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대신화를 찾아서 (6)
蔡 賢 秉
시조시인, 서예가
(사)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1. 생명의 신, 산육신(産育神) 이야기
- 삼승할망 본풀이 -
삼승할망 본풀이는 아기의 점지 및 출산과 양육을 담당하는 산육신(産育神)인 삼승할망에 관한 서사무가(敍事巫歌)이다. 무가(巫歌)로 전승되어 온 이 신화는 현재 제주도의 큰 굿에서 맨 앞 ‘천지왕 본풀이’에 이어 재차(第次)의 앞쪽에서 구송되거나, 삼승할망에게 아기의 산육(産育) 및 치병(治病)을 빌기 위하여 ‘할망비념’ 때에 불려진다. 이 신화에서는 ‘이승할망’, 또는 ‘생불왕’이라고 하는 삼승할망 자리를 놓고 두 명의 여인이 경쟁을 벌이는데, 둘 다 결혼도 안한 큰애기들이다. 한 명은 신계(神系) 출신의 동해용궁따님애기이고, 다른 한 명은 인간계(人間系) 출신의 명진국따님애기이다.
여기에서 ‘삼승’은 ‘産神’, ‘할망‘은 ’큰 여신(女神)‘, ’생불왕‘은 ’불(인간)을 생기게 하는 할망‘을 뜻한다. 과연 이 신직(神職)을 건 경쟁에서 누가 승리하여 삼승할망이 되었을까?
1) 동해용궁따님애기, 무쇠상자 속에 갇혀 인간세상에 버려지다
아주 오랜 옛날, 어미 몸에 아기를 불어넣어주는 삼승할망이 없어 세상이 무척 적막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에 동해용궁의 아버지와 서해용궁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동해용궁따님애기는, 한두 살에 아버지 수염을 뽑고 어머니 젖가슴을 잡아 뜯더니 열다섯 살이 되어서도 제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 참다못한 아버지가 딸을 죽이려 하자 어머니가 말했다.
“내 손으로 낳은 자식을 어찌 내 손으로 죽이리까? 그리 말고 무쇠쟁이를 불러다 무쇠 상자를 만들어서 그 속에 가둔 후, 동해 바다에 띄워 인간세상에 버림이 어떠하리까?”
“그러면 그리 합시다.”
동해용궁따님애기가 후다닥 만들어진 무쇠상자 속에 갇히면서 어머니한테 하소연을 했다.
“어머님아, 나 홀로 인간 세상에 가면 무엇을 하며 삽니까?”
“인간 세상에 아기를 마련해주는 삼승할망 생불왕이 없으니 그 일을 맡아 하고 얻어먹어라.”
“아기를 어떻게 마련합니까?”
“아버지 몸에 흰 피 석 달 열흘, 어머니 몸에 검은 피 석 달 열흘, 아홉 달 열 달 준삭(準朔)하여 출산을 시켜라.”
“어디로 출산을 시킵니까?”
미처 그 대답을 듣기도 전에 아버지가 벼락같이 호통을 치므로 급히 무쇠상자 뚜껑을 닫아걸고 동해 바다로 띄워 보냈다.
2) 동해용궁따님애기, 태아를 점지했으나 출산을 못 시키다
동해 바다에 띄워진 무쇠상자는 물 아래로 3년을 흥당망당 떠다니고, 물 위로 3년을 민물 썰물에 동글동글 떠다니다 어느 육지에 다다랐다. 이때 임보로주 임박사가 무쇠상자를 발견하고 뚜껑을 열어보니 앞이마에 해님이, 뒷이마에 달님이, 양쪽 어깨에 샛별이 오송송 서린 아기씨가 앉아 있었다. 놀라서 사연을 물으니 부모한테 죄를 지어 쫓겨난 동해용궁따님애기란다. 동해용궁따님이면 무얼 할 줄 아느냐고 물으니 아무 일이든 시켜보라 한다.
“우리 부부가 나이 쉰 살이 넘도록 자식이 없으니 우리 아내 몸에 아기를 불어넣어 주오.”
