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월의 시조마루/시조학

강원감사 신헌조의 시조 (1)

채현병 2021. 4. 26. 19:34

사랑 시조· 성 시조 <6>

이번엔 신헌조(申獻朝, 1752~1807)의 작품만 살펴본다. 그의 시조집 ‘봉래악부(蓬萊樂府)’에 실려 있는 시조는 주로 강원감사 재임 시절에 지은 것이라고 한다. 그는 시조 25수 중 절반인 12수나 되는 장시조를 남겨놓았다.

<1> 치악산에 눈이 오니

 

    치악산(稚嶽山)에 눈이 오니 개골산(皆骨山) 경(景)이로다.

    만이천봉(萬二千峰)을 여기 앉아 보는구나.

    아마도 비로만폭(毘盧萬瀑) 이제도 응당 있으리라.

 

**강원감사 시절에 지은 것으로, 원주 치악산의 설경이 겨울 금강산과 같다고 했다. 그러니 치악산에서 일만이천봉을 감상하면 비로봉과 만폭동도 있음직하다는 것이다. 금강산은 봄에 금강산(金剛山), 여름에 봉래산(蓬萊山), 가을에 풍악산(楓嶽山), 겨울에 개골산이라고 부른다.

<2> 겨울에 핀 매화

 

  천지성동(天地成冬)하니 만물이 폐장(閉藏)이라.

  초목(草木)이 탈락(脫落)하고 봉접(蜂蝶)이 모르는데

  어찌한 봄빛이 한 가지 매화런고.

  아마도 정즉부원(貞則復元)하는 검은 조화(造化)를 저 꽃으로 보리라.

 

**겨울에 핀 매화를 본 감상이다. 겨울이 되어 천지가 갇힌 듯 얼어붙었고, 초목은 잎이 지고 벌과 나비도 자취를 감췄는데, 어찌 매화 한 가지가 봄빛을 머금었는가. 만물은 얼었다가 다시 풀려 생명이 움트는 것이 하느님의 조화인즉 저 매화에서 그 조화의 시작을 본다는 것이다. 계절의 순환을 유교적 의미로 파악했다.

원형이정(元亨利貞)은 하늘의 운행원리로, 봄에 만물이 소생하여 성장하고, 여름에 번창하며 가을에 결실하고 겨울에 저장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니 정즉부원(貞則復元)은 貞이 다시 元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니 겨울이 가면 봄이 돌아온다는 뜻. 즉 소생(蘇生)을 의미한다.

<3> 정실이 제일이지

 

  첩(妾)을 좋다 하되 첩의 설폐(說弊) 들어보소.

  눈에 본 종 계집은 기강(紀綱)이 문란(紊亂)하고 노리개 여기첩(女妓妾)은 범백(凡百)이 여의(如意)하되 중문(中門) 안외  방관기(外方官妓) 긔 아니 어려우며 양가녀(良家女) 복첩(卜妾)하면 그중에 낫건마는 안마루 발막짝과 방안에 장옷귀가 사부가(士夫家) 모양이 저절로 글러가네.

  아무리 늙고 병들어도 규모(規模) 지키기는 정실(正室)인가 하노라.

 

**집안을 다스리는 일은 정실(正室)을 중심으로 기강이 서야 한다는 제가(齊家)의 도리를 말하고 있다. 종첩은 기강을 해치고, 기생첩은 중문 안에 외방의 관기가 들락거려 평안치 못하며, 양가녀 첩은 안마루의 마른 신발과 방안의 장옷 귀퉁이에서부터 사대부집의 모양을 허문다고 했다. 그래서 늙고 병들었더라도 정실이 집안의 질서와 규모를 다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4> 사나이의 이별 눈물

 

  뉘라서 이르기를 눈물이 간사타노.

  하고한 이별에 이별마다 눈물이랴.

  두어라 이별하는 날은 다 각각 정(情)이니라.

 

**이별하는 슬픔을 표현한 작품이다. 남자가 눈물을 흘리는 것이 점잖지 못하지만, 이별 중에도 정든 님을 이별할 때에는 눈물이 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5> 담 안의 노류장화

 

  담 안에 섰는 꽃이 모란인가 해당화(海棠花)인가.

  희뜩 발긋 피어 있어 남의 눈을 놀래인다.

  두어라 임자 있으랴 내 꽃 보듯 하리라.

 

**담 안에 핀 꽃을 넘겨다보는 내용이다. 이른바 노류장화(路柳墻花)를 감상하는 것이니 기생을 보고 즐거워하는 것이라 하겠다. 담 안에 희뜩 발긋 피어 있는 꽃은 모란인지 해당화인지, 다 좋고 놀랍지만 먼저 보는 게 임자니 내 꽃처럼 보고 즐기겠다는 것이다. 솔직해서 좋다.

<6> 밤 농사는 혼자 지어야

 

  잔솔밭 언덕 아래 굴죽 같은 고래논을

  밤마다 쟁기 메워 물부침에 씨지우니

  두어라 자기매득(自己買得)이니 타인병작(他人幷作) 못 하리라.

 

**이건 자작농의 농사짓기를 읊은 것 같지만 사실은 성희(性戱)를 묘사한 작품이다. 논을 갈아 씨를 뿌리고 남과 함께 짓지는 못한다고 하여 농염하고 구체적인 성행위를 농사짓기에다 빗대어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7> 밤중만 드나드는 저 군로

 

  셋괏고 사오나온 져 군로의 쥬정 보소

  반룡단 몸똥이에 담벙거지 뒤앗고셔 좁은 집 내근(內近)한대 밤듕만 들녀들어 자우(左右)로 츙돌하여 새도록 나드다가 제라도 긔진(氣盡)턴디 먹은 탁쥬 다 거이네

  아마도 후쥬를 잡으려면 져놈브터 잡으리라

 

**이것도 성행위에 대한 묘사다. 셋괏다는 아주 드세다는 의미이며 군로는 죄인 다루는 일을 맡아보는 조선시대 군대의 병졸을 말한다.

굳세고 사나운 군졸은 남자 성기를 비유한 건데, 그게 주정을 부리면 어찌되겠나. 반룡단 몸똥이 덤벙거지 뒤로 젖힌 모습 역시 남자의 성기를 해학적으로 표현한 것. 좁은 집의 내밀한 곳은 물론 여성의 성기를 지칭한 것이다.

좁은 집의 내밀한 곳으로 달려들어 행패를 부리다가 기진맥진해 먹은 탁주를 토하고서 주정을 부리는 놈이니 저놈부터 잡아야 한다고 했다. 탁주는 막걸리 빛깔인 남자의 정액을, 후주는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고 정신없이 술주정하는 것을 뜻한다. <계속>

[출처] 사랑 시조· 성 시조 <6>|작성자 fusedt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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