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월의 시조마루/현대시조

2012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모음(13개 신문사)

채현병 2012. 1. 6. 00:23

 

 

***2012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2012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외계인을 기다리며

                                    양해열

 

끽해야 20광년 저기 저, 천칭자리

한 방울 글썽이며 저 별이 나를 보네

공평한 저울에 앉은 글리제 581g*!

 

낮에 본 영화처럼 비행접시 잡아타고

마땅한 저곳으로 나는 꼭 날아가리

숨 쉬는 별빛에 홀려 길을 잃고 헤매리

 

녹색 피 심장이 부푼 꿈속의 ET 만나

새큼한 나무 그늘에서 달큼한 잠을 자고

정의의 아스트라에아, 손을 잡고 깨어나리

 

비정규직 딱지 떼고 휘파람 불어보리

낮꿈의 전송속도로 밧줄 늘어뜨리고

떠돌이 지구별 사람들 하나둘씩 부르리

 

*생명체가 존재하기에 적합한 조건을 갖춘‘또 다른지구’가 골디락스존 (GoldilocksZone)에서 최근에 발견되었다.

 

당선소감_"독학은 막막했다…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내다"

 

  "달이 오르면 배가 곯아 배곯은 바위는 말이 없어/ 할일 없이 꽃 같은 거 처녀 같은 거나/ 남몰래 제 어깨에다 새기고들 있었다// 징역사는 사람들의 눈 먼 사투리는/ 밤의 소용돌이 속에 파묻힌 푸른 달빛/ 없는 것, 그 어둠 밑에서 흘러가는 물소리// 바람불어……아무렇게나 그려진 그것의/ 의미는 저승인가 깊고 깊은 바위 속 울음인가/ 더구나 내 죽은 후에 세상에 남겨질 말씀쯤인가"

  가락이 살아 있는 가곡, "기다리는 마음(장일남 작곡)"의 노랫말을 쓰신 고 김민부 선생님의 1958년 신춘문예 당선작 "균열"의 전문이다. 이 시(詩)에서 신운(神韻)을 느끼신 어느 대시인께서 어느 날 나에게 시조를 권하셨다. 그때 나는 판소리 서사시를 쓰면서 중중모리 휘모리 등의 빠른 박자에 4·4(3·4)조와 7·5(5·7)조의 결합을 시도하고 있었다. 먼저 그분의 시조 사랑과 혜안에 고개 숙여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독학은 힘들고도 막막했다. -이건 결코 혼자의 힘으로 무엇을 해보겠다는 치기 어린 오기가 아니다.- 나는 시(詩) 속의 섬, 전남 순천만 근처에 살고 있다. 소위 '중앙'이란 곳에서부터 너무 멀어 '눈 도둑질'해가며 혼자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부족한 작품을 올려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과 조선일보사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너무 기뻐하시는 아버님과 '수수'라고 부르는 사랑하는 두 딸과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내다.

 

▲1963년 전남 순천 출생▲순천대학교대학원 국문과 석사 수료

 

<심사평>   환상을 현실적으로 녹이는 힘이 일품

 

  신춘의 고열이 식어갈 즈음, 누군가는 비상을 할 것이다. 온갖 갈망과 절망과 희망의 교신 끝에 터진 시를 물고. 물론 시조는 정형이라는 제련을 다시 뜨겁게 거쳐야 살 수 있다.그런 열병의 궤적을 읽는 즐거움이 컸다. 

  부적절한 말의 넘침이나 개념 없는 형식의 어긋남이 간간 보였지만, 율격과 이미지의 자연스러운 조합과 활달한 시상을 펼쳐낸 응모작이 많았다. 특히 박성규, 윤지후, 이병철, 이윤훈, 조예서의 작품은 끝까지 고심을 거듭하게 했다. 다양한 제재와 참신한 발상 등 새로운 시조 세계를 열어갈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었다. 하지만 시상과 형식의 밀도 있는 구조화나 세계 인식의 폭, 균질성 등에서 당선작에 조금씩 못 미쳤다.

  당선작은 현실인식과 상상력의 결속이 시원 발랄하다. 이미지와 율격의 능숙한 조직으로 구(句)와 장(章)맛을 살리며 단형의 구조미도 돋운다. 환상을 현실적 맥락 안에 녹여내는 힘 또한 일품이다. 거기에 ‘비정규직 딱지 떼고 휘파람 불어보리’에 머물지 않고 ‘떠돌이/지구별 사람들/하나둘씩 부르리’로 나아가며 노마디즘 정신 같은 꿈의 건강성과 낭만성을 곁들였다. ‘초인’ 아닌 ‘외계인을 기다리’는 오늘을 살면서 배제당한 현실 속의 또 다른 ‘외계인’ 같은 ‘떠돌이’들과 함께하려는 자세와 신인다운 패기도 크게 보았다.

  당선을 축하한다. 양해열 시인, 부디 시조단의 새로운 ‘글리제 581g’으로 힘차게 날기를!

