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월의 시조마루/시조학

시조의 형식과 내용 실험이 가져야 할 탄력 / 채천수

채현병 2011. 8. 11. 23:45

 

             [2011여름 대구시조 세미나 원고]


 시조의 형식과 내용 실험이 가져야 할 탄력


채 천 수

1 .시조의 정체성

파괴와 혁명에 대한 열정 없이는 새로운 시는 출현하지 않는다.(최동호)

 이종문은 <단장시조를 다시 생각함>(《현대시학》2011.1)에서 시조의 정형성 확장과 관련하여 ꡒ3장 6구의 기본형을 축소함으로써 시조의 영역을 오히려 확대하는 길도 얼마든지 있을 수ꡓ있다고 주장하였다.

 어떻든 이종문은 형식의 축소가 시조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조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 이종문은 다시 <사설시조를 다시 생각함>(《현대시학》2011.4)을 발표하여 정형시의 변격으로 사설시조의 가능성을 다루면서 형식의 축소가 아니라 형식의 확장이 가지는 문학적 의미를 점검하였다. 특히 그는 사설시조와 자유시의 변별성을 강조하며 사설시조의 고유성을 논하였다.ꡒ사설의 일렁임과 넌출거림을 제대로 타면서, 짤막한 종장에다 초장과 중장의 원심력을 감당하고도 남는 촌철살인의 구심력을 확보하는 등 변별적 요소를 확실하게 지켜간다면, 정형시와 자유시 사이에 위치한 중간 갈래인 사설시조가 설 자리가 그렇게 좁은 것만도 아닐 터이다.ꡓ라고 결론짓고 있다.


위의 이야기는 시조의 형식 축소와 확장에 관한 이야기다. 이종문의 글에 이의를 제기로 이송희의 글 ꡒ시조의 정체성을 위한 몇 가지 문제ꡓ (《현대시학》, 2011. 1. -「단장시조를 다시 생각함」)에 대한 문제제기를 요약하면  한 시대를 대표하던 신라의 향가나 고려의 속요는 당대가 지나면서 자취를 감춘 데 반해, 시조는 새로운 형식적 실험과 변형을 꾀하며 오늘날까지 그 맥을 이어가고 있는 유일한 장르라는 점에서 자부심을 갖게 한다. 우리가 시조를 쓰는 이유는 우리시의 뿌리를 지켜가자는 단결된 의지 때문이기도 하다.

‘지나친’ 형식 실험은 ‘왜 시조인가?’라는 지속적인 의문을 갖게 한다. 가령, 근간에 몇몇 시인들에 의해 창작된 ‘단장시조’와 ‘양장시조’에 관한 문제는 여러 시조시인들로 하여금 우려를 낳게 하고 있다. 이 글은 이종문 시인의 「단장시조를 다시 생각함」에 대한 문제제기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밝힌다. 이종문 시인의 말처럼 시조의 영역을 확장하는 작업은 물리적인 분량 자체를 확대하는 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내용과 기법적인 측면에서도 현대시조는 충분히 그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물론, ‘단장시조’의 언급을 위해 이 글은 내용적인 측면보다는 형식적인 측면에 더 관심을 갖고 있지만, 현대시조는 그 형식과 내용 측면에서 새로움을 꾀하며 영역을 키워가고 있다. ‘단장시조’에 대한 이종문 시인의 글에 문제를 제기하는 이 글은 ‘단장시조’의 창작이 시조의 정체성에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와, 이와 연장선상에서 ‘단장시조’라는 용어 자체의 성립이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으로부터 시작된다.


 이종문 시인은 시조의 세 가지의 분류법에 단장시조와 양장시조를 포함해 다섯 가지의 분류법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다수의 이견과 논의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는 평시조, 엇시조, 사설시조로 분류하는 것이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무리 없는 분류가 되는 것으로 보인다.

