 신 바나무허허의 돌 속에 거주하는 두카허여신이 바람의 여신 시스린의 도움을 받아, 여러 신들에게 뜨거운 생명의 힘을 가지게 하는 능력을 발휘하여 원초적 승리를 거둔다.

 

. 7모링 - 빛의 여신들이 악을 물리치다

7모링에서는 빛과 어둠의 싸움이다. 천신 아부카허허와 별자리신 와러두허허가 자신의 분신인 대행신들과 함께 불빛과 별빛과 신광(神光)’으로 악신(惡神) 예루리를 제압한다. 이 과정에서 잠에 빠져 제 임무를 소홀히 한 죄로 여신의 직책을 빼앗긴 바람의 신 시스린이 예루리 진영으로 들어가 악행을 저지르며 남성으로 변신한다.

 

. 8모링 - 악마와 선신들의 최후의 결전

8모링에서도 창조여신 아부카허허와 악신 예루리와의 싸움은 계속된다. 불의 신 투무여신의 권고를 받아들여 돌불(石火)을 먹고 힘을 비축한 아부카허허는 자기 몸의 때로 무수히 많은 작은 신들을 만들어 예루리를 도망가게 했다.

쫓겨난 예루리가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하늘의 지배자를 결정하는 최후의 11 싸움을 요청한다. 예루리는 이 싸움에서 패배하여 붙잡혔다가 간신히 탈출에 성공한다.

 

. 9모링 - 영원한 우주 모신(母神), 아부카허허

힘이 약해진 예루리는 그래도 못된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아부카허허의 갑옷을 찢지만, 아부카허허는 아홉 빛깔 신조(神鳥)와 바나무허허의 도움을 받아 예루리를 제압한다. 이로써 기나긴 천궁대전은 9모링에서 아부카허허의 승리로 끝이 난다. 예루리는 아홉머리 중에 다섯 개의 눈이 뽑혀 광명과 모닥불을 가장 무서워 하게 되었다.

 

이후, 아부카허허는 우주 모신(母神)이 되어 인간 세상에 ()의 매를 보내 계집아이에게 젖을 먹여 키워서 이 세상의 첫 샤먼이 되게 했다. 이로써 샤먼은 별자리 신 와러두허허의 신광(神光)을 깨우쳐서 별점을 치게 되었으며, 땅의 신 바나무허허의 살로 신기(神技)를 마음대로 부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예루리의 자생자육(自生自育)하는 기술까지 배워 남녀결합과 잉태의 의술을 전파하게 되어 이 세상의 총명과 지혜를 가진 대 샤먼이 되었다.

* 出典 : 김재용이종주. 왜 우리 신화인가. 도서출판 동아시아. 1999

 

3. 만주 창세신화의 모습

 

만주족의 창세신화인 <천궁대전>은 자연신화적 요소가 강하다. 우선 해와 달을 아부카허허(阿布卡赫赫)의 눈으로 표현하였다. 또 산과 계곡, 강줄기를 홍수가 넘친 대지 위에서 용들이 물을 마신 결과로 설명하고, 북방의 매서운 추위를 악마 에루리(耶魯里)의 활동으로, 따뜻한 생명의 빛을 선신(善神)들의 움직임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러한 의식 속에서 자연에 대한 애정과 외경을 발현하고 있다.

또한, <천궁대전>은 인간이 본질적으로 안고 있는 선악(善惡)과 생사(生死)와 같은 가치대립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선과 악의 대립을 따뜻함과 얼음, 빛과 어둠, 생과 사, 존재와 소멸의 문제로 확산 변이하여 형상화 시키고, 대립과 투쟁을 거쳐 광명(光明)과 선(), ()과 미()가 승리한다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신화는 우주 자연의 여러 현상에 대한 본풀이이고, 존재론이면서 인식론이고, 윤리론적 성격을 갖는 동시에 우주론적 사유의 소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