                                                                                                               정수자·시조시인

 

 

<2012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눈뜨는 화석 천마총에서

                                                            황외순

 

소나무에 등 기댄 채 몸 풀 날 기다리는

천마총 저린 발목에 수지침을 꽂는 봄비

맥 짚어 가던 바람이 불현듯 멈춰선다

 

벗어 둔 금빛 욕망 순하게 엎드리고

허기 쪼던 저 청설모 숨을 죽인 한 순간에

낡삭은 풍경을 열고 돋아나는 연둣빛

 

혀고여 있는 시간이라도 물꼬 틀면 다시 흐르나

몇 겁 생을 건너와 말을 거는 화석 앞에

누긋한 갈기 일으켜 귀잠 걷는 말간 햇살

 

[신춘문예 2012]시조 ‘눈뜨는 화석’ 당선소감

 

당선이 주는 구속마저 즐길 것

 

  집 안에 작은 화재가 있던 날이었습니다. 달리 재산상의 손해를 입지는 않았지만, 가재도구에 달라붙은 그을음을 닦아내야 하는 막막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우리 집 큰아들인 현준이가 위로의 말이랍시고 제게 건넨 말이 있습니다.“엄마, 우리 교수님이 그러시는데 불난 적이 있는 집은 무조건 사고 봐야 된대. 복이 넘쳐서 불이 나는 거래.” 웬 복? 싶은 맘 없지는 않았지만, 어쩌면 좋은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저버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하루가 다 지나가기도 전에 당선 소식이 날아들었습니다.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큰 복이 제게로 왔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꾸만 두리번거리는 저를 보게 됩니다. 보이지 않는 시선들이 함께 따라왔나 봅니다. 천둥벌거숭이 같은 제게 품이 넉넉한 올가미가 씌워진 것 같습니다. 이것마저도 시조를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젠 당선이 주는 이 구속마저도 즐겨야 할 것 같습니다.

   돛도 없이, 표적도 없이 갈팡질팡 노 저어온 시조의 길. 아직은 갈 길이 더 멀다는 것을 압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고 응원의 손길 보내주신 두 분 심사위원님과 동아일보사에 감사드립니다. 믿음직스러운 시인이 되겠습니다. 아울러 힘든 고비마다 제 눈물 닦아주시고, 지친 등 쓸어주신 우리 쪽방 식구들과 여러 친구들, 따뜻한 내 남편과 두 아이들에게도 고맙다는 말 전합니다.

 

△1968년 경북 영천 출생 △한국방송통신대 청소년교육과 졸업 △경주문예대학 수료 △문열공 매운당 이조년 추모 백일장 장원 △청풍명월 전국 시조백일장 장원 △전국 가사·시조 창작공모전 우수

 

[신춘문예 2012]시조 ‘눈뜨는 화석’ 심사평

 

상상력 깊은 역사 읽기 돋보여

 

  해마다 신춘문예에 문단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신인들에 대한 기대치 때문이다. 그들에게서 내일을 이끌어나갈 뜨거운 열정과 새로운 생각과 올곧은 문학정신을 보고자 함에서다. 아직은 그들이 보여주는 사유의 깊이가 얕고 표현이 서툴더라도 남다른 발상과 용기와 도전이 장차 이 땅의 문학을 풍요롭게 해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예년에 비해 응모자 수나 작품의 수준이 풍요로운 가운데 오직 한 사람의 숨은 보석을 가린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따라서 새로운 재목을 찾는 기준으로 기성문단의 흉내 내기와 시적 동기가 취약하면서 언어 기교에 치중한 작품을 배제하고 시조단의 내일을 이끌어나갈 건강한 시정신에 주목하였다.

  그런 기준에 의해서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이 심순정의 ‘삼각김밥’, 송인영의 ‘물구나무, 멀구슬나무’, 조예서의 ‘어머니의 가을’, 황외순의 ‘눈뜨는 화석’ 등 네 편이었다. 먼저 ‘삼각김밥’은 비유의 새로움에도 불구하고 주제의식이 모호하다는 점에서, ‘물구나무, 멀구슬나무’는 가락의 유려함을 받쳐 주는 메시지 부재로 배제되었다. ‘어머니의 가을’은 어머니의 삶과 가을을 일체화시킨 공감대에도 불구하고 소재의 진부성을 떨쳐내지 못하였다.

  마지막으로 남은 ‘눈뜨는 화석’은 감각적인 언어 구사와 상상력 깊은 역사 읽기를 보여줘 당선작으로 선택하였다. 부장품과 화석을 일체화시키는 과감한 비약마저도 현장시의 한계를 보완하는 역량으로 읽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색깔 있는 자기 목소리를 기대한다.

