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월의 시조/인물편· 찬시조

세덕사 (世德祠)에서

채현병 2010. 3. 16. 00:18

 

                                                                                                     < 세덕사 현판 > 

 

               세덕사 (世德祠)에서

                                                                          海月 채현병

 

 

               어버이  떠받드니  모든 이  뒤 따르며

               아들을  가르치니  나라의  기둥이라

               겨레의  밝은 빛으로  반짝이는  저 은결

 

 

 

 

 

 

 

 

 

                               세덕사(世德祠)에서

 

 

온마흔 번째 한가락 모임

                  때 : 4343(2010)년 3월 7일, 일요일, 개임

                            곳 : 세덕사(世德祠)-충청남도 아산시 배방면 중리

 

 

 

오늘은 참으로 감개무량한 날이다. 왜냐하면 우리 한가락 모임에서 진행하는 충신 찾기 월례행사가 오늘로써 만 20년, 240회가 되는 매우 뜻 깊은 날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이 행사에 함여한지 겨우 2년 밖에 되지 않았어도 새로운 감회가 이렇듯 새로운데 여러 선배 어르신께서야 오죽하실까? 더욱이 우리 모임의 지도교수이신 中觀 崔權興선생님께서는 그 감회가 얼마나 크시겠는가? 그간 선생님께서 우리 행사에 대한 모든 자료를 꼼꼼히 챙겨 주시고 주도면밀한 계획으로 꾸준히 추진하시어 우리 한가락 모임의 나아갈 길을 찾아 밝혀 주셨다. 또한, 우리나라 충신들에 대한 자료가 부족하던 차에, 올곧게 살다 가신 忠節의 선비 240분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문헌연구와 역사탐방을 통하여 정리하였으니 國史學的 입장에서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 그리고, 그분들의 忠節을 우리 겨레의 순수한 고유어로 時調가락에 얹어 기리시니 國文學的입장에서도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 이 자리를 빌어서 中觀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올리며, 선생님의 높은 뜻을 새기고 한가락의 업적을 되돌아보는 의미에서, 잠시 20년 전으로 돌아가 우리 한가락의 첫 번째 행사를 되짚어 본다.

 

 

맨 처음 행사는 지금으로부터 20년전인, 1990년 4월 29일(일)에 경기도 포천군 신북면 고일리에 모신

麗末節臣 怡軒(成汝完)公의 묘소를 찾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참석인원은 23명(한가락 회원 13명, 육사생도 10명)이었다. 필자는 이헌공(怡軒公)의 時調를 소개함으로써 그 분의 忠節을 되새기고자 한다.

 

                  일 심어 느즌 피니 군자의 덕이로다

                풍상에 아니 지니 열사의 절이로다

                지금에 도연명 없으니 알 이 적어 하노라                  <이헌 성여완>

 

 

그리고, 그 당시에 怡軒公의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해 中觀선생님께서 손수 지으신 시조 한 首도 곁들여 올린다.

 

                          -怡軒墓에서-

                 흐뭇한 곳이거라 솔 하나 가꿔 간다

                 초하루 보름이면 옛 님을 찾아 보고

                 먼 뒷날 기다려볼까 등잔 밑은 어두워                       <중관 최권흥>

 

 

때 맞춰, 20년 전에 출판된 한가락 모임 첫 번째 시조 모음책을 열어보니, 중관선생님의 두루마기 차림과 노산당 총무의 직함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 같은데, 선생님의 검은테 안경과 노산당의 볶은 머리는 온데 간데 없다. 하긴 벌써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하는 세월이 흘러갔으니......

 

 

오늘의 역사탐방 목적지는 東浦(孟希道)公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충남 아산시 배방면 중리에 있는 世德祠이다. 이곳은 우리나라 대표적 청백리이신 古佛 孟思誠 古宅(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民家:1330년 건축)으로 유명하지만 실은 古佛의 父親이신 東浦公의 忠節과 孝誠의 産室인 곳이다.

회원 각자가 대중교통편으로 오전 11시까지 온양 역 맞이방(Waiting Room)에 집결하여 新昌 孟氏 門中의 안내를 받아 목적지로 갈 계획인 우리들은 오전 11시를 조금 넘겨서야 이 곳에 모두 도착하였다.

오늘의 참석 인원을 체크해 보니 중관선생님을 비롯하여 23명(갑고, 서봉, 가산, 설전, 벽고, 고룡, 노산당, 욕천, 형봉, 우인, 정산, 해월, 송암, 이도섭선생님과 서창률, 손영일, 조승일님 그리고 孟氏 門中의 맹주승 회장님, 맹복재, 맹오영선생님, 고룡의 제자인 맹주환, 한병하 학생등)이었다. 우연하게도 참석인원이 20년전 첫 번째 행사 때와 똑 같다. 이 또한 하늘의 뜻인가? 우리 일행은 봉고승합차 2대에 나누어 타고 남동쪽으로 30여분 달려서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차에서 내려 이곳의 지세를 살펴보니 吉地 중에 吉地다. 오대산에서 발현된 차령산맥이 이곳을 지나면서 큰 산봉우리를 흘리니 뒤로는 雪華山이요 앞으로는 排方山이다. 설화산은 촛불같이 뾰족한 산봉우리 다섯이 솟아 있어 五峯山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山의 맥이 북쪽 산기슭으로 흘러 내려오다가 평평한 지형을 이루는데 단정한 左靑龍의 지세와 웅장한 右白虎의 지세가 명당을 호위하고 있는 吉地안에 孟氏 杏壇이 자리잡고 있다.