 시조는 초․중․종장의 삼장(三章) 형태를 갖춘 우리 고유의 시가 양식이다. 이러한 이유로 시조는 정형성을 보장받으며 시조의 정체성을 지켜왔던 것 아니겠는가. 노산 이은상의 논지를 빌려와 ‘단장시조’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는 이종문 시인의 논의는 다소 아이러니한 면이 있다.

 시조의 본령인 3장6구의 정형성을 지나쳐 버린 감이 없지 않아 오늘날에도 비판의 여지가 높다.

“경우에 따라서는 2장도 너무 길어서 거추장스럽거나, 너무 길기 때문에 오히려 담으려고 하는 내용을 효과적으로 담을 수 없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극도로 짧은 시 가운데는 짧지 않고서는 대상 세계를 도저히 표현할 수 없다는 참으로 절실한 당위성 때문에 짧아지지 않을 수 없는 운명을 타고 난 시도 있다”는 말은 자칫 오해의 소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물론 이 말은 자유시의 경우에는 무리가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러나 너무 길어 거추장스러울 수 있다는 어휘의 선택이 시조 창작자로서 회의를 느끼게 한다.

“시조 3장이 너무 짧을 수도 있지만, 시조 3장이 너무 길수도 있다”는 이은상의 말은 시조의 정체성을 흔드는 지극히 위험한 언급으로, 논란의 여지가 있다.  ‘양장시조’나 ‘단장시조’는 그 뿌리가 희박하며, 일제 강점기에 와카, 하이쿠를 모방하여 거론되었다가 호응을 얻지 못한 것으로 우리 시조의 족보에도 없는 형식이다. 시조 3장이 너무 길어서 다른 말들이 쓸데없는 군더더기에 불과하게 느껴진다면, 시조가 아닌 자유시를 써야 하지 않을까. 굳이 시조라는 형식을 빌려서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시조 3장의 형식은 그 자체가 금과옥조의 최종적이고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라 예술적 성취도를 극대화하기 위한 문학적 장치에 불과한 것, 따라서 3장이 만약 너무 길어서 예술적 성취에 장애가 되는 경우라면 당연히 3장을 포기하고 그 상황에 걸맞은 더 짧은 형식을 찾아보는 것이 마땅한 터다. 이들 시조의 출현은 그럴 수밖에 없는 시조사적 필연이 아닐까 싶다.”라고 말한 이종문 시인의 언급은 다소 위험성을 내포한다. 시조 3장은 시조의 기본 율격으로, 시조가 다른 모든 문학 양식과 변별되는 시조만의 양식이다. 그것은 어느 날 갑작스럽게 생긴 형식이 아니다. 만약 그러한 정형성이 “예술적 성취도를 극대화하기 위한 문학적 장치”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거나, “너무 길어서 예술적 성취에 장애가 되는 경우”라면 ‘단장시조’나 ‘양장시조’가 아닌 자유시를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 사실, ‘단장’이나 ‘양장’에 ‘시조’라는 말을 합성하는 것 자체도 시조의 정통성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단장’이냐, ‘양장’이냐 하는 시조 형식의 확장이 아니다. 3장의 그릇 안에 어떤 내용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고민하면서 창작의지를 불태워야 하는 것이다.





2. 이 작품에 떼어낼 곳과 덧붙일 곳이 있는가?



이씨 구멍가게, 외상 술값 갚은 날(도움닫기)


뒷짐 지고 마당에 나와 쳐다보는 별빛이여(발 구름)


이 값은 얼마나 될까(공중동작)


오 년째 외상인데(착지)


                       -김원각의 「외상값-산촌일기14」 전문



 위의 시에서 ꡒ 이 값은 얼마나 될까/오 년째 외상인데ꡓ라는 종장만을 가지고는 전혀 시 가 되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초장이 ꡒ외상 술값 갚은 날ꡓ로 금전적인 인간관계를 나타냈다면 중장은 시적 화자가 자연과의 관계로 전환해서 종장에 이르러 ꡒ별빛ꡓ에게 진 빚은 ꡒ얼마나 될까ꡓ로 시의 공간을 지상에서 천상으로 옮겨가는 과정이 종장에서 내용으로도 반전되어 이 시의 성공을 돕고 있음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3. 축소의 실험

