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월의 시조마루/현대시조

제3회 천강문학상 시조부문 수상작 및 심사평

채현병 2011. 9. 18. 10:34

 

제3회 천강문학상 시조부문 대상

 

           누이의 강

     - 국립중앙박물관 백자*

                                                송 영 일

 

솟대 위에 떠오른 달

오롯하게 품고 있다.

그림자 이운 자리 여백으로 남겨 놓고

덜 아문

생채기 하나 물비늘로 반짝인다.

 

많은 날 달구었을 

뜨거움을 식히려고

사초史草 적신 은하수를

온몸에 머금은 채

별빛을

일렁이고 있는 유백색의 저 여인.

 

주고받는 눈길 위에

울컥, 울컥거리는

가부좌한 시간만큼 한 생을 수절하고도

언제나

염화미소 짓는, 우리 누이 저기 있다.

 

* 유물번호 신수(新收) 2587 백자항아리. 은은한 백색 유약이 발라져 단아한 분위기와 기품을 자아내며 부피감이 뛰어나고 안정감이 있는 형태이다.

 

 

 

  

제3회 천강문학상 시조부문 우수상

 

       아홉굿 의자마을

                                                       김  진

 

오빼미 숲 까마귀가 가오가오 보채는 길  

놀멍 쉬멍 올레 따라 천 개 의자 놓여 있다  

섯다판 아홉 끗 같은 미망 다 털어낸 듯

 

옹두리 선 관절마다 류머티즘 앓는 폭낭* 

배낭이 짓누르는 여정 그 아래 잠시 풀면

한 생의 절정을 맞는 은발 억새 눈부시다

 

가늠 못할 내 길에도 저런 의자 놓였을까 

바람에 등을 밀려 내달리는 구름 너머

오름에 걸터앉은 해가 귤빛으로 익어간다

 

 

* 폭낭 : 팽나무를 일컫는 제주도 토박이말

 

 

 

 

 

제3회 천강문학상 시조부문 우수상

 

               사과 3

           실업의 날들

                                               박혜란

 

사과의 힘줄들이 벌레를 키운다

더듬이를 접고 보낸 벌레의 일생이  

사과의 속살을 타고

조용히 정리된다  

 

방 하나를 갖는 것이 꿈이라던 벌레들

서로가 짓이길수록 향기는 더 지독하다

하루를 마치고 나면

늘 태아처럼 웅크렸다

 

도려낸 가장자리가 물컹하게 무너진다  

툭- 하고 버려지는 벌레들의 잠자리

벌레가 눈을 감는다  

한 자리가 또 정리되었다  

 

 

           제 3회 천강문학상 시조부문 심사평

시조의 내일을 밝혀주는 작품들

 

 이 땅의 문학은 역사와 더불어 더욱 높은 봉우리와 깊은 물길을 열어왔다. 저 임진, 정유 왜란이 조선왕조의 사직을 송두리째 흔들 때 의령고을의 큰 선비 망우당 곽재우 선생이 구국의 창을 들고 분연히 일어나 신출귀몰의 전술과 용맹으로 왜군을 격퇴하는 무공을 세웠다. 그로부터 4백여 년을 넘어 의령군에서 망우당 장군이 왜적들을 두려움에 떨게 한「천강용의」에서 이름을 따서「천강문학상」을 제정한 것은 우리 문학계의 대 경사라 하겠다.


 예심을 거쳐 올라온 26명의 작품을 거듭 읽고 가려서 송영일의「누이의 강」외, 김진의「아홉 굿 의자마을」외, 박혜란의「사과3」외, 이덕주의「골리앗 크레인」외,김종훈의「대동여지도」외. 를 수상작 후보로 올려놓고 다음과 같이 대상, 우수상을 선정하였다.


 대상「누이의 강-국립중앙박물관 백자 」(송영일)은 인류 앞에 한국의 미를 뽐내는 조선백자 달항아리를 오브제로 활달한 시상을 펼치고 있다. 앞서 간 시인들이 찬탄했던 아름다움의 묘사에서 벗어나 백자가 담고 있는 시간과 공간을 새특한 감성으로 그려내고 있다. 특히 셋째 수에서 보여 준 “가부좌한 시간만큼 한 생을 수절하고도/ 언제나/ 염화미소 짓는. 우리 누이 저기 있다” 의 말솜씨는 시조의 가락을 놓치지 않으면서 시의 품격을 잘 살려내고 있다. 오늘의 시조 시단에 새 바람을 일으킬 신인을 만나는 기쁨이 크다.


 우수상「아홉굿 의자마을」(김진)은 제목에서 주는 인상부터가 생경하여 시적 긴장감을 준다. 화자는 제주도 둘레길에서 천 개 의자가 놓인 풍경을 만난다. “놀멍 쉬명” “폭랑” 등 제주도 방언을 섞어가며 한바탕 길찾기 놀이를 하고 있다. “섯다판 아홉끗 같은 미밍 다 털어낸 듯” “한 생애 절정을 맞는 은발 억새 눈부시다” “오름에 걸터앉은 해가 귤빛으로 익어간다”의 종장들이 시조미학의 정수를 보여준다. 또한“가늠 못할 내 길에도 저런 의자 놓여 있을까”가 전해주는 “길”과 “의자”의 관계설정이 키워드로 시의 중심을 잡고 있다.


 우수상「사과3」 - 실업의 날들(박혜란)은 부제가 말해주듯 “사과”를 소재로 화자의 삶의 내면성과 중의적으로 시를 풀어가고 있다. “사과의 힘줄이 벌레를 키운다”로 시의 첫줄을 열고 “벌레가 눈을 감는다/ 한자리가 또 정리되었다”로 셋째  수 종장으로 마감하기까지 “사과”로 등장하는 화자와 “벌레”로 상징되는 일상의 상처가 잘 맞물려가고 있다. 사물의 외연성이 아니라 내포성이 주는 시의 감도를 읽게 된다.


「골리앗 크레인」외(이덕주)와 「대동여지도」외(김종훈)도 각기 글감의 특성에 맞게 완성도를 갖춘 작품이었으나 위의 수상작품에 상대적으로 밀렸음을 밝혀둔다. 오늘의 시조가 어디에 와있는가에서 한걸음 앞서나가고 있음을 읽게 된 것이 이번 심사의 큰 수확이었다.

시조 부문 심사위원
                 시조시인 김교한
                 시조시인 이근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