                                             한분순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장, 민병도 한국문인협회 시조분과회장

 

 

<2012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호박(琥珀) 속의 모기

                              권영하<경북 문경시 점촌중학교>

 

호박 속에 날아든 지질시대 모기 한놈

목숨은 굳어졌고 비명도 갇혀 있다

박제된 시간에 갇혀 강울음도 딱딱하다

 

멈추는 게 비행보다 힘드는 모양이다

접지 못한 양날개, 부릅뜬 절규의 눈

온몸에 깁스한 관절 마디마디 욱신댄다

 

은밀히 펌프질로 흡혈할 때 달콤했다

빠알간 식욕과 힘, 그대로 몸에 박고

담황색 심연 속에서 몇 만년을 날았을까

 

전시관에 불을 끄면 허기가 생각나서

호박 속의 모기는 이륙할지 모르겠다

살문향(殺蚊香) 피어오르는 도심을 공격하러

 

[심사평] “상상력·소재의 확장 돋보여” 

 예심을 통과한 작품들은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만큼 일정한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오히려 지나치리만큼 감각적인 언어유희가 메시지를 놓치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고개 숙인 농심을 일으키고 농업인의 입지를 개선하고자 하는 <농민신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농업인의 애환을 대변할 만한 작품이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 아쉬움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최종적으로 남은 작품은 <삼효문을 읽다> <하얀 종이 집> <호박 속의 모기> 세편이었다. <삼효문을 읽다>는 감각적인 표현에서 돋보였으나 전개의 상투성이 거슬렸고 <하얀 종이 집>은 시적 은유의 깊이가 두드러지면서도 주제 전달의 한계가 지적되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호박 속의 모기>를 당선작으로 합의하였다. 이 작품은 행간마다 상상력의 힘이 느껴지고 소재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다. 함께 보낸 작품에서의 다양한 시상과 시어의 건강성 또한 신뢰를 보탰다.

  시를 쓰는 일은 관찰과 사색, 사유를 통한 세상 읽기에서 얻은 정신적 에너지를 문자의 힘을 빌려 독자에게 전달하는 수단의 하나다. 근년에 투고되는 신춘문예 작품들을 보면 표현에 치우쳐 그 정신의 깊이가 자꾸만 얕아짐을 느낄 수 있다. 이제 당선자는 이 점을 유념하여 시조의 숲을 건강하게 하는 나무로 자라나기 바란다.

                                                              심사위원=민병도<시조시인>, 백이운<시조시인>

 

 

<2012 아시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우포 왕버들  

                                          민 승 희

 

살얼음 정수리에 꽃대하나 벌고 있다

서리 내린 가지마다 동안거 푸는 버들

이른 봄 풍경소리가 우포늪을 깨운다

 

적멸을 꿈꾸는가, 가시연 마른 대궁

깃을 턴 휘파람새 푸른 정적 깨트리면

하르르 이는 바람에 물비늘이 일어난다

 

감았던 눈을 뜨면 문빗장이 열리듯

희뿌연 이내 걷고 우뚝선 수마노탑

층층의 뼈대하나가 하늘을 받쳐 든다

 

버들가지 필 때마다 옥개석도 자라나고

금강경 피워 물듯 초록 장삼 두른 나무

그 앞을 도는 사람들 부처마냥 환하다

 

 

 

<2012 영주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아바타 한 켤레                      

                                           문 제 완 

 

  

잠이 깬 새벽녘에 물끄러미 바라보니

현관 쪽 신발들이 제 멋대로 잠들었다

고단한 입을 벌리고 코를 고는 시늉이다 

 

늘 그렇게 아옹다옹 하루를 부대끼다

저들도 가족이라 저녁에 모여들어도

서로가 지나 온 길을 묻는 법 절대 없다 

 

오고 가는 내 모든 길 묵묵히 따르느라

굽도 닳고 끈도 풀린 가여운 내 아바타여

부푸는 밤공기를 안고 나처럼 누웠구나

  

[심사평]

서정의 진경과 흥미로운 상상력 

 

  여전히 시가 ‘금’이 되지 않는 오늘의 시대에도 신춘문예를 서성대는 영혼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 물질이 해결하지 못하는 상당한 부분을 문학이 위로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영주신춘문예 역시 예년에 비해 작품의 양과 질이 부쩍 늘었음을 밝힌다.

  사유는 서정의 살이요, 서정은 사유의 힘줄이라서 우리 몸속에 거부감 없이 들어와 말의 개념을 정당화하고 언어에 생명을 불어 넣는다. 이번 심사도 주제의 밀도와 짙은 서정성에 바탕을 둔 작품을 눈여겨보며 인생의 애환을 통해 서정의 진경을 얼마만큼 담아냈는가에 초점을 두었다.

  진주와 남강, 비봉산의 가을 정경을 팔검무로 묘사, 시조의 장과 장을 퉁소가락처럼 뽑아낸 김재길의 <새벼리 戀歌>, 하루 종일 우리의 정신과 몸을 고스란히 이끌고 다니는 신발이야기를 풀어낸 문제완의 <아바타 한 켤레>, 섬 島를 악보의 음표, 으뜸음자리와 높은음자리 ‘도’로 빗대어 다시 어머니의 무량한 사랑으로 거듭 앉힌 서상규의 <섬의 수의>, 폐지를 수거하여 생계를 꾸려가는 초로의 사내를 통해 연민과 암울한 현실 세태를 짚어낸 이우식의 <빙벽氷壁>, 낡았으나 비루치 않고 해졌으나 허술치 않은 섬마을의 풍경을 담담하게 관조의 자세로 엮어낸 천유철의 <섬마을 여행길>, 지병으로 병원을 오가는 환자의 투병기록 속에 혈육의 애틋함을 진솔하게 녹여낸 허은호의 <햇살 한때>가 최종으로 올랐다.(가나다 순)