 

 아래 시들은 시조의 종장만을 시로 발표한 경우의 작품들이다. ꡐ시조다. 시조가 아니다.ꡑ라는 논의의 중심에서  필자는 한 발 물러나  ꡐ그 자체로 작품성이 유효한가?ꡑ 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즉 ꡐ도움닫기와 발 구름ꡑ의 표현 없이 ꡐ공중동작과 착지ꡑ만으로도 시의 공간과 이미지를 확보하는가를 살피는 일이다. 또 ꡐ공중동작과 착지ꡑ를 볼 때 앞의 ꡐ도움닫기와 발 구름ꡑ이 표현되지 않아도 여백으로 상상이 가능한가이다.


가.


말로 다 할 수 있다면 꽃이 왜 붉으랴

                         - 이정환의 「서시」전문


ꡒ말로 다 할 수 있다면ꡓ에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의 한계성이 배어있다면 ꡒ꽃이 왜 붉으랴ꡓ는 인간의 능력 바깥에 있는 어떤 실존에 대한 물음이다. 한 장 안에 적어도 두 개의 다른 공간이 있고, 이 두 공간이 하나의 반전으로 ꡐ無說說ꡑ이요!ꡐ無設設ꡑ이 아닌가?

 여기서 위의 한 행을ꡐ공중동작과 착지ꡑ즉 상반된ꡐ동動/정靜ꡑ으로 또는ꡐ지知와 부지不知ꡑ의 구조로 볼 수 있다.


나.


 얕다고

얕보지 마라

    내

  뿌리는

  바다다

                            -문무학의 「내」전문



  이 시를 보면서 두 가지 생각을 했다. 하나는 초장과 종장을 생략하고 중장을 썼다. 내용이 상류나 하류가 아닌 중류쯤의 위치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한 장 안에 일어나는 이미지나 의미의 반전 구조상 초․중장이 생략된 종장으로 보는 것도 힘을 얻는다.즉, 한 장 안에 일어나는 반전이라면 전구 ꡒ얕다고/얕보지 마라ꡓ에서는 스프링보드 다이빙에서 보여주는 ꡐ발 구름ꡑ이라면 ꡒ내/뿌리는/  바다다ꡓ에서 시심이 깊이 하강하는 ꡐ공중동작과 착지ꡑ로 풀고 있다.





다.


돌 해태

콧등에 지는,



산 복사꽃

몇 닢

                       -박기섭의 「적멸궁」 전문


 한 장을 엄격하게 2연으로 갈라놓고 그 연 사이에 ꡐ,ꡑ를 했다. 그야말로 ꡒ돌 해태/콧등에 지는ꡓ에서 ꡒ산 복사꽃/ 몇 닢ꡓ까지의 순간을 아득하게 처리함으로써 「적멸궁」이게 하였다. 이 시를 1행으로 처리했을 경우에는 하나의 풍경에 불과할 수 있는 데, 2연 4행 처리가 가져오는 고요의 심화와 시간을 벗어버린 듯한 여백공간이 한껏 행연간의 깊은 맛을 독자에게 선사하고 있다.

 진술은 ꡐ착지와 공중동작ꡑ으로 했지만 ꡐ공중동작과 착지ꡑ의 역순으로 우리의 시선을 잡고 있는 일종의 禪詩다.



가을은 당목이지, 천지간에 종을 치는.


그래서 낙엽은 무더기로 지는 게고


지상의 목숨은 죄다


손을 펴며 깊어지지


                  - 채천수의 「가을 빈손」 전문



    가

   을은

큰 당목이지

천       지

간       에 종을 치는

   


                 - 채천수의 「가을 당목」 전문


 필자의 단시조를 단장시조 형식으로 바꾸어 보았다. 중장과 종장이 초장의 상상력을 잘 받쳐주면서 꼭 필요한 표현인가? 단장시조의 맛이 원래 단수보다 더 훌륭한지 이런 문제를 생각해볼 필요는 없는가?



