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월의 뜨락/서예(한글, 한문)

김성우 화백의 <묵란의 혼합표현방법 예시>

채현병 2015. 5. 2. 13:56

_() 혼합표현 예시

김성우(동양화가)  http://blog.naver.com/sagerain/100123245205


 
 
대학에서 수묵화 강의를 시작하며
수묵화의 본질을 쉽게 전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시도했지만
그중 가장 효과가 높았던 것이 바로 사군자 강의였습니다.
 
그러나 미술계가 바라보는 사군자에 대한 현실은
그리 밝지만은 않습니다.
사군자를 그리는 수묵화, 문인화의 영역은 구태인양 생각되어지고
미술을 전공하는 분들에게서 점점 멀어져갔습니다.
 
 
더욱이 동양화를 전공한 사람들마저도
기초연습과정 정도로 홀대했던 것이 그대로 보여집니다.
이러한 현상은 과거에도 있었기에
사군자의 필요성과 그 가치에 대한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었음에도불구하고
몇몇 소수의 미술인들의 노력으로 지탱해 오는 듯 보입니다.
미술인들의 사군자 전시는 아주 드문 사례가 되어 버렸습니다.
 
 
요즘은 그마저도 팝아트에 밀려 설자리를 잃고 있는 실정이죠.
그저 사군자는 기초 과정 중에서나 경험해 볼만한 것쯤으로 여기곤 합니다.
현재 미술(동양화)을 전공하는 학생들도 사군자를 선택과목으로 배웁니다.
뒤집어 보면 사군자를 배우지 않고도 졸업이 가능하다는 것이죠.
 
그러나 이렇듯 미술인들이 사군자와 거리감을 두고 있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사군자가 현대미술의 주류와는 거리기 멀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현대 미술에 있어서 사군자가 차지하는 위치는 미미하기 그지없습니다.
작품을 판매하는 화상들의 냉냉한 시선도 이런 분위기에 한몫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것이야 유명 근대작가의 사군자 작품보다
20대의 현대미술 신인작가의 작품 가격이 훨씬 높다보니
화상들도 그런 반응을 보일법도 합니다.
 
 
요즘처럼 모든 가치를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판단하는 사회에서
사군자가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분명 사회적, 문화적 관점에서보면 왜곡되어 있다고 볼 수 있으며
현대인들의 보편적 가치판단에 분명 문제가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예술이 생활과 접목하지 못하고 부를 축적하는 경제적 가치로만 평가되는
저급한 문화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선조들이 쌓아오던 문화적 자존심과 역량은 모두 소멸된 채
그저 서양의 언저리에서 떠돌면서 문화적 기생을 하게 될런지도 모를 일입니다.
 
 
흔히들 말합니다.
"우리의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고...
 
그러나 정작 우리의 것은 내팽개치고
잘 포장된 선진국의 문화에만 열을 올립니다.
그네들의 문화는 깊이가 바다같고,
우리의 문화는 시냇물 수준인줄 압니다.
우리의 것 중에 그리 중히 여길만한 것이 뭐가 있냐는 식이죠.
 
 
각 지역별로 문화의 차이는 분명 존재하지만
그 가치를 논하는 기준은 시대마다 다릅니다.
우리는 후대에도 지금과 같은 시각일 것이라는 오판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 그것은 오판입니다.
아니 오판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다양한 자연 환경과
수천년을 이어온 우리 문화는
어느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모습을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의 것이란 말입니다.
 
 
물론 지금의 제 입장에서도 수묵화를
현대미술의 최첨단이라 말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가장 대표적인 현대미술일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조상들이 몸으로 체득하고
가슴으로 경험한 문화적 자존심이
이곳에 담겨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수묵화에 대한 강의를 하면 할수록 느껴지는 것이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심오한 경지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범위가 예술적 가치에 국한하지 않는다는 것도 또다른 매력이지요.
 
 
재료가 복잡하다고 여기지만 사실 이처럼 간단한 재료가 없는 편입니다.
그저 먹과 붓, 화선지만 있으면 가능하니까요.
 
다만 이를 익히기 위해서는 오랜 수련과정이 필요합니다.
또한 그 오랜 기간 동안의 그림은 그저 연습에 불과한 것이 됩니다.
그리고 기법을 익히는 동안은 창의적 사고도 제한받을 수 있습니다.
마치 서예의 오체를 모두 배우는 듯 말입니다.

 
그러나
그 정상은 다를 것이라 확신합니다.
배우는 과정에서 형식을 중히 여긴다고
배우고 나서도
형식이 모든 것을 좌우할 것이란 생각은
너무도 미련한 생각입니다.
 
수묵화를 통한 궁극의 지향점은
예술보다 철학에 가깝습니다.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존재 의미를 되새기며
스스로의 가치를 표현합니다.
 
그것도 '그림'으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