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월의 강좌 (2)/한국고대신화 찾아가기

한국고대신화찾아가기 (8) / 저승신화

채현병 2019. 4. 10. 15:26

             한국 고대신화를 찾아서 (8)

                              - 저승신화 -

                                                                                                      蔡 賢 秉

                                                                                                                       시조시인, 서예가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우리 신화에서는 사람이 죽은 뒤에 그 영혼이 가서 산다고 하는 저승이 매우 중요한 공간을 차지한다. 이는 산 사람이 살아가는 이승보다 훨씬 더 오래 머무는 영혼의 세상이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의 저승신화 속에는 염라대왕, 열 시왕과 같은 여러 신들이 자리하고 있지만, 장구한 세월동안 우리 겨레가 섬겨 온 바리공주도 있고 강림도령도 있다. ‘바리공주는 어린 소녀의 몸으로 만 리 길 저승길을 혈혈단신으로 다녀와서 병든 부왕을 살려낸 후, 오구신이 되어 저승길을 떠도는 많은 영혼들의 죄를 씻어주고 천도해 주는 신이다. 지금도 바리공주 이야기는 지노귀굿(서울경기), 씻김굿(전라), 오구굿(경상) 등에서 불리어지고 있다.

그리고 강림도령은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면서 신명과 흥분을 불러일으키고 지혜롭게 맡은 바 소임을 다하며, 때로는 염라대왕과 맞장을 뜨기까지 하는 우리 겨레의 영웅 신이다. 이번 호에는 제주도와 함경도 지방에 전해 내려온 차사본풀이 강림도령 이야기를 소개한다.

 

강림도령 이야기

 

<과양생의 아내가 버무왕의 아들 3형제를 죽이다>

 

옛날에 동경국에 버무왕이 살았는데, 그는 슬하에 아들을 일곱이나 두었다. 위로 4형제는 사주팔자가 좋고 복도 많아 장가를 들어 잘 살았다. 이에 반해 밑으로 3형제는 사주팔자가 기구하여 15살밖에 살 수 없는 운명을 타고 났으므로 걱정이 태산 같았다. 그래서 한탄을 하고 있던 버무왕에게, 어느 날 중이 찾아와서 세 아이를 절로 보내어 3년 동안 불공을 드린다면 목숨을 연명할 수 있다.’는 말에 아들 3형제를 절로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절에 들어간 3형제는 목욕재계를 하고 불공을 드렸다. 어느덧 3년의 세월이 흘러 3형제가 집으로 돌아갈 날이 되자, 절의 주지 스님은 3형제를 불러 놓고 명주와 비단 아홉 필을 주며 당부하였다.

가다가 보면 과양 땅을 지나가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그 곳에서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된다.”

3형제가 절을 떠나 과양 땅에 이르렀는데, 마침 과양생의 집에서 밥을 짓고 있었다. 3형제는 허기를 참지 못하고 과양생의 집에 들어가 밥을 청하여 먹었다. 그리고 고마움의 표시로 비단과 명주를 조금씩 주었다. 비단과 명주를 본 과양생의 부인은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3형제를 사랑방으로 안내한 뒤 술상을 차렸다.

이 술 한 잔을 드십시오. 한 잔을 먹으면 천 년을 살고, 두 잔을 먹으면 만 년을 살고, 석 잔을 먹으면 9만 년을 산답니다.”

3형제는 주지스님의 말씀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술을 다 마셔 버렸다. 그들이 술에 취해서 잠에 떨어지자, 과양생의 부인은 팔팔 끓는 참기름을 3형제의 귀에다 부어 죽이고 비단과 명주를 챙긴 뒤에 3형제의 시체를 주천강 연못에 버렸다.

 

그 뒤 과양생의 부인은 주천강 연못에 새로 피어난 고운 꽃 세 송이를 보고 이를 꺾어 집으로 가져 왔는데, 이 꽃송이가 오색영롱한 구슬로 변하였다. 과양생의 부인은 이 예쁜 구슬 세 개를 숨기려고 입에 넣어 굴리다가 그만 삼키고 말았다. 이로 인하여 임신을 하게 된 과양생의 부인은 아들 3형제를 낳았다. 이들은 매우 영특하여 한 날 한 시에 함께 과거에 급제하였다. 과양생 부부는 너무 좋아서 덩실덩실 춤을 추며 문신에게 고사를 지냈는데, 이 때 아들 3형제가 일시에 죽고 말았다.