“그건 그리 합시다.”
아니나 다를까 임박사 아내는 덜컥 아이를 잉태했다. 한 달, 두 달 지나 드디어 아홉 달이 되니 배가 두둥실 보름달처럼 불어났다. 그런데 아이 꺼내는 법을 배우지 못한 동해용궁따님애기가 출산을 못 시키고 한두 달을 그냥 더 보내니 산모가 죽을 지경이 되었다. 동해용궁따님애기가 겁결에 은가위로 산모의 오른쪽 겨드랑이를 솜솜이 끊고서 아기를 꺼내려 하나 아기는 안 나오고 산모는 사경을 헤맸다. 겁에 질린 동해용궁따님애기는 수양버드나무 아래에 앉아 구슬프게 울기 시작하였다.
자식을 얻기는 고사하고 아내까지 잃게 된 임보로주 임박사는 원통함을 달랠 수가 없었다. 그는 산마다 올라가 제단을 차려놓고 하늘을 우러러 옥황상제께 하소연을 했다.
3) 옥황상제, 생불왕 적임자를 찾다
옥황상제가 인간세상을 살피다가 그 모습을 보았다. 사연을 알아보니 인간세상에 자식을 낳게 해줄 생불왕이 없는지라 임박사가 원통해서 내는 소리였다.
“그래서 세상에 사람 자취가 뜸하여 낮도 고요하고 밤도 고요했구나.”
옥황상제는 여러 신을 모아놓고 인간 세상에 생불왕으로 들어앉을 만한 이가 없는지 물었다.
“네. 인간세상 명진국에 한 따님애기가 있는데, 부모에 효도하고 일가친척 화목하고 깊은 물에 다리 놓아 건너다니게 하니 그 공덕이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듣자니 앉아서 천리를 보고, 서서 만리를 본다고 합니다. 이 아기씨를 생불왕으로 세우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어서 그건 그렇게 하라.”
4) 옥황상제, 명진국따님애기에게 생불왕 자리를 명하다
명령을 받은 금부도사가 명진국따님애기를 데리러 가니 그 부모가 옥같이 사랑하던 딸을 차마 내주지 못하고 눈물만 지었다. 하지만 옥황상제의 명을 뉘라서 거역할까? 명진국따님애기는 부모를 달래놓고 스스로 사자를 따라나섰다. 노각성자부줄을 붙잡고 하늘에 올라 옥황상제 앞에 당도하니 상제가 그 됨됨이를 떠보려고 일부러 호통을 쳤다.
“머리를 땋은 처녀가 어찌 대청 한가운데로 들어오느냐?”
“소녀도 아뢸 말씀이 있습니다. 하늘과 땅이 엄연히 다른 세상인데 시집도 못간 처녀를 부모와 갈라놓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과연 똑똑하고 역력하구나. 인간세상 생불왕이 될 만하다. 인간 세상에 생불왕 삼승할망이 없어 낮도 고요하고 밤도 고요하니 그대가 그 일을 맡는 것이 어떠할까?”
“상제님아, 철도 모르고 때도 모르는 어린 처녀가 어찌 자식을 마련합니까?”
“아비 몸에 흰 피 석 달 열흘, 어미 몸에 검은 피 석 달 열흘, 살 살아서 뼈 살아서 석 달, 아홉 달 열 달 준삭(準朔)하여 아기 어미 뻣뻣한 뼈를 늦추어서 열두 궁 자궁문으로 해산시키면 되느니라.”
5) 명진국따님애기, 인간세상에 내려가 신직(神職)을 수행하다
명진국따님애기가 인간세상 생불왕으로 명을 받아 행차를 차리는데, 모습이 볼 만하다. 만산 족두리에 남방사주 저고리, 북방사주 붕에바지, 대홍대단 홑치마 물명주 단속곳으로 치장하고 은가위 하나에 참실 세 묶음, 꽃씨 은씨를 들었다. 아기를 낳아주고 닦아주고 업어줄 시녀들을 거느리고 사월 초파일에 노각성자부줄을 타고서 인간세상으로 내려와서 임보로주 임박사네 집으로 나는 듯이 들어갔다.