  작품들이 보여주는 각각의 개성과 고른 호흡으로 심사에 상당한 고심이 있었음을 밝힌다. 그 중, 끝까지 따라와 선자들의 심금心琴을 튕긴 문제완의 <아바타 한 켤레>를 맨 윗자리에 놓았다. 온종일 주인의 행적을 낱낱이 알고 있으면서도 ‘서로가 지나온 길을 묻는 법 절대 없다’는 아바타의 단호한 내면세계를 흥미로운 상상력으로 풀어냈다. 사물의 실체를 바탕으로 하되 견고한 현실 감각과 자기심화과정에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아울러 함께 투고된 다른 작품에서 보여준 일관성과 서정의 힘도 한 몫을 했다. 어딘가 불편함을 주는 시가 마침내 시의 영토를 확장한다는 말에 공감하면서 다량의 조미료 맛이 아닌, 토속적인 맛을 낸 작품이 시조의 미래를 지켜 가리라 믿는다.

  당선자에게 다함없는 격려와 박수를 보내며 최종에 오른 다섯 분께도 거경궁리居敬窮理의 자세로 용의 해를 열어가길 바란다.

                                                                        - 심사위원 이승은(글). 강문신

 

 

<중앙시조연말장원>

 

     역에서 비발디를 만나다

                                              유 영 선

   

이번 역은 여름역 초록그늘 여름역입니다

온도가 조금 올라도 모세혈관 불붙는 사람

심장을 던져버리고 내리시면 됩니다

 

눈빛마다 불이 붙는 가을역 곧 도착 합니다

南도 北도 한때는 저리 붉어 아팠는데

타는 몸 놓아버리고 바람처럼 내리세요

 

가슴에도 얼음 얼어 겨울역도 투명 하군요

눈물의 달빛 사다리 환승할 분 내리세요

초승달 허리에 피는 살풋 그리움 안고

 

다음 역은 꽃잎 날리는 아지랑이 봄 역입니다

노랑제비 애기똥풀 별빛보다 밝은 마음

손끝에 하늘 물 들 때까지 활짝 펴고 날으세요

 

 

 

<심사평>

소통 꿈꾸는 따뜻한 마음, 신인다운 발상 돋보여 

  중앙신인문학상 시조 부문은 매월 신문 지면에서 검증된 이들만 응모할 수 있는 최고의 시조 등용문이다. 1차 관문을 통과한 27명 141편의 작품을 놓고, 다음 세대의 주역이 될 신인의 이름에 부응할 만한 신선함과 대성 가능성에, 기교보다 패기와 투철한 시정신의 사고와 감각에 주목하기로 했다.

 심사위원들은 각자 4~5명의 작품을 선고한 뒤 논의 끝에 때깔만 화려하고 내용이 공허한 작품과 관념 서정, 제재가 진부한 작품을 걸러낸 뒤 최종적으로 ‘은행나무 친견(親見)’ ‘마하’ ‘고래역(驛)’ ‘역에서 비발디를 만나다’ 등을 놓고 다시 난상토론을 벌였다.

 그 결과 유영선의 ‘역에서 비발디를 만나다’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이 시조는 다소 미흡한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나 몰개성하고 정석화된 기존의 시풍에 편승하지 않고 나름의 개성을 획득하고 있다. 단절된 세상과 소통을 꿈꾸면서 마음 시린 이들의 삶을 따뜻하게 감싸 안아 희망의 봄으로 안내하는 현실 서정의 참신함과 신인다운 발상이 돋보였다.

 ‘은행나무 친견’과 ‘마하’는 감각과 이미지 처리가 물 흐르듯 유연했으나 관념 서정이, ‘고래역’은 패기가 돋보였으나 시조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종장 처리의 안이함이 지적됐다. 최종심에 오른 이들의 정진을 기대한다.

                      ◆심사위원=오승철·오종문·이종문·강현덕(대표집필 오종문)

 

 

<2012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비브라토

                                               김석이

 

호수 위에 떠 있는 백조의 발밑으로

수없이 저어대는 물갈퀴의 움직임

점선이 모여서 긋는 밑줄이 떠받치는 힘

 

차선 위를 달리는 자동차의 바퀴들

꿈틀거리는 지면을 가속으로 쫙쫙 펴는

평평한 길 아래 있는 주름들의 안간힘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의 손가락들

소리의 맹점 찾아 이리저리 누를 때

닫혔던 물꼬를 틀며 길을 여는 강물소리

 

부딪쳐야 파문으로 밀려오는 그림자

짓눌려야 짓물러야 풀어지는 소리 가닥

발끝에 온힘을 모아 중심을 잡고 있다

 

 

◆당선소감 - 신춘! 봄이 한걸음씩 다가오네요

 

  지나온 날들이 발 밑에 엎드려 길이 되네요.

낙엽처럼 떨어져 나간 하루하루가 추운 등을 감싸줍니다. 낙엽은 떨어진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었네요. 겨울의 밑둥치에서 자라고 있는 초록의 꿈을 바람이 흔들어 깨웁니다. 신춘!

  봄은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고 있었네요.