4. 확장의 실험


 ①그곳에 줄 끊어진 첼로의 11월이 있고, ②팔목 붕대를 풀며 텅 빈 무대를 휘돌다 ③일순 고꾸라지는 주정뱅이 첼리스트의④ 이 빠진 술잔이 있고,


 ①그곳에 기름 등불 사위는 저녁의 ②돌담길을 적시며 오는 쇠북 소리가 있고, ③술이 눈썹 밑까지 차올라 돌아가는 ④먼 후미진 숲정이에서 ⑤붉은 수염의 토째비를 만나 씨름도 한 판 하고 ⑥더러 담뱃불도 얻어 붙이곤 하는 ⑦시오리 저문 장 길이 있고,


① 그곳에 외딴집 벙어리 부처가 ②밤 마실 가는 산모롱이가 있고,


                             -박기섭의 「그곳, 불콰한」 일부


 전체 4덩어리 중, 1덩어리를 옮겨본 것이다. 일상생활에서도 이 ꡐ불콰한ꡑ상태는 이야기가 길어지는 정조를 가진다. 이런 시가 사설시조형식을 취하는 것은 작위적이거나 우연성이 아니라 필연적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다.

 초장을 큰 의미로 보면 4마디 정도 휴지를 두되  ①, ④(①의 2.5배)에서 보이는 ꡒ~이 있고,ꡓ에서는 좀더 긴 휴지를 가져야 창작의 의도에 맞는 낭송이 될 것 같다.

 중장에 오면 ꡒ~이 있고,ꡓ가 ②(①의 2배),⑦(①의 5배)에 붙어 한층 더 이야기에 원심력을 보탠다. 이렇게 나눈 초․중장이 평시조일 때 한 장의 4마디가 가지는 단조로운 내용과 낭송의 규칙성을 무너뜨리고 풍부한 내용에 가속도를 살려 낭송할 수 있는 자체율격을 확보하고 있음을 낭송으로 체감할 수 있다.

 종장에 오면 초․중장의 가속도가 펼친 원심력을 구심력으로 바꾸는 반전의 호흡을 유지하는 길이에서 ②(초장 ①의 1.5배)ꡒ~이 있고,ꡓ로 끝맺는 탄력적 구성이 설화조의 사설에 기운으로 작용한다.







입에 발린 말들이 껌처럼 들러붙었지


① 낙하산 탄 사람들이 자리 깔고 앉아서 ②학연과 지연에 얽힌 내력을 풀고 있지③ 질기디질긴 연들을 하늘 높이 띄웠지 ④연결어미로 이어진 시간의 계보들 ⑤휘날리는 문장력에 수울~술  넘어갔지 ⑥얼레에 감긴 하루를 수울~술 풀어 날렸지 ⑦단물이 빠질 때까지 질근질근 씹던 문자 ⑧뒤얽힌 생각 몇 줄을 풀고 또 풀었지 ⑨입에 발린 말들 뒤로 달라붙는 혓바닥


①익숙한 길들만 모여 똬리를 트는 밤


                              -이송희의 「뫼비우스 띠」 전문


「뫼비우스의 띠」는 인간들의 조직화된 욕망이 파생시키는 뒤틀린 삶의 안과 겉을 고발하는 시다. 그래서 아주 냉소적이다.

위 시에서는 초장과 중장 그리고 종장의 관계가 앞의 박기섭 시와 같이 내용이나 가락에서 심화되는 그런 형국이 아닌 허위적 삶의 무의미한 반복 나열이 6회의 ꡒ~지ꡓ에서 볼 수 있다. 즉 중심이 되지 못한 주변인의 푸념을 각 장에 독립하여 기술하였지만 한 덩어리로 읽히는 상황이다. 사설의 형식적 장치가 내용에서 일부만 효과를 보는 경우라고 하겠다.