 

<강림이 염라대왕을 데려오기 위해 저승으로 가다>

 

아들 3형제를 한꺼번에 잃은 과양생 부부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너무나 원통한 나머지 고을의 원님에게 날마다 편지를 써서 원한을 풀어 달라고 졸라댔다. 원님은 골치가 아팠다. 한 날 한 시에 태어나고, 한 날 한 시에 과거에 급제하고, 한 날 한 시에 죽은 그 원인을 알아내고 풀어 갈 방도가 없었다. 그때 똑똑하기로 소문 난 강림이 생각났다. 강림은 열다섯 살에 관직에 올라 부인을 열여덟 명이나 거느린 위인으로 그 능력이 대단하였다. 원님은 강림을 불러놓고 말했다.

사람이 나고 죽는 문제는 염라대왕의 소관이니, 네가 가서 염라대왕을 불러오도록 하여라.”

강림은 그러겠다고 대답을 하고 돌아와서 고민을 하기 시작했으나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는 열일곱 명의 첩들을 일일이 찾아가 고민을 이야기했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강림은 본부인을 찾아가 사정 얘기를 하면서 도와 달라고 부탁하였다. 강림은 큰 부인의 정성으로 문신과 조왕신의 도움을 받아, 멀고 험한 저승길을 헤쳐 나가 드디어 행기못가에 이르렀다. 눈을 질끈 감고 행기못에 뛰어들었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저승문 앞에 닿아 있었다.

강림은 그곳에서 염라대왕을 기다렸다. 이윽고 염라대왕의 행차가 당도하자 강림은 봉황새 같은 눈을 부릅뜨고 삼각 수염을 곧추 세우며 구리쇠 같은 팔뚝을 걷어붙인 뒤, 우레 같이 소리를 지르며 염라대왕이 탄 가마로 달려들어 눈 깜짝할 사이에 염라대왕을 밧줄로 꽁꽁 묶었다. 그리고 어느 날 몇 시에 동헌으로 찾아가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후, 밧줄을 풀어주고 행기못을 거쳐 이승으로 돌아왔다.

 

이승으로 돌아온 강림은 큰 부인을 만나 그간에 일어났던 일을 이야기하며 밤을 지새운 후, 날이 밝자 부모님께 문안 인사를 올리고 형제들을 불러 모아 크게 잔치를 벌였다. 이때 뒷집에 사는 김 서방이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평소에 강림의 큰 부인을 흠모하고 있었는데 강림이 저승에 갔다가 돌아오지 않자 자기와 결혼해 달라고 조르고 있던 참이었다.

자신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을 알고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그는 원님에게 달려가 거짓으로 고했다.

강림이 저승에 갔다 왔다는 말은 완전히 거짓말입니다. 남몰래 병풍 뒤에 숨어 있다가 밤이면 병풍 밖에 나와 돌아다녔습니다.”

원님은 김 서방의 말만 믿고 나졸들을 시켜 강림을 잡아왔다.

이놈! 도대체 염라대왕이 어디에 있단 말이냐?”

여기 제 적삼이 있습니다. 염라대왕은 모레 점심때쯤 이곳으로 오기로 하고 손수 적어 준 글이지요.”

네 말을 어찌 믿는단 말이냐.

그리고는 나졸들을 향해 소리쳤다.

여봐라, 모레 염라대왕이 올 때까지 강림을 옥에 가두어라.”

그 길로 강림은 옥에 갇히고 말았다.

 

약속한 날이 되었다. 맑고 푸르던 하늘에 갑자기 시커먼 구름이 일어나더니 순식간에 하늘을 뒤덮었다. 그러고는 오색 무지개가 뜨면서 천지가 진동하는 소리와 함께 염라대왕의 행차가 동헌 마당에 들어섰다.

다들 혼비백산하여 이리저리 몸을 피하기에 바빴다. 원님도 기둥 뒤에 숨어 몸을 사시나무 떨 듯 하였다.

 

<염라대왕이 과양생을 재판하다>

 

염라대왕은 두리번거리면서 강림을 찾았다. 그러다가 옥에 갇혀 있는 그를 발견하고 불러냈다. 그리고는 원님에게 물었다.

어떤 일로 나를 청하였느냐?”

원님은 정신을 가다듬고 사정을 얘기했다.