바위에 짓눌려 있던 시조의 씨앗을 흔들어 깨워주신 현대 문화센터 시창작반 권애숙 선생님께 큰절 올립니다. 바위 뒤에 숨어 주춤거리는 저를 앞으로 나오게 해 주신 매일신문사와 심사위원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비브라토로 시조의 싹을 틔워 짓눌렀던 바위까지 감싸 안는 숲을 이루도록 꾸준히 노력하겠습니다.

  한 걸음 뒤에서 무심한 척, 버팀목이 되어준 남편께도 감사한 마음 전합니다. 그리고 믿음의 눈빛으로 끝까지 엄마를 응원해 준 영민아, 예슬아 꿈은 역시 이루어지기 위해 존재한다는 말, 해주고 싶구나. 오늘도 열심히 창작의 길을 열어가는 문우들에게 문운이 깃드시길 바라면서, 2012년 새해에는 모두에게 희망의 물결이 밀물처럼 밀려들기를 기원 드립니다.

 

김석이(본명 김인숙) 1959년 부산 출생 동의공업대학 식품공업과, 방송대 초등교육과 졸업

동주대 음악과 졸업 부산문예창작아카데미, 영남여성문학회 회원

 

<2012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 심사평>

주제의 깊이·시적 긴장 모두 제대로 구현

 

  화려한 등단의 길인 신춘문예에 사설시조가 당선된 적은 한 번 있다. 그러나 단시조가 당선된 예는 없다. 특기할 점은 응모작들 중에 단시조 편수가 의외로 적다는 사실이다. 이는 시조의 본령에 충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도 되고, 역량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연시조여야 한다는 생각에 붙들린 측면도 있다. 단시조 한 편에 못 담을 소재는 없다. 빼어난 단시조가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나올 때 시조는 새로운 물꼬를 트는 전기를 마련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최종심에서 거론된 이로는 심순정, 이한, 김석이 제씨였다. 심순정 씨의 '꽃의 부호'는 감각과 새로움이 있었으나, 전체적으로 메시지의 전달이 명쾌하지 못하였다. 내공은 쌓였는데 비해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데 실패하고 있는 점을 면밀히 새겨보아야 할 것이다. 이한 씨의 '운림산방에서' 외 네 편의 작품들은 주목할 만하였다. 모두 고른 목소리를 유지했고 참신한 감각과 주제 구현 능력이 돋보였다. 그런 까닭에 오랫동안 고심하게 하였다. 그러나 개성적이고 새롭고 산뜻한 느낌을 주는 강렬한 에스프리에 비해 작품 곳곳에서 음보의 파탄을 보인 것이 아쉬웠다. 시조는 엄연한 정형시이므로 기율 곧 정형률을 잘 숙지하고 형식을 자유자재로 부리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하여 김석이 씨의 '비브라토'를 당선작으로 뽑는다. 신선한 제목에서 비롯된 시적 긴장감이 네 수 전편에 고르게 깔려 있다. 음의 떨림 현상인 ‘비브라토’라는 음악 용어에 착안하여 결국 사람살이가 어떠해야 함을 구체적이면서도 명징하게 육화한 '비브라토'는 ‘물갈퀴, 자동차 바퀴, 바람의 손가락들’을 동원하여 주제를 탄력적으로 잘 구현하고 있고, 끝수에서 인생에 대한 품격 높은 자세를 보인다. ‘짓눌려야 짓물러야 풀어지는 소리 가닥’이라는 대목에서 고개를 절로 끄떡이게 하는 깊이를 획득하고 있는 점을 특히 눈여겨볼 일이다.

  이 영광에 값하는 혼신의 정진이 있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이정환(시조시인)

 

 

<2012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연암, 강 건너 길을 묻다

                                                   김종두

 

차마 떠나지 못하는 빈 배 돌려보내고

낯선 시간 마주보며 갓끈을 고치는 연암,

은어 떼 고운 등빛에 야윈 땅을 맡긴다.

 

근심이 불을 켜는 낯선 세상 왼 무르팍,

벌레처럼 달라붙은 때아닌 눈발 앞에

싣고 온 꿈을 물리고 놓친 길을 묻는다.

 

내일로 가는 길은 갈수록 더 캄캄해

속으로 끓는 불길 바람 불러 잠재우면

산과 들, 열하熱河를 향해 낮게낮게 엎드린다.

 

[서울신문 2012 신춘문예] 시조 심사평

세련된 감각적 재단 돋보여

▲ 심사위원 한분순(왼쪽·시조시인), 이근배(시조시인).

 

  서사의 능란함과 새로운 화법을 찾으려는 탐색이 두드러진 해였다. 무게 있는 제재를 골라 그 본질에 낱낱이 접근하는 심도와 짜임새 좋은 남다른 전개를 보임으로써 사색과 습작의 치열함을 짐작하게 만든다. 다만 안전하게 당선작에 오르려 번뜩이는 시도 대신 부드러운 변주만을 구사한 작품들도 있어 그 솜씨의 잠재력에 아쉬움을 느낀다.

  올해 시조 부문은 양적으로 늘어난 응모 편수만큼이나 질적인 진화 또한 돋보여 신진들의 필력에 대한 설렘을 갖게 한다. 고전적 원형과 현대적 미학을 동시에 이루어야 하는 시조에서 이처럼 적극적인 관심은 장르의 신선한 동력이 될 것이다.