 ①대구 사는 이종문 시인 은유가 일품이던데



 ①그 짧은 가락 속에 양념 치듯 고명 얹듯 ②사자성어들이 강물에 달 흐르듯 하길래 ③내 일면식 없어도 높은 곳 조사관을 보내 ④사찰이나 할까 하다가 에라 속될진저, ⑤나도 큰 문자 하나 낚을까 해서 ⑥공맹에 배 띄우고 금강경에 노 저어 ⑦오수의 강에 드리운 낚싯대로 ⑧육두문자 아닌 육자성어를 낚아챘으니 ⑨수천 년 밑바닥 심기를 다스려온 ⑩ 명약 중의 명약이요 으뜸가는 보약이었다


①이종문, 시발노무색기始發奴無色旗*

②옥편을 이 잡듯 해도 이건 정말 모를 거다


                              -최영효의 「시발노무색기」전문




 

始發奴無色旗: 옛날 중국의 삼황오제가 세상을 다스릴 때 황하강의 발원지 시발始發현의 돌림병을 막기 위해 붉은 깃발을 내걸었는데 그곳 관노官奴만 흰깃발을 내건데서 비롯됨.



중장을 읽어보면 판소리의 ꡐ아니리ꡑ형식으로  창을 하는 중간 중간에 가락을 붙이지 않고 이야기하듯 엮어가는 사설조로 4마디를 10회 정도 읊고 있다.

 ①에서 ④까지가 이종문의 작품에 매료됨을 나타내었고, 나머지 ⑥에서 ⑩까지가 시인 자신의 작품을 쓰는 과정을 낚시에 견주어 표현하였다.

 그 표현 기술 대부분이 적절한 비유와 상징으로 일관하며 각각의 4마디의 전후구가 재미있게 만나 어울리며 서로 당기고 미는 가락까지 살리는 경우를 보게 된다.

 마지막 종장은 ꡒ이종문, 시발노무색기始發奴無色旗* /옥편을 이 잡듯 해도 이건 정말 모를 거다하며  중국고사에 나오는 하나의 사건을 그의 작품세계를 상징하는 깃발로 차용하면서 시인으로서 부러운 이종문에게는 한글발음으로 욕을 하는 이중 장치로 문우로서 그와 사귀고 싶다는 의도가 읽히며 사람을 웃게 만든다.



5.변방 언어의 실험                      

                

마구 과암을 지르며 후지져 노이께네/말에 홀망체가 정신이 하낱도 없니더/얼매나 화당당한동 배길 수가 없니더.//허패 디 배는 소리 고마  마시이소/사나아가 마누래 헤끝에 노고 있으이/곤마아 친구 없니더 혼차배끼 없니더.//아이고 답답어래이 어얬든동 단디이 살지/어애라는동 몰씨더. 천날만날 술만 묵고/내인데 들쌀을 대이 고마 덧정없니더.



                                        -채천수의 「없니더」전문



예로부터 변방의 말이 글로 자리를 잡아 살림을 차려 살고자하면 중앙의 인쇄술과 말이라는 권력이 이들의 성장을 잘 허용하지 않는 생산과 소비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까닭에 지방에서 사용되는 말은 지금의 낡은 재래시장처럼 그 기력을 많이 잃고 있으며, 대형마트나 백화점과 같은 신문과 잡지 방송국에서는 중앙의 말과 글을 전국에 무한정으로 매일 공급하는 형국이다.

 하지만 시골에서 벌어지는 그 무슨 잔치나, 장례식, 사적인 모둠 등에 갔을 때 자연스러운 사투리를 사용하는 분들의 억양과 어투에서 그곳 삶의 냄새를 진하게 맡을 수 있는 경우를 종종 경험한다. 여기서 필자는 방언의 효용성을 말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아직 살아서 통용되는 말에는 그곳 삶의 실감정과 진정성이 녹아있고 경제성까지 있기 때문에 필요에 의한 말로써 거래가 된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것이다. 말은 지역적 환경과 인문적 환경을 소환하는 힘이 있다. 즉 말과 글의 국제화가 넓이의 문제라면 지방화는 그 말과 글의 깊이의 문제로 풍성한 기여를 한다.