비단 치마 벗어 놓고 짚자리에 올라앉아 아기어미 열두 궁 뼈를 늦추어 자궁문을 열고 은가위로 아기 코를 툭 건드리니 양수가 터져 나온다. 산모한테 큰 힘 작은 힘을 불어넣으니 임박사 아내가 힘이 불끈 솟아나 고운 아기를 낳는다. 참실로 배꼽줄을 묶어 은가위로 싹둑 잘라 아기를 번쩍 쳐드니 응애응애 목 놓아 운다.
6) 동해용궁따님애기, 명진국따님애기에게 시비를 걸다
난데없는 아기 울음소리에 수양버들 아래에서 울고 있던 동해용궁따님애기가 놀라 들어와 보니 아기가 울고 있다. 어쩐 일인가 살펴보니 옆에 앉은 처녀 아이가 해산을 시킨 것이 분명했다.
“나는 동해용궁따님애기로 인간세상 생불왕으로 귀양 왔는데 너는 누구냐?”
“나는 명진국따님애기로 옥황상제의 분부를 받고서 인간세상 생불왕으로 내려왔소.”
이 말을 듣자 동해용궁따님애기는 억울한 마음에 앞뒤 분별이 안 갔다. 자기가 잉태시킨 아기를 뉘 맘대로 출산시키느냐며 다짜고짜 달려들어 명진국따님애기 머리채를 좌우로 핑핑 휘감아 흔들어대니 명진국따님애기가 원통해서 넋이 나갔다. 그길로 하늘에 올라 하소연하니 옥황상제가 두 처녀를 불러들였다.
7) 명진국따님애기, 신직(神職)을 건 내기에서 이기다
옥황상제가 명진국따님애기와 동해용궁따님애기를 앞에 놓고서 얼굴을 보고 재주를 보니 누가 더 낫다고 할 수가 없었다. 생각 끝에 둘에게 나무동이와 은동이를 주며 나무동이의 물을 은동이로 옮겨 담게 했다. 명진국따님애기 물은 한 방울도 안 줄고 그대로인데, 동해용궁따님애기 물은 땅으로 스며들어 간 곳이 없었다. 다시 꽃씨를 하나씩 주어 기르게 하니, 명진국따님애기가 기른 꽃은 뿌리는 외뿌리이지만 가지가 번성해서 사만오천육백개의 붉은 꽃이 탐스러운데, 동해용궁따님애기가 기른 꽃은 뿌리만 사만오천 갈래로 뻗어 있고 외가지에 달린 꽃이 시들어 있었다.
이를 보고 옥황상제가 말을 하되
“명진국따님애기가 번성꽃을 피웠으니 생불왕 인간할망으로 들어서 부잣집이나 가난한 집이나 집집마다 자식이 번성하게 하라. 동해용궁따님애기가 피운 꽃은 시들었으니 저승할망이 되어 죽은 아이를 보살피되, 세상 아이들로 하여금 배고파도 울게 하고 밤에 더 울게 하며 부정한 아이는 경기(驚氣)도 불어넣고 청풍(靑風)도 불어넣어 데려가도록 하라.”
8) 명진국따님애기는 이승할망이,
동해용궁따님애기는 저승할망이 되다
인간세상 생불왕 자리를 빼앗겨 노여움이 머리끝까지 오른 동해용궁따님애기는 명진국따님애기가 키운 꽃을 오도독 꺾어들면서 말했다.
“인간 아기가 태어나는 족족 석 달 열흘 안에 경기 청풍 불어넣어 데려가리라.“
그러자 명진국따님애기가 동해용궁따님애기를 달래어 말하였다.
“그리 말고 우리 좋은 마음을 먹는 게 어떠한가? 내 인간에게 잉태를 시켜주고 받는 인정과 재물을 꼬박꼬박 덜어내어 그대 몫이 모자람이 없도록 마련해 주리라.”