  당선작은 김종두의 ‘연암, 강 건너 길을 묻다’이다. 시조의 본질을 지키면서 감각의 세련된 재단으로 수려한 완성도를 확보했다. 주제로 정한 시점이 과거이나 박제된 이야기로 흐르지 않고 동시대와 교감할 수 있도록 생기를 불어넣은 형상화가 뛰어났다. 기승전결에서도 매끈한 흐름으로 긴 호흡의 이야기를 탄탄하게 직조하여 주시할 만한 정점에 이르렀다.

  최종심에 오른 작품들은 장윤정의 ‘물의 사원 짓다’, 박성규의 ‘별을 쓸다’, 강송화의 ‘교각이 된 금강송’, 방승길의 ‘서해 낙조’이다. 저마다의 솔깃함으로 매료시키는 수작들이었으나 전개에서 표출된 작법의 출중함에 비해 흐릿해진 종장이 안타깝다. 또한 전반적으로 서술에 몰입하여 서정이 다소 희석된 듯하다.

  신춘문예를 위한 어떤 공식은 없다. 정답을 찾듯이 쓰기보다 압도적인 작법을 스스로 만들어 낼 퍼덕이는 창의성을 기대해 본다.

 

 

<불교신문 2012 신춘문예 시조당선작>

      암자에 홀로 앉아

                                                       박 상 주

 

날 좀 때려주오 천년고찰 범종 치듯

안으로 다져놓은 전탑(塼塔)언어 청태(靑苔)눈물

빈 골짜 다 쏟아 붓고 나비 되어 가련다

 

<심사평 (고은 시인)>

청각.시각 대비 살려낸 ‘묘경’

 

 

 

  지렁이’의 담담한 고백체 서술이 인상적이었다. ‘눈물자국’도 덜 설명적이었으면 하는 아쉬움과 함께 제쳐두기 아까웠다. ‘회화나무’의 단단한 솜씨도 그랬다. ‘나를 흔드는 기억들’도 일상의 신산스러움을 냉철하게 그려내고 있다.이런 작품들을 지나서 마지막으로 남은 세 작품이 시부분 ‘세월에 告함’ ‘분원의 강덴 노을의 소각장이 있다’와 시조부문 ‘암자에 홀로 앉아’였다.

  그런데 이것들은 각각 다른 몇편과 함께 보내온 것이어서 그것들을 읽는 동안 그 실력의 속내가 밝혀지는 경험을 했다.결국 시조부문 ‘암자에 홀로 앉아’를 당선작으로 삼았다. 당선작 시조는 종소리와 ‘청태눈물’이라는 청각 시각의 대비를 살려내는 묘경을 이루었다. 다만 ‘때려라’라는 거센 표현이 산사 환경을 작위적이게 했다. 하지만 기승전결이 썩 좋았다. 아쉽게 된 시쪽은 중후한 음조 위에 참신한 언어구사를 한 작품이다. 그러나 한두군데의 휴지부가 거슬리는 현학취미를 자아내고 말았다.

  편집국 벗들의 갑작스러운 부탁을 면전에 사절하기가 쉽지 않아서 이 심사를 맡았다. 바야흐로 흑룡의 새해 <불교신문> 창간시대의 인연을 떠올리며 낯선 선자가 되어 보았다.낙선의 작자들은 더 연마하기 바라고 당선자는 이번의 수준을 뛰어넘는 내일을 지향하기 바란다. 산중이 진언 ‘향상일로(向上一路)’가 왜 있겠는가

 

 

<국제신문 2012 신춘문예 시조당선작>

 

           떠도는 섬

         -어느 독거노인의 죽음-

                                                             유 헌

 

엎어진 숟가락처럼 섬 하나 놓여 있다

막걸리 쉰내 나는 툇마루만 남아서

밤마다 갯바람소리 환청에 떨고 있다

 

느릿느릿 애 터지게 바람이 불어온다

둘이 같이 살아보자 옆구리 토닥이던

파도가 밀려왔던 자리, 절벽이 생겨났다

 

무연히 쓸어보는 방바닥엔 흰머리뿐

파도에 멍든 자리 동백꽃이 새살 돋고

창문을 더듬는 햇살, 하얗게 질려간다

 

칠 벗겨진 양철대문에 파도소리 출렁인다

그물코에 빠져나간 한숨들을 깁는가

오늘도 뱃고동소리 속절없이 지나간다

 

▶약력 1957년 전남 장흥 출생. 광주대 언론홍보대학원 언론학 석사.

   제26회 한국방송대상 다큐멘터리 부문 수상. 현재 목포MBC 국장.

 

 

<심사평>

  우리의 모국어를 풍요롭고 아름답게 가꾸어갈 역량 있는 신인을 뽑는 신춘문예는 선자들의 가슴마저도 기대감으로 부풀게 한다. 금년도 국제신문 신춘문예 응모작들의 수준은 상당히 향상되어 있어서 매우 고무적이었다. 대다수의 작품들이 시조의 정형미학을 잘 체득하고 있어서 안도감을 가지고 심사에 임할 수 있었다.