 어쨌든 살아서 통용되는 이 말들에게도 그 정서가 오롯이 살아날 수 있게 시조라는 형식에 그 자리를 주기로 함으로써 읽는 독자들은 많이 낯설 수도 경상북도 북부나 남동부지방에 산 경험이 있는 분들에게는 고향산천과 그곳 사람을 만난 것 같이 반가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표준말 대신 사투리를 대구 사용한다고 시 맛이 깊어진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사투리를 사용할 때 작품성이 더욱 좋아 시의 품위와 맛에 기여할 수 있는 경우만 유효하다는 것을 먼저 인정하고 시작했던 작업이다. 그들이 평생 안고 간 가난과 무질서 속을 보면 오늘따라 마음이 더욱 아프다.

 다른 방향에서 보면 의미나 이미지의 문어체 시에서 실제 발음을 표기함으로 사투리의 어투나 억양이 살아있는  입말체의 시를 시도하는 실험이기도 하다. 표준말로 바꾸어 해석을 달지 않음은 읽어서 그 자체로도 대체로 짐작이나 상상을 불러오는 재미를 주는 변방언어의 생동감을 그대로 살려놓기 위해서다.

 더러는 유효기간이 지난 옛것을 왜 굳이 앞세우느냐는 말도 들었다. 하지만 법고창신, 온고지신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듯 나는 이 민속자료 같은 삶의 말을 우리 가락의 형식 속에 되짚어봄으로써 지금 삶의 방향을 점검하는 것도 말의 시차가 가지는 감정과 정서의 거리감에서 가능하리라 본다.

  즉 포항의 과메기가 포항에서만 먹는 겨울 음식이 아니라 홍보와 맛 가격 등에 힘입어 전 국민의 사랑을 받듯이 훌륭한 지방의 말도 과메기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변두리에만 두기 아까워서 이렇게 중심에 한번 세우는 필자의 신념에  많은 관심과 질정을 기대한다.


6. 떼어낼 곳과 덧붙일 곳이 있는가?


 축소는ꡐ공중 동작과 착지만ꡑ보여주어도 훌륭한 시일 경우나, ꡐ도움닫기와 발 구름ꡑ이 독자의 상상으로 읽히는 시일 때 가능하다.

 확장은 한층 심화된 가속도가 초․중장에 필요할 때 유효한 경우를 볼 수 있다. 또 이런 덧붙인 원심력들이 종장과의 관계에서는 구심력으로 반전되어야 사설로 성공할 수 있다.

 축소의 최소 단위는 장이 되어야 하고, 확장의 최소 단위는 수가 되어야 하는 이유도 깊이 잘 반영되어야 시조로서 가치가 있는 것이다.


7. 멀리뛰기와 시조의 관계


가. 도움닫기(초장) : 멀리뛰기를 하는데 있어서 달리기를 하는 상황을 말합니다.발 구름을 하기 전 단계로 빠르게 달리다가 도움닫기를 합니다.


나. 발 구름(중장) :  멀리뛰기를 하는데 있어서 공중 도약을 하기 전 단계입니다. 도움닫기 후 마지막 발판을 밟는 보때 자세, 공중 도약을 위한 각도를  결정합니다.


다. 공중 동작(종장 전구) :  멀리뛰기를 하는데 착지의 전 단계입니다. 이 단계에서 팔과 무릎 등을 높게 당겨 뒤로 져 쳤다가 끌어 내리는 힘으로 멀리 뛴다고 합니다.


라. 착지(종장 후구) : 멀리뛰기의 마지막 단계입니다. 착지단계에서 잘 못하면 멀리뛰기 기록이 바뀌죠. 보통 상체를 앞으로 숙여 착지하여야하며 뒤로 숙일시 엉덩방아를 찌어 기록이 줄어들게 됩니다.