그제서야 동해용궁따님애기는 마음이 풀려 저승할망으로 좌정하고, 명진국따님애기는 이승할망으로 내려왔다.
9) 명진국따님애기, 삼승할망으로 인간세계를 번성하게 하다
명진국따님애기 이승할망은 지상으로 내려와 동해산 서해산 남해산 북해산 아양안동 금백산에 울타리 성 안팎을 둘러 팔층 집을 지어놓고, 문 안에 예순 명, 문 밖에 예순 명의 시녀를 거느린 채, 한 손에는 생불꽃을 또 한 손에는 번성꽃을 들고 좌정을 하였다. 이리하여 삼승할망께서 이 세상에 자리를 잡고, 인간에게 자식을 불어넣어 순산시켜주며 병 없이 자라도록 보살펴주게 되었다.
*出典 : 신동흔 저, [살아있는 한국신화], 한겨레출판(주), 2018
2. 삼승할망 본풀이의 신화적 가치
삼승할망 본풀이는 원시적 체취를 물씬 풍긴다. 사회적 윤리 도덕이나 명분의 잣대를 대기 이전의 순수한 생명력이 넘쳐난다. 또한 이 속에는 포용의 철학이 깃들어 있다. 그래서 더욱 더 인간적이다. 삼승할망 본풀이의 화소(話素)를 통해 신화적 가치를 찾아보자.
첫째로, 용왕의 딸과 인간의 딸이 신직(神職)을 걸고 겨룬다는 것 자체도 파격인데, 그 내기에서 인간의 딸이 승리하여 큰 덕을 베풀었다고 하니 일반적 통념을 깨뜨리고도 남는다.
둘째로, 인간이 이 세상의 주역이라는 사유적 표현을 들 수 있는데, 어린 처녀 명진국따님애기가 천지의 지존인 옥황상제 앞에서 거리낌 없이 나타내 보이는 당돌하고 역력한 모습은 가히 인간 자존의 사유세계가 아닌가 싶다.
셋째로, 내기에서 진 동해용궁따님애기에게도 저승할망이라는 신직(神職)을 맡겨 살아갈 방도를 찾아 주었는데, 이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에 그 존재이유를 부여해주고, 인간사에 일어나는 모든 문제의 합리적 해결 방식을 넌지시 일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세상은 새로 태어난 아기가 겪는 난관이 무수히 많다. 그리고 이 세상은 좋은 일과 궂은 일이 항상 맞물려 있다.
넷째로, 아기를 점지해 주고 출산시켜 잘 자랄 수 있도록 돌보아 주는 역할을 맡은 여신이 처녀라는 점에서 큰 호기심을 발동시키는데, 그것은 어떤 뜻일까? 결혼도 못해보고 아기도 낳아보지 못한 처녀이므로 아기를 갖고 싶은 욕망이 끝없이 넘쳐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순결의 상징이므로 만인의 아기를 잘 잉태하고, 탈 없이 출산시켜 잘 기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일까?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은 무척 힘들기도 하지만 매우 위험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 일은 대를 이어 우리를 번성시키게 해 주는 것으로 마치 숙명과도 같이 엄숙한 일이다. 우리는 삼승할망의 품 안에서 아이들을 낳아 기름에 있어, 지극 정성을 다하여 사랑하고 매사에 조심하며 젖 먹던 힘까지 다 바쳐야 할 운명을 안고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이처럼 소중한 일이 어디 또 있을까? 참으로 엄숙하여 더욱 성스럽고 더욱 고마운 일이다.
* 註
삼신(産神) 신앙은 전국에 분포되어 있지만, 이런 유형의 産神 神話는 제주도에서만 발견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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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오, 「우리가 정작 알아야 할 우리 신화」, 현암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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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욱 (역), 「삼국유사」, 진한M&B, 2007
∙북애자 저, 민영순 (역), 「규원사화」,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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