  우리는 보내온 작품들을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서 읽어나갔다. 엄격하게 걸러내는 작업 끝에 최종적으로 세 분의 작품 '길 너머' '귀성 길' '떠도는 섬'이 남게 되었다. 이 작품들은 문예지에 그대로 실어놓아도 조금도 손색 없을 만큼 두드러진 작품성을 지니고 있었다.

  '길 너머'는 구도자적인 내면 탐색에 천착하고 있는 점이 높게 평가되었으나 '생의 봇짐' '득음'과 같은 관념적인 투어가 아직 가셔지질 못했다. 이렇게 하여 '귀성 길'과 '떠도는 섬'이 남아 마지막으로 경합을 하게 되었다. 이 두 작품은 충분히 당선권에 속하는 수준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 두 심사위원은 어느 작품을 당선작으로 할 것인가에 대해서 장시간 논의를 했다. '귀성 길'은 언어를 섬세하게 다듬는 기법이 탁월했으나 소재의 영역이 확장됨에 따라 한 작품 속에 담고자하는 주제가 넘쳐 응축성이 미진한 감을 주었다. '떠도는 섬'은 독거노인의 죽음이라는 하나의 제재를 집요하게 이미지로 조형하여 현실 문제를 부각시킨 점이 우리의 마음을 더 사로잡게 했다.

  당선을 축하드리며 언어의 조탁에 더욱 힘쓸 것을 당부한다.

                                                                                     심사위원 정해송 전일희(이상 시조시인)

 

 

<부산일보 2012 신춘문예 시조당선작>

 

    탯줄 - 거가대교에서             

                                                            황외순

 

찰싸닥, 손때 매운 그 소리를 따라가면

갓 태어난 핏덩이 해 배밀이가 한창이다

어둠을 죄 밀어내며 수평선 기어오른다

 

비릿한 젖 냄새에 목젖이 내리는 아침

만나고픈 열망하나 닫힌 문을 열었는가

섬과 섬 힘주어 잇는 탯줄이 꿈틀댄다

 

당겨진 거리보다 한 발 앞선 조바심을

여짓대던 해조음이 다 전하지 못했어도

짠물 밴 시간을 걸러 마주 앉은 저 물길

 

<심사평 - 팽팽한 긴장감과 신선한 비유 빛나>

 

  340여 편의 작품을 앞에 놓고 가슴 두근거렸다. 어느 가인이 태어나 3장 6구 민족의

가락에 걸어야 할 영혼의 노래를 숙명으로 받아들일 것인지, 또한 그 울림이 얼마나

깊고 클 것인지 자못 궁금했기 때문이다. 새해 첫날 비상의 몸짓으로, 서투르다 해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새로운 음성으로 노래하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젊고 건강한

시인을 찾아내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쉽게 보이지 않았다.

  인내심을 가지고 '침묵의 무늬' '봄, 우포' '땀나무' '춘향목의 전의' '세한도 앞에서'

'그녀는 임신중' '탯줄' 등을 가려내었다. 그리고 다시 곰곰이 읽으면서 지나치게 정

적이거나 어두운 작품, 새로운 발견의 눈을 보여주지 못하는 작품, 지나치게 산문적

인 작품, 기성시인의 어투가 강하게 드러나는 작품 등을 제외했다.

  결국, 김종연의 '그녀는 임신 중', 김종두의 '세한도 앞에서', 황외순의 '탯줄'이 남게

되었다. 세 편은 나름의 장점을 지니고 있다. 현실을 시화해보려는 김종연의 몸부림은

가치 있는 시도이고, 세필로 그려나간 김종두의 세한도는 오랜 공정의 결실임이 분명

하다. 그러나 언어의 품격이나 소재의 진부함이 끝내 마지막 낙점을 가로막았다.

  거론한 작품에 비해 당선작은 팽팽한 긴장감과 신선한 비유가 확연히 빛났다. 꿈과

희망을 내장(內藏)한 개안(開眼)의 풍경이야말로 새해 아침에 어울리는 가락이기도

했다. 더 많은 노력으로 대성하기를 빌 뿐이다.

                                                                              심사위원 이우걸

 

 

<경남신문 2012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바람의 뼈 - 불일암

                                                             유선철

 

단순한 무대는 화려하고 장엄했다

오롯한 발자취, 죽음마저 연주였다

고요는 달빛을 풀어 그의 뜰 쓸고 갔다

 

모서리 동그마니 묵언에 든 나무 의자

그 아래 하얀 뼈가, 말씀이 묻혀 있다

망초꽃 흔들어놓은 바람이 거기 있다 

 

●1959년 경북 김천 출생 ●경북대 일반사회과 졸업 ●경북대 대학원 정치학과 졸업

●김천중앙중 교사 ●중앙시조백일장 2009년 1월 장원

 

<심사평> 

  임진년 새해를 맞아 또 한 사람의 촉망되는 신인을 배출시키기 위해 우린 신중한 마음으로 심사에 임했다. 대부분의 응모작들은 치열한 습작과정을 통해 일정부분의 성취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정제되지 않은 자연서정과 영탄, 설익은 관조를 드러내는 작품들이 많아 군계일학의 경지를 보여주는 작품에 대한 갈증은 여전히 남는다.

