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 궁체 정착기의 언문교지(諺文敎旨)
① 중종대(中宗代)의 언서(諺書)
중종반정이 있던 날, 백관이 궐 안 뜰에 들어와 반열을 지어 선 다음에 정현왕후(貞顯王后)의 언문교지(諺文敎旨)를 들었다.
“우리 국가가 덕을 쌓은 지 백년에 깊고 두터운 은택(恩澤)이 민심을 흡족하게 하 여 만세토록 뽑히지 않을 기초를 마련하였는데, 불행하게도 지금 임금이 크게 지켜 야 할 도리를 잃어 민심이 흩어진 것이 마치 도탄에 떨어진 듯하다...(중략)...이에 내가 생각하니 어리석은 이를 폐하고, 밝은 이를 세우는 것은 고금에 통용되는 의 리이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의 의견에 따라 진성을 사저에서 맞이하여 대위(大位)에 나아가게 하고, 전왕은 폐하여 교동에 안치하게 하노라.”
② 인종대(仁宗代)의 언서
중전인 인성왕후(仁聖王后) 박씨가 영의정 윤인경에게 전교하기를 유교(遺敎)를 써서 내리려 하나 망극하여 살피지 못하겠으니 천천히 써서 내리겠다 하였다. 윤인경은 중전이 언문으로 쓴 대행왕의 유교(遺敎)를 주서 안함(安鋡)에게 주어 승정원에 보이니, 승지 사관 등이 둘러앉아 펴서 읽고 모두가 통곡하였다. 곧 한문으로 번역하여 별지에 싸서 조정에 공포하였다.
“대행왕께서 임종 때에 전교하기를...(중략)...송종(送終)하는 모든 일은 절대로 사치하지 말도록 하라, 하셨는데 반복하여 백성의 폐해를 더는 것을 생각하고 전교하셨다...(후략)”
③ 문정왕후(文定王后)의 언서
문정왕후 왕대비가 언서 두 폭을 내렸다. 하나는 평소 궁중에서의 가언(嘉言) 선행(善行)이오. 또 하나는 임종 때의 유언이다. 그 하나에 이르기를,
“평시에는 새벽에 일어나시어 하루 세 번의 서연에 나아갔고, 한더위라 하더라도 종일토록 단정히 앉아계셨다. 서연에 나아가지 않는 날이면 아침에는 경서를 읽고, 낮에는 사서를 보시는 등 잠시도 기대어 앉거나 졸다가 눕는 법이 없으셨으며, 항 상 학문으로 소일하시면서 주야로 책을 손에서 놓지 않으셨다...(중략)...일상생활 가 운데 아름다운 일들이 많았겠지만, 나같이 우매한 부녀자가 어찌 일일이 다 알 수 있겠는가. 더구나 지금은 정신이 착란하여 우선 대체적인 줄거리만을 기록한다.”
④ 인성왕후(仁聖王后)의 언서
이준경, 심통원, 이명 등 대신들이 명정문 외정에 모여서 언서로 중전에게 후사에 관하여 아뢰니, 중궁이 언문으로 답하기를,
“지난번 옥체가 미령하시고 대중의 마음도 몹시 의심하고 불안스러워 하여, 망극 한 중에 사체를 헤아리지 못하고 종사만을 위하여 감히 독단하여 잠시 말끝을 꺼냈 으므로 마음에 몹시 미안하다. 지금 경들이 ‘상의 기력이 회복하신 뒤에 조용히 계 품하여 성지를 내리시게 하라.’고 아뢰니, 이는 매우 지당한 생각이다.”
⑤ 인목왕후(仁穆王后)의 언서
광해군 15년, 서인 일파인 이귀, 김자점, 김유 등이 왕대비인 인목대비에게 그 뜻을 계달하였다. 인목대비가 그 뜻을 받아들이고, 능양군을 왕으로 책명(冊命)한 후, 전왕(前王)을 폐하여 광해군으로 강등시키고 교서(敎書)를 반포하였다.
“소성정의왕대비(昭聖貞懿王大妃)는 다음과 같이 이르노라. 하늘이 많은 백성을 내 고 임금을 세우게 하신 것은 인륜을 펴고 법도를 세워 위로 종묘를 받들고 아래로 백성을 잘 다스리게 하려고 하신 것이다. 선조대왕께서 불행하게도 적자(嫡子)가 없 으시어 일시의 권도(權道)에 따라 나이의 순서를 뛰어넘어 광해를 세자로 삼았 다. 그런데 그는 동궁에 있을 때부터 잘못하는 행위가 드러났으므로 선조께서 만년 에 몹시 후회하고...(중략)...그는 왕위를 계승한 뒤에 여러차례 큰 옥사(獄事)를 일 으켜 무고한 사람들을 가혹하게 죽였고...(중략)...능양군 이종(李倧)은 선조대왕의 손자이고...(중략)...이번에 대의를 분발하여 혼란스러운 조정을 토평하고, 유폐되어 곤욕을 치루고 있는 나를 구해내어 윤기를 바르게 하고 종묘사직을 다시 편안하게 하였다. 공명이 성대하여 신명과 인민이 그에게 귀의하고 있으니 보위에 나아가 선 조대왕의 후사를 잇게 하노라. 그리고 부인 한씨를 책봉하여 왕비로 삼노라. 이리 하여 교시하노니 모두 잘 알라.”
⑥ 이 이외에 내려진 언문교지는 인조대(仁祖代), 숙종(肅宗代)에 이르기까지 매우 많이 내려졌으며, 이로 인하여 궁체가 하나의 한글서체로 굳건히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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