다름이 아니오라, 과양 땅에 사는 과양생이 한 날 한 시에 아들 3형제를 낳았는데, 한 날 한 시에 과거에 합격하고, 또 한 날 한 시에 죽었지 뭡니까? 졸지에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이 오죽하겠습니까? 과양생이 어찌하여 이렇게 된 것인지, 그 원인을 알고 원한을 풀고자 제게 호소를 하였습니다.”

그건 나도 아는 얘기요. 우선 과양생 부부를 대령토록 하시오.”

과양생 부부를 동헌 마당에 불러다 놓으니, 염라대왕이 물었다.

너희는 아들들을 어디에 묻었느냐?”

앞밭에 묻었습니다.”

, 그렇다면 누구의 도움도 받지 말고, 너희 부부의 손으로 파 보아라.”

무덤을 파고 보니 그 속에는 아무 것도 없고 칠성판만 있었다.

염라대왕은 곧 연화못으로 갔다. 금부채를 꺼내놓고 연화못의 물을 세 번 내리치니 못물이 순식간에 말라 버렸다. 그러자 바닥에서 버무왕 아들 3형제의 뼈가 앙상하게 드러났다. 그는 뼈들을 모아놓은 다음에, 또 금부채로 세 번 때리자 뼈에 살이 붙고 숨이 돌면서 3형제가 되살아났다. 염라대왕이 과양생 부부를 불러서 물었다.

이들이 너희 아들들이냐?”

, 우리 아들들과 똑같습니다.”

과양생 부부는 어리둥절했다.

여봐라, 소 아홉 마리를 끌고 오너라.”

원님은 염라대왕의 말대로 아홉 마리의 소를 대령했다. 염라대왕은 과양생 부부의 팔다리 아홉에 각각 소 한 마리씩을 묶은 뒤 사방에서 끌어당기게 하였다. 그들의 몸뚱어리는 아홉 갈래로 찢어졌다. 찢어지다 남은 것은 방아에 넣어 빻았다. 그 가루를 하늘로 날려 보내니 그것들은 각다귀와 모기가 되어 날아갔다. 과양생 부부는 살아 있을 때도 남의 피를 빨아먹으려고 하더니, 죽어서도 모기가 되어 남의 피를 빨아먹으려고 달려들게 되었다.

 

<강림이 죽은 사람을 잡아가는 인간 차사가 되다>

 

일을 마친 염라대왕은 원님에게 다가갔다.

원님, 강림을 잠시만 빌려줄 수 없겠소? 저승으로 데려가 일을 시키다가 돌려보내겠소.”

강림이 워낙 똑똑하기 때문에 탐이 나서 한 말이었다. 원님은 한마디로 거절을 했다. 염라대왕과 원님은 서로 강림을 가지겠다는 주장을 하다 보니 결판이 나지 않았다. 그러자 염라대왕이 타협안을 냈다.

그러면 우리 반반씩 나누어 가지는 것이 어떻겠소?”

그렇게 합시다.“

그럼 육신을 가지겠소, 아니면 혼을 가지겠소?”

그야 육신을 가져야지요.” 어리석은 원님은 육신을 차지하면 제 마음대로 부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자 염라대왕은 강림의 혼을 빼앗아 저승으로 데리고 가버렸다.

원님은 기분이 좋았다. 염라대왕을 데려다가 그 어려운 일을 처리했으니 통쾌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기쁜 김에 술상을 받아 몇 잔을 마시고는 강림을 불렀다. 그러나 강림은 대답이 없었다. 다가가 손으로 툭 치자 강림은 썩은 나무토막처럼 털썩 쓰러졌다.

 

강림은 저승에 가서 사자로 일을 하게 되었다. 하루는 염라대왕이 분부를 내렸다. 이승에 가서 적패지(赤牌紙 : 사람이 죽어서 장례를 치를 때에 쓰이는 붉은 천이나 종이)를 붙이고 오라는 것이었다. 적패지에는 여자는 70, 남자는 80이 되거든 차례차례로 저승으로 오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강림은 분부대로 적패지를 손에 들고 이승으로 향했다.

반쯤 왔을까 싶을 때,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와 말을 걸었다.

형님, 그 적패지를 제 날개에 끼워 넣으십시오. 그러면 이승에 가서 붙여 두고 오겠습니다.”