  결심에서 선자의 손에 남은 작품은 송인재의 ‘그 동전, 은유의 무게’, 구애영의 ‘유빙(流氷)을 바라보며’, 최승관의 ‘바다, 그 두려운 갈망’, 유선철의 ‘바람의 뼈’ 등 4편이었다. ‘그 동전, 은유의 무게’는 첫째 둘째 수에선 형식 속에서 담담히 서정을 풀어가는 솜씨에 눈길이 갔는데, 셋째 넷째 수에 오면서 절제를 잃고 감정과잉을 낳아 아쉬움을 남기고 말았다. 함께한 응모작들 역시 그런 약점을 드러내는데 이런 부분을 보완한다면 좋은 시인으로 거듭날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유빙(流氷)을 바라보며’는 적절한 비유를 차용해 와 결빙의 퍼즐처럼 뻗어나가는 심상들에 근접시키려 했으나 시조 특유의 축약과 가락을 잃고 있어 이 또한 단점으로 지적되었다. 맨 마지막까지 거론된 작품으로는 ‘바다, 그 두려운 갈망’과 ‘바람의 뼈’였다. 앞의 작품은 보내온 작품들이 모두 일정한 수준을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음보를 자유롭게 다룰 줄 아는 장점에 눈길이 갔다. 그러나 적확한 이미지를 얻지 못함으로써 주제를 선명히 드러내는 데 실패하고 있어 손을 들어주지 못했다.   

  이에 비해 ‘바람의 뼈’는 시조가 필연적으로 가져야 하는 함축과 가락을 안으로 잘 갈무리하고 있어 안정적으로 정형률을 다스리는 힘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신춘문예용 작품이 아닌 자신의 시를 창작하고 있어 신뢰를 갖게 한다. 이런 안정감은 반대로 날선 시대를 향한 시대정신을 담지 못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도 있다. 그런 당부를 빌면서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민다.

  한국 시조단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어 대성하기를 바라며 축하를 드린다.

                                                                                                      <심사위원 하순희·이달균>

 

 

 <경상일보 2012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애기똥풀 자전거 

                                                                  박성규

 

색 바랜 무단폐기물 이름표 목에 걸고 

벽돌담 모퉁이서 늙어가는 자전거 하나

끝 모를 노숙의 시간 발 묶인 채 졸고 있다

 

뒤틀리고 찢긴 등판 빗물이 들이치고

거리 누빈 이력만큼 체인에 감긴 아픔

이따금 바람이 와서 금간 생을 되돌린다

 

아무도 눈 주지 않는 길 아닌 길 위에서

금이 간 보도블록에 제 살을 밀어 넣을 때

산 번지 골목 어귀를 밝혀주는 애기똥풀

 

먼지만 쌓여가는 녹슨 어깨 다독이며

은륜의 바퀴살을 날개처럼 활짝 펼 듯

페달을 밟고 선 풀꽃, 직립의 깃을 턴다

 

- 1969년 충북 보은 출생- 자영업- 2009년 송강 정철 전국시조백일장 장원 - 2012년 경상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

 

<심사평>

참신한 시적 발상과 시상을 풀어내는 솜씨 자유로워

 

  모국어의 높은 벽을 뛰어넘는 눈부신 도약을 신춘문예 시조에서 본다. 글감 찾기에서부터 말 고르기, 그리고 시조의 틀에 얹힌 가락을 뽑아내는 솜씨들이 해를 거듭할수록 새로움을 더해가고 있다.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들은 이미 일정한 수준의 기량을 갖추고 있어 그 우열을 가리기 위해 거듭 읽어야 했다. 올해는 경주에서 열리는 국제 펜 대회에서 시조가 주제로 채택되어 세계의 문학인들에게 우리 모국어의 정체성이며 한국시의 정체성인 시조의 참모습을 펼쳐보이게 된 만큼 이 땅의 시재가 있는 신인들이 시조쓰기에 골몰하고 있음을 크게 반기지 않을 수 없다.

  당선작 <애기똥풀 자전거>는 시적 발상이 참신하면서도 시상을 풀어나가는 솜씨가 자재롭다. 수명을 다해 버려진 자전거를 한 생명체로 되살려 놓으면서 “애기똥풀”을 등장시켜 빛나는 비상을 이끌어내는 생각의 힘이 4수의 시조에서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다.“색 바랜 무단 폐기물 이름표 목에 걸고”로 운을 떼고서 “페달을 밟고 선 풀꽃, 직립의 깃을 턴다” 의 마무리까지 빈틈이 보이지 않는다. 바로 마지막 종장을 이 시인의 날개 펼 시조의 내일이 되리라 믿는다.

  끝까지 겨뤘던 작품으로 ‘유배의 섬을 간다’ ‘바퀴의 질주’ ‘무당거미의 아침’ ‘먼지의 산란’ ‘늦은 장마’ 등도 각기 기성의 벽을 넘을 역량을 담고 있었으나 한 자리에 밀려났음이 못내 아쉽다.

                                                                                                                <이근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