 

문중어르신의 안내를 받으며 마을 입구에 세워진 旌閭閣에 드니, 대대로 이어 내려온 孟氏 門中의 孝性에 절로 고개 숙여진다. 누대에 걸쳐 朝를 달리하여 하사 받으신 旌閭!... 그래서 이 마을의 별칭까지 孝子里이다.

마을길로 한참을 드니 古宅 앞뜰이 보인다. 돌다리를 건너 앞뜰에 발 딛으니 수백년을 살아온 회화나무 고목이 점잖게 반긴다. 앞뜰을 지나 솟을 대문에 들어서니 정면으로 관리인 사택이 보이고 우측 상단으로 600년이 넘은 은행나무 고목이 우리를 압도한다. 계단을 올라 안뜰로 들어서니 우측으로 孟氏杏壇(사적 109호)의 상징인 雙杏樹(630년생)가 학문과 충절의 기상을 내뿜어서 자랑하고, 좌측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려 건축물인 古宅이 의젓하게 자리잡고 있으며, 그 중간 뒤뜰 단 위로 세워진 世德祠가 올려다 보인다.

 

우리 일행은 우선 세덕사로 올라 참배를 드린다. 이곳은 孟裕, 孟稀道, 孟思誠 세분(3世)의 위패를 모신 祠堂이다. 문중어르신께서 자세히 설명하시는 세 분의 업적을 들으니 新昌 孟氏 집안이 忠孝의 으뜸으로 가히, 名門 中에 名門임이 틀림없다.

세덕사를 나와 北向으로 자리 잡은 古宅의 品格을 자세히 둘러본 후, 우리 일행은 행단 동쪽 건너 동산에 자리 잡은 九槐亭에 올라 잠시 옛 선비들의 풍류를 되새긴다. 古佛께서 거먹소를 타고 부는 피리 소리가 아련히 들리는 듯하다. 동산에서 내려와 행단 입구에 있는 기념관에 들려 여러 유물들을 둘러보았다. 역시 孟氏杏壇의 忠孝精神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귀중한 문화재들이다.

 

 

좀 늦은 점심 식사였지만, 오리 요리전문점 淸風明月에 들려 정갈하고 맛있는 점심식사를 한 후에, 설화산 반대쪽에 자리 잡은 東浦公의 묘소를 참배하고, 맹씨 문중회관에 들려 오늘 행사의 백미인 중관선생님의 講을 들었다. 시간은 벌써 오후 2시 반을 가리킨다.

강의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世德祠 ; 孟東浦公>

諱-希道, 新昌人, 考諱-裕이며, 윗대는 중국에서 전래

충숙왕 복위 6년 出生, 공민왕 14년 18세로 문과에 등과 한림학사 修文殿 提學. 여흥왕(우왕) 14년 최영장군 순절 후 벼슬을 버리고 한산으로 숨었다가 다시 아산으로 이사. 맹씨 행단을 열어 후학에 힘쓸 때, 新朝에서 벼슬을 내렸으나 거절하심. 거문고와 더불어 산수(山水)를 사랑하고 학문에 전념하여 後學을 길러내니, 遠近의 학자들이 모두 다 따르심. 지극정성으로 어버이를 섬김에 감응하여 공양왕이 旌閣을 내리시고, 新朝에서도 다시 旌閭를 내려 표창하며 東國新續 三綱行室圖에 올림. 新朝 32년에 88세로 돌아가심.

 

중관선생님의 講이 끝나고 선생님께서 지으신 東浦公 讚詩인?七言律詩‘를 새기고, 時調?세덕사에서’를 시조창으로 읊는다. 오늘따라 회원들의 낭랑한 소리가 메아리 되어 雪華山을 휘돌며 봄빛을 재촉한다. 雪華山 봄빛따라 올 곧은 忠節도 보이고 時調가락도 보이니 ‘봄’은 봄인가 보다.

 

 

이제, 이쯤에서 오늘 행사의 마지막 장을 닫으며, 문중 어르신들의 배웅을 받고 귀경길에 오른다. 가슴 뿌듯한 기쁨과 함께 다가온 봄기운을 봉고승합차 등받이에 깊숙이 묻고서......

이로써, 20년의 기나긴 세월동안 한번도 거르지 않고, 忠節의 선비정신을 우리의 가락인 시조로 기려오신 중관선생님의 공덕과,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나갈 한가락 모임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며 오늘의 기록을 마무리 한다.

 

                                                                                           - 글 사진,  해월 채현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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