강림은 듣던 중에 반가운 말이었다. 그는 얼른 적패지를 까마귀 날개에 끼워 넣었다. 까마귀가 이승을 향해 날아가다 보니, 백정이 밭에서 말을 잡아먹고 있는 것이 보였다. 까마귀는 말고기라도 한 조각 얻어먹으려고 나뭇가지에 앉아 기다리다가 지쳐 까옥까옥하고 울었다.

때마침 말을 잡고 있던 백정이 말발굽을 휙 던졌다. 까마귀는 저를 맞추려는 줄 알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 바람에 날개에서 적패지가 떨어지고 말았다. 그 때 담 구멍에 있던 뱀이 날름 그 적패지를 받아 삼켰다. 그 때문에 뱀은 죽는 법이 없이 허물을 벗으면서 아홉 번 죽었다가도 열 번 살아나게 되었다.

 

까마귀는 그것도 모르고 주위를 다 뒤져 보았지만 적패지를 찾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까마귀는 이승으로 날아와 되는 대로 외쳐댔다.

아이 갈 데 어른 가십시오. 까옥.

어른 갈 데 아이 가십시오, 까옥.

부모 갈 데 자식 가십시오, 까옥.

자식 갈 데 부모 가십시오, 까옥.

자손 갈 데 조상 가십시오, 까옥.

조상 갈 데 자손 가십시오, 까옥.“

 

이렇게 울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남녀노소 순서도 없이 죽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까마귀가 울면 좋지 않은 일이 생겨났다. 아침에 울면 아이 죽을 까마귀, 낮에 울면 젊은 사람 죽을 까마귀, 저녁에 울면 노인 죽을 까마귀, 여러 마리가 같이 울면 싸움이 날 까마귀, 동쪽으로 앉아 울면 양식 없는 집에 손님 올 까마귀, 서쪽으로 앉아 울면 구설수에 시달릴 까마귀, 초저녁에 울면 집에 불이 날 까마귀, 밤중에 울면 역적살인 날 까마귀가 되었다.

 

까마귀가 되는 대로 우는 바람에, 사람들이 자꾸 죽어가서 저승 초군문이 북적댔다. 저승 재판관은 판결을 하다가, 남녀노소 없이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고 어리둥절했다.

재판관은 강림을 불러들여 문초를 했다.

어째서 차례차례로 오라고 했는데, 이렇게 어른 아이 구분도 없이 마구 몰려들고 있느냐?”

강림은 까마귀를 불러다가 문초를 했다. 까마귀는 말고기를 얻어먹으려다가 적패지를 잃어 버렸다고 사실대로 말했다. 강림은 화가 나서 곤장으로 까마귀의 아랫도리를 후려갈겼다. 이 때문에 까마귀는 지금도 걸음을 아장아장 걷는다고 한다.

 

이때 염라대왕에게는 골머리를 앓는 문젯거리가 하나 있었다. 삼천갑자 동방삭이의 수명이 다하여 저승으로 불러들여야 했는데, 그를 데리러 간 차사들마다 번번이 허탕을 치고 돌아왔다. 그래서 강림을 불러들였다.

동방삭이를 잡아 온다면 네 죄를 용서해 주겠다.”

염라대왕의 분부를 받고 강림은 묘책을 생각해냈다. 지상으로 온 강림은 숯을 몇 말 얻어 왔다. 그러고는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개울가에 앉아서 숯을 씻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 숯을 씻고 있었더니, 어떤 건강한 사람이 지나가다가 물었다.

어째서 숯을 그렇게 씻고 있는 것이오?”

제가 듣기로, 검은 숯을 백일만 씻으면 희게 되는데 그것이 신기한 명약으로 쓰인다지 뭡니까? 그래서 이렇게 씻고 있는 것이지요.”

, 동박삭이 3천 갑자를 살았지만 그런 말은 처음이오.”

이 말을 들은 강림은 옳지, 이 자가 동박삭이로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날쌔게 달려들어 밧줄로 동방삭을 묶었다.

어떤 차사가 와도 나를 잡지 못하였는데, 3천 갑자를 살다 보니 강림에게 잡혔구나.”

동방삭이는 체념을 하고 순순히 따랐다. 동방삭이를 염라대왕에게 잡아다 바쳤더니, 대왕은 크게 칭찬을 하면서 분부를 내렸다.

강림은 똑똑하고 영리하니, 사람들을 잡아오는 인간 차사가 되어라.”

그로부터 강림은 사람들을 잡아가는 인간 차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