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월의 시조/해월의 시조 평

2014 창조문학신문 신춘문예 시조부문 당선작 <떨켜> / 심사평

채현병 2014. 1. 2. 09:51

<2014 창조문학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떨켜 / 강에리

 

긴밤을 뽀갠 것은 이별이 아니라네
푸른 들 새겨놓고 강물과 춤도 추고
시간을 통통히 벗겨 그대 둥둥 떠 오네

못다한 언어들이 소리로 한창인데
열기를 털어내며 산천이 불타네요
뜨겁게 빨간 편지를 맑게 피워 가네요

팽팽한 서러움에 충혈된 단풍이라
영혼의 물관으로 깊게도 흔들리다
탁 하고 그리움 털고 나비처럼 날으네

화안한 보름달이 우물에 빠져드네
어둠도 떨고 있는 한밤의 사랑인데
삼경에 푸르게 갇혀 꼼짝달싹 못하네



<심사평> / 채현병 (시조시인)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을 표현하는 아름다운 우리말입니다.

이 세상의 온갖 풀과 나무들은, 봄이 되면 새롭게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 제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래서 '봄'인가 봅니다. 여름이면 광합성작용이 왕성하여 스스로 성장하고 스스로 양분을 비축하여 열매가 주렁주렁 열립니다. 그래서 '여름'인가 봅니다. 가을이면 잎이건 열매이건 마지막 가을빛을 토해내고 떠나갑니다. 그래서 '가을'인가 봅니다.

가을이기에 모두가 떠나갈 준비를 합니다. 식물에게는 떠나갈 준비의 시작이 곧 <떨켜>입니다. 강에리 시인의 시선이 이 <떨켜>에 머물렀습니다. 시인의 시선은 칼끝처럼 예리합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을 타고 흐르는 감정은 엄마의 품속처럼 넓고 깊고 따뜻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말합니다. "탁 하고 그리움 털고 나비처럼 날아가네"라고.
겨울철의 식물들은 꽁꽁 언 동토에 갇혀 겨우겨우 생명만 유지한 채 긴긴 겨울을 납니다. 그래도 그들은 기다립니다. 그들의 핏줄 속에 흐르는 DNA는 이미 겨울의 끝자락에 동남풍이 불어온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말합니다. "심경에 푸르게 갇혀 꼼짝달싹 못하네"라고.

<떨켜>로 시작한 시인의 가을노래는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을 관통하고 영혼을 통하여 우주 속을 유영하지만 정격시조의 율격 속에서 때로는 느슨한 듯, 때로는 촘촘한 듯 생명의 원천으로 회귀합니다. 시인은 예리한 시선으로 파헤치는데 주력하다보니 좀은 지루한 감이 있어도, 끝내는 오랜 경륜을 풀어 이상향을 노래하던 우리네 옛 선비들의 정신세계로 돌아옵니다. 그 많은 응모작 가운데 강에리 님의 <떨켜>를 당선작으로 선정한 까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